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현실과 전망


국제정치학은 국가간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식으로 크게 보아 현실주의적 방식과 자유주의적 방식의 두가지 방법론이 있다고 논의해 왔다. 자국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기르고 대외적으로 동맹을 형성하는데 정책의 중점을 두는 것이 현실주의적 방식이라면, 국가간 협력을 제도화하고 공동의 규범을 확산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자유주의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출범 이후 베를린 선언 등을 통해 대북 대화와 협력 재개를 주장해온 문재인 정부가 자유주의적 방식에 의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면, 핵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해온 북한은 현실주의적 평화관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27일의 판문점 선언에 의해 남북 정상이 극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의 이정표를 밝혔는데, 그 구체적 실현을 위해선 이같은 상이한 방식의 평화관념 사이에 접점을 마련하는 작업이 우선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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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회담 시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출처: 대한민국 청와대

박영준 (국방대학교)

평화 구축의 두 갈래 길

국가간 관계를 다루는 국제정치의 세계는 전쟁 혹은 평화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국가간 평화란 과연 어떠한 상태이고 그러한 평화는 어떻게 구현되는가의 문제가 국제정치학의 주요 관심사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국제정치학의 양대 이론이라고 볼 수 있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학파는 각각 상이한 분석과 처방을 제시해 온 바 있다.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의 세계를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질서라고 파악하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국가간 전쟁이 부재한 상태를 평화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군사력에 중점을 둔 국가의 국력 강화, 혹은 동일한 위협에 직면한 국가간의 동맹체결 등을 주요 평화의 방책으로 제시한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냉전기의 미국과 소련은 물론이고, 한국 지식사회와 정책결정자들 사이에도 널리 공유된 바 있다. 예컨대 미국 유학 기간에 대표적 현실주의자였던 시카고대학의 한스 모겐소 (Hans Morgenthau)로부터 수학했던 이호재 교수가 1980년대 초반에 작성한 글에서, 한국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조건으로서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의 존재, 그리고 남북한간 군사력에 의한 공포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한 것은 대표적인 현실주의적 평화론의 귀결이었다.[1]

한편 현실주의자들의 처방대로 자국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공동의 가상적에 대해 동맹체제를 강화할 경우, 상대국가도 마찬가지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동맹 수단을 강구하게 되어 오히려 자국의 평화와 안전보장이 위협을 받게 된다. 소위 안전보장이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국제정치학자들은 단지 전쟁이 부재한 상태로서의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가상 적대국과의 교류나 신뢰구축을 통한 위협의 해소를 의미하는 “적극적 평화”, 혹은 “구조적 평화”가 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칼 도이취 (Karl Deutsch), 요한 갈퉁(Johan Galtung) 등의 학자들은 적대국가들을 포함한 상호 교류와 대화를 통한 신뢰구축, 복수의 국가를 포함한 국제제도의 형성 등을 국제평화의 주요 방책으로 제안한다. 이 같은 자유주의 성향의 평화론은 냉전기였던 1970년대 이후 한국국제정치학계에서도 수용되어, 한국의 대북정책이나 대외정책에 영향을 가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김학준은 70년대 후반에 발표된 논문을 통해 갈퉁의 평화론을 적용하여 남북한 간에 3단계에 걸쳐 평화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 1단계에는 소극적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남북한에 대해 4강의 교차승인과 유엔 동시가입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2단계에서는 남북한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불가침협정을 체결하여 평화를 제도화하고, 3단계에서 남북한간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고 통일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두 갈래 평화의 방법론은,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국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대외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가했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면서 국방력의 강화나 한미동맹의 강화를 강조한 전두환 정부, 초기에는 민족이 우선한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대북 강경정책으로 선회한 김영삼 정부, 그리고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천안함 사건 등을 계기로 대북 강경정책을 취한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현실주의적 평화론의 관점에서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고 보인다. 반면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노태우 정부[3], 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을 도출해낸 김대중 정부와, 6자 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고 2007년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협력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는 자유주의적 평화론의 영향 속에서 대북 정책을 추진했던 것으로 이해된다.[4]

그렇다면 전직 대통령이 탄핵된 가운데 2017년 5월에 취임한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어떠한 구상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2018년 벽두부터 평창올림픽에의 참가를 표명하면서 대남 및 대외정책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동기는 과연 무엇인가.

평창 올림픽 개최 당시 서로 악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
출처: 대한민국 청와대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평화 개념과 대외 정책

전임자의 탄핵이라는 예외적인 사태 속에서 지난 해 5월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엄중한 대내외 안보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발족을 전후하여 북한 김정은 정권은 제5차 및 6차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의 위력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던 그것보다 5배 이상 강력화하고 있었고, 화성-15형 미사일이나 북극성 계열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 ICBM(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대륙 간 탄도 미사일)와 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등 핵탄두 투발 수단을 대폭 개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 유엔 안보리를 위시한 국제사회는 일련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었고, 2017년 1월 취임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코피작전”(blood nose strategy)으로 표현되는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내외 상황에 직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안보위기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무엇보다 중요한 대외정책의 과제로 제기하였다.[5] 그리고 이러한 과제달성을 위해 그는 취임 이후에 행해진 일련의 연설과 정책지시를 통해 군사력 강화, 한미동맹의 강화와 같은 현실주의적 성향의 정책은 물론, 남북대화 및 교류의 재개,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의 자유주의적 성향의 정책 어젠다들을 병행하여 제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제시되었던 정책공약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전력 강화에 대응하여 킬 체인(Kill Chain), 응징보복능력(KMPR),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 등 3축 체계 전력 구축을 우선적 정책목표로 제시하였고, 이러한 전력을 종합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전략사령부 구축도 자주국방 차원의 정책으로 제기하였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단행될 때마다 전임자와 달리 즉각적으로 NSC를 소집하여 대응정책을 강구하였고, 북한의 군사도발에 상응하여 우리 군이 보유한 미사일도 대응 발사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또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응하여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를 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한미 양국의 공동목표로 재확인하고, 북한의 핵 및 미사일에 대응하는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의무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요컨대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진보적 정치성향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및 미사일 전력에 대응하여 자주국방 차원의 군사력 강화와 한미동맹 차원의 군사대응태세 공고화를 포함하는 현실주의적 대북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이와 병행하여 전임자 시절과 확연하게 달라진 입장에서 대북 대화 및 교류 재개 의사도 표명하였다. 즉 2017년 7월6일, 베를린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그는 ①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면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 ②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③남북한 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④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 ⑤민간 교류 협력 사업의 재개 등을 포함하는 5가지 대북 정책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6] 이 같은 기본 정책방향에 더해 그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을 아울러 제안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같은 그의 자유주의적 성향의 대북 정책들을 한반도 문제 관련 주요 당사국들인 미국 및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거듭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요청하였다. 6월30일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북한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양국이 북한에게 밝은 미래를 제공하겠다고 천명하였다.[7] 2017년 12월14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가진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간다는 점을 확인하였다.[8]

즉 문재인 대통령은 자주국방태세 및 한미동맹 강화라는 현실주의적 방책에 더해, 남북 정상회담 및 스포츠 교류 등을 통한 접촉 증대를 통해 한반도 전쟁방지를 구현하고 나아가 북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자유주의적 방식의 한반도 평화정책을 병행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자유주의적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 10여년간 한국의 정책 목록 속에서 배제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의 카운터파트가 될 김정은 위원장의 대외정책은 어떠한 성격을 갖고 있는가?

2012년 이후 본격적으로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제시한 정책방향은 2013년 3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핵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이라고 생각된다. 선대의 김정일 위원장이 선군노선을 표방하면서, 군사중심의 국가건설에 집착했다고 한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60년대의 김일성 시대처럼 경제도 군사력 건설과 병행하여 추진한다는 정책방침이 표방된 것이다. 이러한 정책노선에 따라 2012년 6월과 2014년 5월, 각각 경제개혁조치가 공표되었고, 2013년 5월에는 27곳의 경제개발특구가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건설 관련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김정은 정권은 핵 및 미사일 전력 건설 정책에 보다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간 4회에 걸친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핵탄두의 위력을 대폭 증대시켰고, 그 운반수단으로 ICBM과 SLBM을 포함한 다양한 미사일 능력도 강화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는 이러한 핵 및 미사일 전력을 전담하는 전략군사령부 조직을 기존의 육해공군에 버금가는 제4군의 위상으로 격상시켰고, 보다 공세적인 군사전략도 표방하기 시작했다.[9]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전력 강화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대북 경제제재를 초래하면서 국제적 고립을 심화시켰지만, 북한 정책결정자들은 자신들의 군사력 강화가 정권의 안보와 국내 평화에 불가결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2017년 11월, 제6차 핵실험의 성공에 따라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후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2018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 핵무력의 완성에 따라 북한이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 억지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0] 나아가 그는 북한이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 강국”으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도 명언하였다. 같은 해 2월23일, 노동신문 칼럼도 자신들의 핵 무력이 “미국의 끈질긴 침략전쟁 책동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굳건히 수소할 수 있게 하는 위력한 수단이며,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11] 자신들의 군사력 강화가 국가안보와 평화 유지의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북한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은 현실주의적 대외정책의 성향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와 평화적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비정상적 상태라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상태를 완화하지 않으면 핵전쟁의 참화를 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한국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 경기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남북간의 협력과 교류를 재개하겠다는 전향적 입장을 표명하였다. 2월23일자 노동신문 칼럼도 전략국가로 부상한 북한이 외부 세계와 평화적으로 공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즉 북한은 핵 무력 완성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과의 교류 및 접촉 재개를 제언하였고, 한반도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 정책 방향은,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문재인 정부와 달리, 기본적으로 군사력 강화를 배경으로 한 현실주의적 관점을 띠고 있다. 자유주의적 평화론에 입각해 대북 정책에 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핵 무력 완성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주의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대남 및 대미 접근을 도모하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사이에 과연 한반도 평화의 접점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인가? 나아가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도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의 미사일 및 핵 실험 데이타와 한국, 중국, 미국, 북한의 정권 변화 (2017년 11월 29일 현재).
출처: 미국 국제문제전략연구소 미사일 디펜스 프로젝트 데이터를 기반하여 Diverse+Asia 동북아시아팀이 업데이트 및 재구성.
(https://missilethreat.csis.org/north-korea-missile-launches-1984-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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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

2017년 연말까지의 한반도 정세는 예측 불허의 긴장상태였다. 9월에 실시된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그를 전후한 일련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여 유엔은 거듭 대북 경제제재를 의결하였고, 미국은 B-1B 폭격기 등의 전략자산을 괌 기지 등으로부터 전개하면서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괌 기지 및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흘리면서 강경하게 대응하였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대한 선제적 군사타격의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하였다. 전임자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현안 문제들에 대해 국제기구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해결해 가려는 다자주의적, 자유주의적 대외정책론의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힘의 우위에 바탕한 현실주의적 대외정책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강대강의 대결 속에서 군사적 위기 상황을 보이던 한반도 정세는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극적으로 분위기가 반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월9일,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었고, 이어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북한 지도자의 여동생 김여정을 포함한 북한의 대표단과 예술단이 참가하였다. 3월6일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을 포함한 한국의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남북 정상회담 실시와 북미 비핵화 대화 추진 등을 합의하였다. 한국의 특사들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전달받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결정하였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가시화되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3월25일부터 3일간에 걸쳐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하면서, 그간 소원하던 양국간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단계적, 동시적 (progressive and synchronized) 으로 추진해 간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2018년 4월과 6월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 사이에 일련의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4월 27일의 남북정상회담을 위시하여, 6월 12일의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5월 초순의 한중일 정상회담, 6월의 한러 정상회담 등이 그것이다. 특히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한국, 북한, 그리고 미국이 각각의 한반도의 비핵화 방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고, 그 합의 여하에 따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양차의 정상회담이야말로 미래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이 달린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비핵화 방식에 대한 각국의 입장, 특히 북한과 미국의 입장은 상이하면서도 완강하다. 북한은 지난 수 십 년 간 핵개발에 국가의 총력을 경주해 왔다. 경제개발 등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성취한 핵개발의 성과를 북한은 쉽사리 폐기하지 못할 것이다. 핵무기와 상응하는 거대한 보상을 얻지 못한다면 비핵화의 결단을 쉽게 내리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통해 이미 밝힌 바처럼,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방안을 밝힐 것으로 보여진다. 즉 미국 및 국제사회에 의한 대북 경제제재완화, 체제의 안전보장 및 대미 국교정상화 등의 보상과 연동하여 북한의 핵탄두 및 관련 시설 폐기를 단계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부시 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전임자들이 6자회담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북핵 폐기를 시도했던 정책들이 모두 실패했고, 자신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왔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일괄적 핵 폐기, 즉 종전의 리비아처럼 일정 시기까지 핵탄두 및 관련 물질을 폐기하는 방식을 강압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단기간에 북한 비핵화라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를 보좌하는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과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과 등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방식을 포기하고 재차 대북 군사적 압박태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북 강경태세로 전환하는 것이 선거 전략에 결코 불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의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방식에 대해서는 종전 6자회담의 개최국인 중국이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모처럼 조성된 대화 국면에서 해결하기 용이한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논의하고, 비핵화 방식 등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해 가자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방식에 대해서는 동맹국인 일본의 아베 수상이 적극 힘을 보태고 있다. 아베 수상은 4월 말 미국 방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괄적 비핵화의 시급성을 강조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미간, 나아가 미일과 북중 간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북미간의 협상에서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는다면 한반도 상황은 더욱 급박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때문에 일련의 정상회담들에서 한국의 비핵화 전략과 협상에서의 중재자적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평창 올림픽 전후 남북관계 및 회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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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국의 전략방향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미국과 공유하면서, 북한의 핵 폐기를 유도해 가야 한다. 동시에 비핵화 방식에 대한 북미간의 입장 차이를 조율하여 한반도 비핵화가 군사적 대립이나 강압이 아닌 외교적 대화와 협상에 의해 진행되도록 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요컨대 북한의 현재 최대가치인 핵무기를 적대국이었던 미국 등의 안전보장 제공과 맞바꾸도록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남북한은 물론 북미간의 신뢰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최우선적 과제는 북한 비핵화의 개념과 범위를 당사국들 간에 분명하게 공유하는 일이다. 1991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이 공표되었을 당시, 비핵화는 핵무기의 제조, 보유, 배치를 금지하고, 핵 시설의 보유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6자회담의 합의문이 공표되었던 2005년과 2007년의 시점에도 비핵화는 핵무기 및 핵 시설의 폐기를 의미했다. 그러나 6자회담 중지 이후 북한의 핵 능력은 비약적으로 증대했고, 그와 관련되는 제도와 법률도 제정되고 성립되었다. 예컨대 북한은 핵 능력 증대에 따라 2012년 4월 개정된 북한 헌법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규정하였고, 2013년 4월에는 “자위적 핵 보유국의 지위에 관한 법”을 채택하였다. 또한 2013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 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국가전략노선으로 채택하였고, 2014년에는 핵 및 미사일 전력을 관할하는 전략사령부를 격상시킨 바 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북한 비핵화의 범위에는 이 같은 핵 능력 및 핵 시설의 폐기와 아울러, 핵전력 보유를 정당화하는 국가전략과 법률의 개폐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점을 고려할 때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불가피하게 단계적 조치를 통해 이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즉 1단계는 비핵화 초기 단계로서 CVID 원칙을 당사국간에 합의하면서, 북한이 핵 및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고 (모라토리엄), 국제사회의 사찰을 수용하는 과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2단계는 비핵화 준비단계로서 핵탄두 및 핵 물질, 관련 시설의 신고가 진행되어야 한다. 제3단계는 비핵화 핵심 단계로서 핵탄두를 폐기하고 핵 물질을 반출하는 과제가 수행되어야 한다. 제4단계는 비핵화 완료 단계로서 헌법의 관련 조항 개정 및 관련 법률의 개정, 그리고 전략사령부의 역할 축소 및 핵 관련 과학기술자들의 전직 보장 등이 진행되어야 한다.[12]

이 같은 단계적 조치의 이행에 따라 1단계에서 남북 및 북미 대화 지속, 평화협정의 당사국이 될 4자 회담의 개최, 2단계에서 남북 평화협력 제도화, 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 3단계에서는 남북 불가침 협정 체결, 북미간 국교정상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4단계에서는 동북아 다자간 평화협력체제 구축 등이 병행되어 실시되어야 한다.

다만 단계적 조치의 이행은 일괄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도 반영하여 종전의 9.19 합의나 2.13 합의와 달리 제한된 기간 내에 완료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1단계는 2018년 전반기, 2단계는 2018년 후반기, 3단계는 2019년 전반기, 4단계는 2019년 후반기로 기한을 설정하여, 늦어도 2020년까지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제도적 설계가 완료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프로세스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북한 필요조치 남북간 조치 북미간, 동북아 차원
1단계: 비핵화 초기
(-2018년 전반기)
CVID 원칙 확인
핵 및 미사일 모라토리엄
사찰 수용
남북 대화
남북 군사대화
북미 대화
대북 제재 완화
평화협정 준비 위한 4자회담 (남북미중)
2단계: 비핵화 준비
(-2018년 후반기)
핵 시설 및 물질 신고
핵 시설 폐쇄
남북 철도 연결
DMZ 비무장화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3단계: 비핵화 핵심
(-2019년 전반기)
핵탄두 폐기
핵 물질 반출
남북 불가침 협정,
북한 경제특구 건설지원
북미 국교정상화
4단계: 비핵화 완료
(-2019년 후반기)
병진노선 수정
북한 헌법 및 관련법 수정
전략사령부 기능 축소
남북 군비통제
한반도 평화협정
북일 국교정상화
동북아 평화협력체제 제도화
2020년까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제도적 설계 구상
출처: 저자 박영준

 

이 같은 비핵화의 단계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 간에, 그리고 북미간에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속적 정상회담을 포함한 당사자 간의 협상 모멘텀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겠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북미 간에도 5월 말 정상회담 이후에 9월의 유엔총회 개최 시 김정은 위원장을 초대하여 국제사회에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정상 간의 신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식이 한국이 그동안 전개해온 평화정책의 전통에 비추어도 바람직한 수순이 될 것이고, 북한 및 미국의 상이한 비핵화 방식을 중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소개

박영준 국방대학교 교수
연세대 정외과와 서울대 외교학과 석박사 과정을 거쳐, 일본 동경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정치외교, 동북아국제관계, 국제안보 등의 분야에서 「제3의 일본(2008)」 「미일중러의 군사전략」(공저, 2008),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공저, 2010),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공저, 2012), 「동아시아 세력전이와 일본 대외전략의 변화」(공저, 2014) 「한국 국가안보전략의 전개와 과제」 (2017)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정치학회 한일학술교류위원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안보국방분과위원장 등의 학회활동을 하였고, 하버드대학교 US-Japan Program 초빙연구원 등도 역임한 바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자문위원, 동북아시대위원회 외교안보분과 전문위원, 한일신시대공동연구위원회 한국측 연구위원, 그 외 주요 신문의 칼럼 저술 등의 활동을 통해 정부와 사회에 대해 동북아 외교 등에 대한 활발한 정책 제언 활동도 병행해 왔다.

 


[1] 이호재, 「한반도 평화유지의 조건」 『북방외교의 길』(흥사단출판부, 1983).

[2] 김학준, 「한반도 평화의 국제적 조건: 평화의 3단계론에 입각하여」『국제정치논총』 제18집 (1978).

[3] 노태우 정부 시기에 공표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남북 간에 사회문화적 교류, 경제적 교류,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해 양 체제가 상당기간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점진적으로 사회공동체, 경제공동체, 정치공동체를 형성하자는 논리구조를 갖고 있었다. 자유주의적 평화론을 적극 반영한 대북 정책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홍구, 「제6공화국의 통일정책 기조와 과제」(1989.6.3.,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특강) 이홍구 선생문집 간행위원회 편, 『이홍구 문집 3: 민족공동체와 통일』 (나남출판, 1996), p.363-373. 이홍구, “「평화통일을 위한 분단체제의 제도화」『중앙일보』 (2015.9.14.)도 참조.

[4]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로서 박영준, 「한국의 평화담론 전개와 대외정책론: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구상과 『국제정치논총』게재 관련 연구를 중심으로」『국제정치논총』(2017) 참조.

[5] 2017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6] 2017년 7월6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7] 2017년 6월30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연합뉴스 인터넷 판 참조).

[8] 2017년 12월14일, 한중정상회담 논의 내용 참조.

[9] 김태현, 「북한의 공세적 군사전략: 지속과 변화」, 『국방정책연구』제33권 제1호 (한국국방연구원, 2017년 봄).

[10] 2018년 1월1일 김정은 신년사 참조.

[11] 2018년 2월23일 노동신문 참조.

[12] 이 같은 구상은 다음 논문에서 시사를 받았다. 전봉근, “북핵 외교의 리셋팅: 환경변화와 새로운 비핵화 전략 모색”, 한반도포럼 창립 3주년 학술회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 통일 과정을 중심으로』 (프레스센터, 2014.4.22.). 다만 전봉근 교수는 비핵화 단계를 비핵화 초기, 비핵화 기반조성, 비핵화 심화의 3단계로 구상하고 있다.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