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시대 중국 공산당의 집단영도체제는 어디로 가고 있나?

최근 시진핑의 권력 강화에 따른 중국 공산당 집단영도체제의 변화에 대해서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집단영도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운용방식의 변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1인영도체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타당한가? 이 연구는 시진핑 시기에 중국 공산당의 집단영도체제를 유지시켜주는 제도와 규범의 변화와 지속을 분석한 결과 후진타오 시기의 “동등한" 집단영도체제가 시진핑 집권 후 ”1인 중심“ 집단영도체제를 거쳐 최근 “1인 우위” 집단영도체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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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최근 중국 공산당 영도체제에 대한 상반된 시각

작년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를 전후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당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을 <당헌>에 삽입하고, 차기 지도자 사전 결정 규범을 파기한 후 정치국 회의에서 시진핑에게 공식적으로 ‘영수(領袖)’의 지위를 부여하고, 매년 시진핑 총서기에게 모든 상무위원과 정치국원이 의무적으로 서면보고를 하도록 결정하였다. 그리고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에서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폐지하고, 또 국가부주석에 시진핑의 오른팔인 왕치산(王岐山)을 임명하였다. 이런 현상을 두고 국내외 중국전문가들은 크게 2가지 상반된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일부에서는 집단영도체제가 해체되고 시진핑 1인영도체제가 들어서고 있다고 주장한다.[1] 이와 대조적으로 다른 일부에서는 집단영도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운용상의 변화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2] 과연 누구의 주장이 타당한가?

사진 1. 중국 공산당 제 19차 전국대표대회 개회 당시 인민대회당 모습
출처: 신화통신의 당대회 보도 동영상을 DiverseAsia가 캡쳐. 동영상은 Youtube 제공.
(https://www.youtube.com/watch?v=2eteqOnNSPE)

중국 공산당 집단영도체제의 유지냐, 해체냐 하는 문제는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 동안 중국 관변학자들은 집단영도체제를 미국 대통령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라고 주장하였다.[3] 미국은 1명의 대통령에게 너무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 1인의 능력이 부족한 경우 매우 위험한데 반해 중국의 집단영도체제는 다수 대통령제로서 권력의 분산과 책임, 효율성 등에서 뛰어난 제도라고 주장했다. 또 국내외 중국전문가들은 마오쩌둥毛澤東의 1인영도체제가 낳은 어마어마한 폐해, 그리고 과거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 1당독재가 1인독재로 자주 변질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중국의 집단영도체제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장쩌민(江澤民)이후 지난 20여년간 집단영도체제가 제도적으로 공고화되었고, 또 중국의 사회경제적 개방 개혁이 심화 확대될수록 엘리트와 일반 대중의 민주화, 자유화 요구가 증대할 것이므로 집단영도체제가 이러한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는데 용이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시진핑 집권 이후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는 권력 집중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집단영도체제의 핵심 요소

중국 공산당은 집단영도체제를 “특정한 지도자가 자의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개별 지도자 간에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체제”로 정의하고, “집단결정”과 “개인책임 분담(集團領導與個人分公負責相結合)”을 양대 원칙으로 하고 있다. 즉 정치엘리트간의 권력 분산과 집단적인 정책 결정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집단적인 정책결정의 원칙과 제도가 수립되고 실제로 운영되어야 한다. 이는 공산당 공식 조직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고, 또 각 조직 구성원이 동등한 발언권과 표결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1인 영도체제의 경우 당의 공식기구를 거치지 않고 지도자가 혼자서 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있으나 집단영도체제의 경우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최고의 정치적 권위를 가진 당의 최고결정기구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이 기구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할 수 없다. 예컨대 정책의 성격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회, 정치국, 중앙위원회,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되어 결정되어야 한다. 과거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鄧小平) 시기에 조직이나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결정했던 것을 집단영도체제는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그런데 덩샤오핑 은퇴 이후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맡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은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후안강(胡鞍鋼)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집단적으로 당의 정책을 결정하는 제도를 “중국 특유의 집단대통령제”라고 표현하고, 이 제도가 5가지 장점, 즉 상무위 전체가 집단으로 학습하고, 집단으로 연구하고, 집단으로 결정하고, 집단으로 업무를 나눠 협력하며, 집단으로 세대교체를 이루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제보다 더 민주적이고, 더 협조적이며,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4]

집단영도체제의 또 하나의 원칙은 정치엘리트간의 권력 분산으로 흔히 분공제(分工制)라고 한다. 각 지도자에게는 고유한 권한과 책임이 있고, 각자 일정한 자율권을 인정받되 담당 분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분업책임제도인데, 이 제도의 핵심은 총서기도 다른 상무위원의 고유 업무 분야에 대해 관여가 불가능하다. 예컨대 후진타오(胡錦濤)시기에 9명의 상무위원들은 경제, 법정-공안, 기율, 공산당, 선전-이데올로기, 정협(전국정치협상회의), 전국인대, 국무원 등 각각 고유 업무를 가지고 있어서 ‘구룡치수(九龍治水)’라는 표현이 나왔다.

 

집단영도체제의 역사

중국 공산당의 집단영도체제의 역사 자체는 매우 오래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에도 집단영도체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집단지도 원칙을 강조했다. 예컨대 1927년 8월 중국 공산당은 당의 운영과 관련하여 “….. 상무위원회의 집단영도여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마오쩌둥 시대에는 1인 영도체제가 지속되어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에 나타난 마오쩌둥 개인숭배는 그 절정이었다.

그림 1. 독단적 1인 영도체제

개혁기에 들어서서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집단영도 원칙을 다시 수립했다. 1980년 공산당 11기 중앙위 5차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당내 정치생활 준칙>은 “집단영도와 개인분담의 결합”이라는 원칙을 도입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째, 모든 중대 사항은 당 위원회의 집단토론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둘째, 결정할 때에는 다수결 원칙(소수는 다수에 복종)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셋째, 집단영도는 개인분담과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이 원칙은 1982년 공산당 12차 당대회에서 <공산당 당헌>에 포함되었다. 그 후 이 원칙에 따라 공산당 개혁이 추진되었는 바, 당 대회와 중앙위원회의 정기적인 개최,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운영 규칙 제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덩샤오핑 시대(1978-1993년)에는 집단영도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단영도체제보다 원로정치가 우선이었다. 덩샤오핑, 천윈(陳雲), 양상쿤(楊尙昆), 보이보(薄一波)를 비롯한 원로가 실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들은 이들의 결정을 추인하였다. 1989년 텐안먼(天安門)사건이 발생하자 덩샤오핑과 원로들이 학생 시위의 동란(動亂) 규정, 계엄령 선포와 군 동원, 자오쯔양(趙紫陽)의 실각과 장쩌민의 발탁 등을 결정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림 2. 우월적 1인 영도체제

1992년 공산당 14차 당대회부터 집단영도체제가 제대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초에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들이 사망하거나 병으로 은퇴한 후 장쩌민을 비롯한 개혁세대가 지도부를 구성하였다. 이때부터 당 총서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위원장, 국무원 총리, 전국정협 주석 등 당-정-군의 책임자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하는 관례가 형성되었다. 이로써 실제 권력기관의 책임자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주요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또 각종 기관들이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것은 큰 변화였다. 왜냐하면 덩샤오핑 시기에는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거의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주요 문서를 먼저 원로들에게 돌려 비준을 받은 다음 정치국과 상무위원회가 추인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결정되었다.[5]

그 결과 1990년대 중반부터 복수의 정치지도자가 권력을 분점하였다. 처음에 장쩌민-차오스(喬石) 전국인대 위원장-리펑(李鵬) 총리의 3원체제가 등장하였으나 1997년 15차 당대회에서 차오스가 은퇴하고 나서 장쩌민 2기(1998-2002년)에는 장쩌민-리펑 2원체제가 등장하였다. 그리고 후진타오 시기(2002-2012년) 초기에는 상하이방-태자당-공청단파 간의 권력분점체제였으나 2004년 장쩌민의 군사위 주석 퇴임 이후 상하이방이 약화되고 후진타오(공청단)-원자바오(태자당)간의 2원체제가 등장하였다. 그런데 2012년 시진핑 집권 후 태자당-공청단파간의 권력분점체제에서 점차 시진핑 파가 득세하는 가운데 공청단파를 대표하는 리커창(李克强)총리의 리더십이 크게 약화되는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림 3. 동등한 집단영도체제
최근 집단영도체제의 규범과 제도

중국 공산당은 개혁기에 접어들어 집단영도체제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규범과 제도를 발전시켜 나왔다. 그런데 당헌과 헌법에 명시된 공식제도보다 규범이나 관례로 정착된 것이 훨씬 많다. 당헌에는 당의 공식 기구를 통해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는 집단결정 제도, 그리고 각 지도자는 고유한 권한과 책임을 자율적으로 행사한다는 개인 책임 분담제도만이 나와 있다. 한편 헌법에 국가 주석직의 경우 2회만 연임이 가능하도록 명시되어 있었으나 올해 초에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 조항을 삭제해 버렸다. 당 총서기를 비롯하여 모든 직책에 연임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가 주석직의 경우에도 다른 직과 통일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 동안 지도자들이 2회 연임이후에는 퇴임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이 조항의 삭제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큰 관심사다.

그 동안 중국 공산당 집단영도체제를 지탱시켜 온 규범이 많지만 대략 다음 4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비롯한 각 기관의 의사 결정 방식으로 구성원의 합의제 원칙이다. 그런데 합의가 불가능한 경우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투표권을 가지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다. 둘째, 연령제와 임기제로서 “7상8하(七上八下)” 원칙과 2회만 재임하는 것이다. “7상 8하”의 원칙은 정치국, 정치국 상무위원회, 중앙군사위, 중앙기율위에서 68세 이상자는 퇴임하는 제도다. 작년 10월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오른팔이자, 중앙기율위를 맡아 부패 척결에 앞장선 왕치산의 퇴임여부가 주목을 끌었다. 그가 작년에 68세였는데, 시진핑의 신임이 워낙 두텁고, 부패 척결을 계속하기 위해 유임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그러나 68세 퇴임 규범에 따라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퇴임하였으나 올해 전국인민대회에서 국가 부주석으로 복귀하였다. 한편 임기제에 따라 그 동안 당 총서기를 비롯하여 주요 지도자들이 2회만 재임하였다. 장쩌민이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당 총서기직과 국가 주석직을 후진타오에게 물려주고 중앙 군사위 주석직을 후진타오에게 물려주지 않고 3회 연임을 했으나 당 내외의 여론이 나빠지자 결국 2004년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셋째, 권력 기구의 구성 규범이 있는바, 5대 권력 기구(당, 국무원, 전국인대, 전국정협, 중앙기율위 등)의 책임자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하고, 또 정치국은 당정기구의 고른 안배와 함께 지역 안배의 원칙이 있다. 아울러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정치국은 특정 정치세력 혹은 파벌이 독점할 수 없다는 세력 균형의 규범이 있다. 마지막으로 차기 지도자 사전 결정 규범으로 흔히 “격대지정隔代指定”이라고 한다. 공산당의 차기 지도자, 즉 총서기 후보는 권력을 승계하기 최소한 5년 전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어 경험을 쌓은 후 권력을 물려받는다. 후진타오는 2002년에 상무위원이 되어 2007년에 총서기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시진핑은 2007년에 상무위원이 되어 2012년에 총서기가 되었다. 그런데 작년 당대회에서는 이 규범이 지켜지지 않았다, 당대회 전에 광동성 당서기 후춘화(胡春華)와 충칭시 당서기 천민얼(陳敏爾)이 상무위원에 선출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작년 초에 차세대 지도자였던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당서기가 낙마하였다. 그 동안 차기 지도자 사전 선출 규범과 함께 연령제, 임기제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권력 승계를 가능하게 했는데, 향후 시진핑 2기이후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 또는 시진핑이 계속 집권할 것인가가 최대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시진핑 시대 집단영도체제의 지속과 변화 양상

<표 1> 시진핑 시대 집단영도체제의 지속과 변화 양상

영역 핵심 요소 변화 여부 주요 양상
공식 제도

(당헌, 헌법)

집단 결정 지속 정치국 상무위, 정치국, 중앙위, 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정협 등의 기능 유지
개인 책임 분담 변화 시진핑의 소조치국, 정치국원의 보고 의무화 등으로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동등권과 자율권 약화
국가 주석직 임기 제한 폐지 2018년 3월 전인대에서 헌법조항 개정
비공식 제도

(규범 내지 관례)

합의제 의사결정 방식 변화 형식적 합의제 유지
연령제 지속 “7상 8하”(68세이상은 퇴임)의 원칙 준수
임기제 변화 국가 주석직 임기제 폐지로 다른 직책의 임기제 불확실
권력 기구 구성 규범 지속 상무위에 5대 권력기구 수장 충원/정치국에 당정기구와 지역 안배 지속
세력균형 규범 지속 각 파벌의 지분 인정
차기 지도자 사전 결정 규범 폐지 50대 지도자를 상무위에 충원하는 관례 무시

<표1>에서 보는 것처럼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공산당의 집단영도체제를 지탱시켜 온 9가지 요소 중에서 4가지는 지속되고 있으나 5가지는 폐지되거나 변화하고 있다. 집단결정 방식, 연령제, 권력기구 구성 규범, 세력 균형 규범은 지켜지고 있으나 차기 지도자 사전 결정 규범, 분공제, 국가주석직을 비롯한 고위직 임기제, 합의제 원칙 등이 폐지되거나 흔들리고 있다. 이 외에도 집단영도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요 결정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작년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을 당의 지도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시 주석의 이념적 권위가 매우 높아졌다. 시진핑 사상은 모택동 사상이나 등소평 이론에 버금갈 정도로 매우 광범위하고 중국의 정치경제 현실을 새롭게 규정한 후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과 함께 구체적인 목표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시진핑 사상의 출발은 중국이 신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시대에 중국이 독립하고(站起來), 덩샤오핑시대에 부유해졌는데(富起來), 이제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여(强起來)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도모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새로운 신시대에 진입함에 따라 중국이 직면한 ‘주요 모순’도 변화했다. 과거에는 생산력 향상이었으나 이제 주요 모순이 “인민의 증가하는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등하고 불평등한 발전간의 모순”으로 규정했다. 중국이 신시대에 진입하고 주요 모순이 변함에 따라 공산당은 새로운 역사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이다. 이를 위해 앞으로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인 2021년, 그리고 중공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맞추어 2020년까지 전면적인 소강사회 (小康社會) 완성,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완성, 2050년 사회주의 강국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시진핑사상이 당의 이념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시진핑은 자신이 계속 집권하거나 후견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19차 당대회 직후에 개최된 정치국회의에서 집단영도체제의 원칙을 흔드는 2가지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상무위원과 모든 정치국원이 시진핑 총서기에게 매년 서면보고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시진핑에게 ‘영수(領袖)’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여하였다. 전자의 경우 시진핑이 이제 다른 상무위원과 동등한 지위에서 조정자(coordinator)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무위원을 총괄 지휘하는 감독자(director) 역할로 격상된 것이다. 그리고 영수 호칭은 마오쩌둥과 화궈펑 시기에 사용한 것으로 개혁기에는 사용하는 것을 터부시했으나 시진핑이 새로운 영수로 등장한 것이다. 과거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시기에 이들은 “당의 핵심 내지 중심”이라고 불렀다.

그림 4. 1인 우위 집단영도체제

이렇게 시진핑이 권력을 크게 강화하는 배경에는 당연히 그의 강한 권력욕이 근본적으로 작용하지만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인이 그의 권력욕을 실현시켜 주고 있다. 첫째, 시진핑 주석 취임 후 권력의 집중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시 주석이 권력을 강화하는데 용이하다. 후진타오시기에 권력이 지나치게 분산되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주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또 총서기가 다른 상무위원의 업무에 일체 간섭할 수 없어서 다른 상무위원의 폐해를 시정할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엘리트들이 시 주석의 권력집중에 동의하였다. 둘째, 시 주석의 대규모 반부패운동이 그의 권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 주석의 반부패운동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규모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상무위원급(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군사위 부주석 2명(쉬차이허우徐才厚, 귀보숭郭伯雄), 링지화令計劃 통전부장 등이 처벌되었다. 또 지난 5년동안 장차관급 440명이 부패 혐의로 낙마하였는 바, 약3000명의 전체 장차관급 중에서 15%정도가 물러났다. 그 결과 시 주석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지가 높아졌고, 반대파나 원로들의 견제를 차단하였으며, 또 부패로 물러난 자리에 자신의 추종자를 임명함으로써 시진핑의 권력기반이 매우 튼튼해졌다. 특히 작년 당대회에서 국가감찰위원회를 신설하여 당원 외에 국가기관이나 국영기업의 부패 척결에 나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진핑이 국정 전반에 걸쳐 소조치국(小組治國) 방식을 도입하여 권력을 강화하였다. 시 주석은 새로운 영도소조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전면개혁 심화, 재경, 외사, 국가안전, 인터넷, 군사를 포함한 국정 전반에 걸쳐 자신의 뜻을 반영하고, 추종자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시진핑이 군사개혁, 국유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한 경제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방대한 군부조직 개편 및 인사 쇄신과 함께 과거 총리가 담당한 재경문제도 직접 챙김으로써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행 집단영도체제에 대한 평가: “동등한“ 집단영도체제에서 “1인 우위” 집단영도체제로 변화

시진핑의 권력강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집단영도체제 유지론과 집단영도체제 해체론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를 대표하는 조영남의 주장에 의하면 집단영도체제의 운영방식이 달라졌을 뿐 본질적으로 집단영도체제는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시진핑은 공식 직위를 통해서 권력을 획득한 “제도 권력”이기 때문에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처럼 혁명과 국가건설을 통해 개인적인 명성과 함께 당-정-군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 동료와 부하를 거느린 개인 권력, 혹은 카리스마 권력에 기반한 1인영도체제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오나 덩은 당이나 국가 기구의 공식회의 없이 중요한 정책을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시진핑은 이러한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다. 최근 시진핑의 권력 강화에도 불구하고 당 주석직을 신설하지 못하였고, 7상8하 원칙을 깨지 못한 것은 결국 그의 권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덩샤오핑 이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당면한 상황과 조건, 개인적인 성향 등에 따라 집단영도체제의 운영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후진타오는 “약한” 총서기였고, 장쩌민은 집권 초기에는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들 때문에 “약한” 총서기로 시작했으나 원로들의 퇴장과 더불어 “강한” 총서기가 되어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3회 연임하는 강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진핑 사상이 당헌에 삽입되었다고 해서 바로 시 주석이 하루아침에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림 5. 1인 중심 집단영도체제

한편 유상철, 양갑용, 정재흥을 비롯한 집단영도체제 해체론자들은 시진핑 1인영도체제가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시진핑이 장기집권을 추진하고 있다고 본다. 19차 당대회에서 차기 지도자가 사전 결정되지 않았고, 올해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 임기 제한 조항을 폐기함으로써 시진핑이 2022년 2기 임기 만료 후에도 계속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특히 시진핑의 임기 말에 후계자에게 총서기직, 국가주석직, 군사위 주석직을 모두 넘겨주느냐 하는 점이 최대의 관심사항이다. 시진핑 사상이 제시하는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진핑이 2기 임기가 끝난 후에도 덩샤오핑처럼 군사위 주석직을 보유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시 주석의 2기 임기 5년 내에 군사개혁을 완성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장쩌민은 별다른 정치적 명분 없이 군사위 주석직을 2기 임기이후에도 보유하는 바람에 반대가 심하여 2년 만에 군사위 주석직을 내놓았다. 반면에 시 주석은 군사개혁이라는 정치적 명분은 물론 시진핑 사상이 제시한 국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명분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시진핑 사상을 폐기하거나, 군사개혁을 중단해야 할 상황이 오지 않는 한 시 주석의 정치적 역할이 2기만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또 시진핑이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과 동급이 아니라 “우월적 지위(first among unequals)” 내지 “독보적 지위(first above unequals)”를 차지한 것으로 본다. 정치국회의에서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모든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들은 매년 시진핑 총서기에게 의무적으로 서면 보고하는 것을 의결하였다. 그리고 집단영도체제 해체론자들은 당과 국가의 공식기구를 통해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시진핑이 우월한 지위에서 자신의 정책이나 입장을 관철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 문제는 앞으로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 회의가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방식을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상무위원이 당대회에서 채택된 시진핑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하기 힘들게 되어 있고, 또 반부패와 개혁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시 주석의 정책을 반대하기가 매우 힘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더욱이 시진핑에게 공식적으로 영수의 칭호를 부여하였다. 마오쩌둥과 화궈펑에게만 부여한 영수 칭호는 개혁기에 들어 금기시되었으나 이제 새로 부활한 것이다.

이제 집단영도체제 유지론자들과 해체론자들의 주장과 논의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 첫째, 집단영도체제와 1인 영도체제라는 2개의 카테고리만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복잡한 영도체제를 이해하고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유지론자들이 최고지도자의 성향이나 조건과 상황 등에 따라 집단영도체제의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는 만큼 집단영도체제의 하부 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운영방식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변수는 결국 총서기의 지위, 즉 다른 상무위원과 동등한가, 그렇지 않으면 우월하거나 독보적인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하위 유형은 1인 영도체제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즉 공식기구에서 집단으로 결정하기보다 개인적인 결정에 의존하는 1인 영도체제의 경우에도 최고지도자의 지위가 마오쩌둥처럼 독보적인 경우가 있고, 덩샤오핑처럼 다른 원로와 의논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경우에는 다만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궈펑이나 류샤오치는 마오쩌둥의 1인 영도체제를 물려받았으나 자신의 권력기반이 탄탄하지 못해 다른 지도자와 경쟁하는 경쟁적 1인영도체제로 끝나버린 경우도 있다.

그림 6. 경쟁적 1인 영도체제

둘째, 조영남의 주장처럼 최고지도자의 권력의 원천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처럼 혁명가로서 온갖 수난과 고통을 이겨내고 국가건설에 성공하여 명성을 가진 <개인 권력>과 공식기구에서 선출되어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획득한 <제도 권력>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가 후자보다 당연히 정치적 명분과 명성이 높고, 권력 기반이 훨씬 탄탄하기 때문에 국정수행 능력도 뛰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조영남은 제도 권력이 개인 권력으로 이전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제도 권력이 개인 권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마오쩌둥의 경우에도 초기 1920년대와 1930년에는 공식기구를 통해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에 제도 권력이었는데, 대장정 이후 점차 명성과 추종자를 쌓아가면서 1940년대 옌안(延安) 정풍운동, 그리고 1959년 루산(蘆山)회의에서 펑더화이(彭德懷) 숙청 후 집단영도체제를 무너뜨리고 1인영도체제를 구축하였다. 결국 모든 리더십이 처음부터 개인 권력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권력으로 시작하여 일부 강한 리더십은 점차 개인 권력으로 발전해 나간다. 따라서 제도 권력이 개인 권력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조영남이 주장하는 것처럼 혁명기가 아닌 개혁기에 제도 권력이 개인 권력으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에 새로운 정치적 통제방식을 동원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독재권력, 개인 권력이 등장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처럼 상당히 견고한 1인영도체제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시진핑이 개인 권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표 2> 중국 공산당 영도체제 분류

영도체제
1인 영도체제 집단 영도체제
최고

지도자의 지위

독보적 지위

(first above unequals)

독단적 1인 영도체제 (마오쩌둥) 1인 우위 집단영도체제 (시진핑)
우월적 지위

(first among unequals)

우월적 1인 영도체제 (덩샤오핑) 1인 중심 집단영도체제 (장쩌민)
동등한 지위

(first among equals)

경쟁적 1인 영도체제

(화궈펑, 류샤오치)

동등한 집단영도체제 (후진타오)

결론적으로 <표2>에서 보는 것처럼 제도 권력을 기반으로 시작된 시진핑의 영도체제는 집권 초기에 “동등한” 집단영도체제였으나 집권 1기 동안 권력 강화를 통해 “1인 중심” 집단영도체제를 구축한 후 19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1인 우위” 집단영도체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2기 임기 이후에 덩샤오핑과 비슷한 1인영도체제를 시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본다.

 

저자소개

김용호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현재 국립외교원), 한림대를 거쳐 2002년-2017년까지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하였다. 한국정당학회와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후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장관급) 등을 맡고 있다. 저서는 <<2016 총선에서 배우다>>(편저), <<한국 정당정치의 이해>>, <<북한의 협상 스타일>>, <<외교영토 넓히기: 대한민국 수교 역사>>, <비교정치서설>>(공저), <<민주주의 이론 서설: 미국 민주주의의 원리>>(역서) 등이 있다.

 


[1] 양갑용, 정재흥, 유상철, 정주연, Susan Shirk 등은 집단영도체제 해체론에 가깝다. ; 유상철, 『2035 황제의 길: 21세기 황제, 시진핑의 강국 로드맵』, (메디치, 2018); 양갑용, “시진핑, 중 집단지도체제 끝장내나?” 프레시안, 2016.2.18.; Susan Shirk, “China Under Xi Jinping: The Return to Strong Man Leadership,” Presented at East Asia Foundation Seminar. March 25, 2015; 정재흥, “시진핑 1인 지배체제 강화와 집권 2기 전망,”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18년 4월호.

[2] 조영남, 임재환, 구자선, 서성민, 안치영 등은 집단영도체제 유지론에 가깝다. 조영남, “1장 엘리트 정치,” 조영남 편, 『시진핑사상과 중국의 미래』 성균중국연구소, 지식 공작소, 2018), pp.33-95; 조영남, “2017년 중국 정치의 현황과 전망: 공산당 19차 당대회를 중심으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중국연구센터, 『2017 중국정세보고』, 2018; 구자선, “영도소조를 중심으로 본 중국 영도체제 변화 가능성”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주요국제문제분석, 2014.9.12.; 서상민, “시진핑 시기 중앙영도소조의 연결망 분석과 집단지도체제,” 『아세아연구』, 58권3호, 2015년, pp.172-205.

[3] 후안강(胡鞍鋼)이 대표적인 학자다. 후안강, 성균중국연구소 역,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통치하는가』, (성균대학교출판부, 2016).

[4] 후안강, 위의 책, 36-38쪽.

[5] 조영남, 위의 책, 2017, 132쪽

 


참고문헌

  • 구자선, “영도소조를 중심으로 본 중국 영도체제 변화 가능성”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주요국제문제분석, 2014.9.12.
  • 서상민, “시진핑 시기 중앙영도소조의 연결망 분석과 집단지도체제,” 『아세아연구』, 58권3호, 2015년, pp.172-205.
  • 양갑용, “시진핑, 중 집단지도체제 끝장내나?” 프레시안, 2016.2.18.
  • 유상철, 『2035 황제의 길: 21세기 황제, 시진핑의 강국 로드맵』, 메디치, 2018.
  • 정재흥, “시진핑 1인 지배체제 강화와 집권 2기 전망,”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18년 4월호.
  • 조영남, “1장 엘리트 정치,” 조영남 편, 『시진핑사상과 중국의 미래』 성균중국연구소, 지식공작소, 2018. pp.33-95.
  • 조영남, “2017년 중국 정치의 현황과 전망: 공산당 19차 당대회를 중심으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중국연구센터, 『2017 중국정세보고』, 2018. pp.11-81.
  • 후안강, 성균중국연구소 역,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통치하는가』, 성균대학교출판부, 2016..
  • Shirk, Susan, “China Under Xi Jinping: The Return to Strong Man Leadership,” Presented at East Asia Foundation Seminar. March 25, 2015.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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