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후 혼돈의 서아시아: 두 정치 신화(神話)의 복원


지리적 이격(離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서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 중 하나다. 초강대국 미국이 서아시아에서 어떤 입장과 전략을 취하느냐에 따라 현지 정세는 요동쳤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후 서아시아는 혼돈의 정도를 더하고 있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거리두기 및 이란 끌어들이기를 통해 서아시아의 균형을 추구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히 뒤집고 있다.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을 통한 이스라엘 관계 회복, 그리고 이란 핵협상의 파기를 통한 이란 적대화를 가시화했다. 미국의 대 서아시아 정책의 두 인식론적 기저이자 일종의 정치 신화였던, ‘혈맹 이스라엘-원수 이란’ 구도를 재현한 것이다. 8년만의 급변은 서아시아 현지 정세를 극도의 혼란으로 견인하고 있다. 예루살렘 선언에 반대하는 범 이슬람권의 분노와, 이란 핵협상 파기를 둘러싼 현지의 치열한 진영 갈등으로 인해 2018년 5월 현재, 서아시아의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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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resident Donald J. Trump delivers remarks on the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 May 8, 2018 (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Shealah Craighead)

인남식 (국립외교원)

미국과 서아시아

비록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지만 서아시아 정세에 가장 중요한 행위자 중 하나가 미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집트 및 이스라엘 등 역내 강국들이 있음에도 정세를 견인하며 안정적 중재자 역할을 자임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밖에 없었다. 따라서 미국의 서아시아 정책은 현재 및 미래의 지역 정치질서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며, 이를 면밀하게 추적함으로써 대략의 국제 정세를 예측할 수 있다.

본 글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서아시아 국제정치질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다루었다. 예상을 뛰어넘고 당선되어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는 파격의 연속을 보여주었다. 이는 고전적인 독법(讀法)에 의지하여 국제 정세를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을 의미한다. 소위 불가측성 (unpredictability) 에 기반한 트럼프의 대외 정책, 특히 서아시아 정책이 어떤 양태를 나타내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최근 서아시아에서의 미국 대외정책을 먼저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의 정책이 얼마나 극적이고 불가측한지 그리고 혼돈속에서 대략 어느 방향으로 정세가 전개될지를 유추해보았다.

두 개의 축: 걸프와 이스라엘

2차 대전 이후 냉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시작된 미국의 서아시아정책을 구성하는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이하 이팔 문제)과 걸프지역 안보 등이다. 지지기반에 따라, 그리고 정권에 따라 중점은 달라졌다. 민주당 집권 시에는 주로 이팔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미국 내 유대인들의 지지 기반을 획득하고 있기도 했거니와 역사적, 심리적 요인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는 민주당 주류의 서아시아 인식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공화당 정부는 걸프지역 안보에 집중하는 경향성을 나타냈다. 군산복합체나 대규모 석유 메이저 회사 등의 이슈에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통적 군사 안보 질서를 중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문제의 핵심인 사안이었던 1979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이나 1993년과 1995년 오슬로 평화협정 모두 민주당 지미 카터 및 빌 클린턴 등 민주당 정부가 적극적 중재로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 반면 공화당 조지 시니어 부시 대통령 시절 1차 걸프전이 벌어졌고, 아들 부시 정부는 국제사회의 논란을 무릅쓰고 이라크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부에 따라 우선순위는 좀 달라지긴 했지만 걸프지역의 안정 또는 이팔 문제의 해결이라는 양대 이슈는 미국 서아시아정책의 핵심으로 계속 자리잡아왔다. 문제는 이 양대 쟁점을 다루어나가는 데 있어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 세력들은 일종의 관성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데 있다.

냉전의 종식과 문명 담론의 등장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찾아온 냉전 이후의 시대는 초강대국 미국의 출현으로 규정될 수 있었다. 세계를 반분하던 소비에트 크레믈린의 부재는 미국의 가치 및 전략에 따라 국제정치가 견인됨을 의미했다. 일명 미국 주도의 평화시대 즉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를 운위했다. 실제로 서아시아에서도 미국 주도의 세계를 상징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먼저 1991년 열린 마드리드 중동 평화회담은 오랫동안 불구대천의 원수로 서로 대화하지 않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첫 다자 평화회담이었다. 이를 동력으로 1993년과 1995년 역사적인 오슬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서로 쳐다보지 않던 견원지간의 양측이 마주 앉게 된 것은 더 이상 냉전의 관성이 통하지 않게 됨을 자각하면서 부터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대소 봉쇄 입장에서 전략적 가치가 반감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 역시 고전적인 친소 노선을 유지할 근거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일명 ‘사막의 폭풍’작전으로 일컬어지는 1차 걸프전을 전광석화처럼 끝내는 것을 세계가 목도했다. 사우디, UAE, 요르단 등이 미국과 함께 이라크를 타격했다. 이는 아랍이 아랍을 공격한 첫 전쟁이었고 이후 아랍 통합을 이야기하는 소위 아랍민족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평가된다. 모두 미국의 압도적 존재감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헌팅턴이 예견했듯 새로운 분쟁의 단층선이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이른바 문명 갈등 담론이었다.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는 미국에 필적할 만한 어떠한 존재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대중들의 기저에 또아리를 튼 반서구, 반미, 반기독교 층이 서아시아에서 힘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9.11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으로 이어진다. 비록 게릴라 류의 테러였지만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를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었다.

9.11, 부시, 그리고 새로운 서아시아 정책: ‘중동 민주화 구상과 판도라의 상자

조지 W. 부시와 ‘악의 축’ 세 국가, 이라크, 북한, 이란
© DIVERSE+ASIA

하와이를 제외하고는 외적의 공격에 한번도 노출된 적이 없었던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많은 전쟁을 경험했다. 세계 1, 2차 대전을 비롯,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여러 전쟁에 참전하면서 인명, 물적 피해도 많이 입었었다. 그러나 9.11 만큼 충격을 주었던 사안은 없었다.

2002년 연두교서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부시 행정부는 이란, 이라크 및 북한을 테러를 지원하는 위험한 ‘악의 축’ (Axis of Evil) 으로 규정했다. 대량파괴무기 보유 및 의지, 테러리스트와의 연계 및 폭압성 등 미국이 제시한 3대 조건에 부합하여 악의 축으로 규정된 국가들은 정권 교체 또는 정권 변환 (regime transformation)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상처음으로 미국의 선제 공격 (pre-emptive strike)가 이루어졌다. 2003년 3월 20일 발발한 이라크 전쟁이었다.

이라크 전쟁 자체는 미군과 시아파 반군 세력의 압승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지지부진해지는 안정화작전으로 인해 미군은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파괴무기 (WMD) 발견에 실패했고, 테러 연계도 증거를 찾지 못한 데다 사담 후세인의 잔당들이 극단주의 세력으로 변하여 테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1조 달러 이상의 전비를 소모하고 5천명에 가까운 병력 손실을 겪으며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의 정권 교체 후 미국은 보다 구조적인 서아시아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정치 이론 중 하나인 민주평화론 (democratic peace theory)에 의거 서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민주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확대 중동 구상’ (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이다. 2004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열린 시아일랜드 (Sea Island) G8 정상회담에서 당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제안한 구상으로 서아시아에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분쟁을 구조적으로 종식시키겠다는 아이디어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구상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부시 행정부의 강한 압박으로 이집트 및 일부 걸프 왕정 등 친미 국가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용한 일련의 민주화 프로세스를 통해 각국의 반정부 세력, 특히 이슬람 세력이 약진하며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공공연한 반정부 활동이 시작되었고 이는 후일 아랍의 봄을 가능하게 했던 형질 변경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조치였다. 이후 무슬림 형제단 (Muslim brotherhood) 등 이슬람 정치 집단이 대거 제도권으로 진입, 서아시아 전역의 이슬람화 현상을 견인하는 요건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라크 전쟁은 바그다드의 독재세력을 축출했다는 긍정적인 평가 말고는 서아시아 전역의 균형 해체, 극단주의 테러 세력의 토양 배양 그리고 반미 주의의 편만화 등 막대한 부작용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서아시아 정책의 기저: 두 개의 정치 신화, ‘혈맹 이스라엘원수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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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라는 미증유(未曾有)의 비극을 경험한 미국으로서는 특단의 정책을 수립, 이행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등 대테러전은 전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서아시아의 세력균형을 붕괴시키는 파격적 정책을 채택하면서도 면밀한 상황관리가 뒷받침되지 못하다보니 알카에다보다 더 극악한 테러단체인 소위 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Iraq and Sham)가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미국민들은 의아했다. 결국 알카에다 류의 극단주의 테러세력 척결을 통해 미국 및 세계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이라크 및 아프간 전쟁을 감수하며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지불했던 터였다. 그러나 알카에다 대신하여 IS가 등장, 미국민들을 참수하는 모습을 보며 근본적인 회의에 사로잡힌다. 이는 미국민 다수가 서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개입을 극도로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대 서아시아 정책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두 가지 질문에 조우한다.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과 걸프, 특히 이란 문제였다. 9.11은 미국의 대외정책 실패를 상징했다. 전쟁을 막지못한 외교정책은 기본적으로 실패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외정책은 왜 실패했는가에 관하여 시카고 대학의 존 미어샤이머와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월트는 대 서아시아정책의 실패, 나아가 대 이스라엘 정책의 문제 때문이라 갈파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편들기로 인해 아랍 및 이슬람권 상당수의 반발을 초래했으며 이들이 미국을 적대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파적 친이스라엘 관계의 배경에 미국내 이스라엘의 로비가 있음을 지적했다. 미국이 이팔 문제를 다룸에 있어 불편부당한 입장을 하루속히 견지해야만 아랍에서의 반미주의가 약화된다는 견해였고 이를 위해 이스라엘의 대미 로비에 대한 상황인식 및 정책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후일 유사한 맥락에서 제2, 제3의 9.11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에 대한 편파성을 일종의 신화적 요소로 치환하여 설명할 수 있다면 또하나의 신화적 요소는 이란과의 적대관계다. 다시 말해 왜 미국은 이란과 철천지 원수인가 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은 9.11 이후 악의 축을 설정, 대테러전을 설계하면서 이란을 가장 위험한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란은 9.11과는 관계가 없었고 오히려 알카에다와는 적대적인 관계였다. 그리고 9.11 직후 가장 먼저 백악관에게 위로전문을 보낸 측도 당시 이란의 모함마드 하타미 대통령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 전쟁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비록 테러와의 전쟁이었지만 이란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런 상황이었다. 자국은 알카에다 테러네트워크와 무관함에도 가장 위험한 알카에다 류의 테러세력을 분류되었을 뿐 아니라 동편과 서편 접경국인 이라크와 아프간에 미군 지상군이 주둔하며 전면전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었다.

이란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감에 관하여 시니어 부시 행정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위원회 (NSC)에서 이란 담당관을 역임했던 펜스테이트 대학의 플린트 레버렛 교수는 저서 ‘Going to Tehran’에서 미국의 대 이란 적대감의 역사적, 심리적 기저를 설명한다. 한마디로 19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대사관 인질 사건 및 이후 일련의 인권 문제 등과 연계된 적대감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레바논 헤즈볼라가 저지른 해병대 테러 및 대사관 공격의 배후 의혹은 있지만 딱히 구체적인 연계 증거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란 적대시 정책 역시 일종의 신화적 요소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의 탈 신화화 (脫 神話化)

US President Barack Obama (L) and Iranian President Hassan Rouhani.
https://www.middleeastmonitor.com/20160425-messages-between-obama-khamenei-and-rouhani-uncovered/

오바마는 대외정책을 설계하면서 서아시아에서의 점진적 철수를 염두에 두었다.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맥락이 완연히 상이한 서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치를 섣불리 이식하려 했다가 겪은 이라크 전의 곤혹스런 각인이 오래 남았다. 100년 전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대표되는 유럽 열강의 개입과 자의적 국경획정으로 인해 발생한 모순을 반추했다. 서아시아는 당사국들의 합의 또는 힘의 균형에 의해서만 지속적 평화 추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고 이는 정책에 반영되었다. 이른바 아시아 재균형 정책 (Asia rebalancing)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신화 깨기

동시에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수정 기조를 나타냈다. 역대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오바마는 이스라엘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이팔 문제에 있어서 나름대로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이를 통해서만 서아시아 전역에 편만한 반미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나름대로 미국의 정책적 중재 개입이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에 정착촌 동결 조치를 요구했고, 일련의 압박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의 입장 변화에 반박하며 오히려 정착촌 확대 기조를 유지했다. 이후 8년간 오바마-네타냐후 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2011년 국무부 연설에서 오바마는 이팔 평화 협상의 국경 기준선을 1967년 3차 서아시아전쟁 (6일전쟁) 발발 이전의 경계로 설정해야 한다는 파격적 발언을 함으로써 양국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기도 했다. 반면 아랍권에서는 오바마의 이스라엘 거리두기를 보며 점차 미국이 정상화되고 있노라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란 신화 깨기

오바마 정부의 대 이란정책 기조는 정치체제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도 대량파괴무기의 위협을 상쇄시키는 방향 수립에 있었다. 취임 초기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우호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2009년 3월 노루즈 축일 메시지를 통해 이란 국민들에게 미국은 이란 국민 전체를 적대시 하지 않음을 말하며 페르시아 문명의 위대성, 이슬람의 관용을 언급했다. 이전 정부에서 이란을 악의 축으로 설정, 정권 교체를 운위했던 것과는 완연히 달라진 메시지였다.

이러한 이란에 대한 전반적인 기조의 변화를 전달함과 동시에 WMD 이슈에 대해서는 기존의 원칙론을 고수했다. 2012년 국방수권법을 통해 이란의 석유 수출에 관한 제재 수위를 높였고 이는 이란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미쳤다. 결국 2013년 이란 대선에서 개방을 주장하는 중도파 하산 로하니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가장 극적인 이란 정책 변화는 2015년 7월, 역사적 이란핵협상 타결이었다.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CPoA) 으로 불리는 협상을 통해 장기적으로 이란을 국제사회의 정상적 파트너로 끌어들이겠다는 복안이 담긴 협상이었다. 양국이 굳이 상호 적대관계를 영속적으로 유지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핵 문제만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미-이란 관계는 정상화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오바마의 꿈: 서아시아 전략

미국의 대 이란정책 변화, 특히 핵협상 타결은 서아시아 내 아랍 국가들, 특히 이란의 부상을 우려하는 걸프 왕정 국가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노선변화로 인해 서아시아 권력 역학관계가 요동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전통적 친미 보수왕정의 정권 기반도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오바마의 장기적 목표는 서아시아 역내 세력균형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확산 실험은 부시 때 실패했음을 목도했고,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장기적으로 외삽 세력이 개입해서 주도적으로 현지 정치질서를 구축하려 했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고 큰 상흔을 남겼다. 따라서 적절한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현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결국 역내 주요 국가들간 세력 균형 말고는 없었다. 다시 말해 1979년 이란 혁명 이전의 역학관계로의 복원이었다.

당시 이란, 이집트 및 사우디아라비아는 각각 시아파, 수니파 공화정 및 수니파 산유 왕정을 대표하며 서아시아 내부에서 세력 군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 사이는 안좋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좋았다. 따라서 오바마의 미국은 서아시아 주요국과 양자적 정상관계를 유지하면서 힘의 쏠림을 방지함으로써 전반적인 안정화 관리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 전제가 이팔 문제에 있어서의 불편부당한 모습 보여주기였고, 두 번째 조건이 핵 무장화를 막은 이란을 주요 행위자로 받아주는 데 있었다.

이러한 전략은 아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권 승계를 전제로 하여 장기적 과제로 설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이란 제재 해제를 통해 투자가 유치되고 자유로운 분위가 확산될 경우 이란내부의 정치개혁을 견인,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안정적인 체제로 점차 변해갈 수 있음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은 모든 전략적 이해관계를 재편했다.

트럼프의 서아시아 양대 신화 복원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서아시아 정책을 180도 뒤집었다. 특히 전술한 양대 신화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복원하여 일방적 편들기를 재개했으며, 동시에 이란에 대한 견제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이란 핵협상에 대한 파기 가능성 언급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스라엘 관계 되살리기: 예루살렘 선언 및 대사관 이전

논쟁의 중심이 된 예루살렘
출처: 이미지 투데이

트럼프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를 친시오니스트로 임명했다. 부동산 파산 전문가인 데이비드 프리만 변호사다. 그는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및 예루살렘 쟁점 등에서 이스라엘 보수층과 입장을 같이하는 인사다. 대통령의 복심을 전달할 특명전권대사로 시오니스트 성향의 인사를 보냈다는 것은 네타냐후 보수 연정과 방향성을 같이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리고 2017년 12월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수도가 예루살렘임을 공식 선언하면서 향후 주 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5월 14일 예루살렘에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국제사회는 요동했다. 기본적으로 이팔 문제의 핵심은 ‘두 개 국가 해법’ (two-state solution) 이며 팔레스타인의 주권 국가 독립을 목표로 한다. 팔레스타인이 하나의 주권 국가가 되기 위한 ‘최종 지위 협상’ (final status negotiation)의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동예루살렘 영유권 문제였다. 트럼프의 선언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비롯, 기본적으로 두 개 국가 해법 자체를 부정하는 뉘앙스가 담긴 메시지였다.

이는 외교 전략상 무모한 선택이었다. 외교 전략은 적국을 최소화하고 우방을 극대화 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은 이스라엘을 만족시키는 대신 아랍 연맹 22개국을 포함 이슬람권 57개국이 일거에 미국을 비판하며 적대시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스스로에게도 오히려 위기 국면을 가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 분노한 팔레스타인 국민들이 제3차 인티파다를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카드를 꺼내어 들면서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일단 국내정치 지지층 복원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 내 시오니스트 성향의 유대인들과 복음주의 중 세대주의 (dispensationalism) 종말론을 신봉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하는 근본주의 계열 유권자들을 의식했다. 실제로 35% 이하로 추락했던 지지율이 최근 40%를 상회하는 등 반등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본인이 시오니즘 성향이라거나 초정통파 유대인의 신념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동안 반유대주의자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진입하면서부터는 명확한 친 시오니스트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친이스라엘 정책기조는 오바마 노선 제척 (anything but Obama) 및 국내정치적 동기에 기반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멀리하기:

핵협상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 파기

2015년 타결된 이란 핵협상에 관한 트럼프의 견해는 초지일관 비판적이었다. 즉 오바마가 범한 최대의 실수이자 잘못된 협상이라는 것이다. 후보시절부터 트럼프는 잘못된 협정 문안을 파기하겠노라 공언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핵협상안에 대한 발언 수위를 조절해왔다. 인수위 가동 시절에는 전면 재검토를, 정부 출범 이후에는 재협상을 언급했다. 2017년 10월 13일 이란핵 합의 재검토법 (INARA)에 따라 핵협정 합의문 준수 거부 (불인증) 선언을 했고, 2018년 1월 12일 제재 이행 승인을 유예하면서 120일간의 유예기간동안 협상 조항 개정을 요구했다.

이 연장은 한시적 조치로서 4개월 안에 미국이 원하는 조항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트럼프는 협정 파기 수순으로 갈 것임을 공언했다. 미국은 이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제재, 이란내 모든 군사시설 조사, 일몰 규정 삭제 등이 포함된 개정안을 요구했다. 유럽의 치열한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특히 13년 후 이란이 정상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며 그리고 5월 8일, 최종 발표 예정일을 나흘 앞두고 트럼프 정부는 전격적으로 이란 핵협상 파기를 선언했다.

이란 핵협상 파기는 일단 오바마 행정부의 성과에 대한 전면 부정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실제로 이란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이익을 얻는 미국 내 기업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보잉을 비롯한 항공 업계와 석유 메이저 기업 상류부문 그리고 자동차 부문 등은 이란 시장 개방이 가져올 과실에 관심이 많다. 자칫 유럽이 독점하는 시장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최근 미국의 핵협정 문제 제기 및 스냅백 (제재 복원) 가능성을 면밀히 주목하는 이유다.

역대 미국 정권 대중동정책비교
출처: 인남식, [미국 신행정부의 대(對) 중동정책], 주요국제문제분석, 외교안보연구원, 2017.07 응용
사진 출처: https://www.whitehouse.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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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서아시아 전략

트럼프의 지역 전략은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기본 방향성은 오바마와 같다. 즉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피로감을 증폭시켜오고 피해를 확산시킨 서아시아의 분쟁과 갈등에서 탈피하려는 것이다. 즉 아메리카 퍼스트 (America First)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영광 회복과 동시에 복잡한 지역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가 함께 담겨있다.

일종의 고립주의 노선과 함께 이윤 극대화 의지도 피력하고 있다. 즉 미국의 안보 우산 하에 있던 서아시아내 동맹국에 대한 비용 분담과 더불어 안보 제공을 대가로 하는 데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정 승계 지지 및 이란 위협 공조를 대가로 막대한 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트럼프는 뚜렷한 서아시아 지역 전략 없이 사안별로 동맹국에게는 동맹국대로, 적성국가는 적성국대로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압박과 회유를 통해 이익 극대화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현상 유지 (status quo)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졌고, 동시에 돌발 변수 발생시에도 미국의 개입 최소화 노선에 따라 상황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정책 기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황에 따른 선별 개입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가능한 한 미국의 손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서아시아의 혼돈과 거리두기를 하되, 이익이 담보된 경우 적극 개입을 필요에 따라 시도할 것이다. 때로는 전략적으로 일관성이 없어보여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전략, 이념, 궁극적 목표 등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익을 누가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슬람 견제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미국 내 트럼프지지 계층과 연결된다. 공화당의 주류도 이슬람에 대한 견제 정서가 있지만, 특히 트럼프를 열혈 지지했던 그룹은 근본주의 성향의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다. 특히 이슬람을 싫어하는 그룹이다. 트럼프는 이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기에 이슬람 친화적이었던 오바마 정부와는 달리 강한 견제 발언을 계속 천명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반 이슬람 이민 정서도 이 지점에 있다.

셋째,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미국의 개입 대신 아랍의 행위자들이 전면에 나서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걸프 왕정국가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무임승차해왔다고 믿는 트럼프는 이들이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아시아에서 직접 안정자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은 일단 상황만 크게 조정해주고, 빠질 터이니, 현지의 주요 국가들이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혼돈의 서아시아, 그 불투명한 미래

트럼프 등장 후 부시 행정부의 재현 아닌가 하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부시 공화당 정부와는 정책 기조 자체가 다르다. 부시의 서아시아 전략은 전역에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한 평화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이상주의적 이념형에 가까웠다. 비록 공세적 현실주의 노선을 독트린으로 내세우고 선제공격을 시행하기도 했지만 이념의 기저는 이상주의였다.

오바마는 부시보다는 상대적으로 현실주의적 성향이 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상주의적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부시의 이상주의가 개입을 통한 서아시아 변혁에 가까웠고, 필요하다면 무력개입도 용인할 수 있다는 적극적 이상주의였다면 오바마는 소극적 이상주의 노선을 보였다. 다시말해 이슬람과의 대타협, 문명론적 협력, 상대주의 수용 등의 다소 진보적인 문명 협력 기조를 근거로 평화를 추구하는 입장이었다. 정책의 구체성을 보아도 오바마는 서아시아 지역 주요 강국들의 세력 균형을 통한 평화, 즉 관리되는 평화를 지향하는 등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성향을 혼재하고 있었다.

반면 트럼프는 현실주의자다. 국가이익이라는 지고의 가치 외에 여하한 이념과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정통 현실주의자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전통적 현실주의 노선은 동맹의 가치, 힘의 균형 등을 추구한다. 반면 트럼프는 일단 현장 탈피를 통한 우리끼리 잘 살기를 외친다. 이는 수정주의 (revisionism)에 가깝다. 단순한 고립주의로 규정하기도 힘든 이유는 이익이 작동하는 곳에는 필요한 개입을 하겠다는 선별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변화에 따라 서아시아 지역의 패권은 이미 러시아에게로 이전되고 있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즉 부시 이후 미국의 존재감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그 공백을 시리아 내전 이후 러시아가 채우고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의 존재감은 서아시아 전역의 정치질서를 교체하고 있다. 한동안 정치발전의 순경로로 인식되어왔던 민주주의는 이미 의미가 퇴색되었다. 자기 국민 35만 죽음에 책임이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를 여하한 상황에서도 지지하고 보호하는 러시아는 서아시아를 넘어서 중앙아시아 권위주의 정부에게 확실한 시그널을 보냈다. 러시아 푸틴 동맹에 가담하면 어떤 일을 해도 정부를 보호한다는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러시아의 존재감은 주요국가의 급격한 권위주의화로 이어졌다. 동시에 서아시아 내부의 종파 축선도 뒤흔들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보수 왕정축의 친미 진영과 이란이 주도하는 시아파 혁명세력 측의 친러측 진영이 양분되는 형국이다. 그리고 현재 점차 친러축이 세를 확장하는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오마바 정부때는 제네바 프로세스를 통해 미국과 유엔이 시리아 평화협상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러시아 푸틴 정부가 이란, 터키와 함께 아스타나 프로세스로 시리아 문제를 견인하고 있다. 시리아에는 더 이상 인권, 민주주의, 자유 등의 가치가 논의될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서아시아의 혼돈 증폭에 대해 더 이상 깊이 관여할 의지도 열정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국의 이익을 계산할 때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으나, 국제 공공재로서의 안보 및 평화 확산이라는 소프트파워의 한 축의 부재는 서아시아의 겨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저자소개

인남식 교수(in@mofa.go.kr)는
영국 Durham 대학 중동이슬람연구원에서 중동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외교부 국립외교원에서 미주연구부장을 맡고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중동 이슬람권 국제정치, 미국의 대외정책, 종교적 극단주의 테러리즘 및 국제에너지 이슈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국제 갈등의 이해,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현대외교정책론 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참고문헌
  • Bledar Prifti, US Foreign Policy in the Middle East: The Case for Continuity (N.Y.: Palgrave Macmillan, 2017)
  • Flynt Leverett and Hillary M. Leverett, Going to Tehran: Why America must accept the Islamic Republic of Iran (N.Y.: Picador, 2014)
  • John J. Mearsheimer and Stephen M. Walt,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London: Farrar, Straus and Giroux, 2007)
  • Marc Lynch, “Obama and the Middle East,” Foreign Affairs (Sept./Oct.2015) (N.Y.: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