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아(한국외대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
오르한 파묵, “나의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
문학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고, 해부하여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억압적인 상황이나 모순을 제시해주며 비판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문학이 사회 속에서의 남녀불평등, 성차별, 여성 억압 문제들을 소재로 다루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억압 문제는 단지 한 나라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차별에 대한 공감과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데에서 출발하여, 현재 국내 및 해외문학계에서 여성문제 인식을 다룬 문학작품들이 활발하게 소개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면서 겪는 불평등, 성차에 대한 통념을 다룬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여성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켜 베스트셀러에 머물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지난 3월 교보문고 기준으로 페미니즘 도서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138.9% 증가했다는[1] 것을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현재 여성 문제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삶에 대한 은유인 문학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여성이 겪는 차별과 억압에 대한 소재를 다루면서 위계질서 없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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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터키문학사상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은 주로 동․서양 교차로에 위치한 터키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소설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201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내 마음의 낯섦』(Kafamda Bir Tuhaflık)은 파묵 스스로 “나의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밝힐 만큼 전작들에 비해 터키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성들에게만 강요되는 순결과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인식, 사회에서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여성들의 순종적인 이미지, 가정 폭력, 매매혼 그리고 이 지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남아선호사상과 태아가 여아라는 이유로 감행하는 불법 낙태 등 터키의 다양한 여성 억압적 현실이 여성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솔직하게 표출되고 있다. 예컨대 『내 마음의 낯섦』은 파묵의 모든 작품들 중 터키 여성 문제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소설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 뿐 아니라, 여성 문제가 주로 여성작가들에 의해 다루어지는 반면 남성작가가 이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터키 문학에 나타난 여성 문제
사회 전반에 걸쳐 서구화를 단행하게 되는 탄지마트(1839~1876) 시기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터키 여성문제는 공화국 시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중요하고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탄지마트 시기 몇몇 남성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서 사회 및 가정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여 주로 교육 문제, 일부다처제 해악 등 사회적 영역에서의 여성 문제를 다루었다. 이 시기부터 서구의 영향으로 부분적으로나마 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논의되었고, 문학작품과 정기 간행물을 통해 사회의 광범위한 계층에 여성 문제가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터키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근본적인 변화는 공화국 선포와 함께 사회 전반에 걸쳐 부각되었고, 이는 문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에 들어서 비로소 문학작품에서 여성이 활발하게 묘사되고, 남성 등장인물들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진다. 일례로 1960년대에 발표된 소설들에서는 여성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고뇌 특히 성적 자유를 요구하는 내용의 소설들이 눈에 띄며, 남성 중심적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도 다수 등장한다. 1970년대에 작품 활동을 한 일련의 여성작가들은 지식층 여성이 체험하는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 및 결혼 제도를 기본 소재로 삼아, 여성 등장인물들을 통해 지식인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면서 터키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고뇌하고자 했다. 근래 들어 터키 여성이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에 비해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가정과 사회 속에서 경제적, 정치적, 제도적, 성적으로 차별과 억압을 겪고 있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2] 현재까지도 터키의 많은 작가들은 여성들이 남성 지배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와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들을 소재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오르한 파묵의 경우 『순수 박물관』(Masumiyet Müzesi, 2008), 『내 마음의 낯섦』등의 소설을 통해 터키의 가부장적인 사회가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다양한 억압과 차별을 다루고 있다.
터키 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터키는 10세기부터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슬람 문화를 근간으로 한 가부장제도가 오랫동안 터키 여성들의 권익을 위축시켰다.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Atatürk, 1881~1938)의 서구화 개혁으로 법적으로 많은 선진국들보다 먼저 여성 지위 향상이 이루어졌으나, 이슬람 전통이 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여성 인권은 억압받고 있다.
터키에서는 법적으로 남녀평등이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문제는 해결되어야 할 사회문제들 중 하나이다. 터키 부총리 블렌트 아른츠(Bulent Arinc)는 2014년 정의개발당(AKP)이 주최한 행사에서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웃어서는 안 되며, 휴대전화로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얘기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의 언론매체 가디언은 터키에서 당해년도 120명의 여성이 남성이나 남편,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2009년 연구 조사를 인용해 터키 여성의 40%가 가정폭력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3] 이는 터키 사회 내 성차별과 여성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내주고 있는 사례이다. 여성의 인권문제는 가정 내의 가부장제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가부장적 사회가 남성의 지배구조를 띄기 때문에 사회 전체 구조도 이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에 대한 대표적 법제는 호주제라고 할 수 있다. 터키는 2001년에 호주제를 폐지했으며, 일부일처제 보장, 부부에게 동등한 이혼 권한 부여, 평등한 재산권 보장을 보장하는 법령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몇 백 년 동안 그 영향이 지속되었던 이슬람 이데올로기가 제시한 가부장적 관습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4] 여성이 결혼을 하게 되면 기존의 부권이 행사하는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가부장적 질서 아래로 횡적으로 이동할 뿐이다.
가부장적인 사회란 모든 면에서 남성 중심적이며 남성 지배적인 사회이므로, 여성은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가장이 될 수 없으며, 여성은 남성의 결정에 순종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터키에서는 이슬람의 율법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와중에, 이를 행하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연스레 가부장적 인식이 자리 잡았으며, 여성 인권이 중요시 되는 작금의 추세와 반하여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게 예속되어 복종하는 문화가 지속되고 있다.
터키 여성의 지위에 대해 아타튀르크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양성 중에서 한 쪽 만은 생각한다면 다른 한쪽은 소외 될 것이고, (중략) 위대한 터키 여성을 지적,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 삶에 있어서 남성의 동반자이자 친구로, 또 협력자로, 보호자로 삼아야 한다.”[5]고 말하며 남녀평등을 구현하고자 노력했으나 가부장제의 잔재로 인한 성불평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남아선호사상과 낙태문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남아선호사상은 『내 마음의 낯섦』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압두르라흐만 에펜디는 모든 사위들로부터 신부 몸값을 받아 내려고 한다. 여식을 키운 가치를 물질적으로 돌려받겠다는 그의 생각을 통해 터키 사회에서 여성의 매매혼이 암암리에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서 여성을 물화하는 전통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웨디하, 사미하, 라이하라는 이름의 세 딸을 둔 아버지로 등장하는 압두르라흐만 에펜디는 아들을 낳으려는 욕망 때문에 네 번째 자식을 원했지만, 갓 태어난 아들과 아내를 동시에 잃게 된다. 그는 딸들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아들을 선호하고 중요시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소설에서 자신 뿐 만 아니라, 터키사회의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일반적 견해도 밝히기 꺼려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모든 아버지들은 가장 현대적인 사람들조차 딸이 아니라 아들이 태어나길 기도하고, 이슬람 현인들에게 가 주술을 걸어 달라 하고, 사원들을 돌아다니며 신에게 애원한다.”[6]
소설 초반부터 아들을 얻기 위한 아버지들의 욕망이 드러나고 있는 바, 이는 장차 이 작품에서 남아선호사상 문제가 주요 담론으로 다루어질 것이라는 암시로 해석할 수 있다.
“용감한 아들 셋과 이스탄불로 가서 도시 밖 언덕에 우리 집을 짓고 도시를 정복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세 아들이 아니라 세 딸이 태어났다.”[7]
압두르라흐만씨의 이 독백은, 아들이 태어나면 함께 대도시로 가서 성공하고 싶었던 바람과는 반대로 딸이 태어난 것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는 자연히 여아보다 남아를 선호하게 되고, 남아를 못 낳는 것은 여성들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도 남아를 낳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출산을 감행하게 된다.
“셋째 딸 사미하를 낳은 후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아들을 낳고 싶은 꿈에 휩싸여 네 번째 아이를 낳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무라트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들이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출산 후 한 시간이 지나 숭고한 신이 아이뿐만 아니라 피범벅이 된 엄마를 부르자 나의 무라트와 아내는 순식간에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고 나는 홀아비가, 세 딸은 엄마 없는 아이들이 되었다.”[8]
그는 아들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네 번째 아이를 만들었고, 태어난 아이가 그토록 바라던 아들이었으나 아이는 세상 빛을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모와 함께 죽고 만다. 이는 터키 사회의 남아선호 풍조가 불러온 비극적 결과임에 다름 아니다.
터키의 남아선호사상에 기인한 남존여비 사상은 “Oğlan doğuran övünsün, kız doğuran dövünsün.”이라는 속담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이 속담은 남성의 수가 생산성의 증대와 연결되던 시대의 산물이지만, ‘아들은 낳은 산모는 자랑스러워하고, 딸을 낳은 산모는 애통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들의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본래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한편, 메블루트와 라이하가 장차 태어날 자녀 이름을 정하는 장면을 보면, 남아선호사상이 얼마나 터키 사회에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저녁 식사 전에 텔레비전을 보다가 광고 시간이 되면 책장을 넘기며 누룰라흐, 압둘라흐, 사둘라흐, 파즐랄라흐 하며 소리 내어 읽고는 동의를 구하기 위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우리 아기가 딸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이야기할 수 없었다.”[9]
라이하는 두 딸을 낳았는데, 임신을 할 때마다 태어날 아이가 여아인지 남아인지 불안에 떨면서 노심초사한다. 메블루트도 두 딸을 무척 예뻐하고 사랑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태어날 자녀의 이름을 정할 때 남자 이름만을 고민했고, 간혹 밥을 사러 온 손님들에게 자신의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도 했다.
“메블루트는 매우 행복했지만 그의 영혼에 라이하가 눈치 채지 못하는 낯선 느낌이 있었다. 밥 수레 유리에 붙은, 김 때문에 쭈글거리는 파트마의 사진을 보고 ‘아주 예쁜 아이네요’하는 손님들에게 간혹 가다 딸이라는 사실을 감췄다.”[10]
이렇듯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서의 남아선호 사상은 메블루트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메블루트는 라이하가 임신을 하자 이번에는 아들이라고 확신하며 작명 책에서 여자 이름이 아니라 남자 이름들이 나오는 부분만을 열심히 살펴본다. 이러한 관심은 다른 장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적인 이름 가이드』에는 유럽의 부유한 결혼식과 사립 고등학교에서 그러하듯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메블루트는 심게, 수잔, 미네, 이렘 같은 이름들을 읽고는 웃고 넘어갔다. 톨가, 하칸, 클르츠 같은 남자 이름들만 진지하게 생각했다.”[11]
이 서술에서 우리는 메블루트가 아내가 임신한 아기가 여자 아이일 수도 있다는 고려 자체를 하지 않고 남자아이 이름들만 주의 깊게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라이하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되자, 여자 이름을 검토해보면 반대로 남아가 태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신의 뜻이 담긴 여자 이름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메블루트에게 말한다.
“나는 메블루트에게 종교적 의미가 담긴 이름들이 쓰인 책을 주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모든 남자 이름들을 훑어 봤는데 결국 딸이 태어났어. 이번에 모든 여자 이름들을 일일이 검토하면 혹시 아들이 태어날 지도 몰라. 신의 뜻이 담긴 여자 이름이 있는지도 좀 봐!’, 메블루트는, ‘신의 의미가 담긴 여자 이름은 있을 수 없어!’라고 했다.[12]
메블루트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신의 의미가 담긴 여자 이름은 있을 수 없어’라고 대답한 것은, 여자에게 신성한 신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뜻이며, 이는 분명 성차별적인 발상이자 가부장적 사고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메블루트가 남아의 이름만을 찾기는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딸을 몹시 사랑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를 미루어보아 남아선호사상이 단순히 개인의 선호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터키가 남성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을 타자화하고 하위로 보는 구조로 말미암아 남아선호사상이 생겼으며, 이는 다시 여성을 억압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라이하는 자신이 임신한 둘째 아이도 딸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배 속에 있는 아기가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메블루트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아니면 어쩌지?”[13]
이 독백에서 우리는 라이하가 고귀한 생명을 잉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기 보다는, 임신한 아이가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초초해하며,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유대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하다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 하고, 여아도 최소한 남아만큼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의식이야말로 한 사회의 민주화 과정의 기본이며, 그 지름길은 바로 가부장적 사회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한편, 라이하가 셋째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메블루트는 이번에는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에 들떠 상상을 한다.
“아이의 이름은 메블리드한이 될 것이다. 메블루트는 무굴 제국의 시조 바부르 칸에게 세 명의 용감한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도를 정복했고, 칭기즈칸은 네 명의 충직한 아들 덕분에 세계가 가장 두려워하는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이스탄불로 온 초기에 아들이 옆에 없어 성공하지 못했으며 (…)”[14]
메블루트가 이렇게 장차 아들과 함께 이룩할 미래에 대해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사이, 라이하는 이번에도 복중의 태아가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낙태를 원하지만 남편 메블루트의 동의를 얻지 못해 법으로 정한 낙태 가능 주수인 십주를 초과하게 되자 스스로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하다 목숨을 잃게 된다. 라이하가 시도했던 원시적인 방법은 독한 약물을 먹거나 옷걸이나 긴 막대기로 자궁 경부와 자궁을 긁어내는 등의 방법을 의미한다.[15] 남편의 허락이 있어야 낙태할 수 있다는 조건은 바로 여성이 남자의 소유물이자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의미이다.
터키에서는 1980년대 초에 공화인민당(CHP) 소속 국회의원인 차을라얀 에게(Cağayan Ege )가 국립병원에서 낙태를 허용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는 농촌에서 여성들이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하고 있으며, 불완전한 낙태 조건으로 인해 여성들이 불구가 되거나 죽음에 이른다는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다른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16]
경제적 지표와 더불어 그 사회의 여성 문제를 잘 알 수 있는 지표는 여성이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이다. OECD 회원국 35개국 중 산모의 의지에 의한 임신중절 즉 낙태가 허용된 국가는 25개국이고, 예외적으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는 4개국까지 합하면 OECD 회원국 80%인 29개국에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17] 우리나라 모자보건법 제14조의 낙태법에 대한 조항들의 내용을[18] 보면 낙태 시 배우자의 동의 여부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약하는 것이며, 여성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가부장제의 낡은 잔재이자 시대착오적인 사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는 큰 딸 웨디하의 독백은 낙태를 둘러싼 터키 사회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케난 에브렌 장군이 1980년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삼 년이 지나 좋은 일을 했는데, 그건 미혼 여성에게 임신한 지 십 주 전까지는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받을 권리를 주었다고 말했다. 이 권리는 혼전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미혼의 용감한 도시 여성에게 유용했다. 기혼 여성이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남편들을 설득하여 낙태하는데 동의한다는 사인을 받아야 했다. 둣테페에 사는 많은 남편들은 그럴 필요가 뭐 있어, 죄악이야, 애들이 크면 우릴 보살피겠지 하며 사인을 해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여성들은 남편들과 기나긴 싸움을 한 후에 네 번째, 다섯 번째 아이들을 낳았다. 어떤 여자들은 서로에게서 배운 원시적인 방법으로 낙태를 시키기도 했다. 나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메블루트가 사인을 해 주지 않아도 절대 동네 아낙네들의 말에 솔깃해서 그런 짓 하지 마, 알았지, 라이하? 나중에 후회할 거야.” 한편 코르쿠트처럼 동의서에 사인하는 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남자도 있다며 그런 부류의 남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이 남자들은 피임보다는 사인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차피 낙태가 있으니까 뭐!”라며 아내를 임신시킨다. 코르쿠트는 새로운 법이 생긴 후 세 번이나 헛되이 날 임신시켰다. 나는 에트팔 병원에 가서 낙태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다.”[19]
이렇듯 미혼여성에게 주어졌던 십 주 전 태아에 대한 낙태 허용은 기혼 여성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으며 반드시 남편을 대동하여 혼인 증명서를 제출 한 후에야 이루어졌다. 남성의 동의를 얻어야 낙태를 할 수 있는 것은, 소설 속 메블루트처럼 낙태를 원하지 않는 남편이 이를 미룰 경우 여성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권리 혹은 선택권을 ‘남편’과 나누어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스스로의 몸에 대해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가부장적 사고의 연속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제연합 경제사회국 인구분과(United Nations,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Population Division)의 보고에 따르면, 터키의 경우는 2013년 기준, 임산부의 생명 및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위협을 받을 경우, 성폭행에 의한 경우, 태아에게서 결함이 발견된 경우, 경제적․사회적 이유, 임산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모두 임신 중절이 합법이다.[20]
안전하지 못한 낙태는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그로인해 많은 여성들은 생명을 잃거나 장애를 가지게 된다. WHO(World Health Organization)에 의하면 불안전한 낙태는 매해 2천 2백만 건으로 추정되며, 4만 7천명의 여성이 낙태로 죽음에 이르고 5백만 명의 여성은 낙태로 인한 장애를 가지는 것으로 추정된다.[21]
여성이 죽음까지 몰고 가는 안전하지 않은 낙태를 선택하는 데에는 해당 국가의 낙태 정책과 안전한 낙태 수술 접근성 등 많은 요인이 있지만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지우는 관행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태아의 생명권 역시 중요하지만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인 만큼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공론의 장이 열려야 할 것이다.
터키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기대하며
터키가 서구의 영향으로 다방면의 법적 제도의 변화를 거치면서 여성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세습되어온 남성 중심 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이슬람 이데올로기로 인한 삶의 방식은 지속적으로 여성을 억압해 왔다. 한편, 여성이 과거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개방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남성들의 인식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 남녀 차별적 인식이 상당 부분 개선된 것도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문학작품은 당대 사회를 담아내고 가치관과 사상 등도 투영한다. 오르한 파묵의 최신작 『내 마음의 낯섦』에서는 터키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남자 주인공 메블루트와 결혼한 라이하는 물론이고, 나머지 두 자매들의 억압적인 결혼 생활과 아이를 키우며 겪는 부침이 각각 1인칭 시점으로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이는 타자화된 서술자에 의해 설명되는 존재가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전달하는 서술자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소설은 주인공 메블루트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여성들의 애환과 고통, 희생과 인간적인 면모들도 심도 있게 드러나면서, 여성이 소설 속에서 비중 있는 주체로 다뤄지고 있는 것을 넘어 그녀들의 사고, 말 그리고 행동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여성 인권 문제가 표출되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룬 여성 억압 문제의 주요 이슈들 중 하나인 가부장적 사고방식, 남아선호사상, 낙태는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맞물려 있는 문제이다. 임신 중절 권리를 제공하는 제도에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은 여성의 자기 신체 결정권에 남성의 권위가 행사된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타자화되는 억압을 상징한다. 낙태 그 자체 행위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윤리적 차원 그리고 여성의 인권 차원을 함께 고려하여 접점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터키는 법적으로 남녀의 지위가 동등하다고 하지만 여성 인권 문제의 심각성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남성들 뿐 만 아니라, 여성들도 이러한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사회적 악습과 무의식적인 성차별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여성은 현재도 불평등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터키에서의 남성 중심적 사고와 일맥상통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성 억압 문제는 이에 대한 모순된 인식을 올바르게 정립함으로써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저자소개
이난아 박사(nanaturkey@hanmail.net)는
터키 국립 앙카라 대학에서 터키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대 터키ㆍ아제르바이잔어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터키 문학의 이해』, 『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가 있으며 터키문학, 문화, 문화콘텐츠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소설 『내 이름은 빨강』등 40여권이 넘는 터키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며, 김영하의『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등 6편의 한국문학작품을 터키어로 번역했다.
[1]〔2018, 여성들〕ⓛ문화계에서 정계까지 미투… 용기 있는 고백이 불러온 파동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805301718498085309_1(검색일:2018.06.25).
[2]이난아, “터키 문학에 나타난 여성문제의 역사적 고찰 : 터키 근·현대 문학사를 중심으로”, 『지중해지역연구』, 2006, 297~298,
[3]“여자는 큰소리로 웃지 마” 터키 부총리 망언에 SNS 뒤덮은 ‘하하하’ 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217859 (검색일:2018.01.25)
[4]이난아, “터키 문화 코드에 대한 소고”, 『글로벌문화콘텐츠』, 제10호, 2013, 36~37쪽.
[5]Türk Devrimleri Tarihi Enstitüsü, Atatürk’ün Söylev ve Demeçleri, C.II, Türk Devrimleri Tarihi Enstitüsü, İstanbul, 1981, s. 150~151.
[6]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 민음사, 2017, 370쪽.
[7]위의 책, 60쪽.
[8]위의 책, 112쪽.
[9]위의 책, 275쪽.
[10]위의 책, 279쪽.
[11]위의 책, 278쪽.
[12]위의 책, 293쪽.
[13]위의 책, 280쪽.
[14]위의 책, 465쪽.
[15]또 다른 방법으로는 무거운 짐 들기, 카펫 먼지 털기, 배 위에 무거운 물체 놓기, 자궁 안에 비누나 화학 물질 투입, 복부 마사지, 약초 마시기, 아스피린 같은 피를 묽게 하는 약물 복용 등이 있다. Funda Çoban, “Bir İnsan Hakkı Olarak Güvenli Kütaja Erişm”, Arvin Çorum Üniversitesi Uluslararası Sosyal Bilimler Dergisi(2), 2015, p. 91.
[16]Hazal Atay, “Kurtaj Yasasının Arkeolojisi: Turkiye’de Kurtaj Duzenlemeleri, Edimleri,
[17][랭킹쇼] 낙태를 합법화한 나라 불법화한 나라http://raythep.mk.co.kr/newsView.php?cc=270000&no=15341 (검색일:2018. 06.12).
[18]박승호, “모자보건법 제 14조에 대한 헌법적 검토” 『법학논총』 제31호, 숭실대학교 법학 연구소, 2014, 98쪽 참조.
[19]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 민음사, 2017, 464~465쪽.
[20]김민지, “낙태 담론과 낙태 합법화 추이”, 『문화와 사회』, 26호 1권, 2018, 188쪽.
[21]김도경, 허윤주, “낙태에 대한 여성의 인식과 태도 – 낙태 허용도와 여성의 낙태 결정권을 중심으로”, 『여성학연구』 23(3),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2013, 14~15쪽.
참고문헌
- 김도경·허윤주. 2013. “낙태에 대한 여성의 인식과 태도 – 낙태 허용도와 여성의 낙태 결정권을 중심으로.” 『여성학연구』 23권 3호.
- 김민지. 2018. “낙태 담론과 낙태 합법화 추이.” 『문화와 사회』 26호 1권.
- 박승호. 2014. “모자보건법 제 14조에 대한 헌법적 검토.” 『법학논총』 31호.
- 오르한 파묵 저. 이난아 역. 2017. 『내 마음의 낯섦』. 서울: 민음사.
- 이난아. 2006. “터키 문학에 나타난 여성문제의 역사적 고찰 : 터키 근·현대 문학사를 중심으로.” 『지중해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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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창. 2017. “’누나 명예살인’ 남성 2명, 터키 법정서 무죄 판결.”『국민일보』 (5월 31일).
- Atay, Hazal. 2017. “Kurtaj Yasasının Arkeolojisi: Turkiye’de Kurtaj Duzenlemeleri,
인터넷 자료
- 박상은. 2014. “‘여자는 큰소리로 웃지 마’ 터키 부총리 망언에 SNS 뒤덮은 ‘하하하’”
- http://news.kukinews.com/news/article.html?no=217859 (검색일:2018. 01. 25).
- 김정범·조선희. 2017. “[랭킹쇼] 낙태를 합법화한 나라 불법화한나라”
- http://raythep.mk.co.kr/newsView.php?cc=270000&no=15341 (검색일:2018. 06. 12).
- 남우정. 2018. “ⓛ문화계에서 정계까지 미투… 용기 있는 고백이 불러온 파동”
- http://biz.heraldcorp.com/culture/view.php?ud=201805301718498085309_1(검색일:2018.06. 25).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