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와 쿠데타 사이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퇴행과 권위주의의 확장을 우려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내 민주주의 현황은 어떨까? 이 글은 최근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루어진 케냐와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와 수단과 가봉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소개하고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이 마주한 민주화 이슈를 평가한다. 이 지역에서 경쟁적 선거가 지속적으로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진전되지 못하고 선거민주주의 체제에 머무르거나, 오히려 그보다 후퇴하여 경쟁적 권위주의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아프리카 정치 엘리트들은 선거를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프리카 신생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 권리와 시민의 자유 확대가 아프리카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면, 아프리카인들은 새롭게 도입된 민주적 정치체제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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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빈(성균관대학교)

1980년대, 아프리카의 민주화가 시작되다

전 세계가 민주주의의 퇴행과 권위주의의 확장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북미나 유럽 내 선진민주주의국가뿐 아니라 남미와 동유럽, 동남아시아의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 아프리카 대륙 내 민주주의 현황은 어떨까? 간단한 대답은 기대와 우려가 겹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54국이 있다. 국가 수가 많아 민주주의 상황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며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현황과 미래를 제시해 본다. 매년 전 세계 국가에 대한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하는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의 지수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에 속한 가나는 2005년 이래로 정치 권리(political rights)에서 가장 높은 1점을 시민 자유(civil liberty)에서는 2점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현재도 같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같은 지수에서 한국도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정치 권리 1점과 시민 자유 2점으로 평가받았으나, 2012년부터 현재까지 정치 권리는 2점으로 후퇴했고 시민 자유는 2점을 유지하고 있다. 가나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세네갈(Senegal), 베냉(Benin), 카보베르데(Cape Verde), 모리셔스(Mauritius) 등의 민주주의 수준이 우리와 유사하거나 높은 국가들이다.

아프리카 민주주의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언제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민주화(democratization)를 경험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대다수가 2010년 튀니지(Tunisia)에서 시작되어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으로 확산되었던 ‘아랍의 봄’을 아프리카의 민주화 시작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민주화 물결’이 일기 시작한 곳은 1989년 베냉이었으며, 1990년대 중반에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47개 국가 중 30개 국가가 1당 독재나 권위주의 체제를 포기하고 새로운 헌법에 따라 다당제와 경쟁적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기존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해 1994년 만델라 대통령을 선출했던 것도 당시 민주화 물결의 한 부분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도입된 경쟁적 선거는 이 지역 다수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치러져 왔으며, 평화로운 정권교체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1991년 잠비아(Zambia)와 카보베르데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며, 베냉에서는 1991년과 2006년 두 차례의 정권교체가, 1994년 남아공, 2000년 세네갈, 가나에서는 2000년과 2008년, 2016년 세 번의 정권교체가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중 잠비아와 카보베르데, 베냉, 남아공 정권교체는 민주화 직후 이루어진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를 통해 민주화 세력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패배시켰으며, 세네갈의 2000년 대통령 선거와 가나의 2016년 대통령 선거 등이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 패한 매우 드문 경우였다.

케냐 대통령 선거: 종족 간 경쟁에서 정책 중심 선거로
케냐 대선서 현 부통령 루토 당선…기뻐하는 지지자들
출처: 헬로아카이브

2022년 8월 케냐 대통령 선거는 케냐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케냐의 전체 등록 유권자의 64.77%가 투표했으며, 1992년 민주화 이후 케냐 대통령 선거 중 가장 치열했던 선거였다. 윌리암 루토(William Ruto) 후보는 50.49%를 득표해 48.85%를 득표한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자신의 출신 종족 지도자에게 투표하는 종족투표가 선거 결과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는 케냐 선거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문제가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우후루 케냐타(Uhuru Kenyatta) 정권 말기에 케냐인들이 직접 경험한 급증한 생활비와 높은 실업 문제는 누구의 책임이며 어떤 후보가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대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키쿠유족 출신 케냐타 대통령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루오족 출신의 오딩가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칼렌진족 출신의 루토 후보는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케냐타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참여해 승리했고 케냐타 정부에서 부통령을 역임했음에도 대통령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지지가 후보자의 승리로 이어지진 못했다. 기존의 야당 지도자였던 오딩가 후보는 케냐타 대통령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오히려 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치열하게 경쟁했던 루토 후보는 케냐타 정부의 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해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케냐 유권자들의 관심과 투표 행태의 변화로 인해 2022년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중요한 현상은 정치 엘리트들이 종족 지도자 간의 연대 협상보다 유권자들의 요구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17년 선거까지도 선거에 참여하는 정치 엘리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종족 지도자들과 어떻게 선거 연대를 구성할 것인가였다. 타 종족 지도자를 설득하여 본인의 선거 연합에 참여시킬 경우, 그를 지지하는 많은 유권자들의 표를 자신이 받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케냐의 선거 풍토와 달리,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가 변했다는 것을 감지한 정치 엘리트들은 유권자의 요구와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 선거의 투명성을 둘러싼 논란
대선 후보 포스터 지나는 나이지리아 라고스 시민들
출처: 헬로아카이브

올해 2월 25일 나이지리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나이지리아 시민들은 이번 선거가 자국의 정치와 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기회라고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여당인 전진보회의(All Progressives Congress) 볼라 티누부(Bola Tinubu) 후보가 880만 표(36.6%)를 얻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무함마두 부하리(Muhammadu Buhari)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연임을 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는 현직 후보가 없어 후보자 간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더욱이 이전 선거는 대부분 여당과 주요 야당인 인민민주당(People’s Democratic Party) 간의 2파전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선거는 신생정당인 노동당(Labor Party)의 피터 오비(Peter Obi) 후보가 젊은 유권자들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선전함에 따라 3파전 양상을 띠었다. 선거 결과 노동당의 오비 후보는 610만 표(25.4%)로 3위를, 인민민주당의 아티쿠 아부바카르(Atiku Abubakar) 후보는 690만 표(29.1%)로 2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에 9천3백만 명이 넘는 유권자가 등록해 최근 대통령 선거 중 가장 높은 유권자 등록률을 기록했지만, 투표율은 26.71%에 그쳐 가장 낮았다.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국가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이며 경제 규모도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다종족 사회로 하우사, 요루바, 이보 등 주요 종족을 중심으로 250여 개 크고 작은 종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 이러한 종족 다양성과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 나이지리아는 36개 주로 구성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고 대통령 선거제도도 그 다양성을 포괄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대통령 당선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득표수와 더불어 36개 주 가운데 24개 주에서 최소한 25% 이상 득표해야 한다. 이처럼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다양한 종족들로부터 골고루 광범한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이전 선거와 달리 이번 대통령 선거는 3파전이었기 때문에, 나이지리아 언론과 선거 전문가들은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결선 투표 가능성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놀랍게도 세 후보 모두 24개 주 이상에서 25% 이상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지리아 선거관리위원회(INEC)는 여당 후보인 티누부의 승리를 공식 발표했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야당 후보자들은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당의 오비 후보와 인민민주당의 아부바카르 후보 모두 개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며, 선거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묻기도 했다. 선거 직전에 이루어진 다수의 여론조사는 오비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예측했었다. 더불어 이들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개별 투표소에서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개표 결과를 인터넷 포털(IReV)에 업로드하는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대통령 선거마다 부정선거와 기타 선거 관련 부정행위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와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이번 선거에 전자 유권자 확인 시스템과 선거 결과 발표 인터넷 포털 프로그램을 새롭게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부정선거 의혹과 일부 지역에서 폭력, 유권자 협박, 투표함 탈취 등의 사건이 발생해 선거에 대한 나이지리아인들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국제 선거감시단도 이번 선거 과정에 투명성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쿠데타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쿠데타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2020년 이후 말리, 기니, 부르키나파소, 차드, 니제르 등 등에서 쿠데타가 연이었으며 2023년 가봉에서 발생한 쿠데타까지 포함하면 총 8번의 쿠데타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약 200건 이상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며, 이 중 절반 가량이 성공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를 겪으면서 군부의 쿠데타 시도가 드물었던 안정기를 거친 후 최근 들어 다시 쿠데타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국가 간 전쟁은 매우 드물지만, 지역 내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조직이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이들과 전투를 벌이는 국가들이 사헬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내전을 겪는 국가 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수단: 예견된 쿠데타와 내전

현재 수단에는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Abdel-Fattah Burhan)이 이끄는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Mohamed Hamdan Dagalo, 헤메티(Hemeti)로 더 잘 알려짐)이 이끄는 신속지원군(RSF) 간에 전투가 주요 군사 요충지 중심으로 격화되고 있다. 신속지원군은 잔자위드(Janjaweed)라는 민병대를 중심으로 다수의 민병대가 결집한 준군사조직이다. 잔자위드는 2000년대 초 수단 서쪽 다르푸르 지역에서 벌이진 내전에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신속지원군 수장인 헤메티는 불법 광산에서 채굴한 금을 수출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전투 경험이 있는 베테랑 수만 명을 지휘하고 있다.

2019년 쿠데타로 30년 동안 수단을 통치했던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Omar al-Bashir)를 축출해 수립된 군사정권은 부르한 장군을 대통령으로 그의 경쟁자인 헤메티 장군을 부통령으로 임명했다. 이미 현지 외교관과 수단 전문가들은 바시르 정권이 몰락한 후 민주적 민간 정부로의 전환 노력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군부 내 두 세력이 충돌해 폭력 사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경고해 왔다. 쿠데타를 통해 군이 권력을 획득했지만, 군사정권은 매주 민간 정부로 전환을 요구하는 시위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다. 민주화를 열망해 온 수단인들은 서방 국가들이 수단 내 임박한 위험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고 유엔의 중재에 따른 수단 군사정권의 민정 전환 합의를 낙관해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판해 왔다.

2019년 시민 봉기 이후 군사정권과 민간 세력 그리고 두 군벌 사이에 벌어진 긴장의 중심 원인은 군대에 대한 감독과 신속지원군의 정규군 통합에 대한 민간 세력의 요구였다. 민간 세력은 또한 농업 및 무역, 기타 산업 분야에서 수익성이 높은 군 자산의 민간 이양도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19년 6월 군이 연루된 민주화 시위대 살해 사건과 2021년 쿠데타 이후 발생한 시위에서 보안군이 시위대를 최소 125명 사살한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해 왔다.

이러한 수단 내부의 긴장과 갈등 상황에 더해 그 전략적 위치와 비옥한 토지, 금 매장량 등은 민간 정부로 전환 가능성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에티오피아와 차드, 남수단을 포함한 수단의 여러 이웃 국가는 수단의 정치적 격변과 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은 수단 군 지도자들이 외국 세력의 주둔을 허용한 홍해에 러시아 기지가 건설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수단 내전의 당사자인 헤메티는 사우디와 UAE와 협력하고 부르한 장군은 이집트와 연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이 수단인들이 바라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 회복 가능성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가봉: 쿠데타가 선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023년 8월 30일 중앙아프리카 산유국인 가봉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현직 알리 봉고(Ali Bongo) 대통령의 3연임에 반발하여 브리스 올리귀 응게마((Brice Oligui Nguema) 장군이 이끄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봉고 대통령을 축출했다. 봉고 대통령은 42년간 통치한 아버지 오마르 봉고(Omar Bongo) 대통령의 뒤를 이어 14년 동안 가봉을 통치했으며, 8월 26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해 3연임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가봉 정부는 광범위한 부정선거 행위를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가짜 정보 확산을 막겠다며 대선 막판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야간 통행도 금지했다. 일부 선거구에선 참관인 없이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다양한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가봉 선거관리위원회는 봉고 대통령이 64.2%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부정선거 행위에 더해, 봉고 가문의 대통령직 부자 세습, 호화로운 생활, 광범한 부패에 따른 불만이 누적되어 쿠데타로 이어졌다. 쿠데타는 반헌법적인 권력 장악임에도 불구하고, 빈곤에 허덕이는 가봉 국민은 수십 년간 가봉을 지배해 온 ‘봉고 가문’을 몰락시킨 군부를 지지했다. 2021년 9월에 발생한 기니의 쿠데타도 가봉의 사례와 매우 유사하다. 기니에서도 당시 무리한 개헌으로 3연임에 성공한 알파 콩데(Alpha Condé)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권좌를 잃고 마마디 둠부야(Mamady Doumbouya) 대령이 이끄는 군정이 권력을 장악했다.

아프리카의 민주화 이후 다수 국가는 대통령의 임기를 1회 연임으로 제한하는 것을 헌법으로 제도화했다. 이와 달리, 선거라는 제도를 형식적으로 이용해 지도자를 선출함으로써 대통령 임기를 연장해 장기간 통치해 온 나라들도 존재한다. 가봉의 이웃 국가인 적도기니와 콩고공화국, 카메룬의 대통령들도 권력 교체 없이 수십 년 동안 집권해왔다.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시민들은 전통적인 정치 계층뿐 아니라 합법적으로 공직에 선출된 정치 엘리트에 대하여도 환멸을 느껴왔다. 이러한 환멸은 높은 실업률과 경제적 기회의 불평등, 엘리트 집단의 특권과 부패 등에 대한 분노로 인해 초래된다. 또한, 헌법 개정을 통한 임기 제한 폐지 시도가 보여주듯이 정치 엘리트들이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선거 과정이나 헌법을 조작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국민의 불만은 매우 높다. 아프리카의 쿠데타는 정치 엘리트들이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실패한 결과물이다.

기대와 우려가 섞인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미래

아프리카 국가에서 경쟁적 선거가 지속적으로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진전되지 못하고 제한적인 민주주의인 선거민주주의 체제에 머무르거나, 오히려 그보다 후퇴하여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체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프리카의 정치 엘리트가 경쟁적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경쟁적 선거를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이들 정치 엘리트들은 통치의 정당성을 제도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경쟁적 선거제도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국제사회와 국민도 그들에게 경쟁적 선거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와 내부의 압력으로 아프리카 정치 엘리트들은 선거민주주의를 외형적으로 유지하거나 제도상 결함을 묵인하는 데 머무를 뿐, 자국의 민주주의 공고화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민주주의 공고화가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기까지 한다.

선거민주주의나 경쟁적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아프리카 정치 엘리트들은 정기적으로 경쟁적 선거를 치르지만, 선거를 통해 획득한 권력을 쥔 정부 여당 세력은 정당성이란 가면 뒤에 숨어 야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체계적으로 견제하고 탄압하기까지 한다. 정부 여당 세력이 수행하는 개혁 노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계산된 그리고 자신들이 관리 가능한 수준에 그친다. 선거민주주의 하에서 집권 세력은 야당을 지지하는 세력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을 가하거나 제3세력을 종용하여 은밀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종족 사회가 많은 아프리카에서 집권 세력은 종족 청소(ethnic cleansing), 종족 혹은 지역별로 차별적인 선거 등록 절차나 투표 과정을 도입함으로써 특정 종족이나 야당 소속 후보자가 출마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거나 유권자들이 야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을 방해하는 등 비공식적 방법으로 투표권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선거에 승리해 정권을 획득하고 국가를 통치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경쟁적 선거제도 도입은 아프리카 지역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결과는 경쟁적 선거 도입 효과가 단선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진전만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거는 정치 세력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정치 공간을 확대하여 권력을 향한 제도적 투쟁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동시에 선거는 권위주의 정권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정치적 위기나 인권 탄압을 초래할 수 있는 선거민주주의나 경쟁적 권위주의처럼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경쟁적 선거제도 도입이 유권자에게 능력 없는 정치 엘리트를 낙선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만, 아프리카 지역 내 정치제도나 정치문화를 전반적으로 재구성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험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도 역시 강하다. 지난 2년 동안 수단과 차드,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가봉 등의 정부가 군부 쿠데타로 붕괴하는 등 1970년대 아프리카 지역의 정치 불안을 대변했던 군부의 정치 개입이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다.

우간다와 짐바브웨는 사이버안보법이나 포괄적 반부패법을 도입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시민사회의 활동을 제한하기도 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알라산 우아타라(Alassane Ouattara) 대통령은 1회만 연임을 허용했던 헌법을 개정해 세 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르완다의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도 2015년 개헌을 통해 공식적으로 2034년까지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화 물결로 다당제와 경쟁적 선거제도를 도입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정치 과정 측면에서 이룬 성과에 비해 아프리카인들에게 더 절실한 경제적 성과는 여전히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 신생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 권리와 시민의 자유 확대가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면, 아프리카인들은 새롭게 도입된 민주주의 정치체제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아프리카의 민주주의는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지지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개혁을 바라는 아프리카의 청년들이 이러한 긍정적 변화를 주도한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창의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2021년 정부와 여당의 정치 억압이 노골적이었던 잠비아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청년 시위대는 공개되지 않은 장소로 이동하고 그들의 활동을 소셜미디어에 생중계해 야당 후보자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아프리카 민주화의 희망은 변화와 자유를 꿈꾸는 청년 세대에 달려 있다.

 

저자소개

조원빈(chowonbin@skku.edu)은
성균관대학교 교수이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Afrobarometer에서 연구교수, 미국 켄터키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조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주로 아프리카의 정치개혁과 개발협력 관련 연구 등을 진행하고 신생민주주의와 선거, 여론조사 분야 관련 다수의 저서 및 논문을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 오재익·조원빈. 2023. “종족투표와 경제투표: 2022년 케냐 대통령 선거 결과 분석.” 평화학연구 24권 1호, 135-154.
  • 조원빈. 2013. “다종족 사회에서 정치제도가 정치안정에 미치는 영향: 2013년 케냐의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의정연구 19권 3호, 137-165.
  • 조원빈. 2018. “아프리카 민주화의 경과 분석, 1989~2016년,” 비교민주주의연구 14집 2호, 7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