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정치가 될 때: 아프리카의 언어다양성, 식민주의, 종족 정체성의 역학 관계

전세계에서 언어다양성이 가장 높은 대륙 아프리카를 종족정체성, 식민주의라는 열쇠어를 통해 그 다양성이 내재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구체적, 대표적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식민통치는 아프리카의 언어상황에 영향을 미쳤으며, 언어는 종족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 언어를 통해 강화된 종족정체성은 정치적 도구화, 분쟁과 갈등 유발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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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 보츠와나, 남아공화국에서 쓰이는 코에코에어를 가르치는 교사
출처: Wikipedia

양철준(나이로비대학교)

아프리카, 많은 언어가 통용되는 대륙

생물다양성 혹은 문화다양성 등 어떤 영역이나 대상의 다양성이 되었든 대개의 경우 다양성은 긍정적 함의의 언저리 속에 머문다. 생물다양성은 생태계의 균형, 환경보호, 지속가능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책적 차원의 보호나 보존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문화다양성 역시 새로운 문화 창출, 이문화에 대한 포용적 공존과 배려, 다문화적 감수성 고양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처럼 간주된다.

아프리카에 대해 말할 때 언어다양성이 흔히 언급되는데, 언어다양성에 대한 해석은 양가적으로 수용된다. 즉, 생물다양성이나 문화다양성처럼 언어다양성도 존중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효율적인 의사소통에 있어 장애물이 된다는 인식이다. 환언하면 언어다양성은 인식의 고양과 지평 확장, 다양성에 내재하는 창조적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민족공동체라는 정체성 형성에 있어 다언어사용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으로 나뉘어진다.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요소의 하나가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다양성도 유지되고, 다양한 언어를 보전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는 주장도 일견 자연스럽다. 그러나 언어다양성은 많은 복합적 문제를 파생시킨다. 행정과 공공서비스 제공에서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문제, 탈종족화된 국민정체성 형성과 국민 통합의 어려움, 수직적 사회이동을 가능케 하는 언어자본 축적 과정에서의 불평등과 소외,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강화되는 종족적 갈등과 분열이 전형적인 부정적 측면이다.

근대 이후 서구나 동아시아는 단일 민족, 문화, 역사, 언어를 바탕으로 민족국가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해졌다.1) 그런 배경에서 민족국가의 경계를 언어의 경계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2) 단일 민족, 역사, 언어, 문화라는 신화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다언어 사용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신화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아프리카의 언어다양성과 역동성을 명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이른바 일부 준단일언어사용국가들을 제외하고, 식민종주국의 언어, 종족어, 교통어가 각각 상이한 위세와 지위를 가진 상태로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3)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3개 혹은 4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언어사용의 패턴이다(Myers-Scotton 1993: 33-43). 이 글에서는 아프리카의 언어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핵을 이루는 여겨지는 식민주의와 종족 정체성과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아프리카에는 얼마나 많은 언어가 있는가?

전세계 언어의 1/3이 아프리카에서 통용되는데, 이 언어들을 계통별로 분류하면 아프로아시아어족, 나일사하라어족, 나이저콩고어족, 코이산어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어족들 중 가장 많은 개별언어를 보유한 어족은 나이저콩고어족이다(Eberhard et al 2023). 나이저콩고어족에 속하는 400개에서 500개에 달하는 개별 언어들이 중부, 동부, 남부아프리카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된다.

개별 언어가 분포된 지역을 표시한 아프리카의 언어 지도
출처: Wikipedia

언어와 방언을 구분짓는 데 편의상 사용되는 기준은 상호이해가능성 (mutual intelligibility)이다.4) 그러나 상호이해가능성은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의 가부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속체적 특징을 띤다. 즉, 아프리카의 개별 언어를 설명할 때 어떤 언어와 다른 언어의 상호이해가능성이 높은 경우도 있고, 현격하게 낮아 상호이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비근한 예가 탄자니아의 차가족이다. 차가족은 킬리만자로산 인근지역과 우삼바라산맥(Usambara Mountains) 인근에서 살아온 종족이다. 이들은 나일사하라어족의 남나일어에 속하는 마사이어와 나이저콩고어족의 파레족과 인접해서 살아간다. 그런데 차가족이 거주하는 지역이 넓다보니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수록 상호이해도가 떨어진다. 파레족과 가까이에 살고 있는 차가족은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같은 종족의 구성원들과 의사소통하는 것보다 파레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더 쉽다는 보고도 존재한다.5)

그리고 언어와 방언을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게 정의된 것이 없다. 즉, 언어와 방언을 구분하는 기준이 전적으로 언어학적 기준을 따르지 않고 사회와 문화, 역사적 맥락과 상황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종족집단이 혼재해서 살아가는 도시에서는 종족의 역학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언어내적 차이(endoglossic difference)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결집된 힘을 드러낼 필요가 있기 때문에 통일된 종족명(unified ethnonym) 사용을 선호한다.6) 그런데 이 종족명이 언어명(glottonym)과 동일시 되는 경우가 흔하다(Myers-Scotton 1993: 21-22).

거의 같은 언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호이해가능성이 높으나, 역사적, 사회문화적 이유로 상이한 종족집단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경우가 남아공화국의 줄루어와 짐바브웨의 불라와요(Bulawayo)라는 도시 인근에서 사용되는 은데벨레어이다. 짐바브웨의 은데벨레족은 원래 남아공화국의 줄루족의 일파였다. 그러나 이들은 줄루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북쪽을 향해 이주하여 짐바브웨에 정착했다. 이들은 줄루족과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강화해왔다. 짐바브웨에서 통용되는 은데벨레어에도 줄루어에서 c, q, x로 표기되는 흡착자음(click consonants)이 있다. 은데벨레인은 줄루인과 쉽사리 소통할 수 있고, 언어와 방언을 나누는 기준으로 상호이해가능성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은데벨레어는 줄루어와 방언으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이다(Myers-Scotton 1993: 13-17).

아프리카대륙에는 이러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컨대 케냐에는 삼부루족과 마사이족은 같은 종족집단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역(牛疫)이 창궐하여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자 종족의 일부가 케냐의 남부와 멀리로는 탄자니아의 북부까지 대이동을 했다. 이들은 ‘마’(Maa)라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다만 오랫동안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언어의 차이가 존재한다.

츠와나어(Setswana), 소토어(Sesotho), 페디어(Sepedi)어는 보츠와나, 레소토, 남아공화국에서 주로 통용되는 언어들이다. 이 언어들 역시 상호이해가능성이 높아 한 언어의 방언이라 규정해도 무난할 정도지만, 화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라고 여긴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태도나 인식은 서로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언어학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 배경으로 상이한 언어로 분류되던 언어들을 통합한 사례도 있다. 우간다에서 90년대에 냥코레어(Runyankore), 키가어(Rukiga), 토로어(Rutooro), 뇨로어(Runyoro)를 통합시켜 하나의 언어로 통일해내려는 노력이 구체화되었고, 그 가시적 결과가 바로 루냐키타라(Runyakitara)다.7) 본래 이들 언어들은 상호이해가 가능했던 방언의 연속체 정도였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 경쟁관계에 있던 선교단체들이 상이한 철자법을 도입함으로써 언어의 분기와 차이가 현격해지기 시작했다. 이들 언어들을 통합하려는 노력은 역사적으로 부뇨로-키타라왕국이 존재했고 이 종족집단들이 역사적 경험을 공유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8) 그리고 이들 언어 간의 문법구조와 어휘의 유사성도 중요한 요인임은 물론이다.

1994년 4개의 통합한 개별언어들을 총칭하여 루냐키타라라고 명명했으며 마케레레대학교에서는 스와힐리어, 루냐키타라, 루간다를 강의 과목으로 채택했다. 1995년에는 우간다루냐키타라협회(The Runyakitara Association of Uganda)가 발족되어 루냐키타라의 진흥과 다양한 영역에서의 사용을 제도적 차원에서 구현할 방안을 모색해왔다. 특히 대중매체와 문학작품에서의 사용을 고무하고 언어표준화와 철자법 통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루냐키타라를 명실공히 우간다사회의 광범위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language of wider communication, LWC)로 격상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와 방언을 나누는 기준이 논란을 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수를 대략 1,000~2,000개 정도로 추산한다. 이는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모든 언어의 1/3에 해당된다. 아프리카대륙에서 최대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나이지리아만으로 한정해도 520개의 언어가 통용된다(Eberhard et al 2023). 특히, 카메룬,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에디오피아 등도 통용되는 언어의 수가 많은 나라들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주로 서부와 중부 아프리카에서 언어다양성이 두드러진다. 전세계 인구에서 5.5명당 한 명이 아프리카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이들 국가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모두 같은 화자수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화자수가 수천만명에 달하는 언어도 있는 반면, 화자수가 극히 적어 사멸 위기에 처한 언어도 병존한다. 예컨대 나이지리아의 경우 하우사, 요루바, 이보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60퍼센트를 넘는다. 이들 3개 주요언어는 수천만의 화자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수백만, 수십만에 그치는 경우도 있고 불과 몇천명의 화자만 남아 있어 사멸의 위기에 처한 언어들도 있다. 이처럼 많은 언어 중 백만명 이상의 화자를 보유한 언어는 75개 정도로 추산된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수바인들(Abasuba)은 빅토리아호 연안이나 섬에서 살아온 나이저콩고어족의 종족인데, 나일사하라어족 서나일어인 루오어에 동화된 특이한 경우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간다의 간다어(Luganda)와 비슷한 수바어(Olusuba)이지만, 다수의 수바인들은 일상에서 루오어를 사용하며 루오족에 동화되었다.9)

다언어사용: 상황, 맥락, 주제, 대화상대자가 달라지면 언어도 달라진다

아프리카의 다언어사용은 크게 사회적 차원의 다언어사용(societal multilingualism)과 개인적 차원의 다언어사용(individual multilingualism)으로 양분할 수 있다. 일부 준단일언어사용국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회적, 개인적 차원에서 다언어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다.

다언어사회에서 개인적 차원으로 보면 3개 언어 사용이 가장 흔한 패턴이다. 종족어, 식민종주국의 언어, 교통어를 대화상대자, 맥락, 상황, 주제에 따라 선택한다. 공식적, 비공식적 맥락이나 상황, 대화상대자와의 사회적 관계, 대화의 주제에 따라 적절한 언어를 선택한다(Myers-Scotton 1993).

사회적 차원에서의 다언어사용은 어떤 나라, 지역,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언어적 다양성을 의미한다. 사회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상이한 지위와 기능을 갖는다. 그리고 지위와 기능이 다르다는 것은 언어들 간의 위계, 화자들의 언어이데올로기와도 직결되어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다언어사용은 도시와 농촌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농촌지역은 종족집단의 구성이 비교적 동질적이다. 그러나 농촌지역에도 다른 종족집단 출신의 교사, 공무원, 상인 등이 유입되기 때문에 종족구성에 있어 완전히 동질적인 집단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다언어사용은 농도연속체(rural-urban continuum) 형태를 띤다. 도시에서의 언어사용은 무척 역동적이고 혼종적 성격을 띤다.

도시화: 교통어의 확산, 종족어의 쇠퇴

아프리카 사회에서 언어사용의 역동성은 현저하게 나타난다. 언어역동성을 유발하는 요인들로는 탈농이도와 도시화(deruralization and urbanization)로 인한 상이한 종족들 간의 일상적 접촉, 종족적 배경이 다른 사람과의 결혼, 지역적인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교통어 등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대륙 전체적으로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동질적 종족집단을 이루어 살다가 여러 종족집단이 어울려 살아가는 도시로 이주하면,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언어사용에 영향을 미친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피진 영어가 널리 사용되며, 지역적 차원에서 교통어의 확산을 촉진시킨다.

상이한 종족집단 출신의 사람과의 결혼(inter-ethnic marriages)이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런 경우 보통 식민종주국의 언어나 교통어의 사용이 자연스러운 중립적 선택이 된다. 이는 종족어의 사용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식민지배가 아프리카 언어 상황에 남긴 유산

식민주의, 종족정체성, 권력의 역학관계는 아프리카의 언어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건, 개념,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식민통치는 다양한 영역에 걸쳐 아프리카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문화의 정수이자 사회적 하부구조의 반영이라고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언어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식민주의와 언어를 시기별로 구분하여 식민통기 이전, 식민통치 시기, 탈식민 이후의 시기로 크대 대분하여 식민통치와 언어상황의 전개를 살펴보고자 한다.

식민통치 이전: 문자와 역사가 없는 아프리카?

서구 열강이 이른바 ‘문명화의 사명’(civilizing mission)이라는 기만적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본격적으로 아프리카를 분할, 통치하기 이전에는 여러 종족집단의 구성원들이 교역과 교류를 했다. 그래서 교역로를 따라 동아프리카에서는 스와힐리어, 서부아프리카에서는 하우사어가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중요한 교통어로 부상했다.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종족간 교역이나 상호작용은 교통어의 부상을 촉발시켰다. 외부세계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서부아프리카의 해안지역에서는 피진어와 크레올어의 광범위한 사용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그러나 식민통치 이전의 시기에는 동질적 종족집단의 구성원들이 특정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패턴을 유지했다. 그러므로 어떤 종족이 거주하는 영토의 경계가 언어의 경계와 거의 일치했다.

아자미 문자로 쓰인 스와힐리어 서사시 “탐부카 서사시”(Utendi wa Tambuka) 사본
출처: Wikipedia

그리고 아프리카에 대한 전형적 편견 중의 하나가 아프리카 사회들은 문자를 갖고 있지 않았고, 그들의 역사는 구전으로 전승되는 것이었기에 아프리카의 역사는 객관화될 수 없다는 서구중심적 역사인식이다. 그러나 이슬람이 전파된 서부, 북부, 동부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아랍문자로 아프리카의 언어들을 표기했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가 무문자 사회였다는 주장은 아프리카대륙 전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경우가 소말리아 남부에서 모잠비크 북부에 걸쳐 형성된 스와힐리 사회는 이슬람의 전파와 더불어 아자미(Ajami)라고 불렸던 아랍문자로 스와힐리어를 표기했다.10)

식민통치 시기: 서구 열강 언어의 지배

1884년부터 이듬해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비스마르크가 주재한 ‘베를린회담’에서 서구 열강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지도’를 만들었다. 식민 열강은 아프리카를 분할 통치하면서 상이한 정책을 도입했다. 비록 식민정책은 상이했지만 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용되었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영국은 아프리카를 식민통치하면서 간접통치방식을 채택했고, 프랑스는 동화정책을 적용했다. 식민정책은 주로 정치와 경제의 층위에서 적용된 것이었지만, 사회와 문화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구 열강에 의한 아프리카 분할 통치 과정에서 동일한 역사, 문화, 언어를 가진 종족집단들이 서로 다른 국가로 편입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콩고족으로 이들은 콩고민주공화국, 콩고공화국, 앙골라 등으로 분단의 역사를 강요당했다. 나일어족의 서나일어에 속하는 루오어(Dholuo) 화자들도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북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영국은 간접통치(indirect rule)를 통해 식민통치의 기틀을 닦았다. 이 식민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은 나이지리아 총독을 역임한 프레드릭 루가드(Frederick Lugard)였다. 그는 식민지 고유의 사회와 권력구조를 식민지 행정의 구조 속으로 편입시켜 통치에 활용했다. 간접통치의 핵심 내용을 보면 식민지 백성들에 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식민지의 자원을 개발하고 상품화하여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질적, 도덕적, 제도적 향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치 (self-government)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특히 식민행정에 필요한 비용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식민체제 편입 이전에 존재했던 전통적 지배 구조와 지배 엘리트를 활용하여 통치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적은 비용이 소요된다고 판단했으며 식민 통치에 협력하는 전통적 지배세력의 권위와 존재를 인정했다. 그리고 군사나 조세에 관한 문제 등을 제외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협조적인 전통적 지배엘리트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했다. 이러한 식민정책은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교육의 영역에서 초등교육의 단계에서는 고유어를 통한 교육을 장려하거나 허용했다. 물론 초등교육 이후의 교육에서는 영어를 교육 언어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이 고유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즉, 고유어는 낮은 교육수준, 영어는 높은 교육 수준과 등치시켰다. 영어는 고등교육을 위한 언어, 고유어는 낮은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인식은 언어에 위계를 부여했고, 이후에도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나이지리아 총독을 역임한 프레드릭 루가드(왼쪽)와 프랑스 식민성 장관 알베르 사로(오른쪽)
출처: Wikipedia

이에 반해 프랑스가 식민통치를 위한 정책의 근간으로 삼은 것이 동화정책(assimilation)이다. 동화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이 식민성 장관을 역임했던 알베르 사로(Albert Sarraut)였다. 동화정책이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듯, 프랑스 언어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식민지의 백성들도 프랑스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 핵심이다. 프랑스의 동화정책은 특히 교육의 분야에서 중요했는데 교육을 통해, 프랑스어와 문화에 동화된(assimilé) 사람들을 양성했다. 프랑스 식민통치 하에서 프랑스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프랑스어를 배울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프랑스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고등교육에 접근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간접통치, 프랑스의 동화정책은 방식은 달랐지만 식민종주국의 언어에 높은 위상을 부여하고 고유어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도 지속적 영향을 미쳤다.

탄자니아 통신회사 건물에 업무시간을 알리는 내용이 영어와 스와힐리어로 쓰여져 있다. (저자 직접 촬영)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시내의 보육원 입학 광고. 시장경제 도입 이후 영어를 사용하는 보육원이나 초등학교가 많이 세워졌다. (저자 직접 촬영)

탈식민 이후: 여전히 지배적인 서구의 언어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고도 식민종주국의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를 여전히 공식어로 채택하고 있다. 사실, 아프리카대륙에서 식민주의가 남긴 잔재의 대표적인 것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해 말할 때 영어권, 프랑스어권, 포르투갈어권으로 구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아프리카를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식민종주국의 언어가 강력한 저항이나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것을 아프리카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종족적 역학관계에서 식민종주국의 언어는 중립적 선택으로 수용된다. 즉, 식민종주국의 언어는 특정 종족을 선호하지 않는 중립적 언어이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나 프랑스어는 국제어다. 거의 아무런 이의 없이 과학, 기술 발달과 동일시되는 언어가 국제어이기 때문에 세계적 추세에 동참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국제어의 선택이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커다란 거부감 없이 수용된다.

식민종주국들도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식민통치했던 국가들을 언어를 매개로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 기구가 19개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영연방(The Commonwealth of Nations), 32개 국가들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프랑스어권국제기구(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 la Francophonie, OIF)와 6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포르투갈어사용국공동체(Comunidade dos Países de Língua Portuguesa, CPLP)가 대표적이다.

식민종주국이 바뀜에 따라 오늘날까지도 분쟁이 계속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카메룬이다. 독일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됨에 따라 전후인 1919년 베르사이유에서 체결된 평화조약에 의거하여 모든 식민지를 상실했다. 독일의 통치를 받았던 지역은 국제연맹이 책임을 지는 위임통치령으로서 연합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로 통치권이 이양되었다. 위임 통치령(mandated territory)은 ‘지배를 받는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not yet able to stand on their own feet)는 국제연맹의 판단에 따라 카메룬은 독일에서 프랑스와 영국으로, 토고는 프랑스로, 탕가뉘카는 영국으로, 르완다와 부룬디는 벨기에로, 남서아프리카로 불리던 나미비아는 남아공화국으로 통치권이 이양되었다.

이 과정에서 카메룬의 경우는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인해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패전국 독일로부터 통치권을 이양받은 프랑스와 영국은 프랑스와 영어로 공식어로 지정함으로써 프랑스어권 카메룬과 영어권 카메룬으로 분열되어 무력충돌로도 격화되었다. 전체 국민의 70퍼센트가 프랑스어권, 30퍼센트가 영어권에 편입되었다. 프랑스어권 카메룬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영어권 카메룬인들은 자치권, 분리 독립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어권 국가명을 암바조니아(Ambazonia)로 정하고 1999년 이후부터는 자신들만의 국기도 사용하고 있다. 영어권 카메룬은 나이지리아와 접경하고 있는 북에서 남으로 이르는 서부지역에 해당되는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카메룬 중앙정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했고 2017년에는 암바조니아라는 국가명으로 일방적 독립선언을 했으나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지는 못했다.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인해 최근에 무장투쟁으로까지 격화된 경우는 카메룬이 유일한 경우일 것이다.

언어와 종족정체성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정체성은 행위주체로서 드러내는 정체성과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정체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언어는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고 내적 응집력을 강화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언어는 매개로 정체성 담론과 서사를 엮어내는 필수적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개별집단의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변이어는 종족이나 민족, 종교, 문화, 성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강화시킨다(Edwards 2009).

오랜 기간에 걸쳐 위로부터의 암하라어 사용을 강제한 에티오피아와 3개의 주요 언어가 팽팽한 역학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사례를 통해 언어와 종족 정체성 및 역학관계를 살펴본다.

에티오피아: 위로부터의 언어 정책의 문제

서구, 동아시아 등지에서는 민족국가의 경계와 언어의 경계가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에서 통용되고 있는 언어에 대한 논의에서 민족과 언어의 경계를 일치시키는 근대유럽의 관점에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아프리카의 언어 현실을 전혀 고려한 것이 아니다.

종족정체성은 점점 혼종적 성격으로 변모하는 아프리카 사회의 도시지역에서는 종족간 역학관계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예컨대 케냐에서 루햐라고 불리는 종족의 경우 상호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언어적 차이가 있는 하위종족집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로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자신들을 루햐족의 일원이라는 종족정체성을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케냐 서부의 극히 작은 하위 종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는 종족의 근육질을 과시할 수 없지만 나이로비에서는 루햐족이라는 주요 종족집단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대종족집단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11) 그런 차원에서 종족성은 교섭의 가능성을 항상 내재하고 있다.

언어와 종족집단의 역학관계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할 수 있는 곳이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다수의 종족집단이 존재하지만, 인구를 기준으로 오로모족과 암하라족이 각각 34.5퍼센트와 26.9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이 두 종족집단이 전체인구의 약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인구구성에서 오로모족이 암하라족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역사의 일정 시기에 암하라어가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어로, 링구아 프랑카로 부상한 시기가 있었다. 아프로아시아어족의 셈어로 분류되는 암하라어는 에티오피아 북부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였다. 그러다가 9세기경부터 에디오피아의 교통어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1270년부터 암하라족의 경계를 넘어 초종족적 언어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에티오피아 정교어는 전례어(liturgical language)로 게즈어(Ge’ez)를 사용했고, 정교회와 황제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은 높아졌다.12) 암하라어는 국가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에티오피아의 공식어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점했다.13) 이후 19세기와 20세기에 에티오피아의 황제들은 암하라어를 명실상부한 교통어로 확립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Menelik II (1889-1913)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후 에디오피아의 마지막 황제를 지냈던 하일레 셀라시에가 암하라어를 공식어로 지정했다. 심지어 에티오피아의 최대종족인 오로모족에게도 교육과 행정에서 오로모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암하라화(Amharanisation)라고 규정한다.

1975년에 모든 사립학교가 국유화되었고 암하라어를 초등교육의 언어로 지정했다. 영어는 중등 및 대학교육의 교육언어로 지정되었다. 암하라어를 공식어나 교육언어로 지정한 것은 국가의 단결과 국가건설을 위한 것이었다. 여러 종족으로 구성된 국가를 종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언어로 암하라어를 선택한 것이다. 이에 기반하여 암하라어 사용을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런 실천과 가시적 실현을 위한 노력이 위로부터의 과정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암하라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의 소외와 반감은 컸다.

암하라어 문자체계

암하라어는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갖고 있고, 정교회에서 전례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황제들의 적극적 육성에 힘입어 굳건한 위치를 확립하는 동시에 종교, 문화적으로도 우월적 위치를 점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 암하라화로 인해 다른 종족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종족적 배경이나 출신을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다언어사회에서 특정 언어를 공식어로 지정한다는 것은 많은 논란과 분쟁을 촉발한다. 공식어로 지정된 언어를 사용하는 종족집단의 구성원들은 교육,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혜택을 누린다. 그들에겐 공식어가 자신들의 모어이기 때문에 추가로 배울 필요가 없지만, 공식어가 모어가 아닌 종족집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모어 이외에도 공식어로 지정된 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중의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를 통해 국민통합과 정체성을 확립하려던 노력이 의도된대로 실현되지 않았고 오히려 종족간 갈등만 격화시켰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듯, 암하라어를 강제하려는 시도가 위로부터의 시도였고, 암하라어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했지만 다른 종족들의 언어는 주변부 언어로 격하시켰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전체인구 중 26.9퍼센트만이 암하라어를 모어로 사용한다. 이에 반해 전체국민의 34.5퍼센트가 오로모어를 모어로 사용한다.14)

위로부터의 암하라화에 반발한 것은 오로모인들만이 아니었다. 예컨대 에티오피아 북부와 에리트리아에 살고 있는 티그리냐인들은 에리트리아 해방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티그리냐는 에티오피아 북부와 에리트리아에 사는 주요 종족집단이다. 에티오피아로만 한정하면 전체인구의 6.1퍼센트를 차지한다. 非암하라인들은 암하라화를 억압적 조치로 간주하며 자신들을 마치 2등 국민처럼 여긴다고 차별감을 느꼈던 것이다.

암하라화에 더욱 강한 반감을 느낀 집단이 오로모인들이다. 이들은 인구구성에서도 암하라인들을 앞선다. 오로모인들은 아프로아시아어족의 쿠쉬어를 사용하는 종족이다. 이들은 암하라족의 일방적 암하라화에 반발하여 1973년에 오로모해방전선(Oromo Liberation Front)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남동부 지역을 오로미아(Oromia)라고 부르는데, 암하라 문자 사용을 거부하고 라틴문자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고 있다. 라틴문자의 사용이 反암하라 정서가 문자를 통해 표출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암하라 엘리트들은 암하라어를 통해 국민적 대통합을 이루고 국가건설을 도모하고자 했지만 위로부터의 정책이었고 다른 종족에 배타적인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암하라화는 성공하지 못했고 종족간의 갈등만 심화시켰다. 중앙정치에 오로모인들을 적극 중용함으로써 오로모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려는 시도까지 잠재울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나이지리아: 세 언어 사이의 경쟁

나이지리아도 3개의 주요 종족과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 신봉하는 종교로 인해 갈등을 겪어온 나라이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대륙 최대의 인구대국이다. 2억명이 넘는 인구에 사용되는 인구도 무려 520개다(Eberhard et al 2023). 이 언어들 중 가장 많은 화자수를 보유한 언어들로는 하우사, 요루바, 이보족이다.

나이지리아의 언어 지도
출처: Wikipedia

나이지리아의 경우 독립 초기에 하우사어를 공식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요루바족과 이보족의 격렬한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특정 종족의 언어를 공식어로 지정하면, 대개 경쟁적 관계에 있는 종족의 반대에 직면한다. 자신들의 언어가 아닌 다른 종족의 언어를 공식어로 지정해서 행정과 교육 등의 영역에서 사용하면 모어와 더불어 공식어로 지정된 언어를 배워야 하는 부담을 강제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세 언어의 화자들은 다른 언어가 지배적 지위를 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Myers-Scotton 1993: 27).15)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하우사족이 권력을 거의 독점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종족집단은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극대화하고 보호하기 위해 특정 종족집단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떤 개인이 집단과 동일시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나이지리아의 3대 종족인 하우사, 요루바, 이보족은 언어와 종교에서 다소 다르다. 하우사족은 절대 다수가 이슬람을 신봉하며 언어도 아프로아시아어족 차딕어의 서부분파에 속한다. 요루바인들도 다수가 이슬람을 신봉하는데 요루바어는 나이저콩고어족으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이보족은 요루바어와 마찬가지로 나이저콩고어족의 속하는 언어지만, 다수의 이보인들은 기독교를 신봉한다.16)

나이지리아의 언어상황에서 특이한 점은 나이지리아 피진 영어(NPE)가 비공식적 맥락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지만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했다. 비공식적 맥락에서 사용되면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이나 친목을 고양시켜 주지만 나이지리아 피진 영어는 비교적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인식이 강하다(Myers-Scotton 1993: 28). 그런 이유로 공식적 맥락에서 선호되는 언어는 아니다.

맺으며: 언어다양성 아래 잠재된 불씨

인구 대비 통용되는 언어의 수를 언어다양성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아프리카대륙의 언어다양성은 그 어느 대륙보다 현격하게 높다. 다른 대륙에 비해 민족국가 형성이 늦었고, 독립 이후에야 비로소 국가의 경계가 명확해진 역사적 배경도 언어다양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언어다양성을 야기한 요인들이 중층적이고 복잡하지만 아프리카대륙의 언어가 감소추세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화자수가 극히 적은 언어는 사멸되고, 지역적 차원에서 널리 사용되는 교통어가 그 사용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17) 언어의 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언어들이 사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혼종적 성격을 지닌 다양한 사회방언(sociolect)이나 피진어가 등장할 것이다.

언어는 교육, 사회적 불평등, 식민주의 잔재, 기회의 평등, 사회적 포용성, 종족성의 정치적 도구화 등 다양한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다언어사용 능력은 긍정적 시각에서 평가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의 다언어사용은 효율적인 의사소통 부재, 언어의 위계에 따른 차별과 기회의 박탈, 사회적 활동에서의 소외 등 많은 문제의 근인이 되기도 한다.

식민통치의 유산으로 프랑스어권과 영어권의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 직면한 카메룬의 경우, 영어권의 분리독립을 위한 투쟁이나 갈등은 쉽사리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인해 촉발된 갈등과 분열은 분명 역설적이다. 에디오피아와 나이지리아는 다종족, 다언어, 다문화, 다종교로 인해 중앙정부가 경계를 넘는 통합, 포용, 상생의 정치를 구현하고 통합된 민족정체성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하면 분쟁의 불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소개

양철준(thalassophilecjyang@gmail.com)은
벨기에 헨트대학교 아프리카언어-문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남대학교에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서강대 교양학부에서 강의했고, 한국외대와 서울대에서 스와힐리어를 강의했다. 현재 케냐 나이로비대학교 스와힐리어과 객원교수로 접촉에 의한 문법 변화, 코드전환의 사회적 동기, 도시지역에서의 언어간 문법차용(metatypy)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1) 아프리카대륙에서 통용되는 언어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하나의 아프리카 언어’(one African language)는 없다. 이와 반대로 유럽에서는 노르웨이어, 핀란드어, 아시아에서는 한국어, 일본어 등 국가명과 동일한 언어명을 사용한다.

2) 민족, 언어, 문화의 경계를 동일시하는 것을 헤르더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3)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나라들 중 준단일언어사용국가(quasi-monolingual countries)의 사례로 보츠와나, 레소토, 에스와티니, 르완다, 부룬디, 소말리아 등이 꼽힌다. 이들 나라의 공통적 특징을 보면 인구구성에서 특정 종족집단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거나 일찍부터 하나의 언어로 통합된 경우다.

4) 언어와 방언은 언어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Calvet 2002: 64).

5) 파레어(Kipare)는 Casu, Chasu, Athu, Chathu라고도 불리며 탄자니아 북부지역에서 통용된다.

6) 케냐 서부의 루햐, 짐바브웨의 쇼나족이 대표적 사례이다.

7) Ru-부류접두사는 우간다 남서부에서 통용되는 서부호안반투어에서 언어를 의미하는 접두사다.

8) 부뇨로-키타라왕국은 13기에 형성되어 19세기말에 우간다 서부지역을 통치했는데, 영국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자 쇠락의 길로 향했다. 이 왕국의 최고통치자는 ‘오무카마’(Omukama)인데 지금까지도 이 왕국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9) 필자가 2023년 8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루오인은 “수바인들이 루오족에 포식당했다”(Wasuba wamemezwa na Wajaluo)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0) 아자미 문자는 이슬람이 전파된 스와힐리, 하우사, 풀라니, 월로프, 만데 사회에 도입되어 아프리카 언어들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11) 필자와 대화를 나눈 사미아인(OmuSamia)은 나이로비에서는 자신의 루햐인(OmuLuhya) 종족정체성을 드러내고, 나이로비에서 같은 사미아인을 만나거나 고향에 돌아가서는 사미아 종족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유대감을 감화한다고 말했다. 사미아인은 루햐족의 하위 종족집단이다.

12) 암하라어의 문자는 게즈어 문자에서 왔는데, 이를 아부기다(አቡጊዳ)라고 부른다. 하나의 문자에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어 있다.

13) 많은 종족집단이 있는데 인구의 26.9퍼센트를 차지하는 암하라어를 공식어로 지정하여 민족적 단결을 도모하고 국가건설을 위한 언어적 도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탄자니아의 사례와 유사한 점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탈식민이후의 시기에도 식민종주국의 언어를 공식어로 지정했다는 점에서 에티오피아가 기울인 노력을 아프리카의 주체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14) 오로모족은 에티오피아와 접경하고 있는 케냐 북부에도 산다. 케냐에서는 이들을 갈라인(Galla이라는 종족명을 사용한다.

15) 이런 점에서 스와힐리어는 하우사어와 크게 대비된다. 스와힐리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화자수는 극히 미미하다. 더구나 스와힐리인들은 동아프리카의 정치, 경제적 지형에서 지배적 지위를 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종족집단들도 스와힐리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스와힐리어가 이슬람의 언어라는 인식 역시, 선교사들이 스와힐리어를 선교하는 과정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스와힐리어와 이슬람을 동일시화하는 경향도 희미해졌다.

16) 이보족은 나이지리아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나이지리아 남동부에 살고 있던 이보족이 주축이 되어 비아프라공화국을(1967~1970)을 세웠다. 비록 일부 국가들의 승인을 받았지만 무려 2백만명이 아사하는 비극적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17) 사멸위기에 처한 언어들을 기록하고 보전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언어는 어떤 사회의 고유한 문화, 전통지식, 세계관, 가치를 담는 그릇과 같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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