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노동자의 공공공간 길들이기

일요일에 대만 타이베이 역으로 가면 이주여성노동자가 중앙홀 바닥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시선이 있다. 오죽 갈 데가 없으면 기차역 바닥이냐며 측은해 할 수 있다. 열차 이용객에게 불편을 주고 공공장소를 더럽힌다며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다. 이 글은 대만에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주 도우미 즉 가내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것이다. 먼저 외국인 노동자의 이주사와 산업별 현황을 개관한다. 가내 여성노동자의 이주 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가내 이주여성노동자는 순진무구해야 한다는 대만인 고용주의 기대와 상상이 인력송출업체에 의한 선발, 훈련, 채용 과정에서 강조되고 때론 강요되는지 살펴본다. 집이 직장인 가내 이주여성노동자는 집에 머무는 한 고용인의 통제와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사생활이 사적공간의 전형인 집에서 보장되지 않는다. 이주여성노동자는 역설적이게도 타이베이역과 같이 익명성이 지켜지는 공공공간에서 사생활을 얻는다. 끝으로 이러한 ‘공공공간 길들이기(domestication of public space)’ 관점에서 위에 언급한 시선들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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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열(상명대학교)

공공공간의 낯선 풍경: 대만 타이베이역
타이베이역 중앙홀 주말 모습
자료 : 저자 제공 2019년 7월 21일

대만 타이베이(臺北)로 주말을 끼고 개별 여행을 갔다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교통편과 관광 가이드가 제공되는 당일 투어의 집합 장소는 대개 타이베이 기차역인데 일요일이었다면 중앙홀에서 위 사진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휴일을 맞아 임시 거처를 찾은 듯하다. 대부분 여성인데 머리 가리개가 그들의 종교를 짐작케 한다. 서로 알고 친한 사이인 듯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타이중(臺中)이나 가오슝(高雄)과 같은 다른 도시에서 열차를 타고 온 친구를 만난다.1) 공짜 와이파이로 스마트폰을 쓰거나 담소를 즐긴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과 음료를 나눠 먹는다. 원추형으로 쌓아올린 밥 무더기를 볼 수도 있다. 뚬쁭(tumpeng)이라 불리는 인도네시아 자바의 전통 음식으로 의식, 제례 때 쓰이는 데 여기선 대개 생일을 축하한다. 아예 돗자리를 깔고 신발도 벗은 채 앉아 있는데 영락없이 주말에 가족과 집에서 하는 행위로 보인다.

타이베이역 출입구 주말 모습
자료 : 저자 제공 2019년 1월 13일

산업혁명과 더불어 가내수공업에서 공장제기계공업으로 전환되면서 작업장은 집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직주분리는 공업화와 함께 급격히 성장한 도시에서 가시화되었고 보다 최근에는 도시팽창과 교외화로 더욱 뚜렷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직주가 일치하는 일자리가 있다. 입주 가사·육아·간병 도우미가 그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농촌 출신 젊은 여성이 도맡아 했으나 국제 이주의 문턱이 낮아진 지금 개도국 출신 이주여성이 맡고 있다. 이들 가내 이주여성노동자는 고령화와 맞벌이 증가로 그 수요가 꾸준하며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말에 노동자는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문다. 간혹 외식이나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대개 ‘집에서’ 평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낸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을 입주 도우미가 따르긴 불가능하다. 집이 직장이고 직장이 집이기 때문에 직장에서 벗어나는 순간 집과도 떨어져 멀어진다. 또한 집은 고용주의 가정이기도 해서 가족이 아닌 입주 노동자는 주말에 집을 비워주어야 한다. 결국 입주 노동자는 주말 시간을 보낼 집을 집 밖에서 찾아야 한다. 공간의 사유화가 팽배한 자본주의 도시에서 ‘주말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누구나 와서 사용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공공공간에 모인다.

공공공간을 가득 메운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있는 곳이 대만인지 혼돈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이는 열차 이용 승객에게 불편을 준다거나 주변을 더럽힌다며 눈살을 찌푸릴 수 있다. 혹은 오죽 갈 곳이 없으면 사람들 오가는 기차역이냐며 측은하게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실한 복지정책을 꼬집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글은 대만의 가내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대만으로의 이주노동자의 유입에 관한 역사를 짚어보고 현재 산업별, 출신국가별 분포를 살펴보고 쏠림 현상을 확인한다. 다음으로 이주 전 과정을 인도네시아 출신 입주도우미를 사례로 분석한다. 가내 이주여성노동자는 순진무구하다는 대만 고용주의 기대와 상상을 확인한다. 그 순진무구함이 인력송출업체에 의해 선발, 훈련, 채용 과정에서 강조되고 때로는 강요되는지 살펴본다. 끝으로 가내 이주여성노동자가 공공공간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나서게 되었는지 살펴보며 이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시선에 대해 논한다.

 

대만, 문을 열다: 이주노동자의 유입

장기 계엄령 하에 있던 대만은 공산주의의 국내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이민을 엄격히 제한했다. 38년 간 지속되던 계엄이 1987년에 해제되고 경제에서도 자유시장화가 진전되면서 이민 정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다. 본토 중국인 이민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고 학문과 산업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자의 이민이 허용되었다. 특히 자국민과 결혼한 배우자나 자녀의 이민에 대한 법제화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에서 이민자 특히 결혼이주여성이 대거 들어오게 되었다.

임시 이주자에 투자자, 기술자, 종교인 그리고 그 가족 등의 전문직 이주자가 포함되지만 그 수와 비중은 미미하다. 대부분의 임시 이주자는 힘든 작업과 낮은 임금 수준으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산업이 겪고 있는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한 이주노동자이다. 1992년 노동고용서비스법(the Labor Employment Services Act of 1992)에 따르면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내국인 노동자를 대체해서는 안 되며 그 수와 비중은 엄격히 관리되어야 한다. 또한 특정 산업과 직종에만 종사할 수 있으며 향후 예견되는 산업 구조 조정의 속도를 늦추는 등의 악영향이 없어야 한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영구 거주할 수 없으며 가족을 동반하거나 재결합할 수 없도록 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에 관한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의도되었으며 그 만큼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고려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대만 이주노동자의 산업별 국적별 분포 (2020년 2월말, 단위: 명)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태국 기타 합계
농·임·어·축산업 9,347 1,393 1,638 38 0 12,416
건설업 524 1,222 12 2,762 0 4,520
제조업 65,792 191,003 126,285 55,913 5 438,998
  금속가공 18,048 53,662 14,271 13,633 0 99,614
  전자부품 1,349 10,395 57,666 3,327 0 72,737
  기계장비 5,670 22,869 6,122 4,444 4 39,109
  식품 및 사료 5,703 16,407 4,397 3,399 0 29,906
  플라스틱 제품 5,260 16,240 4,024 4,369 0 29,893
  섬유 5,002 10,162 4,756 4,870 0 24,790
  기초 금속 4,506 5,685 3,704 5,875 1 19,771
  컴퓨터, 전자, 및 광학제품 123 3,659 13,757 225 0 17,764
  자동차 및 부품 2,984 6,649 2,702 2,644 0 14,979
  기타 제조업 17,147 45,265 14,886 13,127 0 90,425
건강, 사회복지, 및 기타 서비스 203,749 28,295 31,076 432 1 263,553
합 계 279,412 221,913 159,011 59,145 6 719,487
출처: Workforce Development Agency, MOL.

2020년 현재 대만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약 72만 명이다. 산업대분류별 제조업 비중이 61.0%으로 가장 높고 서비스업 36.6%, 농·임·어·축산업 1.7% 순이다. 현재 건설업 비중은 상당히 낮지만 이주 초창기인 1992년만 하더라도 이주노동자 세 명 중 두 명이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1990년대를 거쳐 주요 국책 토목·건설 사업이 순차적으로 매듭지어지면서 이주노동자는 제조업으로 향했다. 식품가공, 섬유, 의류, 목제, 가구, 종이 인쇄, 플라스틱 등 노동집약적 내수 산업이 우선적으로 흡수했다. 그리고 기계, 장비, 전기전자 등 자본·기술집약적 수출 산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수가 1990년대 후반 이후 눈에 띄게 늘었다.

애초 이주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노동집약적 내수 산업이 사양화하면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진 셈이다. 또 하나 유념할 점은 이주노동자가 자본·기술집약적 산업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하여 담당하는 업무 또한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소위 3D3S(Dirty, Dangerous, Difficult; the third shift of a three-shift work)를 도맡아 하고 있다. 열기, 분진, 독성가스가 발생하는 화학공정, 비자동화공정에 3교대 근무제에서 밤 10시에서 아침 6시까지 밤 근무조로 일한다. 이처럼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내국인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지켜졌다.

대만의 인구 구조와 여성 경제활동 참여 (1989년-2019년)
자료: National Statistics, Republic of China (Taiwan), https://eng.stat.gov.tw/

제조업 다음으로 이주노동자가 집중된 산업은 서비스업이다. 1990년대 후반 대만 정부는 가사·육아·돌봄 서비스업 노동시장에 외국인 이주노동자이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인구학적 현실이 있다. 65세 이상의 고령층의 인구 비중이 30년 전인 1989년 6.0%에 불과하였으나 2019년 현재 15.3%에 달해 고령사회가 되었다. 특히 최근 5년 간 고령 인구 비중이 매년 0.7%p씩 증가하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60년 간 대만 인구는 약 두 배 늘었는데 반해 가구 수는 4배 이상 증가하였다. 당연히 평균 가구 규모가 감소했는데 1991년 3.9명에서 2018년에는 2.7명으로 줄어들어 핵가족화했다. 이에 더해 1978년 39.1%에 불과하던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꾸준히 상승하여 2011년 절반을 넘어서 2019년 현재 51.4%에 이르렀다. 요약하면 고령화, 핵가족화, 맞벌이로 가사, 간병, 육아,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고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유입을 허용하게 되었다.

 

이주노동자의 출신국가별 일자리 쏠림

출신국가별로 살펴보면 인도네시아가 38.8%로 가장 많고 베트남 30.8%, 필리핀 22.1%, 태국 8.2% 순이다.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산업은 다양하다. 하지만 출신국가별로 특정 산업에 편중현상이 나타난다.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72.9%는 건강 및 사회복지 서비스에 집중 종사한다. 이에 반해 여타 국가 출신은 제조업에 집중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출신국가별 이주노동자의 제조업 종사 비중은 베트남 86.1%, 필리핀 79.4%이며 태국은 94.5%에 달한다.

제조업 내 세부 분야에서 차이도 있다. 베트남은 금속가공, 기계장비, 식품 및 사료, 플라스틱 제품에 필리핀은 전자부품, 컴퓨터, 전자 및 광학제품, 태국은 금속가공, 기초 금속에 쏠림이 있다. 이러한 쏠림은 대만 기업이 이들 국가에 진출하여 이주네트워크가 형성되었을 수 있고 사슬이주가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종합하면 세계화와 탈냉전이라는 세계적 변화 속에서 대만 제조업은 노동집약적 내수 산업에서 기술자본집약적 수출 산업으로 그 중심축이 이동해 나갔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집약적 내수 산업을 기피해 인력난이 가중되어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허용하게 되었다. 또한 고령화, 핵가족화하고 여성의 경제 참여로 맞벌이가 증가함에 따라 늘어난 가사, 간병, 육아,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가내 이주노동자를 들이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국적별로 산업분야에 쏠림이 있다.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상당수가 건강 및 사회복지 서비스에 집중 종사한다. 이에 반해 여타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는 제조업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시적 변화는 단지 정황을 보여줄 뿐이다. 다음 절에서는 이주노동자 개개인이 어떠한 경로로 이주를 해오는지 인도네시아 출신 가내 이주여성노동자를 사례로 살펴보겠다. 이로써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 대만에서 집을 찾다

대만으로 인력을 송출하는 인도네시아 업체는 대개 자카르타와 같은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농촌 지역에 유휴 인력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 인도네시아어로 짤로(calo)라 불리는 현지 중개인을 통한다. 촌장, 사업가, 혹은 종교지도자인 짤로는 현지 사정에 밝을뿐더러 지역 주민과 신뢰를 갖고 있어 잠재적 이주노동자를 모집하는 데 뿐 아니라 향후 소통하고 통제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가사·육아·간병을 담당하는 입주 도우미로 일할 이주노동자가 가져야할 덕목으로 순진무구함이 꼽힌다고 한다. 공장 노동자일 경우 직무수행능력과 학습능력이 중요시되는 것과 대별된다. 가사·돌봄이라는 업무가 재생산 영역으로 그 근무지가 집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집은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안전하고 포근한 쉼터로 상상되어진다. 가장 덜 위협적인 사람이 입주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성(머리)이 중시되는 공장과 달리 집은 감성(가슴)의 공간이라고 인식된다. 이 또한 입주 도우미 선정에 있어 기술보다는 심성을 중시하게 만든다. 인력송출업체는 고객인 대만인 고용주가 기대하는 – 사실은 상상하는 – 입주도우미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순진무구함은 이주노동자를 선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며 훈련 과정에서 종종 인위적으로 심어지기도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순진무구함은 광고에서 부풀려져 마케팅 수단이 된다.

모집된 예비 이주노동자들은 인력송출업체가 위치한 대도시의 훈련소로 이동한다. 입소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건강검진으로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귀가하게 된다. 집단 기숙하며 훈련소에서 소화하는 일과는 반복적이며 규칙적이다. 오전 5시 기상과 함께 아침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고 청소와 아침식사를 한다.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되어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수업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이다. 가내 도우미로서의 자세와 윤리, 기술과 그 활용, 그리고 언어가 그것이다. 이들 수업은 8시에서 12시까지의 오전 세션, 1시 반에서 4시 반 오후 세션, 그리고 7시에서 10시 저녁 세션에 나뉘어 담긴다. 이와 같은 반복적이고 규칙적 훈련은 예비 이주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대만에서 가내 노동을 수행하기 적합하도록 길들인다.

수개월에 걸친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한 예비 이주노동자는 고용시장에 나간다. 신체의 3분의 2가 나오는 사진, 인적 사항, 경력, 특기, 일에 임하는 자세, 인력소개업체의 소개글이 담긴 자기소개서가 온라인이나 종이서류 형식으로 예비 고용인에게 제공된다. 온라인의 경우 예비 이주노동자가 자신을 소개하는 비디오 클립이 첨부되기도 하며 화상 인터뷰까지도 가능하다. 구직자의 간절함과 종종 절박함은 많은 것을 양보하게 만든다. 휴일을 갖지 않겠다거나 환자와 같은 방을 사용해도 되며 무슬림의 경우 돼지고기를 먹겠다는 약속을 한다.2)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민족차별적 담론 또한 널리 퍼져 있다. 필리핀인은 학습이 빠르며 특히 영어를 구사할 수 있기에 육아 도우미로 적합하다. 하지만 너무 똑똑하여 고용주를 속이거나 노동법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 다루기 힘들다고 언급된다. 반면 베트남인은 문화적 유사성이 있어 중국어 습득이 빠르다거나 인도네시아인은 주로 시골 출신이라 학습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순종적이라 간병인으로 적합하다는 식이다. 집단 내 개인적 편차가 클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족 전체에 대한 일부 사실이나 소수의 예외적 사건이 부풀려 지고 기존의 민족적 선입견과 결부되어 만들어진 민족차별적 담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

대만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정해진 작업장과 소재지를 이탈한 경우 상당기간 동안 신규 고용을 금지한다. 이주노동자의 관리 책임을 고용주에게 물리는 것으로 과도한 감시와 감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고용주의 부재는 입주도우미를 고용하는 이유이기에 당연하고 일상적이다. 작업일정표를 짜고 이행여부를 점검하거나 몰래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부재를 메운다.

타이베이역 역사 밖 풍경
자료 : 저자 제공 2019년 1월 13일

 

집 밖을 나서다

가내 이주여성노동자가 휴일에 집 밖을 나서야 하는 이유는 많다. 타국 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인데다가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돌봄과 간병 업무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 업무가 재생산 영역에 속한 일이다 보니 입주도우미가 노동자라는 사실이 종종 간과된다. 엄연히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서 노동력을 재충전하기 위해서라도 휴식이 필요하다.

집이 직장이라는 점에서도 외출이 절실하다. 모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향수병도 우려된다. 이주노동자가 근무지를 이탈하는 가장 큰 이유 또한 동족 이주노동자와 같이 혹은 이웃하여 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집 밖에서 같은 처지에 유사한 일을 하는 동포를 만나 모국어로 맘껏 대화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집 밖을 나서야 하는 이유만큼이나 나서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많다. 우선 금전적 이유다. 대만으로 올 때 여행경비, 소개비 등으로 빚을 졌는데 이를 갚는 데 통상적으로 최소 18개월이 걸린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가족이 진 빚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가족 빚이 없었다면 이주노동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아껴 쓰면 되니 집 밖을 못 나갈 것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가내 이주여성노동자가 순진무구하다고 상상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순진무구함은 가내 이주여성노동자로 선발되어 훈련받고 채용되는 모든 과정에서 우선시되고 강요되기까지 한다. 이런 인식과 강요는 집 밖이 이들에게 안전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젊은 사람에게 이성교제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고용인은 순진한 이주여성이 꼬임에 넘어갔다고 생각하거나 교제로 인해 소임을 등한시할까 두려워한다. 중국어가 완벽하지 않고 지리에 어두운 외국인이라는 점도 덤으로 붙여져 보호라는 명분으로 외출은 권장되기보다 억제된다.

고용계약서에 휴일이 명기되어 있어 마지못해 외출을 허가해야 할 수도 있다. 허가 되었다 하더라도 여러 단서가 붙는다. 귀가 시간을 대개 일몰 전으로 정하거나 방문지를 지정하거나 금지 구역을 정하기도 한다. 만일 이웃에라도 신뢰할 수 있는 다른 이주노동자가 있다면 그의 인솔 하에 외출을 허가한다.

 

공공공간 길들이기

이국땅의 임시거처인 집은 가내 이주여성노동자에게 직장이기도 하다. 집에서도 임노동 고용관계에 따라 일정정도 통제와 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공공공간으로 외출은 통제와 감시로부터 벗어나 개인적 자유를 얻게 해준다. 통상적으로 집은 사생활이 보장되는 사적공간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내 이주여성노동자에게 사생활은 집이 아닌 공공공간에서 주어진다. 이러한 의미로 타이베이역의 가내 이주여성노동자의 모습은 ‘공공공간 길들이기(domestication of public space)’라 할 수 있다.

공공공간에서 여성차별의 역사는 깊고 지리도 넓다. 고대 아테네에서 자유 시민권을 상징하는 공공공간은 오직 남성에게만 열려 있었고, 도시 내에 여성의 통행이 경찰에 의해 제지되는 구역도 많았다. 하물며 20세기 서구 도시에서도 나타난다. 주거지의 교외 확장은 재생산의 짐을 지고 있는 여성을 교외로 내몰아 도시의 대표적인 공공공간인 도심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미시적으로 야간 도심 거리에서의 늑대 휘파람은 여성을 공공공간에서 내몰아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이베이역으로 돌아가 이주여성노동자가 공공공간을 길들이는 것을 보면 측은해 보인다기 보다 대견스러워 보인다.

타이베이역을 대만스럽지 않게 만든다거나 여행객에게 불편을 준다며 눈살을 찌푸릴 일도 아니다. 가내 이주여성노동자는 오랜 기다림 끝에 휴일을 맞아 흥분해 마음이 들떠있다. 제한된 시간이라 무리를 해서라도 될 수 있으면 많이 돌아다닌다. 피곤하다. 불룩해 본 적이 없는 주머니 사정이라 공공장소를 찾게 된다.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적다. 무엇보다도 동족 친구와 함께 가까이 앉고 싶다. 바닥에 앉는다. 일하는 동안 쓰지 못했던 모국어로 맘껏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준비한 고국 음식을 먹는다.

공간은 사회를 담고 있다. 공공공간은 그 사회의 민낯이다. 이주노동자는 비록 시민권이 없지만 공공공간인 타이베이역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떳떳이 드러내고 있다. 마치 소풍나온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다문화 사회로서 대만 사회는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감염증에 대한 방역 조치로 대만 철도국은 타이베이역에서의 집합을 2월말부터 한시적으로 금지하였다.3) 감염증 확산이 진정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집합 금지령을 거두어지지 않고 있다.4) 신종 전염병이 이주여성노동자의 쉼터를 빼앗는 빌미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자소개

정수열(sychung@smu.ac.kr)
상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공간환경학부 교수이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지리학과에서 “도시 내 거주지 분화”에 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도시지리학과 사회지리학적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거주지 분화, 애증의 공간으로서 강남의 형성과 변화, 그리고 한국화교, 조선족 등의 이주, 집거권 형성, 월경적 경제활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 New Naratif. (2020.01.16.). “Sundays at Taipei Main Station”, https://newnaratif.com/journalism/sundays-at-taipei-main-station/share/xuna/40195594f1244e7ec627b1c6a5a35585/ (검색일: 2020.05.14.).

2) Liang, 2011, 1824쪽

3) NewTalk신문. (2020.02.29.) “武漢肺炎》禁止群聚!台北車站大廳2/29至4/30禁止席地而坐”, https://newtalk.tw/news/view/2020-02-29/373474 (검색일: 2020.05.19.)

4) 中央通訊社. (2020.05.18.) “台北車站大廳禁席地坐及辦活動 擬永久有效”https://www.cna.com.tw/news/firstnews/202005180230.aspx?utm_source=cna.facebook&utm_medium=fanpage&utm_campaign=fbpost (검색일: 2020.05.19.)

 


참고문헌

  • Loveband, A., 2006, “Positioning the Product: Indonesian Migrant Women Workers in Taiwan” in Hewison, K. and K. Young, (eds.) Transnational Migration and Work in Asia. Routledge. Chapter 5, 7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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