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계속되는 삶의 여진: 포항지진 후 1년

지난 2017년 11월 15일에 발생한 포항지진은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유례가 없이 큰 지진이다. 이 글은 지진 이후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 지진으로 인해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연구한 과정과 결과를 담은 조사노트이다. 사망자와 재산 피해 금액상으로는 포항지진은 대형 지진이 아니지만 이재민 문제, 구조부가 파괴되거나 불안한 건물의 복구 문제, 트라우마, 우울증을 비롯한 심리의 문제 등에 있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며, 그 회복은 현재진행형이다.

7396
© DIVERSE+ASIA
자료: 기상청

김준홍 (포스텍)

포항지진 후 1

재난은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재난이 발생하면 기본적인 사회적, 문화적, 물질적 필수품이 고갈되거나 줄어들기에, 그 사회와 문화의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난다(Oliver-Smith 1996). 포항 지진 후 1년 남짓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본 연구는 그 뼈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려는 시도이다. 지금까지 포항지진에 대해서 지열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인가에 대해서는 학술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인 연구가 많지만, 지진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혹자는 일본이나 인도네시아, 칠레 등 소위 불의 고리(ring of fire)를 비롯한 지역에서는 포항지진보다 지진 피해가 훨씬 더 컸으며, 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지진에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변화하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1]

포항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물어보아도 지진 당시에 상당한 두려움이 있었고, 집 바깥으로 대피하기도 하였고, 집에 살짝 금이 간 경우도 있었으며, 지진 후 트라우마가 꽤 오래 지속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였으며 재산피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복구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2017년 11월에 15일에 발생한 포항지진은 적어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로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피해가 큰 지진이며,[2] 전례 없이 대규모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한반도에서 새로운 유형의 재난이기에 그에 따르는 사회적 변화도 다를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현지조사를 수행해보니 그 예상이 틀리진 않았다.

© DIVERSE+ASIA
자료: 기상청
포항지진의 심리적 충격

처음에는 인터뷰가 중심인 질적 연구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좀 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고 포항 시민들의 집단적인 인식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설문조사를 추가하게 되었다. 연구를 모두 해놓고 보니 아직 인터뷰 연구의 샘플이 작지만 설문조사 연구나 면담 조사나 그 결과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3]

포항 시민 설문조사 주요 내용
출처 : 포스텍 지진조사연구단

설문조사(N=500, 연령 및 거주지역, 성별 할당[4])는 트라우마 척도, 우울증 척도를 비롯한 심리적인 부분, 포항에 대한 감정, 정부와 지자체의 지진 대응에 대한 평가로 구성되었다. 기존에 포항시에서 진행한 설문조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와 차별되는 질문을 하고 좀 더 내용이 풍부한 질문을 하려 노력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어떤 재난이 발생하면, 과거에는 재산, 신체피해 등에만 주목을 했는데, 우리 연구팀의 설문지에는 심리적 피해에 대한 질문을 많이 포함시켰다. 샘플의 숫자가 사회조사치고는 작은 편이기 때문에 지역별 할당에도 신경을 썼다.

설문조사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포항 시민들이 느끼는 정신적 충격이 예상한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자기가 생각했을 때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80%에 이르렀으며, 약 86%의 응답자가 또 다른 지진에 대한 공포를 겪은 것으로 보았을 때 지난 지진은 거의 대부분의 포항시민에게 심리적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도 41.8%의 주민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5] 이는 설문조사의 오차 등을 고려해 보더라도 놀랄만한 수치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남구보다는 북구 거주민들이, 북구 타지역보다도 흥해읍 주민들이 더 높은 트라우마 점수가 나왔다. 이는 기존 재난 연구에서의 여성이 남성보다 더 트라우마에 취약하다는 보고와 일치하며, 흥해읍이 가장 높은 트라우마 점수가 나온 것은 진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18세 이하의 청소년 및 아이들은 연구 윤리상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해서 촉박한 조사 일정동안 조사하지 못했지만, 면담조사 또는 포항시 재난심리지원센터 직원들에 의하면 아이들이 겪는 심리적인 충격도 어른 못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면담자를 통해서 전해들은 트라우마 정도가 심한 아이들은 지진으로 인해서 갈라진 틈이 아닌데도 조금만 땅이 갈라진 것 같이 보이면 그 위를 걷길 거부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포항에는 아동 심리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가 없어서 트라우마가 있는 아동은 타지역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다른 설문에 대답한 결과를 보면, 포항을 떠나 살고 싶다든지, 포항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졌다든지, 혹은 다른 지역에서 포항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반면, 재산상의 피해는 예상한 바와 같이 그리 크지 않았다. 500명 중에서 100만 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21.6%였다.

그 밖에 지난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인재라는 생각을 하는 포항시민들도 많았고, 경제적 보상이나 대비 훈련 등이 미흡했다는 불만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보상과 관련된 문제는 뒤에서 더 상술할 것인데, 보상금액 총액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보상금액을 분배하는 기준이 불명확하고 공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만인 것 같다. 이런 불신, 불만들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쌓이고 쌓이다 보면 지역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앞으로도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도 피해자 각 가정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많았던 안산의 지역사회에 재난의 여파가 상당히 크고 오래 지속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지난 포항 지진도 이곳 지역 공동체 수준에서 많은 충격을 주었고, 따라서 개인적인 수준의 복구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의 정신적인 문제는 일반 상식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며, 재난의 피해자는 다양한 이유로 인해 오랫동안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Cohen 2002).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자원이 있는 한, 이들에 대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고위험군을 찾기까지

처음 고위험군 및 이재민을 면담조사하기로 계획했을 때 가장 고심했던 문제는 어떻게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였다. 처음에는 기존에 포항 지진을 연구했던 연구진의 추천을 받아 포항재난심리지원센터를 소개받았다. 기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와 지진 이후 대처상황 및 고위험군의 심리 상태에 대한 면담을 하였고, 그들로부터 정신건강 고위험군을 소개 받아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소개시켜준 작은 샘플에 만족할 수 없었고, 면담을 진행한 분들 중에서는 실제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었기에 직접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흥해읍 일대를 돌아다녔다.

학교 건물 두 동 모두가 피해를 입어 9개월 여 동안 근처에 있는 다른 두 개의 학교와 더부살이를 했던 흥해초등학교도 방문해보았고, 주민 그 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썰렁하다고 알려진 흥해시장을 돌아다니기도 했으며, 전파 판정이 나서 그 당시에는 빈집이었던 아파트 주변도 둘러보았다. 흥해초등학교에 있던 두 개의 큰 건물 중 하나는 전파 판정이 나서 철거를 한 상태였으며, 다른 한 건물은 보강공사를 한 후 사용하고 있었다. 전파 판정이 난 건물 자리 반대편에는 커다란 컨테이너 건물이 있었고 교무실과 교장, 교감실 및 몇 개의 교실이 그 내부에 있었다. 방문 당시 있던 선생님들 및 행정사들과 면담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말하거나, 그 이상의 것을 물어보면 교감선생님을 만나보길 권유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자유롭게 말하는 데 족쇄로 작용하는 듯 보였다.

1개 건물 철거 후에 재건축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 흥해초등학교
출처 : 저자 제공

마음 속으로 고위험군을 만날 것으로 기대했던 선택지들이 하나 둘씩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어느 날, 전파 판정을 받은 한 아파트 근처에서 분식점에 들르게 되었고, 이후 그 분식점에 여러 번 들르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 분식점은 말하자면 그 동네의 아지트 같은 곳이어서 다양한 나이대의 많은 사람들이 들르고, 주인 아주머니는 거의 모든 손님들과 그들의 식성을 다 알고 있었다. 우리 연구진이 그 분식점을 처음 방문했을 때 아주머니는 대뜸 “이 지역 사람이 아니시죠?”라며 무슨 목적으로 흥해읍을 방문했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세 번쯤 방문했을 때 우리는 솔직하게 우리의 연구 목적을 밝히고 의견을 묻고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아주머니에게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나왔다. 아주머니는 전파 판정을 받아 모든 주민이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아파트를 가리키며,

“저 분들도 고생했지만, 지원받은 것을 따지고 보면 그리 손해 보진 않았어요. 대출여력이 없는 노인들이 문제지 젊은 사람들은 별 문제 없어요. 사실 집에 별 피해도 없는데 소파[6]로 판정받아서 거의 공돈 백만 원 받은 사람들도 많아요. 보상금 나온 날 포항 롯데백화점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어요.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진짜 불쌍한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저기 뒤에 있는 한미장관맨션 같은 분들이죠.”

언론에서는 전파판정을 받은 아파트 주민들을 주요 피해자의 전부인양 다루지만 사실 더 큰 심리적, 재산적 피해를 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중에 포항시에서 발표한 공식 지원 상황과 주민들의 말을 적어 놓고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니 아주머니의 말씀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미장관맨션의 저간 사정을 많은 언론에서 다룬 바가 없진 않았지만,[7] 우리는 더 깊은 이야기를 원했다. 우리는 아주머니로부터 소개를 받아 한미장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들과 유일하게 남아 있는 대피소인 흥해체육관에서 지내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미장관맨션 외벽의 현수막들
출처 : 저자 제공
행정적 대처의 공정성: 고위험군

한미장관 비상대책위원회, 흥해체육관 이재민 및 그밖에 포항 북구 지역에서 만난 트라우마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중심으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 트라우마의 정도는 진앙지에서 가까울수록 더 심하고 (지리적으로 말하면 죽도시장을 기점으로 북쪽에 있는 분들이 대체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신체적 상해를 겪었을 때, 재산상의 피해를 당했을 때, 남성보다는 여성이,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년층과 아이들이 더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정신적 충격이 심한 사람들은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토로했다.

면담자 중에서 가장 트라우마 정도가 심각해 보이는 케이스는 수면제와 술이 없이는 단 하루도 잠을 잘 수 없는 한 여성이었다. 이 중년 여성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본인을 포함해 아래윗집 모두 다 층간소음에 민감해졌고 실제로도 층간소음이 증가하여 이웃 및 가족 간의 다툼도 많아졌고, 아파트의 화장실은 유리창이 깨지고 일부 타일은 떨어져 나갔으며, 복지센터를 운영하는 사무실에서는 지진의 충격으로 인해 벽이 많이 갈라져 있고, 그 갈라진 벽을 보고 있기 너무 흉해서 페인트와 석고를 바르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본인의 몸과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보니 복지서비스를 받는 회원이 이전의 70% 정도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지진 후에 삶이 송두리째 바뀐 이 여성이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잠을 충분히 자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무실 임대기한이 끝나고 지진 피해가 덜한 건물로 사무실을 옮기는 것이다.

포항시의 지진 피해 보상 기준
출처 : 포스텍 지진조사연구단

두 번째는 포항시의 보상체계가 체계적이지 않고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민들 중에서는 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적게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다주택자라는 이유로 보상금이 그에 비례해서 깎인 사람들도 있었다. 의료비의 경우에도 지진 당일 병원에 간 사람들은 모두 지원을 받았지만 이후에 지진의 여파로 병원에 간 사람들은 지원을 거의 못 받았다. 주택 파손에 대한 보상체계와 절차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주택 파손에 대한 보상은 지붕, 기둥, 벽체 등의 구조부가 얼마나 파괴되었는가에 따라 3단계로 나뉘는데(이를 전문용어로 전파, 반파, 소파라고 한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는 다른 주택과는 달리 반파 기준이 없다(즉, 전파와 소파 2단계뿐이다). 주택의 경우에는 반파로 판정받더라도 보상금만 적을 뿐 전파 주택과 동일하게 철거비용을 지원받고 집을 재건축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는 반파 기준이 없다보니 소파 중에서도 전파에 가깝게 집의 구조가 불안한 집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불만이 상당히 높았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는 한미장관맨션의 주민들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그들은 집에 1미터의 금이 간 소파와 전파에 가까운 소파가 어떻게 보상기준이 같을 수 있냐고 주장했다. 5층 공동주택 4개 동으로 이루어진 한미장관맨션의 경우, 아파트 곳곳에 금이 간 것은 물론 창틀과 문의 아귀가 맞지 않는 곳이 많으며, 심할 경우에는 우천 시 무방비로 비가 새는 집들도 있었다.

한미장관맨션 D동 외벽 상황
출처 : 저자 제공
한미장관맨션 피해가 심한 가구 내부
출처 : 저자 제공

세 번째는 흥해체육관에서 거의 만 1년을 지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포항시 측에서 이재민들을 보호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측면이 강했다는 점이다. 지진 직후에는 대피소가 많았는데, 하나씩 대피소가 폐쇄되면서 폐쇄된 대피소에서 잔류를 원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대피소로 옮기고자 하여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언론에서 취재가 나오거나 고위공무원 방문 시에만 좋은 식단이 나온다든지, 선거에 사진 찍기 장소로 이용된다든지, 손난로, 빨래방, 난방 등 기존의 서비스가 하나씩 줄어들고 있다든지, 바깥에 비춰지는 자신들의 생활과 실제 자신들의 생활이 다르다는 것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자신을 시민, 군민, 면민도 아니라며 버려진 존재라고 표현했다.

 

지진 후 공동체의 회복

시민들이 재난을 당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주체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가 포항시, 정부와 같은 공공기관이라면,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는 국민성금이라든가 자원봉사자 활동, 시민의 공공정책에의 참여 등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우리 연구팀이 조사를 깊게 하지 못했다. 시민사회가 재난의 회복에 주요한 역할을 한 사례로는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이 대표적이다. 앨드리히(2011)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재난 회복에 주요한 요소로 여겨지는 피해 정도, 인구 밀집도, 경제적 조건, 사회 불평등 정도보다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훨씬 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 연구진이 주목한 시민단체는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를 비롯한 몇몇 단체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 단체에게 공동체의 회복은 주요 목표가 아니었고, 대부분 지진의 원인을 지열발전소로 지목하면서 국가나 지자체를 상대로 보상금을 얻고자 하는 모임이었다.

한편, 공공기관의 역할은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자원을 나누어주고, 의료나 소방 등의 지원을 해야 하는 것인데, 피해 주민들은 이런 면에서 부족함이 많다는 토로를 하였다. 앞서 다룬 한미장관맨션과 흥해체육관의 사례는 공공기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에 대한 충분하지 않은 행정 처리와 지원은 지진이라는 생소한 유형의 재난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공기관 측의 행정편의주의에서도 기인한 바가 있다. 이에 덧붙여 스트레스로부터 트라우마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미국 9·11 이후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을 추적조사하고 심리지원을 하는 데 비해, 아직 4년 남짓 지난 세월호 심리지원이 중단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포항지원의 경우도 흥해읍에 재난심리지원센터를 건립해서 10명 남짓의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를 채용하여 내방자에게 심리 상담을 하고 지역 내 정신과 전문의에게 연결시켜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 인원으로는 추적조사는 역부족이다.

공공기관이 앞으로도 여러 할 일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전파주택의 재건축 문제라든지, 흥해지역 특별재생사업의 집행, 한미장관맨션 등의 파손정도가 심한 소파 주택 주민들과의 갈등 해소, 포항지진 지열발전소 간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정부조사단 활동 등 아직도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주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많은 이들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모든 사업들이 집행되었으면 한다.

 

저자소개

김준홍(junhongkim@postech.ac.kr)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이다.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생물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포스텍에 부임하기 이전에 서울대, 경찰대학, 경희대, 충북대 등에서 시간강사를 했으며,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세계인문학포럼 사무국장 등을 거쳐 왔다. 스스로를 생물인류학자 그 중에서도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자라고 규정짓는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연구 분야 중에서도 인간의 협동, 문화의 계통발생도에 관심이 많다.

 


본고는 김준홍·김원규(2018), 박효민(2018)의 연구과정을 기술하고 결론을 요약하고 좀 더 쉽게 풀어낸 글이다.

[1] 공식 통계에 집계된 지진 당일에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진으로 인한 충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제법 될 것으로 짐작된다. 면담자(N=20)의 지인 중에서 그렇게 사망한 사람이 꽤 되었다. 지병이 있었는데 지진 후 한 달 이내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 중 한 케이스는 남성 노인이었는데, 지진 당일 집에 금이 너무 많이 가고 정신적 충격이 커서 부산에 있는 아들네 집에 며칠 다녀왔는데, 포항 집으로 돌아온 밤에 수면 중에 사망했다.

[2] 지진 규모상으로는 2016년에 발생한 경주지진(5.8)이 포항지진(5.4)보다 더 컸지만, 포항지진은 경주지진보다 진원의 위치가 더 얕았고 여진의 강도가 더 강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부상93명 vs 23명), 이재민(1,797명 vs 111명), 복구비(1,445억원 vs 145억원)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처럼 포항지진이 피해가 더 컸다.

[3] 설문지는 필자를 비롯하여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소 연구팀(김준홍·박효민·노승욱·김원규·원태준)이 함께 작성하였으며, 분석은 박효민이 수행했다. 현지조사는 필자와 김원규가 함께 진행하였다.

[4] 지역별 할당은 흥해읍에서 50명, 흥해읍을 제외한 북구에서 200명, 남구에서 250명으로 설문조사 업체(칸타 퍼블릭)의 조사관이 직접 면접하였다. 조사결과의 오차 한계는 신뢰수준 95%에서 ±4.38%이다.

[5] 포항지진의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측정하기 위하여 “한국판 사건 충격척도 수정판(Korean Version of Impact of Event Scale-Revised; IES-R-K)”을 사용하였다. 이 척도는 총 22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증상인 침습(intrusion), 회피(avoidance), 과각성(hyperarausal)의 증상을 측정하도록 구성되었으며, 22문항은 각각 회피 8문항, 침습 8문항, 과각성 6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응답은 ‘전혀 없다’(0점)에서 ‘자주 있다’(4점)까지 응답할 수 있으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판별 분할점(cutting point)은 25점으로 알려져 있다.

[6] 소파는 구조부가 50퍼센트 이하 파손되었으나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포항지진의 경우 소파판정을 받으면 재난 지원금 100만원에 구호금 100만원까지 해서 2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밖의 판정 기준, 즉, 전파 및 반파에 대해서는 다음 절 참조할 것.

[7] 한미장관맨션 관련 가장 정리가 잘 된 공중파 방송은 KBS2 <제보자들> 2018년 8월 6일 방송분(포항 지진 265일,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참고문헌

  • 김준홍·김원규 『포항 지진 1년, 치유되지 않은 상흔; 끝나지 않은 싸움의 기록』포항 지진 연구 프로시딩,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소. 2018.
  • 박효민 『사회조사로 살펴본 포항지진의 트라우마』포항 지진 연구 프로시딩,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소. 2018.
  • Aldrich D. P. “The power of people: social capital’s role in recovery from the 1995 Kobe earthquake.” Natural Hazards 56(3): 595-611. 2011.
  • Cohen R. E. “Mental health services for victims of disasters”World Psychiatry 1(3): 149-152. 2002.
  • Oliver-Smith A. “Anthropological Research on Hazards and Disasters”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25: 303-328.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