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 허정원, 김범, 김주란, 박정민(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지역정보센터)
개별 국가 GDP 추세를 확인하기 위해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총 5개의 하위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각 지역에 해당하는 국가는 다음페이지의 부록인 아시아 국가리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서아시아: 유가의 변동과 경제성장의 동반화 경향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전체 수출에서 석유관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3.9%이며, 이라크, 쿠웨이트 등도 각각 98.0%, 87.6%에 달하는 등 석유는 서아시아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서아시아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석유가격의 변동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아래 그림은 2019년 불변가격 유가와 서아시아의 구매력평가지수 1인당 GDP 추세를 나타낸 것으로, 서아시아의 1인당 GDP가 유가 변동과 상당부분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으며 모든 기간의 상관계수는 0.7887로 유의수준 1% 하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안정적인 추세를 보이던 유가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 이후 가격이 1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석유생산 감소 및 석유 가격 상승은 세계 각국 경제에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시켰고, 무역수지 악화 등 경제적 혼란을 가져왔다. 1985년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 북해 유전개발에 힘입어 석유 가격 자유화를 선언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증산을 결정했고 이는 치킨게임으로 이어져 유가가 20달러 미만으로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99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감산 결정과 2002년 베네수엘라 석유업계 파업,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발발 등으로 유가가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가가 폭락했으나 세계 각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유가는 다시 반등하여 폭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고유가 시대가 지속되지는 못하였고, 2014년 이후 유가가 대폭락하였다. 특히 산유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석유 증산을 함에 따라 유가가 다시 폭락하게 된 것이다.
서아시아의 높은 1인당 GDP는 석유 생산에 의존하는 것으로 보지만, 서아시아는 역내 국가의 경제적 격차가 매우 크기도 하다. 1인당 GDP가 100,000달러에 육박하는 카타르나 70,000달러에 달하는 UAE 등 고소득 국가가 있는 반면, 1인당 GDP가 5,000달러가 채 안 되는 시리아, 예멘 등 저소득 국가도 존재한다.
아랍에미리트는 1970년대 1인당 GDP가 250,000달러를 상회하였으나, 2010년에 이르러서는 64,000달러 수준까지 하락한 후 2019년에는 70,000달러 선을 회복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같이 PPP 기준 1인당 GDP의 등락이 큰 국가의 경우에는 GDP 추세, 인구 변화 추세 등도 추가적으로 고려하여 추세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본 그래프에서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1인당 GDP가 50,000달러를 상회하는 국가를 포함시킬 경우 그 외 국가의 1인당 GDP 추세 변화를 잘 관측할 수 없으므로 이 국가들을 제외했다.
아래 <그림 2>에서 빨간색은 석유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30% 이상 차지하는 국가로 World Bank 데이터를 활용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 오만은 산유국으로서 석유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8년 기준으로 73.9%, 30.5%, 63.6%를 차지하고 있다(출처: The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 OEC). 1인당 GDP 추세는 앞서 살펴본 유가 추세 그래프와 유사한 개형을 보이고 있다. 즉, 산유국의 1인당 GDP 추세는 유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1960년 10,000달러가 채 되지 않던 1인당 GDP가 40,000달러에 근접하고 있으며 꾸준히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외 비산유국 중 키프로스는 중개무역과 관광산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1인당 GDP 감소가 눈에 띄나, 곧 회복 추세를 보이고 있다. 터키와 레바논은 비산유국 중에서도 일정 정도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나, 그 외 서아시아 역내 국가인 조지아, 아르메니아, 요르단 등은 1인당 GDP 성장이 그렇게 높지 않은 수준이다.
(2) 동남아시아
왼쪽 <그림 3>을 보면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10개국 중 브루나이와 싱가포르의 1인당 GDP가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브루나이는 산유국으로서 2018년 기준 전체 수출에서 석유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90.7%에 달하며 서아시아 국가처럼 원유 가격 변동에 1인당 GDP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해운업, 금융업, 관광 및 카지노업에 기초하여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이 두 국가와 나머지 동남아시아 역내 국가의 격차는 매우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4>는 브루나이와 싱가포르를 제외한 동남아시아 8개 역내 국가의 1인당 GDP 추세이다, 1인당 GDP가 10,000달러를 초과한 국가는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3개 국가이며, 그 외 국가는 아직 저조한 수준의 1인당 GDP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PPP 기준 1인당 GDP로 보았을 때, 캄보디아의 1인당 GDP는 5,000달러에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PPP 기준 1인당 GDP가 아닌 미국 달러 현재가 기준의 2018년 1인당 GDP는 베트남 2566.6달러, 라오스 2,542.49달러, 캄보디아 1,510.32달러, 미얀마 1,325.95달러로 나타나 PPP 기준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미얀마가 상대적으로 환율이 약세임을 시사한다. 한편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1990년대 후반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1인당 GDP 감소는 당시 위기의 충격이 컸음을 보여준다.
(3) 남아시아
남아시아는 아시아 역내 지역 중에서 가장 낮은 1인당 GDP를 보여주고 있다. 남아시아 역내 국가 중 가장 높은 1인당 GDP 추세를 보이는 국가는 몰디브이다. 몰디브는 관광산업에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변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며, 재해에도 민감하다.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당시 몰디브는 타국과 비교하면 인명 피해는 적은 편이었으나, 이듬해 1인당 GDP가 급감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2000년대 이후 인도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2010년 이후 꾸준히 경제가 성장하여 파키스탄의 수준을 넘어섰다. 물론 현재 1인당 GDP 수준은 중국에도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지만 경제성장의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인도의 인구 규모와 잠재력까지 고려한다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스리랑카는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불교를 주류종교로 믿으며 다수를 차지한 싱할라족은 힌두교를 주류종교로 믿으며 소수 민족인 타밀족에 대해 억압적 차별 정책을 실시하였다. 갈등은 내전으로 번져 1983년부터 2009년까지 26년 동안 내전이 이어졌다. 2009년 냉전 종식 이후 스리랑카의 경제는 노동집약적 산업과 농산품 수출 등에 기초하여 급격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인당 GDP가 10,000달러를 넘는 몰디브와 스리랑카를 제외하면 부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은 1인당 GDP가 7,000달러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4)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경우 한국과 일본의 최근 변화 추이를 확인하고자 2018년, 2019년 구매력평가지수 1인당 GDP를 World Bank 데이터에서 가져와 Penn World Table의 데이터와 결합했다. 두 기관의 지표 산출방식이 상이하기 때문에 해석시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1인당 GDP 추세를 살펴보면 한국과 일본은 1인당 GDP가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며 40,000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은 증가세가 주춤한 반면, 한국은 외환위기 극복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구매력 평가지수(PPP)로 측정한 1인당 GDP는 한국이 일본을 역전하였다. 구매력 평가지수(PPP)로 측정한 1인당 GDP의 경우 대만이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만의 경우 명목 달러로 평가한 1인당 GDP는 한국보다 작은 수준이지만 구매력 평가지수로 측정한 1인당 GDP는 한국보다 높다. 이것은 대만의 물가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물가수준은 시민들이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만의 경제력이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높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국제경제에서는 물가보다는 외환시장의 환율이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들어 중국과 몽골의 1인당 GDP는 10,000달러를 돌파하였다. 특히 중국은 1인당 GDP 10,000달러 돌파 이후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이며, 2019년에는 1인당 GDP 16,000달러를 넘겼다. 몽골의 경우 광물 자원이 많아 원자재 수출 의존성이 높으며,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러시아와의 교역 비중이 매우 높다. 몽골 관세청에 따르면 2018년 수입액 점유율 상위 5개국은 중국(33.5%), 러시아(29.1%), 일본(9.5%), 한국(4.5%), 미국(3.6%)이었으며, 수출액 점유율의 경우 중국이 92.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영국(2.5%), 러시아(1.2%)가 뒤를 이었다. 중국의 경제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5)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의 1인당 GDP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련 해체 이후 1991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소련 체제에서 유지해오던 경제적 관계가 끊기게 되어 인플레이션, 빈곤과 불평등 문제 등으로 경제적 궁핍을 겪게 되었다. 루블화 공동체가 붕괴됨에 따라 자체 통화 도입을 시작했으나, 체제 전환비용이 높았으며, 러시아인들이 러시아로 귀국함에 따라 각 국가의 인구가 감소하였다.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5개 국가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으며 소비자물가지수가 1993년에는 최대 3,102%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경험했다(한종만, 2007).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의 부존량이 많은 국가이며, 2000년대 이후 높은 성장률 유지에 이러한 환경이 큰 도움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은 부존자원의 기초 위에 규제가 덜한 비즈니스 환경을 통해 2010년대 중반까지 높은 성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유가 폭락 시기에는 경제가 후퇴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2015년 유가 하락으로 인한 복지 정책이 축소되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내륙 깊숙이 위치하여 있고, 천연자원의 부존량도 미미하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지 않다. 다만 타지키스탄은 키르기스스탄과 달리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은 6~8%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교육 수준이 높은 특성이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각 권역은 추세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 역내 개별 국가들의 사정을 들여다본 결과 경제성장의 정도는 각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아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경제 부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