인도의 행복은 포용과 다양성에 있다 – 인도학자 웬디 도니거를 둘러싼 논쟁 –

현대 인도인들은 불행하다. 인도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대비되는 2018년 UN행복보고서 행복지수 133위국의 위상은 이 사실을 반증한다. 세속국가 인도에서 힌두교는 이슬람과 대립하며 ‘분노의 시대’를 만들고, 힌두뜨바(Hindutva)는 힌두교가 완전한 종교라는 이념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2014년 인도학자 웬디 도니거(Wendy Doniger)의 금서 사건은 대체역사, 여성, 카마 내러티브 등에 대한 불관용 정신을 드러내며 인도 특유의 논쟁의 역사를 스스로 외면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힌두교의 찬란한 문명으로 불리는 인도철학은 완전무결한 종교 이데올로기를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며, ‘푸루샤아르타(puruṣārtha)’라는 삶의 가치 또한 인간과 사회의 다양한 행복을 포용하는 시대적 가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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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저자 제공

김진영(서강대학교)

인도의 불행한 행복지수

인구강국 인도는 2018년 GDP 세계 7위국이며 경제와 군사대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행복분야에서만은 다르다. UN산하 자문기관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 SDSN)는 세계 156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민행복도를 조사해 2012년 이후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는 2016년 118위, 2017년 122위, 2018년 133위로 해마다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인도의 행복보고서 순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주변국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outh Asian Association for Regional Cooperation, SAARC)은 상대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인도보다 순위가 낮은 대부분의 국가는 아프리카 내전국이라는 점에서 인도는 사실상 행복지수 세계 최하위국가라고 규정해도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2018년 인도의 행복지수, 133위
UN의 『행복보고서』에서 인도는 행복지수는 133위를 기록했다. 2016년 이후 인도의 행복지수 순위가 매해 하락하고 있는 데 반해, 주변 남아시아국가들의 행복지수 순위는 상대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 DIVERSE+ASIA
주: 괄호 안은 행복 지수. ‘-‘는 N.A.
출처: UN의 <행복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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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측정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이 보고서에서 채택한 주요지표를 통해 인도가 불행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사용되는 총 6가지 지표는 1인당 국민총생산량, 출생 시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부패지수, 삶에서의 선택의 자유, 관대함(기부) 등이다. 인도는 2018년 기준 전체 GDP가 세계 7위에 해당하는 강대국인 반면 1인당 GDP순위가 142위라는 점에서 부의 편중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정부와 기업의 청렴성과 투명도, 복지와 위생을 기준으로 삼는 기대수명, 개인과 사회의 연대감을 드러내는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관대함 등의 모든 수치에서 절대적인 약세를 보인다. 이렇게 낮은 행복지수는 모디(Modi) 정부가 강력한 경제대국의 인도를 약속했지만 실제 인도인들은 더욱 불행해진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한다. 세계행복보고서의 분석을 통해 인도는 경제적 성장과 관계없이 현재 매우 불행하며, 앞으로도 계속 불행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이어졌다. 또한 주변국과의 간극도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마저 등장하면서 인도가 ‘행복’의 문제에서만은 당분간 세계 최악의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불평등과 분노의 시대

세계행복보고서 지표 외에도 인도가 불행한 대표적인 이유로 꼽히는 것은 종교분쟁과 카스트, 여성 차별 등과 연계된 극심한 불평등 문제이다. 인도 정부의 2011년 인구센서스 결과 전체인구 12억1천90만 명 가운데 힌두교도 9억6천630만 명(79.8%), 이슬람교도 1억7천220만 명(14.2%), 기독교도 2천780만 명(2.3%), 시크교도 2천80만 명(1.7%), 불교도 840만 명(0.7%), 자이나교도 450만 명(0.4%) 등으로 집계되었다. 세속국가를 표방하는 인도에서 현 정부가 보여주는 힌두뜨바(Hindutva) 및 민족주의적 힌두교 통합정책은 전체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무슬림과 소수 종교인들을 배제하면서 끊임없는 분열과 뿌리 깊은 분노를 양산해 내고 있다. 미국의 법철학자 누스바움(M.C. Nussbaum)은 이러한 현상을 그의 저서 『분노와 용서』(Anger and Forgiveness: Resentment, Generosity, Justice)에서 정치적 영역에서 행해지는 미래지향적 ‘이행분노’(Transition-Anger)’로 분석한다. 힌두뜨바는 인도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무슬림 탓으로 돌리며, “말도 안 돼, 우리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공분(公憤)을 터트려 무슬림에게 분노를 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특히 현재 모디 총리가 2002년 구자라트 폭동과 무슬림 대학살 당시 주지사였다는 점, 그리고 총리가 된 이후에도 힌두와 이슬람의 분노를 정치적 영역에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녀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 원인을 구자라트 폭동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저서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에서는 첫 장을 「인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할애하였다. 인도에서 여성차별 문제는 성폭력, 조혼, 영아사망률 등 복합적인 양상을 띠면서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 인도여성의 자살률이 전 세계 여성 자살률의 40%, 전체 자살자의 2/5에 해당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를 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누스바움이 정의와 존엄성이 가장 필요한 인간, 역량을 반드시 창조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인간으로 제일 먼저 인도여성을 거론했다는 점은 인도여성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여성의 행복을 위해 극장에서 탄생한 여신

인도여성은 사회적 지표에서 최약자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인도여성들을 구제하는 행복의 여신, 산토시 마(Santoshi Maa)의 등장은 필연적이면서도 특별하다. 산토시 여신은 1975년 저예산 영화 ‘자이 산토시 마(Jai Santoshi Maa)’(감독 Vijay Sharma)에 등장하면서 현대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신이 되었다. 당시 영화가 흥행하며 신전에 들어가듯이 신발을 벗고 극장에 들어가는 사람들, 음식을 바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근대에 영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산토시는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여성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강력한 여신이다. 그리고 단순하고 구체적인 신앙체계를 제시함으로써 현대 인도인들이 바라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산토시 마는 재물의 신 가네샤(Gaṇeśa)의 딸로 모든 신애자들의 슬픔, 고민, 불운한 운명을 번영과 행복으로 만들어 축복한다. 그녀는 두르가(Durgā) 여신의 자애로운 형태를 띠고 왼손에 검과 오른손에 삼지창을 들어 추종자들을 구제한다. 신자들은 산토시를 금요일에 숭배하며 약 16일 동안 단식하고 자제하는 규칙(vrata)을 따르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1]

영화에서 가난한 여주인공 사티야바티(Satyavati)는 아이를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는데, 산토시는 그녀를 위해 죽은 아이를 살려내어 신자의 고통과 불행을 확실하게 제거해준다. 전형적 인도여신들인 락슈미, 브라흐마니, 파르바티 등은 고귀한 신분을 앞세워 신자들에게 성대한 뿌자(puja)를 무례하게 요구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산토시는 보잘 것 없는 공양물(prasad)인 구르차나(gurchana, 사탕수수 설탕이나 병아리 콩)에 만족하고 자신을 믿는 사람들의 불행을 없애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신들이 삭티(śakti)라는 에너지를 통해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과 달리 산토시는 신애자의 단식을 통해 강해진 힘으로 그들의 고통을 제거한다(Das, 1980). 산토시는 다른 여신들과 다르게 서민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남성중심의 힌두 판테온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능동적으로 구축한다. 그리고 주인공 사티야바티는 산토시를 롤 모델로 삼아 자립적인 여성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게 된다(바이네랄, 2005). 이러한 서사를 통해 산토시는 척박한 사회의 중하층 여성들이 자율적 영역을 구축하며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하는 현대 신화가 된다.

 

힌두교를 모욕하는 ‘여성’의 시각

2009년에 발간된 시카고대학 종교학과 교수인 웬디 도니거(Wendy Doniger)의 저서 『대체역사로서의 힌두』(The Hindus : An Alternative History)가 2014년 2월 인도에서 금서로 지정되며 인도 펭귄북에서 발간된 책이 모두 회수, 폐기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도니거의 책이 치열한 법정싸움을 거쳐 금서로 지정된 형법상의 이유는 인도헌법 295a조항 위반이다. 이 조항은 종교 커뮤니티의 감정을 고의적으로 모욕하거나 악의적으로 분노하게 만드는 경우에 해당되는 위법 행위를 말한다. 힌두교 운동단체인 교육구제운동협회(Shiksha Bachao Andolan)는 힌두교를 모욕한 ‘이단’적 행위로까지 비판하면서 2011년 인도 펭귄출판사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도니거의 책의 부제가 ‘대체역사’라는 점에서, 이 저술은 주류 역사서술과는 다른 기술방법을 스스로 천명하고 있다. 그녀는 힌두교를 남성과 바라문주의라는 주류시각이 아니라 여성, 동물, 불가촉천민, 소수부족 등의 비주류의 시각으로 다루는 학자다. 대다수의 인도학자들은 그녀의 저술에 나타나는 숱한 암시와 다소 과장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여성 중심적이고 자유로운 사고, 성적 주제를 정면으로 기술하는 상징적 연구방법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비주류적 베다와 힌두교 해석법은 현대 인도에서 힌두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방법론으로 폄하되고 인도법원은 결국 그녀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게 된다.

인도 내에서의 금서추진과 관련된 일련의 재판과정을 통해 웬디 도니거라는 미국 유대인 여성학자는 결코 힌두교를 이해할 수 없는 철저한 외부인이며 힌두교를 고의적으로 폄하하는 히스테릭한 오리엔탈리스트로 평가 절하되었다. 미국 내의 힌두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물론 인도에서도 도니거는 힌두교로 하나가 되는 이상적인 인도, 그리고 인도의 행복을 방해하기 위해 이단의 역사를 주조하는 거짓말쟁이로 규정된다. 또한 인도의 성스러운 신과 여성을 섹스광으로 묘사하는, 정신병적 기질을 가진 악의적 학자로 평가되면서 극단적 미움을 받는다. 이 과정을 지켜본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는 “인도 내에 커져가는 불관용 분위기에 복종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2]는 인터뷰를 남겼다.

 

힌두교의 성적 판타지는 금지된다
금서로 지정된 인도 펭귄북의 The Hindu(2014) 표지(좌)와 표지 교체로 출판된 스피킹 타이거출판사의 The Hindu(2015) 표지(우)
2014년에 지정된 금서가 인도 내에서 출판사와 표지디자인이 교체되어 다시 출판이 가능했다는 것은 펭귄북 판본에서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이 표지 디자인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크리슈나와 고피의 관계를 성적으로 묘사한 부분, 특히 고피의 가슴을 과장되게 묘사하고 고피를 말처럼 타고 있는 크리슈나의 동작이 성적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문제가 된 것이다. 동일한 작품을 대하는 인도 내의, 성(性)에 관한 보수적이고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출처: Penguin Random House, Speaking Tiger

2014년 금서로 지정된 인도 펭귄북 표지는 크리슈나(Kṛṣṇa)신과 고피(gopī) 간의 성적 판타지가 그려진, 북디자이너 엘사 차오(Elsa Chiao)의 작품이다. 하지만 2015년 스피킹 타이거출판사는 커버를 쉬바(Śiva)와 파르바티(Pārvati) 여신의 양성구유형태(androgynous form) 신인 아르다나리쉬와라(Ardhanārīśwara) 청동상으로 교체한다. 2014년에 지정된 금서가 인도 내에서 출판사와 표지디자인이 교체되어 다시 출판이 가능했다는 것은 결국 펭귄북 판본에서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이 표지 디자인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크리슈나와 고피의 관계를 성적으로 묘사한 부분, 특히 고피의 가슴을 과장되게 묘사하고 고피를 말처럼 타고 있는 크리슈나의 동작이 성적 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점이 문제가 된 것이다. 도니거의 저술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여성, 섹스, 말(馬) 등의 주요한 메타포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펭귄북의 ‘금서’가 양성구유로 고착화된 주조상을 표지로 한 새 출판물로 출간되었다는 점은 그녀의 동일한 작품을 대하는 인도 내의, 성(性)에 관한 보수적이고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도니거는 자신의 책이 금서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힌두교가 하나의 고정불변의 절대 진리로 정형화되는 것과 신화의 성적 표현에 대한 극도의 혐오에 우려를 표한다. 그리고 2016년 『카마수트라』(Kama-sutra)라는 외설적인 성애를 다룬 힌두경전과 관련된 글을 집필하면서 성과 여성의 문제를 다시 이야기한다.

 

카마와 여성을 두 번 이야기하다

웬디 도니거는 『카마수트라』의 번역에 두 번 참여한다. 하버드 심리학자 수디르 카카르(Sudhir Kakar)와 공동 번역한 Kama-sutra(Oxford University Press, 2002)와 Redeeming the Kamasutra(Oxford University Press, 2016)이다. 앞의 저술은 산스크리트 원전에 충실한 번역작업으로 기존 번역의 오역을 바로잡고 철학자 바차야나(Vatsayana)의 저작 의도를 살리는 데 치중했다면, 2016년 발간된 저서는 1883년 리처드 버튼(Richard F. Burton)이 처음 번역하면서 생긴 경전에 대한 오해와 위상을 재평가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버튼은 『카마수트라』의 한 장의 일부만을 영역하면서 ‘카마는 성적 쾌락’이며 이 경전은 섹스지침서라는 편견을 제작했다. 도니거는 보충하거나 벌충한다는 뜻을 지닌 ‘redeeming’이라는 단어를 책 제목으로 사용하며, 버튼이 벌려 놓은 부채를 상환하는 작업으로서 『카마수트라』의 의미를 재평가하여 카마의 가치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겠다는 그녀의 의도를 명확히 한다.

카마(kāma)는 결코 단순한 성적 욕망으로 치환될 수 없는 복잡한 철학적 개념이다. 카마는 사랑이며, 미학적 감성이고,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에 대한 담론이다. 도니거가 주목한 것은 바차야나가 말하는 주체적인 여성의 성적 자유이며, 이를 통해 국가가 강해질 수 있다는 『카마수트라』의 사회적 이상이다. 성과 사랑에는 타부(taboo)가 없으며, 다양성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여성의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모디 정권은 2015년 포르노 금지정책을 강화하면서 금욕주의적 힌두교, 가부장적이고 강한 인도를 지향함을 공개적으로 표방한다. 현대사회에서 섹슈얼리티 및 젠더 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전망 대신 억압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3]

 

카마는 인간 삶의 목표이다

카마는 인도철학에서 푸루샤아르타(puruṣārtha)라는 가치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Sharma, 1982). 이 단어는 인간의 산스크리트어인 푸루샤, 목표와 목적을 뜻하는 아르타가 합쳐져 ‘인간 삶의 목표’라는 의미를 갖는다. 인간이 삶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네 가지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물질적 부(富)와 번영인 아르타(artha), 성애(性愛)를 비롯한 모든 욕망과 사랑을 뜻하는 카마(kāma), 사회적 정의와 의무로서의 다르마(dharma, 法), 윤회와 고통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모크샤(mokṣa, 解脫)의 단계로 구성된다.

가치론적으로 아르타와 다르마는 목표에 이르는 수단(sādhana)으로, 카마와 모크샤는 최종적인 목적(sadhya)으로 배치된다. 아르타는 카마에 이르게 해주는 수단이며, 다르마는 모크샤에 도달하게 해주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타밀학자 아이어(B. Iyer)는 행복의 목적론적 가치구분을 통해 ‘카마가 작고 무상한 기쁨’(chitrinba)을 준다면, 모크샤는 ‘지고의 행복’(perinba)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카마는 우리가 추구하는 일반적 행복인 수카(sukha)이며, 현대적 용어로 웰빙(wellbeing)의 행복을 의미하게 된다.

하지만 인도철학은 카마와 수카라는 기쁨을 무상한 것으로 하위 배치하면서, 영적인 기쁨을 나타내는 아난다(ānanda)와 모크샤가 고차원적 행복이라는 특유의 영성철학을 등장시킨다. 주로 산스크리트 텍스트에서 두드러진 이 현상은 푸루샤아르타에서도 모크샤를 지고의 가치(parampuruṣārtha)로 구분하면서 절대적인 위치를 갖게 한다. 하지만 모크샤는 결코 다른 세 가지 목표를 압도하는 위계적 지위를 갖는 상위개념이 아니다. 다야 크리슈나(Daya Krishna)는 인도철학을 모크샤와 영성으로 일원화시키고 지고한 원리로 분리하는 태도에 격분하면서 이를 주조된 ‘신화’로 명명한다(Krishna, 1996). 그는 푸루샤아르타는 인간이 추구하는 보편적이고 윤리적 가치의 분류법이며, 모크샤는 신비한 관념론이 아니라 세 가지 가치에 대한 이타적 초월이라고 본다. 이기적이고 개체적인 목적을 초월하여 타자를 향해 나아감의 문제에서 다르마를 통해 사회로 나아가고, 모크샤를 통해 모두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르타는 정치와 경제적 가치, 카마는 예술과 성의 가치, 다르마는 사회적 가치, 모크샤는 종교적 가치이며, 이 네 가지 모두가 인간의 중심적 가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행복을 위해서 다르마가 중요하다

아르타와 카마, 즉 물질적 부와 욕망은 다르마보다 저급하거나 상충되는 가치가 아니다. 이 두 가지 가치는 다르마를 완성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후대 수트라문헌인 Āpastamba Dharmasūtra(2.8.20, 22~23)에서는 “인간은 모든 카마(쾌락)를 즐길 권리가 있으며 이는 다르마와 상충되지 않는다. 두 세계(이 세계와 다음 생) 모두를 구하게 된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바가바드기따』(Bhagavad-gītā)(7.11)의 “카마는 다르마에 어긋나지 않은 욕망이다”라는 의미와 일치한다. 인도의 건국서사시인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서도 사회적 의무, 즉 다르마의 수행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설명한다. 빤다바(Pandavas)의 장남 유디슈트라(Yudhiṣṭhira)는 다르마와 모크샤와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캐릭터로서, 다르마의 화신으로 태어났지만 언제나 ‘모크샤’를 흠모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에게 크리슈나는 언제나 모크샤가 아니라 다르마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위대한 인격을 가진 유디슈트라는 끊임없이 모크샤를 지향하면서 전쟁을 그만두고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려고 한다. 크리슈나는 그를 설득할 마지막 수단으로 이미 숨을 거둔 비슈마(Bhiṣma)와의 대화를 주선한다. 유디슈트라는 천계에 올라가 비슈마를 만나 왜 현실에서 다르마가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오랜 시간 배우게 된다. 이처럼 『마하바라따』는 모크샤라는 가장 이상적이고 위대한 가치보다 다르마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를 집요하게 설명한다. 실제적인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 삶의 목표인 모크샤에 대한 욕망마저 버리고, 다르마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모크샤의 본질은 순수한 이타심이다

모크샤가 지고의 가치이지만 이를 초월이나 신비라는 외피만으로 오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모크샤라는 단어 자체가 고통과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 안의 아트만(ātman)의 본질을 깨닫는 순수한 자각이 필요하다. 아트만은 관념론적으로 영성을 의미하지만 이는 단순히 고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성학자인 다바모니(M. Dhavamony)는 “힌두 영성에서 분명한 것은 포기/버림의 이유다. 욕망은 고통을 주기 때문에 우리를 멸망하게 만들고, 그것을 버리면 행복해진다. 고통의 원인이 바로 욕망이기 때문이며, 세속적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고귀한 순수성이다”라고 하였다. 인도인들의 영성에 대한 경외감은 인도 최대의 축제인 꿈부멜라(Kumbu Mela)에서 드러난다. 꿈부멜라는 성스러운 강에서 목욕을 하면 죄를 씻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축제이기 때문에 거대한 인도대륙을 맨발로 순례하는 수많은 인도인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며 순수한 영혼으로 재생하기를 열망한다. 하지만 이 축제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축제에 참여한 대규모 인파가 사두(Sadhu)라는 고행자 무리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장면이다.

나시끄(Nasik) 꿈부멜라(Kumbu Mela) 축제
힌두 신화에서 불멸의 생명수인 암리타(Amritha) 항아리를 두고 신들과 악마들이 12일간 결투를 벌였다. 이 결투는 신들의 승리로 끝났고, 비슈누(Vishnu)신이 항아리를 가지게 된다. 승리의 보상으로 신들은 암리타를 마시고 불멸을 얻게 된다.
결투 중에 암리타 네 방울이 나시크(Nasik), 알라하바드(Allahabad), 우자인(Ujain), 하리드와르(Haridwas)에 떨어지게 된다. 꿈부멜라는 이를 기념하여 힌두교도들이 네 지역을 순회하면서 가트(Ghat)에서 목욕을 하면서 죄를 씻고 영생을 얻는 축제이다. 축제는 3년에 한 번, 네 성지를 순회하면서 진행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가장 이기적인 욕망을 발휘하던 이들이 사두를 위해 길을 터주는 장면은 영성과 모크샤에 대한 인도인들의 뿌리 깊은 ‘존중’ 의식을 보여준다. 사두는 오직 모크샤만을 추구하는 고행자를 부르는 말이다. 현대 인도인들이 사회적으로 유형적 이익을 창출해 내지 못하는 사두 집단을 진정으로 존중해주는지는 의문이지만, 고대부터 존재하던 산야신(Sannyasin)이라는 브라만 계급의 유행자들의 삶에서 어느 정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산야신으로서의 삶은 공부, 사랑, 결혼 등의 사회적 의무를 모두 이룬 후에야 이룰 수 있는 여분의 삶이다. 그들은 몸에 아무 것도 지니지 않고 숲을 지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그리고 세속의 욕망을 이미 성취했기에 욕망이 없고 타인과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 숲에서 동물을 지켜주고, 만나는 이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며, 그저 고행하고 걸식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해주고 그 삶을 존중한다. 그들은 윤회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후에 화장하지 않고 매장하며, 그 정신성을 지표로 삼는 사마디(samadhi) 비석을 세운다. 사두와 산야신은 요가와 초능력으로 절대존재를 깨닫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욕망을 포기하고 이타적 삶에 집중하는 고귀한 정신성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인간으로 올바르게 평가받아야 한다.

 

여성과 소수의 학문에 적용된 힌두교 불관용

성스러운 고행자들의 삶과 모크샤의 이타적 본질은 사회적 관용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2014년 웬디 도니거의 책이 금서가 되면서 드러난 힌두교의 학문적 불관용은 문제가 있다. 그녀의 책이 금서가 된 진정한 이유는 도니거가 산스크리트와 베다에 능통한 인도학자이면서도 여성과 소수자의 관점에서 힌두 전통의 문제를 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인도에서 그녀의 책이 금서가 된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인도여성을 성적으로 묘사한 부분, 특히 힌두경전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성적인 욕구와 갈망에 차 있는 것으로 해석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이 엄연한 신성모독이며 힌두교에 대한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이 금서 사건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의 탄압이라는 일차적 문제 외에도 인도학 학계에 드리운 인도의 종교적 무관용이 드러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re)에서 발표한 ‘종교적 무관용(religious intolerance) 국가’ 중 가장 악명 높은 국가로 인도가 선정되었다. 인도 외 하위국가는 시리아, 나이지리아, 이라크 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가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 도니거 금서 사건은 아마르티야 센(Amartya Sen)의 책 제목이기도 한 『논쟁을 좋아하는 인도인』(The Argumentative Indian)(2005)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인도는 고대부터 베다의 해석과 분파로 발전한 역사를 자랑한다. 각기 다른 분파들의 다양한 논쟁으로 발전한 철학이 인도철학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학문적으로 인도를 상처 내는 이러한 무관용 정책은 더 나아가서 세속국가로서의 인도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에 미국에서 발행한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잡지는 “누가 힌두이즘을 말해야 하는가(Who speaks for Hinduism?)”를 반문하는 특별 섹션을 설정해 발간하였다. 이는 힌두뜨바를 위시한 인도 정부와 우익적 학자들이 보여주는 힌두이즘에 대한 광적인 개념, 불변의 진리화 경향이 매우 위태롭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도의 행복은 포용과 다양성에 있다

힌두교의 최고경전이자 가장 오래된 베다인 『리그베다』에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을 말하는 찬가가 있다. 『리그베다』(1.164.46)의 “진실(실재)은 하나이고 현자(vipra)는 그것을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eka sad viprā bahudhā vadanti).”가 그것이다. 단일한 실재와 다양한 현상의 철학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 문구는 인간은 현상을 통해 실재를 가지각색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한다. 이를 단순하게 해석하면 하나의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는 ‘차이’에 관한 이야기다. 차이는 틀림이 아니다. 차이와 다양성은 모든 현상의 근거이기 때문에 철학함의 시작이 된다.

리그베다 필사본
힌두교의 최고경전이자 가장 오래된 베다인 『리그베다』(1.164.46)의 “진실(실재)은 하나이고 현자는 그것을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문구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이 문구는 인간은 현상을 통해 실재를 가지각색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보인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인도의 역사는 포괄성을 갖고 다양한 종교를 포용해 왔다. 센은 포용(acceptance)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인 스위크리티(swīkriti, 정확히 표현하면 svīkṛti)를 사용해서, ‘포용 중에 하나가 관용의 형평성(equity of toleration)’이라 주장한다. 현대사회에서 포용은 정의나 관용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를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Sen, 2013). 다원화된 국가, 다종교국가 인도에서 다수 힌두교와 소수 이슬람, 남성과 여성, 상위 카스트와 하위카스트는 대립하고 경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포용해야 한다. 포용은 엄연히 각 분파가 공존하는 힘과 그 힘의 저변을 갖춘 진정한 의미에서의 ‘포용’이다. 웬디 도니거 금서사건은 힌두교를 둘러싼 학문적 불관용이 드러난 지적 테러리즘이다. 인문학에서 다양한 논쟁은 필연적인 속성이며, 도니거의 대체역사관은 배제되고 차별받는 소수를 대변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고대부터 이어져온 힌두의 현실과 신화이야기, 욕망과 사랑에 대한 학문적 표현의 자유는 현대 인도에서 소수자, 여성, 더 나아가 학문의 자유로운 권리에 대한 포용을 넘어서 그들의 행복을 측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김진영(purohita@naver.com)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이다. 인도 고대철학과 종교를 전공했으며, 힌두교 종교문헌인 베다의 제식과 신화의 철학적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 한림대 생사학 연구소에서 다수의 연구 및 학술연구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현재는 서강대 철학연구소에서 근현대 인도종교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인도철학과 종교에서 신화, 젠더, 제식 등 이다. 저서로는 『인도철학의 완전한 행복』(2018), 『생과 사의 인문학』(공저), 『죽음의례와 문화적 기억』(공저) 등이 있으며, 인도 고전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1] 산토시 마의 공식홈페이지(http://www.santoshimaa.org/description-of-maa/)

[2] 14 February 2014. “Wendy Doniger Hindus book: Penguin India defends recall” https://www.bbc.com/news/world-asia-india-26184819.

[3] 모디 총리는 고대인도철학의 부활을 지지하며 고대인도가 현대의 인도의 질병을 치료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소오줌(Gau Mutra)이 아니라 『카마수트라』이다. https://www.indiaamericatoday.com/article/modi-needs-kama-sutra-not-gau- mutra-cow-urine(검색일: 2018.11.5)

 


참고문헌

  • 마사 누스바움, 『분노와 용서』(Anger and Forgiveness: Resentment, Generosity, Justice) (뿌리와이파리, 2018)
  • 마사 누스바움, 『역량의 창조』(Creating Capabilities)(돌베개, 2015)
  • Das, V. (1980) “The Mythological Film and its Framework of Meaning: An Analysis of Jai Santoshi Ma,” India International Centre Quarterly 8: 43–56.
  • 비네이 랄, 『힌두교』(Introducing Hinduism)(김영사, 2005)
  • Sharma, Arvind, 1982, The Puruṣārthas: A Study in Hindu Axiology, Asian Studies Center, Michigan State University.
  • Krishna, Daya, 1996, Indian Philosophy: A Counter Perspective. Delhi: Oxford University Press, 189–205.
  • Amartya Sen, The Argumentative Indian: Writings on Indian History, Culture and Identity, Farrar, Straus and Giroux, 2013. 35.

데이터 자료

  • UN 『행복보고서』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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