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평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연방민주주의와 아세안의 5PC

미얀마 정치적 위기의 근원은 식민지로부터 배태되었다. 영국은 ‘분할통치하는 전략’을 일삼으며 미얀마인들 간에 종족 간, 종교 간, 지역 간 균열을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통합되기 어려운 상태를 배태시켰다. 60여 년 동안 영국식민지에 의해 만들어진 ‘균열’의 미얀마 사회는 1962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또다시 60여 년간 군부 지배에 의한 분할통치에 놓였다. 2011년에서 2020년 사이의 민주화 이행기만으로는 이러한 ‘균열’의 미얀마 사회를 통합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었을 것이다.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미얀마 사회가 안고 있는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과연 미얀마 민주화 세력으로 대표되는 NUG와 NUCC는 이러한 균열된 미얀마 사회를 넘어서 연방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현재 미얀마 문제에 대한 아세안의 문제해결 방식인 5PC(5가지 합의안)는 실행 가능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탐색할 수 있을 때, 미얀마의 평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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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희(아시아연구소)

미얀마 군부에 의한 일상화된 폭력, 그렇지만 한 사람의 죽음도 헛되지 않게 하기

2021년 2월 1일 발생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동남아 역사에서 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프놈펜 점령(소병국, 2020:591) 만큼, 21세기에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이후 20세기 후반 대륙부동남아 지역 내에서 국가 내 극심한 정치적 갈등이 왕왕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IMF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역내 회원국이 모두 아세안에 가입한 이후 21세기의 아세안은 20세기와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2021년 2월에 발생한 군부 쿠데타는 동남아 전역에 매우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미얀마 내부에서도 쿠데타 이후 즉각적인 시민불복종 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이하 CDM)이 강력하게 전개되었고, 미얀마 민주화에 대한 강력한 갈망으로 죽음으로 항거하는 저항운동이 계속 전개되고 있다.

2022년 11월 17일 기준으로 ‘정치사범지원협회(이하 AAPP: 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Burma)’의 정보에 따르면, 정치사범으로 감금된 사람은 총 16,248명으로 그중 3,250명이 석방되었고, 군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은 총 2,516명이다.1) AAPP는 어떤 조직인가? 이는 미얀마 국경과 가까운 태국 매솟(Mae Sot)에 본부를 둔 버마 인권단체로, 2000년 3월 미얀마 8888 민주화운동 당시 체포된 Min Ko Naing의 감금 11주년을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인권단체이다. AAPP는 ‘정치사범이 존재하는 한, 버마의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라고 보고, 정치사범에 대한 지원 및 석방 투쟁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AAPP는 2012년 미얀마 민주화 이행시기 동안 많은 정치사범들이 석방되었던 경험도 갖고 있다. 그러나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다시 정치사범은 폭증하였고,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2021년 2월 이후 군부에 의해 살해된 인원만 2,516명에 달하고 있다.

AAPP는 2021년 2월 1일 이후 매일 매일의 일들을 기록하면서, 죽어 간 모든 이들의 희생과 감금된 이들의 고통과 저항을 알리고 있다. 쿠데타 이후 죽음이 마치 일상화되어 버린 상황에서도, AAPP는 단 한 사람의 죽음도 헛되이 되지 않게 하고자 일간 브리핑을 통해 죽어간 이들의 이름과 이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리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11월 18일의 일간 브리핑(Daily Briefing since Coup)에는 21살의 청년 Ko Min Oo의 사진이 보인다. 그는 양곤 북쪽 Okkalap 출신이며, 2021년 3월 3일 군부가 쏜 총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기록되었다.

Daily Briefing since Coup (2022.11.18.)
출처: AAPP (https://aappb.org/?p=23491)

그리고 올해 7월 미얀마 군부는 감금된 4명의 민주화 활동가를 사형시켰다. 이는 미얀마 내에서 46년 만에 발생한 정치범 사형집행이라고 한다. 올해 7월 미얀마 군부는 초 민 유, 표 제야 토와 같은 대중적으로 신망받는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였고, 아세안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강력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최근 10월 19일 오전 양곤 인세인 교도소 앞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8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 당했는데, 미얀마 군부 관계자들은 군부에 반대하는 무장단체가 폭발을 자행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NUG(National Unity Government, 민족통합정부)는 이 폭발과 관련하여 폭발의 주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고, 법적인 절차에 의해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말하자면 군부는 이번 폭발이 혁명 무장단체의 소행이라고 하면서 민간인에 대한 압박을 가속화하는 반면 NUG는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2022년 미얀마 군부가 처형한 4명의 민주화 인사(Ko Jimmy (aka) Kyaw Min Yu, Phyo Zayar Thaw, Hla Myo Aung and Aung Thura Zaw)
출처: AAPP (https://aappb.org/?p=22509)

 

단일한 1인 지배체제의 미얀마 군부와 균열된 사회의 대조

미얀마는 현재 단일한 그리고 조직화된 군부(Tatmataw) 대 종족 및 무장단체별로 균열된 시민사회로 크게 대비되는 양상을 띤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가 강고한 지배를 유지하는 것은, 군은 점점 더 단일한 결사체가 되어 가는 동안 그 외 세력은 분열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기인한다. 즉, 미얀마 군부는 내부의 단결을 무기로 “분열된 사회”, “균열된 사회” 위에 군림하는 집단으로서 ‘국가 안의 국가’와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장준영, 2022).

미얀마 사회의 종족 간 분열은 군부의 지배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구조적 요인이고, 그 기원은 식민지배로부터 시작된다. 잠깐 짚어보자면, 종족, 언어, 종교의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균열사회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지배하는가’와 ‘어떻게 지배당하는가’와 연관된 통치행위의 결과로서 현재와 같은 미얀마 사회의 종족 간 분열 현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현 미얀마 지역에 선주민으로 거주했던 종족으로는 몽족(Mon)과 쀼족(Pyu)이 있고, 현재 미얀마 전체 인구의 약 68%를 차지하는 버마족은 9세기 후반 무렵 상부의 비옥한 평원지대인 강유역에 정착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버강(Bagan) 왕조, 따웅우(Taungoo) 왕조, 꽁바웅(Kongbaung) 왕조 시기를 거쳤고, 마지막 꽁바웅 왕조는 영국과 세 차례 전쟁을 치를 만큼 강력했지만, 결국 1885년 영국의 승리로 1886년 1월 1일부터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박장식, 2022). 1947년 독립에 이르기까지 영국에 의한 식민지배는 61년간 유지되었고, 영국은 미얀마를 ‘분할통치(divide and rule)’로 다스렸다. 식민지 분할지배는 당연하게도 일차적으로 식민 지배세력 대 피식민 구성원 간의 분열로 이어졌고, 그 다음은 기독교 대 불교 등 종교 간 균열로, 또 다음으로는 피지배층을 다시 언어, 종교, 민족, 거주지역, 피부색, 경제 수준과 활동 분야 등으로 구분하여 분할통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1962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식민지 시기 동안 작동했던 ‘분할통치’를 계속 적용하고자 했다. 1988년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소수 민족은 반정부 시위에 가담하지 않았던 것이나, 2016년 아웅산 수찌 여사가 이끄는 민간정부가 출범했을 때도 소수 민족들은 긍정적인 기대를 표현하지 않았던 것에서 이러한 균열의 결과가 잘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2021년 군부 쿠데타가 발발했을 때에도 대표적 무장단체인 카렌민족연합(KNU, Karen National Union), 아라칸군(AA, Arakan Army), 카친독립군(KIA, Kachin Independence Army) 등의 입장 표현은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것에 그쳤다. 즉, 소수 민족들의 입장에서는 군부이든 NLD 중심의 민주화 세력이든 ‘같은 버마 종족’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갈등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했었던 것이다. 참고로 2021년 2월 쿠데타가 발발하기 이전 대표적인 종족별 무장단체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버마족은 현 미얀마 군대, 몽족은 NMSP(New Mon State Party), 라카인족은 아라칸군(AA), 샨족은 SSPP(Shan State Progress Party)/RCSS(Restoration Council of Shan State), 카렌니(또는 카야(Kayah))족은 KNPP(Karenni National Progressive Party), 친족은 CNF(Chin National Front), 카친족은 KIA, 카렌족은 KNU로 무장세력화 되어 있었다. 종족별 규모로 보면, 버마 68%, 샨9%, 카렌 7%, 라카인 4%, 몽족 2%, 그 밖의 종족으로 구성된다.

2022년 9월 발간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안먀 군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은 전 국토의 17%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밖의 지역이 단일한 민주세력으로 규합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또한 군부의 영향 범위가 국토의 17%라고는 하지만, 이 17%가 경제활동이 집중되어있는 주요지역들이라는 점 또한 주의해야 한다. 미얀마 영토는 중부 평원지대와 외곽 산악지역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전통적으로 강력했던 왕조는 중부 평원지대를 기반으로 했으나 영국 식민시기부터 군부의 장기집권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사이 만달레이, 네피도, 양곤이 경제활동의 주요지역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족 간 그리고 지역 간에는 갈수록 높은 장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2022년 2월 현재 미얀마의 종족별 무장단체 포진 양상
출처: Wikimedia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ilitary_situation_in_Myanmar,_February_2022.png)
저자: Thomas van Linge (twitter.com/@ThomasVLinge)

 

균열을 넘어 연방민주주의 길로

미얀마 민주화 세력은 뚜렷한 정치적 실체이다. 독립과 오랜 군부집권의 역사에서도 미얀마를 민주주의 국가로 세우고자 했던 정치적 실체들은 오랜 투쟁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중요한 정치세력이다. 그래서 쿠데타가 발생하자마자 미얀마 시민들은 즉각적으로 CDM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족통합정부(NUG)는 군부에 맞서 만들어진 정부로서 2020년 11월 총선에서 선출된 NLD 국회의원 그룹(Committee Representing Pyidaungsu Hlutta, CRPH) 및 소수민족 대표로 구성되었다.

그동안의 민주화 세력은 미얀마 사회에 깊게 패인 종족 및 지역 간 균열을 통합하려는 민주화 세력으로는 발전하지 못해왔다. 이러한 종족 간 균열은 2011년 이후 전개된 민주화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했으며,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완전히 드러났다. 아웅산 수찌 여사를 중심으로 한 NLD의 집권 동안에도 로힝야 종족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탄압을 통제하지도, 또 해결하지도 못하였고, 이는 민주세력의 정당성을 완전히 약화시켰다. 즉, 지금까지의 미얀마의 권력이 민주화 세력을 포함하여 버마종족이라는 주류종족 중심의 권력구조였다는 것이 군부 쿠데타 이후에 전면화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CRPH는 2008년 헌법을 폐지하고, 과거 소수 종족 무장단체에 대한 테러조직 지명을 해제하고, 이들을 NUG의 구성원으로서 임명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군부 쿠데타 이전에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제되었던 소수 종족들이 NUG 안에서 대표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CRPH/NUG와 민주적 야당에 속한 다양한 조직, 다양한 소수 종족과 무장한 소수 종족 단체들은 ‘국가통합자문위원회(NUCC: National Unity Consultative Council)’에 모여서 ‘연방민주주의 헌장(Federal Democracy Charter)’을 만들었다. NUCC는 시민불복종운동(CDM), 시민방위군(PDF, People’s Defence Force), 소수민족무장단체(EROs, Ethnic Armed Organization),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 민족통합정부(NUG)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정당 대표, CRPH 대표, 민간단체 대표, 소수민족자문위 대표, 민족방위군 대표 5가지 차원으로 구성되었다. NUCC는 2021년 3월 30일 연방민주헌장을 제정했고, 2022년 1월 27-29일 민중총회에서 연방민주헌장을 승인하였다.

이 헌장은 연방제도의 적용을 통한 민주주의로의 복귀를 향한 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현재 미얀마 사태 해결의 핵심은 미얀마 군부가 ‘연방민주주의 헌장’에 동의하여 미얀마 민주주의 지지 세력과 어떤 타협의 지점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 NUG와 NUCC가 구상하는 연방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내용은 ‘주별 독립성’과 ‘주별 동등성’에 기초한 연방제의 성립이다. 각 주는 자기결정권을 갖고 정치적으로 동등하다. 이러한 원리는 연방 안에서 태어난 모든 종족적 민족성(ethnic nationality)에 관해, 개인의 자유권을 완전히 존중함과 동시에 그들의 집합적 권리를 보증하기 위함이다. 권력은 연방정부권력(Union Power), 공동권력(Concurrent Power) 그리고 주권력(States Power)으로 구성된다. 각 주는 주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며, 미얀마 연방 전체로 보았을 때는 권력공유 모델을 채택한다. 각 권력 차원은 견제와 균형으로 삼권분립에 의해 운영된다. 그리고 군부와 방위력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문민정부(the democratically elected civilian government)하에 통제되는 것으로 모든 물리력은 연방정부 하에 통제되는 것이다(Sakhong, 2022).

NUG 리안흐몽사콩 연방부 장관 ‘연방민주주의’ 발표(2022년 10월 21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미얀마국제학술대회)
출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이전에도 연방민주주의는 미얀마의 구조적 특징을 반영한 민주주의 모델로 제기되어 왔는데, 지금까지는 실패해왔다. 이 모델의 최초 구상은 1947년 버마정부와 샨주 대표, 카친과 친 대표 등이 합의한 빤롱 합의문(Panlong Agreement)이었지만, 오히려 작년 쿠데타 이후 연방민주주의의 성공요건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그 이유는 NUG와 NUCC 안에 그동안 버마 중심주의로 배제되어 있던 소수 민족들이 결합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수 민족들이 강하게 그리고 많이 결합되지 않은 것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앞으로 군부를 제외하고 그 밖의 모든 세력이 얼마나 연대할 수 있는가 통합할 수 있는가가 연방민주주의 성공의 관건인 것이다.

물리적인 힘의 양상을 보았을 때, NUG가 만든 시민방위군(PDF)과 과거 소수민족무장단체(EAOs), 카친독립군(KIA), 카렌족자유군(KNLA), 친족군(CNA, Chin National Army), 카렌니진보당(KNPP) 등 4개 단체가 PDF와 군사적 연대를 맺게 되었다. 하지만 샨주회복평의회(RCSS), 파오민족해방기구(PNLO, Pa-Oh National Liberation Organization), 카렌민족연합(KNU)과 EAOs 내의 아라칸군(AA),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 Myanmar National Democratic Alliance Army), 뻘라웅족해방국(TNLA, Ta′ang National Liberation Army), 통합와주군(UWSA, United Wa State Army) 등은 아직 독자적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아세안의 5PC가 미얀마의 연방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데,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아세안에게 있어 미얀마는 아세안의 역량을 실험하는 사례로 기능하는 듯 하다. 미얀마가 아세안에 회원국이 될 때도 당시의 미얀마를 군부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국제사회의 의견을 저버리고 아세안은 회원국으로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2008년 나르기스 쓰나미로 미얀마가 큰 피해를 보았을 때, 아세안은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었고, 미얀마 군부는 외부의 도움을 받아도 체제가 붕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이후 스스로 체제를 개혁개방하는 경로를 선택하게 되었고,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민주화 이행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는 다시금 아세안에게 엄청 큰 숙제를 안겨주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인한 미얀마의 정치적 위기를 아세안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아세안은 기본적으로 주권국가 안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외부 세력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원칙인 내정불간섭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문제해결을 위한 아세안의 건설적인 개입(constructed engagement)을 허용하고 있다.

어쨌든 미얀마 정치적 위기에 대한 아세안의 문제해결 방향은 2021년 4월 24일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통해 만들어낸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 성명서(Chairman’s Statement on the ASEAN Leader’s Meeting)”의 핵심적인 내용인 5가지 합의안(5PC: Five Point Consensus)이다. 첫째, 미얀마에서의 폭력 근절과 모든 당사자들의 자제. 둘째, 민중의 이익에 기초하고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건설적 대화(constructive dialogue) 시도. 셋째, 아세안 사무국의 지원과 함께, 아세안 의장이 지명하는 특사(special envoy)가 대화 과정을 중재. 넷째, 아세안 재난관리(AHA) 센터를 통해 인도적 지원. 다섯째, 특사와 대표단은 모든 이해 당자자들을 만나야 한다. 이러한 5PC는 2년간 아세안 활동의 근간이었다. 그런데 미얀마 특사는 브루나이 의장국 시절 8월에서야 임명되었고, 별로 활동한 바가 없다. 상대적으로 올해 2022년 캄보디아 의장국 체제에서 프락 소콘(Prak Sokhonn) 특사는 올해 인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5PC에서 가장 핵심적인 2번째 사항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미얀마 군부를 중심으로 한 현 집권세력은 일절 대화에 응하고 있지 않았다.

5PC를 중심으로 한 아세안의 대응은 그동안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문제해결’이라는 원칙 하에 ‘대화’는 여전히 중요하다. 내년에는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의장국 수임의 해이다. 의장국을 인도네시아가 맡는다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차이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는 지금까지 아세안 의장국을 3번 역임했다. 아세안 출범의 해인 1967년 그리고 2003년, 2011년이다. 세 번의 아세안 의장국 수임 때마다 발리 선언(Bali Concord) Ⅰ, Ⅱ 그리고 Ⅲ를 발표하면서, 아세안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방향을 제시하였다. 필자가 최근 인도네시아 현지조사를 다녀오면서,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들었던 의견들을 종합해봤을 때, 의장국으로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의 모든 역량을 총집중해서 ‘지역 현안’을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를 조율했던 경험, 말레이시아와 해양영토 분쟁이 있었지만 해결했던 경험, 태국과 캄보디아 문화재 분쟁을 해결했던 경험 등 역내 갈등 해결을 적극적으로 해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장국으로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의장국은 두 가지 차별화된 조건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미얀마 사태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을 축적해온 시간이다. 즉, 미얀마의 본질적인 문제는 종족 간, 지역 간 균열과 불신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캄보디아 의장국의 경험으로서 미얀마 소수 종족들과의 대화 진행이다. 소수 종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종족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말레이시아 정부도 진행하고 하였다. 인도네시아도 미얀마 소수 종족들과 비공식적인 대화를 진행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최근 11월 11일 제40·41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ASEAN Leader’s Review and Decision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Five-Point Consensus”의 내용이 갖는 함의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 이해로는 첫째, 미얀마는 여전히 아세안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세안 헌장 7항과 20항에 기초한 것이고, 제38차와 제39차 정상회의에서 재확인되었다. 즉, 군사쿠데타로 미얀마 정치적 상황이 비정상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아세안 회원국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한다는 점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상황은 매우 엄중하고, 증가하고 있는 미얀마 내에서의 폭력은 미얀마뿐만 아니라 아세안 공동체 노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세안은 미얀마가 현재의 위기를 평화적으로 그리고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는데 지원할 것이다. 셋째, 5PC가 거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미얀마 군부는 아세안 정상들과의 약속인 이 합의안을 준수해야 한다. 그리고 5가지 합의안을 앞으로 구체적인 시간표(specific time-line)에 따라서 측정 가능한 구체적 실행 프로그램으로 구현해 낼 것을 밝히고 있다.

40·41차 아세안정상회의 개막식
출처: 아세안 사무국 (https://theaseanmagazine.asean.org/article/chairmans-statement-of-the-40th-and-41st-asean-summits/)

5PC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인식 또는 조건 등은 다음과 같다. 첫째, 5PC를 준수해야 하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절차와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개입할 수 있도록 아세안은 틀을 만드는 것이다. 개입은 유연하며 비공식적인 방식이다. 특히 미얀마에 대한 아세안 특사(Special Envoy of the ASEAN Chair on Myanmar)는 중립적인 방식으로 평화와 안전을 목적으로 수행한다. 둘째, 아세안은 군부 쿠데타 이후 아세안정상회의나 외교장관회의에서 미얀마의 비정치적 대표성을 유지하며, 아세안조정위원회(ASEAN Coordinating Council)에서 미얀마의 대표성을 계속 관찰할 것이다. 셋째, 5PC 이행에 있어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임을 재확인하고, 아세안 헌장에 따라 합의를 달성할 수 없는 경우도 아세안 정상회의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임을 확인한다. 넷째, 모든 당사자들은 긴장을 완화하고 최대한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 미얀마에서 미얀마 군대(Myanmar Armed Force)만이 유일하게 가장 큰 군사력임을 인정하면서, 무기를 소지한 모든 관련 당사자는 공정하게 책임을 져야 하며 폭력을 자제해야 한다. 다섯째, 미얀마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아세안 사무총장과 AHA 센터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한다. 여섯째, 5개 합의안을 집행하기 위해 아세안과 유엔(UN), 역외 파트너들과 협력을 도모한다. 일곱째, 아세안은 5가지 합의안 실행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접근을 고려할 것이다. 40차·41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5가지 합의사항 집행’ 관한 문서는 지난 2년 동안 5PC가 집행되지 않은 한계를 지적하면서, 구체적인 시간 계획에 따라 집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5PC 이행을 명확한 시간의 계획에 따라 구체적으로 이행하려고 하는 노력, 미얀마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목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그 내용을 들어가 보면, ‘미얀마 국내 모든 당사자’들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만들고, 그들 모두가 합의해 낼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매우 논쟁적이다. 이러한 진술과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 추구하는 연방민주주의 모델의 내용이 얼마나 유사한지 다른지가 하나의 쟁점일 것이다. 그동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측이 미얀마 소수 종족들이 진행했던 대화들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NUG와 NUCC가 제안하고 있는 연방민주주의 모델의 내용과 상당히 부합할 수 있을지 아닌지를 주목해 봐야 한다.

그리고 매우 예민한 문제인 ‘미얀마 시민사회에 종족별로 존재하는 무장세력을 어떻게 규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앞에서 언급한 40차·41차 아세안정상회의에서 채택한 문서(ASEAN Leader’s Review and Decision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Five-Point Consensus)에 있는 “Myanmar Armed Force”가 미얀마 군부인 탓마도(Tatmadaw)를 의미하는지, NUG의 시민방위군(PDF)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이 협상의 테이블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실체를 말하는 것이지와 같은 해석의 어려움이 실제로 존재한다. 즉, 현 미얀마 군부의 물리력과 NUG와 NUCC로 모여져 있는 시민방위군과 시민방위군에 결합되지 않은 다른 소수 종족의 무장세력 사이에 어떤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결론적으로 2023년 인도네시아 아세안 의장국 체제는 과연 미얀마 문제의 이해당사자들과의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서 합의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지 아닐지 그 실험대에 올라탔다. 만약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다면, 내정불간섭에 기초한 건설적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아세안의 원칙이 또 한 번 긍정적인 사례를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 소개

최경희(kalli@snu.ac.kr)는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메가아시아연구사업단의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인도네시아와 아세안지역협력체를 중심으로 동남아지역연구와 한국과 인도네시아와 한국과 아세안관계 연구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HK⁺메가아시아연구의 일환으로 “아시아에서 바라본 아시아: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의 시선”(공저), “동남아시아: 지역협력체와 정체성”, “메가아시아 형성의 동력으로서 아세안의 간-지역주의 실천” 등 2023년 상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마카시드’ 이슬람경제추구: 자캇과 자캇노믹스의 실천”(2021년, 『동남아시아연구』), “지정학적 중간국 인도네시아 외교전략: 세 번의 지정학적 단층대 충돌과 선택”(2021년, 『국가전략』) 등 다수의 연구결과물이 있다.

 


참고문헌

  • 소병국. 2020. 『동남아시아사: 창의적인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 서울: 책과함께
  • 박장식. 2022. “미얀마의 전통시대: 고대 왕국에서 전근대까지,” 『2022년 동남아 열린강연 자료집』. 서울: SNUAC 동남아센터.
  • 장준영. 2022. “미얀마 군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군부의 권력 장악과 유지방식을 중심으로,” 「Spring Revolution and Myanmar’s Long Road Toward National Unity: Beyond the Lasting Conflicts」 『미얀마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2022년 10월 21일).
  • 정치사범지원협회(AAPP: 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Burma) https://aappb.org/ (검색일: 2022년 11월 20일)
  • 주한미얀마연방공화국 한국대표부 블로그 https://blog.naver.com/nug-korea (검색일: 2022년 11월 20일)
  • “ASEAN Leader’s Review and Decision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Five-Point Consensus” https://asean.org/wp-content/uploads/2022/11/06-ASEAN-Leaders-Review-and-Decision-on-the-Implementation-of-the-Five-Point-Consensus_fin.pdf (검색일: 2022년 12월 9일)
  • “Chairman’s Statement on the ASEAN Leader’s Meeting” https://asean.org/chairmans-statement-on-the-asean-leaders-meeting-24-april-2021-and-five-point-consensus-2/ (검색일: 2022년 12월 9일)
  • Sakhong, H. Lian. 2022. “Federal Constitution Making Process in Burma/Myanmar.” 「Spring Revolution and Myanmar’s Long Road Toward National Unity: Beyond the Lasting Conflicts」 『미얀마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2022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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