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조약도 결코 평화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 칸트의 『영구평화론』 중에서

탈냉전 이후 아시아에서 전쟁의 위협을 올해처럼 구체적으로 떠올려 본 일이 있었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대만분쟁 그리고 북한 미사일 발사까지 우리 안에 일상을 흔드는 일들이 만연해졌다. 본 웹진 2022년 마지막 호에서, 각 전쟁과 분쟁에 대해 잘 만들어진 ‘평화의 로드맵’을 제시할 순 없지만, “그래도 다시 평화”라는 차원에서 아시아에서 평화를 되물어보았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1월 시위를 통해서 본 사회 불평등구조와 불안정성에 대한 탐색, 서아시아 시리아 10년간 있었던 내전의 결과를 통해서 본 난민의 삶,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흩어져 있는 로힝야 난민과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연방 민주주의 지향,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중심지가 될 대만 문제를 평화의 관점에서 되물었다. 열전의 2022년을 떠나보내면서 ‘되찾은 평화의 2023’을 기대해 보고자 한다.

방문학자

명나라 도자기를 한반도에 가져온 일본 하카타(博多) 상인

15~16세기 하카타 상인들은 공식 사신으로 위장하여 조선과 유구국의 공식 교류에 개입하였으며, 일본의 지방세력과 협력하여 명나라 도자기를 조선 왕실로 공급하였다. 고고학 자료와 문헌을 통해 더 많은 수량의 명나라 도자기가 사무역으로도 조선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카타 상인들의 활발한 활동 시기에 조선의 도자기가 유통된 고고학적 증거도 하카타-대마도-창원 내이포의 경로를 따라 발견되었다. 이러한 하카타 상인들의 동북아 자기 유통은 기존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벗어나 새로운 사용가치를 창출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다시 떠오르는 중동의 스트롱맨: 중동 권위주의 정치의 재부상

2010년 말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Middle East and North Africa, MENA 이하 메나)의 권위주의 정치를 무너뜨리고 정치 개혁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를 높였던 아랍의 봄은 그 의미가 퇴색한 지 오래다. 오랫동안 메나 지역 정치를 호령했던 독재자들이 물러난 자리에는 더욱 강력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들은 아랍의 봄을 통해서 정권의 취약성을 깨달은 만큼 새로운 방식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스트롱맨 정치와 중국-러시아를 주축으로 하는 권위주의 축의 확대는 메나 지역의 독재자들이 재부상하게 하는 새로운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메나 지역의 새로운 스트롱맨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을 더욱 강화하면서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해갈 것으로 보인다.

대만 유권자 시민운동으로서 ‘불항복서약서’ 캠페인은 왜 실패하였나?

2022년 11월 실시된 대만 지방선거는 중국의 군사위협으로 그 어느 때보다 ‘국가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된 선거였다. 이 과정에서 대만의 일부 유권자 단체는 지방선거 출마자에게 중국 침공 시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불항복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약 3개월의 캠페인 끝에 서약서에 서명한 후보자는 민진당 등 범여권 후보에 그쳤다. 이 시민운동이 당초 예상만큼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정권심판론’ 등 다른 이슈가 선거판을 압도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촉발된 대만 ‘불항복서약서’ 운동은 이대로 소멸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