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신냉전 그리고 북한

최근 들어 국내외 학계와 언론의 논의에서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지닌 풍부한 함의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직까지 사회과학적으로 확립된 용어는 아니다. 실제로 정치학자, 역사학자, 전직 고위관료, 저널리스트들은 상이한 시점에 각각의 시각으로 ‘신냉전’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본 글에서는 ‘냉전’과 ‘신냉전’의 유사성과 차이점, 독일과 제3세계의 대응 및 전개과정, 그리고 새로운 구조 가운데 북한이 펼치는 대외전략에 대하여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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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정상회담에서 만난 김정은과 푸틴
출처: Kremlin.ru

노현종(아시아연구소)

신냉전의 도래?

최근 들어 국내외 학계와 언론의 논의에서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지닌 풍부한 함의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직까지 사회과학적으로 확립된 용어는 아니다. 정치학자, 역사학자, 전직 고위관료, 저널리스트들은 상이한 시점에 각각의 시각으로 ‘신냉전’의 출현을 예고하였다.

가령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2019년 12월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신냉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퍼거슨은 미국과 중국이 ‘열전’은 최대한 피하고 주로 무역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경쟁할 것으로 전망하였다(Ferguson, 2019). 반면 최근 중국정치와 미중관계의 신예 연구자로 각광받고 있는 러쉬 도쉬에 따르면 1980년대 미국과 중국은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비밀리에 군사적 정보까지 공유하는 밀접한 관계였지만 천안문 사건, 걸프전, 소련의 붕괴라는 ‘트라이펙타(trifecta)’를 경험하면서 이미 1990년대 대결국면으로 진입하였다고 보았다. 이 내용을 다룬 3장의 제목은 “New Cold War have begun”이었다(Doshi, 2021). 엘리엇 아브람스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신냉전을 민주주의 국가들과 권위주의 국가들의 숙명적인 대결로 정의하였다. 권위주의 국가(중국, 러시아)와 경제, 기술뿐만 아니라 군사적 대결을 포함한 신냉전이 개시되었으며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굳건히 서서 적들과 용감하게 대결할 것을 강조하였다(Abrams, 2022). 다양한 논의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하자면 ‘신냉전’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따른 세계적인 파급효과로 이해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에 대한 중국의 소극적인 지지는 기존의 ‘미중 패권경쟁’과 독립적인 사안이 아니라 전세계적이고 강력한 ‘신냉전’의 도래를 상징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1) 앞으로의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필자 역시 이번 사태로 ‘신냉전’의 도래가 촉진되었다고 판단한다. 다만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강대국간의 세력균형을 지칭하는 메타포인지 아니면 기존의 ‘냉전’과 질적으로 다른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냉전은 소련의 현상타파 및 팽창전략에 대한 서방의 본격적인 대응(조지 캐넌의 1946년 2월 22일의 장문전보, 미주리 대학에서의 트루먼 대통령의 발언, 처칠 수상의 ‘철의 장막’ 발언, 군사적으로는 딘 애치슨과 폴 니츠가 1950년 4월 7일 제출한 ‘NSC-68’의 인용)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 국제정치학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냉전은 단순하게 두 강대국이 구축한 ‘세력균형’을 넘어선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었으며 신생 독립국들의 국가건설과 정책방향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연유로 ‘냉전사’라는 학문적 조류가 형성되었고 기존의 국가중심, 유럽중심, 외교중심의 역사서술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가령 냉전적 국제구조가 유럽과 사회주의 진영의 ‘사회’에 끼친 영향, 그리고 아시아, 아프라카, 남미 등지의 사회와 공동체에 끼친 영향을 포괄한다(베스타, 2020; 권헌익, 2013; 이주영, 2015). 이처럼 과거의 냉전이 전지구적이었던 현상이었다면 신냉전 역시 전지구적으로 전개될 것인가?

 

냉전과 이데올로기, 신냉전의 탈이데올로기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그들의 ‘이데올로기’도 과거의 녹슨 유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지금이야 만평(漫評)의 대상에 불과하지만 사회주의 운동은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를 획기적으로 뛰어넘으려고 하였던 미래비전이었다. 고도의 생산성은 유지하되 착취를 없애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을 약속한 사회주의 비전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비전보다 강렬했다. 당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1891년 에밀 졸라의 소설 『돈』에서 나타난다. 이 시대의 작가들은 단순하게 허구적인 내용을 창작했던 것이 아니라 당대의 가장 핵심적이고 논쟁적인 사항을 소설이라는 형태로 구연하는 일종의 사회비평가의 역할도 겸직하였다. 소설은 프랑스 재무부 장관의 동생인 사카르가 상업은행인 만국은행을 설립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야심만만한 주인공 사카르는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언론을 매수하며, 주가를 조작하며 사업규모를 확장한다. 한편 사회주의자 시지스몽은 사카르를 비난하기보다는 그의 행위가 사회주의 출현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확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로서는 선생님이 우리에게 정말 좋은 교훈을 주신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집산주의 국가는 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일을 되풀이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선생님이 군소 자본가들의 재산을 완전히 수용하는 날, 그날 집산주의 국가는 선생님의 재산을 일괄적으로 수용하고, 선생님의 무한한 야망, 즉 세계의 자본을 모두 흡수하고, 만국 은행을 유일한 은행, 공공 재산의 일반 창고로 만들려는 꿈을 실현하면 되는 거죠……오! 저는 선생님한테 정말 감탄하고 있어요! 만일 제가 지배자가 된다면, 저는 선생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이 천재적인 선구자로서 우리의 과업을 시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에밀 졸라, 2017).”

이처럼 사회주의자 시지스몽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는 혁명을 통해 건설된 새로운 국가에 의해 흡수될 것으로 보았다. 야심만만한 사카르도 이 선언에 한편으로는 분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워하였다.

또한 사회주의는 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보장을 약속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의 구현은 사회주의자들도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사항이었다(호네트, 2016). 다만 사회주의자들은 이 정신이 시장경제 속에서 구현될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을 통한 계획경제를 모색했던 것이다. 소련 서기장 흐루시초프가 미국을 향해 “너희를 묻어버리겠다”라고 호언장담했던 것은 다소 독특했던 그의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자본주의에 비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나름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2) 이는 각국의 구체적인 사회제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동독에서는 과거 공장의 ‘분쟁조정위원회’를 확장 통합한 ‘사회법원’이 운영되었다. 경범죄에 해당하는 사항은 법원이 아니라 공장과 공동체에서 심판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처벌이 목표가 아니라 교화와 반성을 통해서 인간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슈타지와 같은 억압적인 국가기관이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였지만 이 틀 안에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냉전시기 사회주의 이념은 인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의미한 대안이었다.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 미국 최초의 흑인 박사학위 수여자인 윌리엄 두 보이스는 학술적인 저술활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인종문제해결을 위해 분투한 위대한 인물로 간주된다. 영미권에는 주로 두 학자의 전반기 저작 가령 파농의 『검은피부 하얀가면』과 두 보이스의 『흑인의 영혼』이 인종주의와 탈식민주의의 고전적인 저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 모두 말년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파농은 기존의 인종차별이 학살로 확대되는 장면을 목도하여 알제리해방전쟁에 투신하였다. 두 보이스 역시 과거 노예해방을 실시하였던 일부 백인들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한계, 시장의 파괴적인 면모, 매카시즘의 태동 및 비미활동위원회의 억압적인 행태를 목도하면서 사회주의로부터 대안을 찾고자 하였다. 두 보이스는 1959년 중국을 방문하여 모택동을 접견하였으며 1962년 10월 1일 중국의 국경절 모택동, 주은래, 류소기, 등소평과 함께 천안문 연단에 올랐던 최초의 미국인이었다(Brown, 2016). 파농과 두 보이스가 사회주의자로 변모한 까닭은 사회주의 자체의 비전과 매력 때문이기보다는 프랑스와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여전히 특정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억압적인 정책을 지속한 것에서 기인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당시 사회주의 이념은 인간의 해방과 소외의 해소라는 보편적 원칙 하에 인종문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던 대안적인 사상이었음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신냉전의 한 축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국가들은 기존의 시장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한 대결이라면 당장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더 좋은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세계 시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시대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인간의 윤리적 행동을 촉진할 수 있는 예술작품 가령 막심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 영화 『백모녀 (白毛女)』에 필적할만한 작품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히려 법치, 자유, 투명성이 더 낮은 상황이며 불평등도 더 심한 실정이다. 다니엘 벨이 제시한 ‘현능주의(meritocracy)’에 입각한 중국 모델이 앞으로도 작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개량시킨 민족주의로 내부 단결도 가능하며, 비교적 풍부한 자원으로 타국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국가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모자란 측면이 있다. 다만 아시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중국이 투사할 수 있는 힘의 크기는 미국의 힘을 능가할 수도 있으며, 한국과 일본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우위’가 ‘힘의 우위’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독일의 변화! 3세계!

곤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 필립 젤리코 교수의 『독일통일과 유럽의 전환: 치국경세술 연구(Germany Unified and Europe Transformed: A study in Statecraft)』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 통일까지의 급박했던 외교의 막전 막후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두 저자 모두 정치학자로 훈련받은 이후 외교현장에서 활동한 까닭으로 이 책은 헬무트 콜 수상, 호르스트 텔칙 외교안보보좌관,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부 장관, 조지 부시 대통령,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회고록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며 학술적으로 얻을 것이 많다.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독일의 분단과 통일 그리고 이 나라의 정책(경제, 군사, 이민, 탈핵 등)은 유럽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흥미롭게도 냉전 시기 스탈린은 동독의 사회주의 건설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 기존의 독일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합병하여 사회주의 색채가 한 급 약한 ‘사회주의 통합당’의 건설을 지시하였다. 그의 사망 이후에는 소련과 미국이 독일에서 철수하고 중립국으로 통일을 허락하자는 계획을 두고 최고지도부에서 균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는 냉전 초기 소련이 서독의 재무장과 나토가입이 유럽에서의 자국의 안보를 약화시키는 중대한 사항이라고 간주하여 동독에서 행사하고 있는 영향력마저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서독)은 불안정한 지정학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두 강대국의 갈등을 조정하여 유럽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특히 독일이 소련으로부터 수입한 원유와 천연가스는 긴장완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소련은 중소분쟁을 겪었기에 독일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유럽전선의 안정화를 모색하였다. 또한 천연자원을 판매하여 확보한 외화로 서구의 기술을 수입하여 자신들의 침체된 경제를 살리고자 하였다. 같은 시기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 수상은 동서독 관계의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승인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전에 소련과의 불가침 조항을 골자로 하는 ‘모스크바 협정’을 체결하였고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하였다. 무역자유화가 보편적으로 확립된 지금의 기준에서는 원유와 천연가스 공급 계약은 단순한 경제교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상황에서 이는 매우 대담한 행보였다. 당시 미국은 소련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는 연료 수입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NATO를 보다 경제적으로 통합시키기 위하여 친미성향의 팔레비 왕조 이란의 천연가스를 터키, 그리스, 유고슬라비아를 통해 서유럽에 공급하는 것을 희망하였다(Lippert, 2011). 하지만 브란트는 수상은 자국과 유럽의 안보를 대서양 건너의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소련, 동독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유럽의 긴장완화를 보다 우선시하였다. 에너지 교류는 1980년대 소련의 중장거리 미사일 배치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으로 야기된 군사적 충돌위기 속에서도 유지되었다. 즉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은 부주의한 의존이 아니라 유럽의 ‘평화경제’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위의 두 가지 사항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독일의 통일이 결과적으로 소련의 몰락에 일정 부분 기여하였으며, 헬무트 콜이 고르바초프에게 약속한 나토의 동진(東晉) 방지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처럼 러시아에게 일종의 마음의 빚이 남아있었던 독일은 나토의 동진과는 별개로 재무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독일의 재무장과 나토 내에서의 역할 강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물론 독일이 폴란드에 대한 전차와 무기 지원에 대해 완전히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현 상황을 재무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또한 냉전 기간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던 에너지 교류가 전략적 카드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과거 유럽에서 갈등 고조를 억제하였던 비군사적인 요인들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

‘제3세계(이는 유럽중심적인 용어이지만 편의상 사용하도록 하겠다)’ 역시 냉전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탈식민화’와 ‘독립적인 국가건설’이 동시에 진행된 까닭이다. 탈식민운동은 독립적인 근대국가의 건설로 마무리되며 이 토대 위에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주민들이 안녕과 행복을 보장한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충돌하는 두 개의 근대국가 유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었다. 서구에서도 근대국가 건설과정에서 지역과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세력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제3세계’ 국가들도 유사한 과정을 겪었다. 여기에 인종, 종교, 경제적 이해관계에 더해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갈등은 더욱 더 고조되었다.

하지만 현재 ‘제3세계’ 역시 기본적으로 국가건설을 완료한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과거와 유사한 종류의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냉전이 탈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의 정치적 이념으로 무장된 내부의 급진적인 세력이 양성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또한 지도자들 역시 어느 한 편을 일방적으로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최대한 관여를 피하는 ‘헷징(hedging)’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돌아온 친구

북한의 인기만화영화 『다람이와 고슴도치』는 사악한 족제비로부터 동물들의 삶의 터전인 꽃동산 마을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다람쥐와 고슴도치의 활약상을 다룬다. 강력한 정치적 선전을 담고 있는 이 만화에서는 “내가 꽃동산에 있는 한 족제비는 못 덤벼!”라며 호언장담하는 주정뱅이 곰 아저씨가 등장한다. 족제비 군대는 총공세를 펼치기 전 들쥐를 보내 독이든 ‘살모사 술’을 보낸다. 알콜중독자 곰 아저씨는 이 술을 무분별하게 들이켜 죽어버리고 마을은 족제비의 손에 함락된다. 고슴도치는 친구인 다람쥐의 목숨을 극적으로 구해주면서 “곰만 믿고 울바자 하나 제대로 쳐놓지 못하니 족제비놈들에게 봉변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아?”라고 질책한다. 곰 아저씨는 사회주의 강대국이 북한의 안보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실제로 지난 30여 년, 탈냉전기 이후의 국제질서는 북한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북한이 희망했던 ‘교차승인’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반면 우방국인 소련과 중국은 남한과 수교하여 경제적 교류와 외교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었다(이와는 별개로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현시점에서 회고해보자면 미중 갈등이 상대적으로 약했으며 북한의 핵무기가 고도화되지도 않았던 기간에 종전선언이나 교류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경제난과 리더쉽 교체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지난 30여 년간 진보 및 보수정권 모두 북한에게 적절한 ‘유인’을 제공하고, 중국을 ‘설득’하여 북한을 ‘압박’하며 한미동맹은 유지하되 미국의 지나친 강압정책은 ‘조정’하며, 일본의 불필요한 개입은 ‘차단’한다는 전제하에 대북정책을 설계하였다.

하지만 ‘신냉전’ 구조(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의 형성으로 이러한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사실 러시아는 북핵문제와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2005년 푸틴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을 대리하여 인공위성을 발사해 줄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의지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사료된다. 즉 러시아에게 한반도와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6자 회담에서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한 국가는 중국이었다.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말미암아 ‘협력적 위험 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안보를 보장받고 경제적 지원을 받는 내용)’의 모범적인 사례인 ‘넌-루가’ 모델의 적실성을 약화시켰다. 실제로 2018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국면에서 샘 넌(Sam Nunn)과 리차드 루가 (Richard Lugar) 상원의원은 우크라이나 모델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Nunn and Lugar, 2018). 물론 비핵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현재 국제정세의 변화는 분명한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현 상황을 60여 년 전에 촉발된 ‘중소분쟁’의 완전한 봉합과 지난 30여 년간 고립무원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적어도 이를 간절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중국마저도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하였음에도 북한은 적극적으로 반대의 의사를 표명하였다. 또한 북한은 앞장서서 러시아의 괴뢰국인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하였다. 게다가 북한은 낸시 펠로시의 대만방문으로 더욱 고조된 양안문제와 관련하여 외무성 대변인 명의로 “우리는 대만문제에 대한 외부세력의 간섭행위를 규탄배격하며 국가주권과 령토완정을 견결히 수호하려는 중국정부의 정당한 립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중국의 장성강화와 통일위업수행을 저해하려는 미국의 기도는 좌절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령토완정’이라는 표현은 과거 남한을 무력으로 병합하겠다는 김일성 시대의 ‘국토완정론’과 매우 유사하다. 위의 발언은 국력이 성장한 남한의 일련의 대화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우리국가제일주의’로 축소, 대체하고자 했던 최근의 움직임과도 배치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8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연설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그에 대한 보상을 골자로 하는 ‘담대한 구상’을 밝혔다. 비핵화의 ‘단계’에 따른 보상을 명시하여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보다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는 경제사회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냉전 국제구조가 오히려 자국에게 안보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로울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담대한 구상의 선언 직후인 8월 18일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라며 일반적인 외교용어와는 배치되는 북한식 화법으로 응수하였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돕기 위해 기존의 전선을 확장시킬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예상되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한미일 공조를 더욱 강화하여 중국의 국익에 불리할 수도 있기에 중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억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여하튼 북한은 신냉전 구조의 견고한 형성을 위해서 두 국가를 적극적으로 ‘연루(entrapment)’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어

최근의 일련의 상황은 전세계적인 ‘신냉전’의 도래를 경고한다. 과거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출발했다가 좌절하였던 역사라면 현재는 이러한 윤리적인 비전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중국과 러시아는 현존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미래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탈이념적이라고 해서 갈등의 수위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쟁과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며 동아시아에서는 긴장의 양상이 고조되고 있다. 지면상 모든 사항을 다루지는 못하였지만, 현재 대만의 안보불안은 매우 큰 반면 북한은 이를 잃어버린 30년을 회복할 기회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냉전의 교훈 중에 하나는 이 엄청난 갈등과 대결 속에서도 우리의 선조와 인류들이 가까스로 파국은 막았다는 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처럼 신냉전 속에서도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저자 소개

노현종(nhj56@snu.ac.kr)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강사이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에서 공부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1970년대 이후 동독, 베트남, 북한의 체제변동 비교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석박사통합과정)를 취득하였다. 또한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과 통일미래아카데미 아카데믹 플래너로 활동 중이다. “북한 신정체제의 종교사회적 기원(2016)”, “민족통일론에서 시민통일론으로: 민족주의 통일론의 위기와 대안 (2018)”, “독일의 통일담론에서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긴장? (2022)”, “비교사회주의적 접근을 활용한 북한연구: 유용성, 개념활용 그리고 구조화된 비교 (2022)” 등이 있다.

 


1) 실제로 어느 일방이 다른 한 일방을 무력으로 침략하는 예는 최근까지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였다. 가령 곤돌리자 전 국무부 장관과 필립 젤리코는 1990년의 동서독의 재통일을 ‘냉전’과 ‘걸프전’ 사이의 인디언 썸머(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기간 사이 예외적으로 온화한 일주일 정도의 기간)라고 다소 냉소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실제로 1990년대 이후에도 다양한 전쟁과 분쟁이 발생하였다. 지난 30여 년간의 전쟁은 대략 1)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반대하는 다소 주변적인 세력과의 전쟁 2) 새로운 독립국가건설과 과정과 억눌려왔던 민족 및 종교갈등에서 촉발된 내전과 국경분쟁 3) 권위주의 정권의 민주주의 전환과정에서 시작된 갈등이 국제관계와 연동되어 심화된 전쟁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이 아닌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멤버인 권위주의 국가 러시아가 서방 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근대국가 우크라이나 (다소 불안정한 면모를 보이고는 있지만)의 병합을 목표로 개시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는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미중 패권 경쟁’과 시기적으로 전략적으로 중첩된다.

2) 하지만 헝가리, 체코의 유혈진압은 사회주의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서구의 지지자들을 냉담한 회의주의자들로 변화시켰다.


참고문헌

  • 권헌익 저. 이한중 역. 2013. 『또 하나의 냉전: 인류학으로 본 냉전의 역사』, 서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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