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화된 국제이주: 네팔여성의 제한된 이동성과 경계넘기

네팔은 남성이 해외로 나가 취업을 하고, 여성이 네팔에 남아 가족을 돌보는 젠더화된 국제이주의 양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네팔 국제이주 노동자의 94.7%는 남성이며, 네팔정부는 25년 동안 여성의 해외취업 규제정책을 통해 여성의 이동성을 제한해왔다. 그러나 사회구조적으로 제약된 네팔여성의 이동성은 결코 부동성과 등치되지 않는다. 이글은 필자가 수집한 현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네팔여성들이 어떻게 그들만의 궤적을 생성하고 끊임없는 경계넘기를 시도하며 새로운 사회관계와 이동을 매개하는 사이공간을 생성해가고 있는지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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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원(전남대학교)

네팔의 젠더화된 국제이주

네팔은 아시아의 주요 이주 송출국으로 오늘날 매일 1,500명이 넘는 네팔노동자가 해외취업을 위해 네팔을 떠나고 있다(CTEVT, 2014). 네팔인의 주된 국제이주 유형은 노동이주로 네팔이주자의 79%가 취업을 목적으로 이주를 한다(Sharma et al., 2014). 2008년부터 2017년 10년 간 네팔정부는 350만 건 이상의 국제이주 노동허가를 발급하였다(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 2017년 기준 국제이주노동자들이 네팔로 보낸 송금액은 약 7조 319억 원(6,990억 루피)으로 이는 네팔 GDP의 1/4 이상인 26.9%에 달하며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비율이다(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 해외취업자가 있는 이주가정 한 가구 당 연 평균 810만 원의 송금을 받고 있는데, 이는 네팔의 1인당 GDP(92만 원)의 9배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네팔노동자의 노동이주는 일반적으로 단기계약을 기반으로 하며 이주수용국의 엄격한 제도적 조건으로 대부분 가족동반이 아닌 단신이주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제이주자의 증가는 곧 네팔 내 남아있게 되는 이주가정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네팔의 국제이주는 남성이 주도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네팔의 국제이주 노동자 중 남성의 비율은 94.7%이다(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2018). 따라서 네팔은 남성이 해외로 나가 취업을 하고, 여성이 네팔에 남아 가족을 돌보는 젠더화된 국제이주의 양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필자가 현지조사를 실시했던 네팔 중부 산지의 농촌마을에서는 젊은 남성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노인, 여성과 아이들만 눈에 띄었으며 대다수의 가정에서 남자 가족 중 한 명 이상은 해외에 나가있거나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네팔사회 내 남성의 해외취업을 장려하고 이주가 젊은 남성들의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이주문화와 더불어 여성의 ‘이동성’을 금기시하는 사회문화적 관습 및 구조적 제약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국제이주가 네팔사회 내 성별 역할구분과 노동분업을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제약 속에서 네팔여성들은 꾸준하게 해외취업을 나가고 있으며 필자의 현지조사 중 인터뷰에서도 다수의 여성들이 국제노동이주를 바라고 계획하고 있었다. 여성은 공식적으로는 네팔 전체 국제이주자의 5.3%만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미 250만 명이 넘는 네팔여성들이 말레이시아와 중동국가 등에서 비공식적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전체 네팔이주노동자의 30%의 규모와 맞먹는다고 한다(ILO, 2015). 해외체류 중인 네팔의 전체 미등록이주자 중 약 90%가 여성이며 대다수의 네팔여성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여성들의 국제이주는 네팔사회에서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남성중심의 법제도와 이주문화에 천천히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

이 글은 필자가 2019년 1월과 2020년 1월 두 차례에 걸쳐서 네팔의 중부 산지 농촌마을과 카트만두 일대에서 수집한 현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의 국제이주를 제한하는 네팔의 현 제도와 차별화된 이주 모빌리티를 살펴본다. 국제이주의 모빌리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주 당사자뿐 아니라 남아있는 가족의 이주경험과 서사를 포함하며, 사회관계의 변화를 통해 재구성되는 새로운 권력의 지형도를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네팔의 국제이주 과정에서 사회구조적으로 제약된 여성의 이동성은 결코 여성의 ‘부동성’과 등치되지 않는다. 네팔여성들은 그들만의 궤적을 생성하고 끊임없는 경계넘기를 시도하며 새로운 사회관계와 이동을 매개하는 사이공간(in-between space)을 생성해가고 있다.

 

네팔여성의 제한된 이동성: 보호인가 차별인가?

네팔노동자의 국제이주는 국가의 제도 및 정책에 의해 활발하게 추동되고 있다(신지원 외, 2020). 네팔정부는 2007년 해외고용법(Foreign Employment Act, 이하 FEA)과 2008년 해외고용규칙(Foreign Employment Rules)을 개정하고1) 2012년 해외고용정책(Foreign Employment Policy)을 공표하였다. 2007년 해외고용법에 의거하여 설립된 노동고용부(Ministry of Labour and Employment) 산하의 해외고용부(Department of Foreign Employment, 이하 DOFE)는 네팔노동자의 국제이주노동을 주관하는 정부기관이다. DOFE는 네팔노동자의 해외고용을 추진하고 조정하는 핵심 기구로서 해외고용 관련 업무의 조정, 명령, 행정 절차 등과 관련된 정책을 수행할 뿐 아니라 민간 고용중개업체에 사업 면허를 발급하고 갱신하기도 한다.2) 2007년 해외고용법(FEA)은 법의 시행에 있어 모든 형태의 젠더 차별을 금지(제8조)하고 여성, 달리트, 소수민족, 사회적 약자에 속한 자가 취업을 위해 해외로 이주하는 것에 대한 특별 조항을 마련하였다(ILO, 2015).

그러나 1985년 해외고용법(FEA)이 최초로 제정된 이래 25년 동안 네팔정부는 실제적으로 여성의 해외취업을 제한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시행해오고 있다. 여성의 국제이주 규제정책의 시행 목적은 해외취업에서 발생하는 위험하고 착취적인 근무환경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실제적으로는 네팔여성의 이동성과 독립성을 엄격하게 제약하고 있다. 1998년까지 네팔여성은 여권을 발급받기가 매우 어려웠으며 아버지나 남편과 같은 남성 후견인(‘guardian’)의 서면허가 없이는 국제이주가 불가능하였다(ILO, 2015; Pyakurel, 2018).

이러한 규제정책은 일관된 형태로 수립되어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이나 여성의 해외취업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의 추세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경되고 재강화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8년 11월 쿠웨이트에서 발생한 카니 셰르파(Kani Sherpa)라는 네팔 여성 가사노동자의 사망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고용주의 폭력을 못 견디고 이주여성이 자살한 사건으로 종결되었는데 네팔정부는 이 사건이 발생한 즉시 네팔여성의 걸프국가로의 이주를 완전히 금지하였다. 해당 금지령은 2003년 부분적으로 해제되어 가사노동과 같은 비공식부문을 제외한 공식부문에서 여성의 해외취업을 허용하게 되었다. 2003년 이후에도 네팔정부는 지속적으로 여성의 해외취업 금지 대상국가와 나이 기준을 변경하며 여성의 국제이주를 제한해오고 있다(아래 <표1> 참조).

네팔여성의 국제노동이주에 대한 규제정책(2003~2017)

/ 규제정책의 주요내용
2003년 3월 휴가나 다른 이유로 일시적인 귀국을 한 여성이주자가 해외취업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허가를 받고 출국해야 함
2003년 5월 국제이주를 나가려는 여성은 지역정부와 가족으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함
2008년 9월 걸프국가와 말레이시아로의 여성이주는 허용되나 가사노동자로 취업하는 여성이주자는 출국 금지
2009년 1~5월 레바논 – 가사노동자 취업활동 금지
2010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 취업활동 허가
2011년 10월 걸프국가 – 가사노동자 취업활동 금지 전면 해제
15만 명의 여성 이주노동자를 해당 지역으로 파견하기로 함
2012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 30세 미만 여성 가사노동자 취업 금지
2014년 7월 모든 국가 – 가사노동 취업활동 (일시적) 금지
2015년 4월 가사노동 취업활동 금지 해제
걸프국가 – 25세 미만 여성 가사노동자 취업 금지
2016년 5월 걸프국가 & 말레이시아 – 24세 이상 여성 가사노동자 취업 허가(단 네팔정부와 수용국가 간 노동이주에 관한 합의서 채택 및 인력송출업체이용 조건 충족 시만 가능)
2017년 8월 걸프국가 – 여성 국제이주 허가 중단(네팔 의회 위원회는 현장시찰 이후 걸프국가 내 네팔 여성의 가사노동 취업활동 금지를 명령함)
출처: ILO(2015:6) & Pyakurel(2018:651)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러한 국제이주 규제정책은 네팔여성의 국제이주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들을 비공식적이고 위험한 이주경로로 내몰고 있다. “네팔정부가 여성의 이주를 규제하는 차별적인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네팔여성들은 국제이주의 기회를 남성들과 동등하게 갖지 못하고 있다. 네팔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며, 이로 인해 경제자본, 기술 및 교육 수준이 낮아 네팔사회 내에서 본인의 직업을 갖거나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특히 네팔사회 내에서도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여성(소수종족집단, 빈곤층, 가정폭력 피해자, 강제결혼 피해자 등)에게 해외취업은 선택이 아닌 구조적으로 강요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국제이주에 대한 수요는 매우 높으며 이동성이 제한된 상황에서 비공식적이고 불법적인 경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3)

네팔여성들은 해외로 출국하는 것조차 제한되는 상황에서 관리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육로국경을 통과하여 인도나 방글라데시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걸프국가에 도착하게 된다. 이러한 비공식적 이주경로는 네팔-인도-걸프지역 간에 형성된 초국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브로커의 도움 없이 개별 이주자가 실행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이동이다. 따라서 이주과정에서 여성들은 상업적 브로커에게 의존해야 하는 매우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인신매매, 감금, 강제노동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해외취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엄격한 규제제도는 여성들의 이주에 대한 열망을 잠재우지 못하고 더욱 복잡해진 고위험·고비용의 이주를 양산하고 있다.

네팔여성에게 부과된 이동성의 엄격한 제약은 ’여성의 가정성(domesticity)’(Parrenas, 2008)에 대한 인식이 이주의 맥락에서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들쑥날쑥한 네팔정부의 규제정책에서 20년 동안 일관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여성은 집(국가) 안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며, 어린 자녀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고, 특정 나이가 안 된 여성은 가정(국가) 밖(‘가사노동자’로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복잡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대처하기에 미숙한 존재‘라는 인식이다. 여성의 가정성 이데올로기는 네팔의 사회문화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는 여성의 국제이주를 여전히 금기시하는 문화뿐 아니라 귀환한 여성이주자들이 겪는 사회적 낙인과 재통합의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국제이주의 모빌리티 공간 속 네팔여성들

이주여성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해외로 나가는 네팔여성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네팔여성 해외취업자 수는 2007년에서 2014년 사이 74배로 증가하였고(같은 기간 남성은 2.5배 증가), 2015년 기준 걸프국가에서 일하고 있는 네팔여성의 수는 35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Pyakurel, 2018). 여느 송출국가와 마찬가지로 네팔에서 국제이주는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개별 가구의 전략이며 특히 노동이주의 주된 목적은 송금으로 통한 가계수입의 증대와 위험의 최소화이다. 네팔여성의 해외취업의 결정적인 요인 또한 개인의 안위와 이익보다는 가족부양에 대한 책임이다.

2019년 1월 N마을에서 만난 서르밀라씨(37세)는 쿠웨이트(2009~2012년)와 사우디아라비아(2012년~2016년)에서 총 7년 간 가사노동자로 일하다가 네팔로 돌아왔다.4) 쿠웨이트에서 3년 동안은 서르밀라씨 혼자 있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옮기면서 남편을 불러들여 함께 이주생활을 하였다. 남편인 카말(39세)씨가 먼저 귀국하고 2개월 뒤 그녀도 네팔로 돌아왔다. 쿠웨이트에서는 17,000루피(약 17만원)를 받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2,000루피(약 22만원)까지 받았는데 받은 돈은 모두 네팔로 송금했다고 한다. 서르밀라씨는 네팔에서 남편이 시작한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빚을 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노동이주를 결심하였다. 30세 미만 여성의 해외취업이 제한되었던 당시 그녀가 남편과 아들을 네팔에 남겨두고 가족 중 처음 국제이주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서르밀라씨는 쿠웨이트로 처음 떠날 때 민간 고용중개업체를 이용하였지만, 이후 그녀는 남편뿐 아니라 자신의 여동생과 아들의 해외취업을 알아보고 이들의 국제이주를 직접 도왔다. 서르밀라씨는 가게의 폐업과 고용중개업체 수수료 명목으로 발생한 이주비용으로 총 12렉(약 1,200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지만 본인과 가족의 이주노동을 통해 그 빚을 모두 갚았다.

2020년 1월 카트만두 인근 랄릿푸르(Lalitpur)에서 만난 라자니씨(30세)는 2012년 3월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에 들어가서 4년10개월 동안 강원도 횡성 근처의 농장에서 일을 하고 네팔로 돌아온 귀환이주자이다. 네팔 동부에 위치한 타플레중(Taplejung)이 고향인 라자니씨는 카트만두로 이주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고학력 여성이다. 간호사가 되기를 꿈꾸며 카트만두로 왔던 라자니씨는 본인과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하다가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으로의 노동이주를 선택하였다.

“저는 삼남매(본인, 여동생, 남동생) 중 장녀에요. 한국으로 가기 전 고향 집 상황이 어려워져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돈을 벌면 우리 동생들이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저는 네팔에서는 많은 돈을 벌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외국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제가 한국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들은 반대했어요. 네팔에서 여자가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대부분 부모들은 반대해요. 보통 여자들이 외국에서 사는 것은 안전하지 않고 나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한국은 여자가 일하기에 안전하고 돈도 많이 벌수 있다고 한국 다녀온 사람들에게도 직접 들었다고 하면서 제가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라자니씨는 카트만두에 있는 한국어학원에서 3개월 간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합격한 뒤 한국으로 이주를 하였다. 그녀는 하루에 12시간을 농장에서 일하면서 받은 월급 160만원으로 두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현재 살고 있는 랄릿푸르에 땅을 사서 작은 1층집을 지었다. 네팔로 돌아 온지 3년이 되었지만 그녀는 다시 한국으로 이주할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번 돈은 이미 다 쓴지 오래고 현재는 파탄(Patan) 시내에 있는 한국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한국에서 농장에서 일을 했지만 농사를 짓는 기술이나 지식을 얻은 게 아니어서 여기 와서 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시키는 일만 했지 농사를 짓는 방법을 배운 적은 없었어요. 우리 외국인 여자들은 풀 뽑거나 열매를 따거나 이런 단순한 일만 했어요. 그래서 다시 한국을 가고 싶은 거예요. 돈을 더 벌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이제는 내가 돈을 내서라도 네팔에 돌아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서 오고 싶어요.”

라자니씨는 한국에서의 노동이주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자신이 두 동생들을 공부시킨 것과 다른 국가에서 온 다양한 이주자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것이라고 한다. 라자니씨의 여동생은 유럽이나 호주로 국제이주를 가기 위해 2년 동안 무직의 상태로 방황했지만 라자니씨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꾸고 카트만두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은행에서 근무하며 교사로도 일하고 있다. 라자니씨는 외국에서 차별과 무시를 당하느니 돈을 적게 벌더라도 네팔에서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것이 존중받으며 살 수 있다며 여동생의 국제이주를 반대하였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한국에서 만난 남편과 2017년 네팔로 돌아와 결혼하여 살면서 아직 자녀를 갖지 않고 둘 중 한 명이라도 한국으로 다시 재이주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남아있는 여성

한편 네팔여성들은 본인이 국제이주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이주가 현실화되는 전략과 과정에 긴밀하게 개입되어 있었다. 남아있는 아내들은 자신이 가입한 신용조합에서 대출을 받아 남편의 이주비용을 마련하고 남편의 부재중에도 돌봄과 가장의 이중역할을 감당하며 이주비용으로 생긴 빚과 생활비의 부담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즉 가족 구성원의 국제이주는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중요한 생존전략, 즉 가계차원의 공동전략이며 한 사람의 이주를 실현시키기 위해 가족들은 가용 가능한 사회·경제적 자본을 끌어 모으고 이주의 결과로 발생하는 손실과 이익을 같이 떠안는다. 이주여성과 남아있는 여성은 국제이주의 모빌리티 공간 속 각자의 위치에서 이주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신용협동조합은 네팔 농촌지역 국제이주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네팔의 농촌마을에는 마을 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여성만을 위한 마이크로파이낸스인 ‘마힐라 사무하(Mahila Samuha)’가 조직되어 있다. 마힐라 사무하는 마을의 여성이면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네팔 이주자의 92% 이상은 민간중개업체를 이용하여 해외취업을 하며, 중개수수료는 10만 루피부터 수십 만 루피에 이른다. 10만 루피는 네팔의 3년 간 1인당 소비량에 상응하는 금액이다(de Zwager & Sintov, 2017, 신지원 외, 2020: 122에서 재인용). 따라서 국제이주를 계획하는 가정에서는 높은 이주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은행이나 개인 사채업자나 지역 마힐라 사무하에서 소액대출을 받는다.

하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토지나 집과 같은 부동산 담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토지나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개인 사채업차나 마힐라 사무하를 통하여 이주비용을 충당할 수밖에 없다. 마힐라 사무하 내에서의 대출이자는 14~19%인데 마을의 사채업자에게 빌리는 경우 이자가 30%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신지원 외, 2020). 필자가 만난 이주가정의 여성들은 모두 여러 개의 마힐라 사무하에 가입해 있었으며 남편의 국제이주 비용뿐 아니라 송금이 늦어지거나 급하게 돈이 필요할 경우 소액대출을 받아 자녀 교육비, 치료비, 염소나 소 구매하여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아울러 어린 자녀를 둔 이주가정의 아내들은 남편의 국제이주 이후 시댁에서 분가하여 친정 부모님의 집으로 들어가거나 취업이나 교육 여건이 좋은 도시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카트만두 인근 박타푸르(Bhaktapur)에서 만난 여성들 대부분이 남편이 해외로 나가면서 시댁에서 분가하여 농촌에서 카트만두 외곽이나 좋은 학교가 많은 박타푸르로 이주한 가정이었다. 남편의 국제이주와 남아있는 여성들의 국내이주는 네팔사회 내 핵가족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전통적인 가족구조 내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변화를 가져왔다. 박타푸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파산타씨(남편, 인도 원양어선 선원)와 J마을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비말라씨(남편, 말레이시아 이주)와 같은 남아있는 아내들은 이주한 남편의 부재 속에서 송금과 자신이 가입한 마힐라 사무하를 통해 가계의 재정을 관리하고 토지구매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갖거나 자녀의 학교를 결정하는 이주가정 여성들의 변화된 역할을 보여준다.

J마을 비말라씨(오른쪽)의 식료품점.
자료 출처 : 저자 제공

 

네팔여성의 경계넘기

남성의 국제이주는 남아있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젠더관계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며 초국적 모빌리티의 공간을 형성한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나타난 경제적 투자에 있어 이주가정 아내들의 전략적인 의사결정권의 상승은 기존 금전거래나 재정관리에서 여성의 역할을 배제해왔던 네팔의 사회적 관습에 균열을 가하는 현상이다. 국제이주로 부재한 남성의 자리를 메우며 남아있는 여성들은 가정과 지역 공동체 내에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기존 금기시되어왔던 공적영역에서 여성의 역할과 참여가 증가하면서 점차 자율성과 이동성을 확보해간다.

필자가 만난 이주가정의 남아있는 여성들 중에는 기술교육을 받고 자신의 직업능력을 계발하여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사례도 있었다.5) 달리트(Dalit) 카스트인 샤르밀라씨(23세)는 결혼 전까지 장녀가 가사노동을 담당해야 하는 사회적 관습으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사업실패로 3년 전 카타르로 노동이주를 떠나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실패와 이주비용으로 발생한 빚으로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며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재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 재봉기술을 배워 본인의 가게를 직접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귀환이주여성 중에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극복하고 자신의 지역 공동체에서 동료교육자(peer educator)로 활동하는 여성들이 있다.6) 이들은 귀환 후 NGO에서 실시하는 역량강화 교육을 받고 자신의 고향을 돌아가 잠재적 이주여성들에게 안전한 이주를 위한 정보와 이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 등을 교육하며 지역사회의 활동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글은 국제이주의 맥락에서 다양한 위치에 있는 네팔여성들의 실제 경험을 통해 이주여성이나 남아있는 여성에 대한 기존의 단편적인 접근을 넘어 보고자 하였다. 필자가 만난 여성들은 단순히 ‘국제이주의 피해자’ 혹은 가정에 ‘머물러 있는’ 남겨진 여성들만은 아니었다. 네팔여성들은 엄격한 규제와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국경을 넘고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여동생과 딸을 교육시키고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자본을 활용하여 국제이주라는 공동전략에 동참하면서 억압적인 젠더관계에 균열을 만들고 경계를 넘으며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저자소개

신지원(juliashin@jnu.ac.kr)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영국 워릭(Warwick)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전남대학교 사회학과와 디아스포라 대학원 협동과정에서 노동이주, 젠더와 이주, 이주연구방법론 등의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전남대학교 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여성이주노동, 아시아 국가의 국제이주, 국제이주와 발전, 이주의 불법성, 난민정책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이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을 출판하였다.

 


1) 네팔의 해외고용법(Foreign Employment Act)은 1985년 제정되었으며, 1992년과 1998년 법률의 개정이 있었다. 해외고용규칙(Foreign Employment Rules)은 1999년 제정되었다.

2) DOFE는 또한 해외고용과 관련된 문제(고용중개업체의 위반행위, 이주노동 중 발생하는 사고나 사망)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면 이를 조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신지원 외, 2020).

3) Manju Gurung, POULAKHI(네팔 여성이주자 지원 NGO) 대표. 필자와의 인터뷰 내용(2020/1/6)

4) 해당 사례는 신지원 외(2020:118-119)에서 인용

5) 자세한 설명은 신지원 외(2020: 130-132) 참조

6) Manju Gurung, POULAKHI 대표. 필자와의 인터뷰 내용(2020/1/6)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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