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자원으로서의 문학의 가능성 -교토라는 도시와 『겐지 모노가타리』-

이 글은 일본을 대표하는 교토라는 도시, 그리고 교토라는 도시를 주된 서사공간으로 삼아 창작된 『겐지 모노가타리』가 문화자원으로서 어떻게 기능하고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문학, 나아가 문학텍스트가 문화자원으로서 지니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고전 문학텍스트와 그 무대가 되는 지역이 문화자원으로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하여, 그러한 문화자원을 홍보하고 보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지역문학관의 양상과 기능의 일단을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을 통해 살펴보았다. 지역과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문화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지역문학관은 일본 전국 각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지역 살리기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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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서울대학교)

교토로 몰리는 관광객의 발길

2018년 11월 26일 <중앙일보>에는 “여기는 단풍지옥, 못 살겠다, 관광객 몰린 교토 비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요 몇 년간 일본 교토(京都)에 너무나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피해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2019년 여름부터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대폭 줄어든 데다 2020년 2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 19 사태 탓에 당분간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겠지만, 교토가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사태가 진정된 뒤 앞으로 여전히 동서양 관광객의 주요 방문지라는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인 건축물이나 유적, 그리고 도시의 풍경 등이 가치 있는 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으로서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예는 한국의 서울이나 경주 등은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끊임없이 방사능 문제가 제기되고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가 잇따르는 와중에도 일본, 그중에서도 교토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몰리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로는 고도(古都) 교토가 보유하고 있는 서사(敍事)가 있는 문화자원과 그러한 자원을 보호하는 정책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교토로 몰리는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는 연간조사의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정부관광국’(日本政府觀光局)이 발표한 보도자료(2020년 1월 17일자)에 따르면, 2019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조사를 시작한 1964년 이래 최고치인 3,188만 2000명이었다. 2018년보다 2.2% 늘어난 숫자이다.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한 국적을 보면 중국, 한국(558만 4600명), 대만, 홍콩, 미국, 태국 순이다. 아시아가 82.7%로 압도적으로 비중이 높으며 한국 관광객만 2018년의 753만 9000명에서 195만 4400명이 줄었다.

한편 ‘국토교통성 관광청’(國土交通省觀光廳) 자료인 <2018년 방일외국인 소비동향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한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중 상위 5개 지역은 도쿄도(東京都), 오사카부(大阪府), 지바현(千葉県), 교토부(京都府), 후쿠오카현(福岡県) 순이었다. ‘교토시산업관광국’(京都市産業觀光局) 자료인 <2018년 교토 관광종합조사>에 따르면, 2018년 교토시를 방문한 내외국인을 합한 관광객 수는 5275만 명이며 숙박객수는 과거 최고인 1582만 명이었다. 그중 외국인 숙박객수는 450만 3000명으로 과거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2017년보다도 27.6% 증가한 수치이다. 외국인 숙박객수의 상위 10개국을 보면 중국, 대만, 미국, 한국, 호주, 홍콩,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싱가포르 순으로 아시아 국가의 관광객은 59.1%로서 일본 전체에 비하면 교토 쪽이 비아시아 국가의 관광객 수치가 훨씬 높다.

교토 고쇼(京都御所)
자료: 저자 촬영

이처럼 교토가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일본의 ‘문’(文) 문화가 꽃피었던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의 도읍지인 헤이안 경의 풍취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도시문화자산 이외에도 그 문화자산이 허구의 문학텍스트 속에 기록되어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면면히 향유되고 음미되어 생생함을 잃지 않아 온 궤적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학텍스트가 바로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라는 여성작가가 집필한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8년경)이다. 『겐지 모노가타리』가 집필된 11세기 초 헤이안 시대 중기의 일본은 일본문화사에서 일본 나름의 문화가 형성되고 발달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교토라는 도시, 그리고 교토라는 도시를 주된 서사공간(narrative space)으로 삼아 창작된 『겐지 모노가타리』가 문화자원으로서 어떻게 기능하고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문학, 나아가 문학텍스트가 문화자원으로서 지니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긴 생명력을 지닌 문학텍스트와 그 무대가 되는 지역이 문화자원으로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하여, 그러한 문화자원을 홍보하고 보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지역문학관의 양상과 기능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지역과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문화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지역문학관은 일본 전국 각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역 살리기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헤이안 경에서 교토로

교토는 중국 당나라의 장안(長安), 오늘날 시안(西安)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계획도시이다. 일본의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도시이며 19세기 후반 도쿄(東京)로 옮겨가기 전까지 천 년 이상 일본의 도읍지였다. 그런 만큼 기나긴 세월 동안 건축, 정원, 회화, 조각, 공예, 마쓰리(祭) 등의 연중행사, 전통예능 등의 유형·무형의 문화재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도시로 자리 잡았다.

794년 간무 천황(桓武天皇, 재위 781-806)은 오늘날 교토 중심부에 도읍을 새로 세우고 ‘헤이안경’(平安京)이라고 명명(『日本後紀』 卷第3, 794/11/08)하였다.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가 성립될 때까지 400년간 이어진 헤이안 시대의 수도이다. 간무 천황은 784년에 오늘날 나라 시(奈良市)에 걸쳐 있던 헤이조 경(平城京)에서 오늘날 교토 부 무코시(向日市)에 걸쳐 있던 나가오카 경(長岡京)으로 천도를 하였던 터라, 10여 년 만에 다시금 천도한 셈이다. 나가오카 경은 육로를 이용해야 하였던 헤이조 경의 문제를 보완한 수도였다. 근처에 큰 강들이 요도강(淀川)으로 합류해 전국에서 모여드는 물자를 배로 운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도한 그다음 해 나가오카를 도읍으로 밀었던 후지와라 다네쓰구(藤原種継)가 암살되고 기근, 역병, 홍수가 일어났다. 그 밖에 황족들도 병에 걸리는 등 좋지 않은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헤이안 경 주변지도
자료: 미치쓰나의 어머니 지음, 이미숙 주해, 『가게로 일기』, 한길사, 2011에서 스캔.

헤이안 경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동쪽으로는 가모 강(鴨川), 서쪽으로는 가쓰라 강(桂川)이 남쪽으로 흘러내려 가는 지역으로 인적・물적 교류가 편리한 지역이었다. 간무 천황이 이러한 지세를 높이 평가하였다는 것은 『니혼키랴쿠』(日本紀略)에 기록된 “산천이 아름다운데다 사방 지방의 백성들이 모여들기 쉽도록 교통과 수운이 편리한 곳이다”라는 칙어에 드러나 있다. 헤이안 경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하고 풍수를 중시하였다. 수도 북쪽 끝 중앙에 궁궐과 관청들을 배치한 다이다이리(大内裏)를 두었다. 그곳으로부터 스자쿠 대로(朱雀大路)를 중심으로 동쪽은 사쿄(左京), 서쪽은 우쿄(右京)로 나누었다. 남북은 9조(条), 동서는 4방(坊)으로 나누어져 있어 바둑판처럼 정연하게 구획된 도시였다. 성벽은 없었으며 동서로 약 4.2킬로미터, 남북으로 약 4.9킬로미터인 장방형의 도시였다. 우쿄는 습지대가 많아 주택이 잘 들어서지를 않았던 탓에 10세기 이후에는 황폐해졌고, 이후 헤이안 경은 동쪽으로 편중되어 발달되었다. 12세기 말부터 관동 지방을 기반으로 하여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면서 행정부의 기능은 상실하게 되었다. ‘교토’(京都)라는 지명이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것은 헤이안 시대 말기인 인세이키(院政期)였다. ‘교노미야코’(京の都), ‘교’(京)라고도 불리었지만 1867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에는 ‘교토’로 정착되었다.

문화사적으로 헤이안 시대는 가나(仮名) 문자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쓰이고 섭정・관백(攝政・関白) 정치체제 속에서 여성들에 의한 궁중 문화가 발달하면서 일기문학, 수필문학, 모노가타리(物語) 문학 등 가나 여성산문문학이 꽃을 피운 시기였다. 일기문학으로는 미치쓰나의 어머니(道綱母)의 『가게로 일기』(蜻蛉日記, 974년경), 수필문학으로는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 996년경 유포), 모노가타리 문학으로는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의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8년경)가 대표적이며 이들 세 명의 작가는 모두 여성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문학텍스트가 『겐지 모노가타리』이다.

10세기 헤이안 경에서 삶을 영위하였던 등장인물들의 삶의 공간으로 텍스트에 기술되어 있는 『겐지 모노가타리』 내 서사공간, 즉 헤이안 경이라는 도시공간과 우지(宇治) 등 교토 근변의 지역, 그리고 절과 신사 등의 사원은 지금도 천 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문화자원·관광자원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문화자원으로서의 겐지 모노가타리

『겐지 모노가타리』는 정편 41권(또는 첩), 속편 13권, 총 54권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4대에 걸친 천황의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등장인물만 해도 수백 명이나 되는 대하소설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의 흐름, 즉 이야기의 전개를 통합해나가는 인물을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정편의 주인공은 히카루겐지(光源氏), 속편의 주인공은 가오루(薰)라는 남성이다. 교토를 주된 무대로 하여 전개되는 『겐지 모노가타리』 정편은 첫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 헤매는 히카루겐지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 우지(宇治)를 공간적인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는 속편 13권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 사람을 대신해줄 수 있는 여성을 찾아 헤매는 가오루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주인공인 히카루겐지와 여성들의 관계가 작품의 주된 얼개인 만큼 일반적으로 호색적인 남성 주인공의 분방한 여성편력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러나 『겐지 모노가타리』는 신분에 관계없이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내면 풍경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처신해야 하는지를 형상화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한다.

작자 무라사키시키부는 지방관 출신의 중류 귀족인 후지와라 다메토키(藤原爲時)의 딸로 태어났다. 그 시대 다른 여성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이름과 출생, 사망 연도가 명확하지 않지만 970년 이후에는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는 궁중 나인 시절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 다메토키는 당대의 대표적인 문인으로서 집안에 와카의 가인(歌人)으로 이름난 사람들도 많아 그녀는 와카와 한시에 조예가 깊은 집안에서 자라났다.

에도 시대의 『겐지 모노가타리』 필사본. 「마키바시라」(眞木柱) 권.
니헤이 미치아키(仁平道明) 일본 도호쿠 대학(東北大學) 명예교수 소장

『겐지 모노가타리』는 일본 헤이안 시대의 정치, 경제, 생활 등 문화가 집약된 고전 텍스트로서 무사정권 이전의 일본문화의 양상을 고찰할 수 있는 텍스트이자 11세기 이전 동아시아 문화교류 양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대표적 고소설이다. 그런 만큼 『겐지 모노가타리』는 1882년 스에마쓰 겐초(末松謙澄)의 영역이 나온 이래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문학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 3월 현재 확인된 『겐지 모노가타리』의 외국어 번역은 24개 언어에 이르며 번역 진행 중인 것은 4개 언어, 그리고 미확인이지만 번역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6개 언어라고 한다.

문화 콘텐츠학의 주요 분석개념인 ‘하나의 원천, 다양한 변용’(OSMU, One Source Multi Use)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원 콘텐츠는 여러 분야로 가공되고 수용되어 고전 텍스트의 재창조와 변용으로 이어졌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한 대목은 서도의 글씨로 쓰여 감상되었고 그림으로 그려져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졌다. 이를 ‘겐지에’(源氏繪)라고 하며, 가장 오래된 겐지에는 12세기 초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국보 『겐지 모노가타리 에마키』(源氏物語繪卷)이다. ‘에마키’란 작품 세계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그림 두루마리’라는 뜻이다. 이 밖에 『겐지 모노가타리』는 뒤이어 나오는 후기 모노가타리에서 여성 등장인물을 형상화하는 데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중세의 전통예능인 노(能)의 대본인 요쿄쿠(謠曲)와 근세의 대표적 작가인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년)의 작품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 댄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향유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삶을 패턴화하여 점을 치는 ‘겐지 모노가타리 점’까지 등장하였다.

이렇듯 『겐지 모노가타리』는 11세기 초에 성립된 이래 천 년의 시간을 거치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당대 문화에 차용되고 접목되며 향유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 속에 재현된 헤이안 경이라는 서사공간의 실재를 찾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교토라는 도시는 문화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사공간 교토와 우지의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

『겐지 모노가타리』의 시대 배경은 집필 시기인 11세기 초보다는 이른 10세기 초중반으로 추정된다. 히카루겐지를 비롯하여 그와 관계를 맺으며 등장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정편의 서사공간은 암묵적으로 헤이안 경이 주된 무대로 설정되어 있다고 간주된다. 작품 내에서 ‘헤이안 경’이라는 표현은 명확히 기술되어 있지 않고 96회 기술된 ‘경’(京)과 45회 기술된 ‘도’(都)로 표현될 뿐이다.

헤이안 경의 범위는 엄밀하게 남북으로는 이치조 대로(一条大路)에서 구조 대로(九条大路)까지, 동서로는 히가시쿄고쿠 대로(東京極大路)에서 니시쿄고쿠 대로(西京極大路)까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귀족과 왕족이 교토 부근의 기내(畿內)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한 태정관부(太政官符) 895년 12월 3일조의 기술(古橋信孝, 1998: 49)을 보면, 헤이안 경의 교외 지역까지도 귀족들의 생활권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헤이안 경’의 범위를 교외 지역까지 포함한다.

『겐지 모노가타리』의 시간 배경이 되고 있는 10세기 중반경의 헤이안 경은 천도한 지 200년 가까이 지난 탓에 처음과 도시의 양상은 많이 변하였다. 이 같은 현실공간으로서의 헤이안 경의 양상은 982년경 요시시게 야스타네(慶滋保胤)가 저술한 『지테이키』(池亭記)의 기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테이’란 야스타네가 나이 쉰에 마련한 저택명이다. 『지테이키』에서는 10세기 후반 헤이안 경의 변용을 서쪽 지역인 우경의 쇠퇴, 동쪽 지역인 좌경의 시조(四条) 이북 과밀화, 좌경의 동·북방으로의 시가지 확대, 좌경 내 지가(地價)의 남북 간 격차라는 네 가지 점으로 정리(藤田勝也, 2005: 20)하고 있다. 발굴조사 등에 의해 우경 쪽은 습지가 많아 거주 지역에는 맞지 않고 장원 등이 많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겐지 모노가타리』에 묘사된 헤이안 경의 모습은 야스타네가 『지테이키』에 기술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에도 시대의 겐지에(源氏繪). 「유가오」(夕顔) 권의 한 장면. 이 집은 헤이안 경의 고조(五条)에 위치한다.
니헤이 미치아키(仁平道明) 일본 도호쿠 대학(東北大學) 명예교수 소장

『겐지 모노가타리』에 그려진 헤이안 경은 히카루겐지의 이동 경로, 히카루겐지의 행동반경에 따라 형상화되어 있다. 히카루겐지는 궁중의 자기 처소인 숙경사(淑景舍), 궁중 밖 사저인 니조노인(二条院), 정처 아오이노우에(葵の上)의 집인 산조도노(三条殿), 그리고 사계절 저택인 로쿠조노인(六条院)을 축으로 하여, 실제공간인 헤이안 경의 공간인 니조, 산조, 로쿠조라는 큰길을 활보하며 여성과 관계를 맺고 정치적인 활동을 해나갔다. 『겐지 모노가타리』에는 헤이안 경의 실제 거리 이름 중 시조(四条)와 시치조(七条)는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이치조(一条)가 14회, 니조(二条)가 60회, 산조(三条)가 47회, 고조(五条)가 4회, 로쿠조(六条)가 86회, 하치조(八条)가 1회, 구조(九条)가 1회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거리는 현재의 교토시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북으로 교토 고쇼(京都御所)로부터 남쪽 교토역을 지나 구조에 있는 도지(東寺)에 이르기까지 헤이안 경의 거리 이름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교토를 수호하기 위해 796년 헤이안 경 관문인 라조몬(羅城門) 동쪽의 좌경 쪽에 세워진 도지는 서쪽의 우경 쪽에 세워진 사이지(西寺)와 쌍을 이루어 건립되었지만, 사이지는 우경이 쇠퇴함에 따라 없어졌다.

『겐지 모노가타리』를 통해 본 헤이안 경과 그 주변지역에서 주목할 곳은 절과 신사라는 종교공간이다. 종교공간은 헤이안 시대 문학에 중요한 서사공간으로 등장한다. 헤이안 시대에 절과 신사에 참배하러 간다는 것은 집을 떠나 바깥세상과 접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에, 참배여행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여행의 의미도 띠고 있었다. 헤이안 시대 사람들에게 참배여행의 의미는 각별하였다. 그들은 일상생활의 침체와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배여행을 떠났고, 성스러운 공간 속에서 신과 부처에게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갈등 속을 잠시나마 떠나 있음으로써 객관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세데라(長谷寺) 본당
자료: 저자 촬영

참배로 손에 꼽히던 절은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이시야마데라(石山寺), 하세데라(長谷寺)였다. 하세데라는 하쓰세(初瀬)라고도 한다. 이 세 절은 관음신앙의 영험으로 유명하였던 영지(霊地)였다. 헤이안 시대 중엽부터 중세를 거치면서 일본에서 융성하게 된 관음신앙은 현세이익을 기원하는 신앙으로서 특히 여성들이 열성적으로 믿었다. 그중 시가 현(滋賀県) 비와호(琵琶湖) 주변에 있는 이시야마데라와 나라 현(奈良県) 쓰바이치(椿市)에 있는 하세데라는 교토에서 거리가 먼 탓에 이들 절로 참배를 떠나는 것은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여행의 의미 또한 띠고 있었다.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이들 절은 등장인물들이 각자 처한 고뇌를 부처에게 토로하며 기도하는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오늘날에도 각각의 공간 속에서 『겐지 모노가타리』는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환기되고 있다. 특히 교토에서 한 시간여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이시야마데라에는 법당 옆에 ‘겐지 방’(源氏の間)이라는 공간이 있다. 무라사키시키부가 이곳에서 『겐지 모노가타리』를 집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이곳은 『겐지 모노가타리』의 탄생지라는 강력한 서사를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신사인 이세 신궁(伊勢神宮)과 가모 신사(賀茂神社)는 여성 등장인물들의 삶의 전개 속에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는 종교공간이다. 헤이안 시대에 천황가의 조상신을 모신 이세 신궁과 수도 교토를 수호하는 가모 신사의 제사는 미혼의 황녀를 재궁(齋宮)이나 재원(齋院)으로 임명하여 주관하게 하였다. 재궁과 재원을 합쳐 ‘재왕’(齋王)이라고 하며 천황가의 미혼인 황녀 중에서 점을 쳐 뽑았다.

가모 신사는 음력 4월 중순 유일(酉日)에 열리는 마쓰리로 유명하였다. 마쓰리 당일 관(冠)이나 우차(牛車), 관람석에 늘어뜨린 발 등에 족두리풀(二葉葵)을 장식하였다고 하여 아오이 마쓰리로도 불리었다. 『겐지 모노가타리』 「아오이」(葵) 권에는 가모 신사의 새 재원이 아오이 마쓰리가 열리기 전에 목욕재계 의식을 치르는 날, 히카루겐지의 정처인 아오이노우에(葵の上)와 히카루겐지와 내연관계인 로쿠조미야스도코로(六条御息所)가 구경하러 나갔다가 좋은 자리에 서로 수레를 대려다가 하인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기술되어 있다. 이 일에 충격을 받은 로쿠조미야스도코로는 히카루겐지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고 이세 신궁에 봉사하기 위해 재궁으로 내려가는 여식을 따라 이세로 떠나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가모 신사와 이세 신궁은 천황가의 핏줄을 이어받은 여성들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오늘날 아오이 마쓰리는 5월 15일 헤이안 시대의 마쓰리 행렬을 재현하며 교토를 대표하는 행위예술로 자리 잡고 있다.

『겐지 이야기』 수레싸움 그림. 이 싸움은 아오이 마쓰리의 사전행사 때 헤이안 경의 이치조 대로(一条大路)에서 벌어졌다. 에도 시대 그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소장.
자료: 『겐지 이야기』(주간 아사히 대백과 세계의 문학 24, 아사히 신문사, 1999)에서 스캔

『겐지 모노가타리』에 기술된 헤이안 경을 둘러싼 또 다른 주요 서사공간으로는 교토 북쪽 지역 산인 기타야마(北山)와 일본 천태종(天台宗) 본산인 히에이산(比叡山), 그리고 우지강(宇治川)을 들 수 있다. 이 중 우지 강은 『겐지 모노가타리』 속편의 여성 등장인물인 우키후네(浮舟)가 투신자살을 기도한 곳이다. 현재 강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우지 시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은 교토라는 지역 속에 움튼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문화자원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지 시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은 1998년에 개관한 공립 박물관이다. 『겐지 모노가타리』에 관한 문헌, 사료, 소설 등의 콘텐츠를 소장하고 작품과 헤이안 시대를 공부하는 정기적인 강좌를 여는 등 문학관의 기능도 지니고 있다. 모형과 영상으로 작품세계를 알기 쉽게 소개하는 한편 테마별로 나눈 전시구역에서는 당시의 모습과 문화를 전달하면서 『겐지 모노가타리』의 매력을 다양한 영상을 통해 소개한다.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하나의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유일한 자료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지시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은 헤이안 경=교토라는 지역과 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을 문화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한다는 점에서 지역문학관의 성격 또한 지니고 있으며, 일본 전국 각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역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우지 시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 입구
자료: 저자 촬영

 

일본의 지역문학관과 문화정책

한국에서 2000년 이후 지역문학관 건립이 활발해진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의 전면적인 실시와 맞물려 있다. “작품의 탄생 배경이자 작중 무대인 문학공간 자체가 또한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는 자기 지역을 상징하는 문화예술인을 찾아내 “지역의 브랜드”로 삼아 문학관이나 기념관을 지역의 거점으로 삼기 때문이다(박덕규, 2006: 4-5). 지역문학관의 속성 자체가 작자의 고향이든 생활기반이든 아니면 문학텍스트 내 작품공간이든 지역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으며, “지역문학, 더 나아가 지역문화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문재원, 2008: 2). 1991년 개관된 박화성 문학관(2007년 목포문학관)이 한국 내 첫 문학관이며, 2004년 8월에 18개 문학관을 소속 기관으로 하여 한국문학관협회를 설립하였다.

지방자치제가 1947년이라는 이른 시기부터 실시된 일본이니만큼 지역문학관의 등장과 확산은 한국보다 앞서지만, 일본 지역문학관의 건립 사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본에서 ‘문학관’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67년 4월 동경에 개관한 일본근대문학관이다(그전에도 ‘~기념관’이라는 명칭으로 작가 개인 기념관은 존재하였다. 예를 들어 1958년 개관된 ‘도손(藤村) 기념관’ 등). 그 뒤 1995년 6월 49개 문학관을 소속 기관으로 하여 전국문학관협의회가 발족될 정도로 1990년대 이후 ‘문학관’은 일반명사로 불릴 만큼 전국 각지에 건립되었다. “지역에 있어서 ‘문학’이나 ‘문학자’가 지방의 고유성의 근거가 됨과 동시에 지방 진흥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지방의 문화자원으로서의 ‘문학’ 작품 및 ‘문학자’가 재발견”되어 지역문학관 건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山岸郁子, 2012: 27).

일본의 문학관을 8개 지방별, 47 도도부현(都道府県)별로 살펴보면 2017년 4월 현재 764관이다(http://literarymuseum.net/lm-list.html(2019.02.06 검색).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일본 전국 문학관 일람

8개 지방 47 도도부현(都道府県)
홋카이도 지방
(45)
홋카이도(45관)
도호쿠 지방
(85)
아오모리 현(11관) 이와테 현(23관) 미야기 현(10관)
아키타 현(10관) 야마가타 현(18관) 후쿠시마 현(13관)
간토 지방
(191)
이바라기 현(15관) 도치기 현(10관) 군마 현(15관)
사이타마 현(12관) 지바 현(12관) 가나가와 현(36관)
도쿄 도(91관)
주부 지방
(169)
니가타 현(20관) 도야마 현(9관) 이시카와 현(19관)
후쿠이 현(12관) 야마나시 현(15관) 나가노 현(42관)
기후 현(13관) 시즈오카 현(23관) 아이치 현(16관)
긴키 지방
(100)
미에 현(22관) 시가 현(7관) 교토 부(11관)
오사카 부(18관) 효고 현(27관) 나라 현(8관)
와카야마 현(7관)
주코쿠 지방
(68)
돗토리 현(12관) 시마네 현(8관) 오카야마 현(16관)
히로시마 현(16관) 야마구치 현(16관)
시코쿠 지방
(35)
도쿠시마 현(4관) 가가와 현(6관) 에히메 현(12관)
고치 현(13관)
규슈·오키나와 지방
(70)
후쿠오카 현(22관) 사가 현(3관) 나가사키 현(10관)
구마모토 현(13관) 오이타 현(11관) 미야자키 현(2관)
가고시마 현(8관) 오키나와 현(1관)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8개 지방 47 도도부현에는 어디나 문학관이 존재한다. 이처럼 일본 전국 모든 지방 모든 행정구역에 문학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문학관과 지역의 밀접한 관계를 방증한다. 지역에서 문학관, 기념관 등의 설치 움직임이 있을 때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운영이 요청된다. 문학관 건립에는 자금력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기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역문학관 등의 활동은 지역문화를 부각시키고 지역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기획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문학관에 관여하는 경우는 문학관을 지역문화의 거점으로서 지역의 브랜드, 지역의 랜드 마크로 삼아 지역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체 문학관의 존재 의의에는 문학을 비롯한 지역문화를 표상하는 기능, 주민에 대한 사회교육, 나아가 외부를 향한 관광이나 문화 이미지 고양”(天雲成津子, 2014: 20)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문학관이 발달한 프랑스에서 문학관들이 “지역관광거점, 보조교육기관, 근접문화공간, 연구지원공간, 문학박물관”(윤학로・김점석, 2005: 420)이라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지역문학관이 지역문화의 표상이자 그 거점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역에 건립된 문학관 중에는 장르별, 시대별 등 지역과 밀착되지 않고 전국을 아우르는 콘셉트(concept)를 내세우는 곳도 많지만, 대부분의 지역문학관은 지역성을 내세우기 용이한 지역과 연고가 있는 작가나 작품을 내세우게 된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분포된 지역문학관은 일본의 지역문화정책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활발히 건립되었다. 일본에서 지역문화정책이 비약적으로 진전된 것은 1990년대로, 1980년대에 표방된 ‘문화의 시대’ ‘지방의 시대’라는 흐름을 이어받아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김동명, 2007: 290). 1968년 문화청이 설치되면서 “중앙정부에 의한 문화정책은 지역문화정책주의, 지방분권주의, 지방자치주의 등을 충실하게 시행하기 위하여 추진”되었으며,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문화정책은 지방자치법이 제정되고 지역문화진흥과 지역 만들기를 활성화하는 방향에서 추진”되는 한편, “1990년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창설되면서 일본의 문화정책이 활성화되었고, 특히 2001년 2월 문화예술관계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문화예술진흥기본법’이 공포되어 시행되었고, 그와 동시에 지역문화관련 행정방향을 규정하는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기본적 방침’이 구체화”되면서 지역문화정책이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구견서, 2014: 382). 1990년 이후 지역문학관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은 이러한 지역문화정책과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교토라는 역사적인 도시의 문화자원이 관리되고 보호되는 데는 <교토시 문화관광자원 보호재단>(京都市文化観光資源保護財団)과 같은 공익법인재단의 역할 또한 간과할 수 없다. 1969년 교토시의 출연금으로 설립된 이 재단은 교토의 문화자원·관광자원이 <문화재보호법>, <교토시 문화재 보호조례>, <고도(古都) 보존법> 등의 법으로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지만, 교토에는 너무나 많은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탓에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교토 문화자원·관광자원의 보호와 활용, 보급 계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소개

이미숙(mslee82@snu.ac.kr)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이다. 일본 도호쿠 대학(東北大學) 문학연구과에서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대한 연구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우교수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10-11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고전여성문학이 주된 연구 분야이며 전근대일본의 문화를 폭넓게 연구한다. 현재 한국연구재단 명저번역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겐지 모노가타리 3・4』의 번역・주해에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源氏物語硏究─女物語の方法と主題』(新典社, 2009, 日本), 『나는 뭐란 말인가: <가게로 일기>의 세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가게로 일기』(한길사, 2011), 『겐지 모노가타리 1·2』(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4·2017)가 있다. 『겐지 모노가타리』에 대한 개설적인 내용과 문화사적 의미는 <네이버 열린연단>에서 필자가 강연한 [<겐지 모노가타리>와 일본문학의 원형](2017.10.27./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32115&rid=2936&lectureType=paradigm)에 상세하다.

 


참고문헌

  • 古橋信孝. 1998. 『平安京の都市生活と郊外』. 東京: 吉川弘文館.
  • 藤田勝也. 2005. 『古代社会の崩壊』. 東京: 東京大学出版会.
  • 윤학로・김점석. 2005. “프랑스 문학관의 운영현황과 전망.” 한국프랑스학논집 51, 420.
  • 박덕규. 2006. “공간의 문학관 조성 방안과 문화산업화 전략.” 한국문예창작 5-2, 4-5.
  • 김동명. 2007. “일본의 지역문화정책: 도야마켄(富山県)의 문화정책의 사례를 중심으로.” 일본연구논총 25, 290.
  • 문재원. 2008. “문학관에서 지역을 읽다.” 로컬리티의 인문학 3, 2.
  • 山岸郁子. 2012. “<資源>としての文学.” 産業経営プロジェクト報告書 35, 27.
  • 天雲成津子. 2014. “文学館にみる「地方」.” 情報化社会・メディア研究 10, 20.
  • 구견서. 2014. “일본에 있어서 지역문화정책의 기본방향.” 일본학보 98, 382.
  • 서승욱. 2018. ““여기는 단풍지옥, 못 살겠다” 관광객 몰린 교토 비명.” 중앙일보(11월26일)
  • 日本政府觀光局. 2020. “보도자료(2020년 1월 17일자)”
    https://www.jnto.go.jp/jpn/news/press_releases/index.html(검색일: 2020.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