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통합담론으로서의 유목문명과 유라시아주의

중앙아시아가 다시 통합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한번 독립한 국가들은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하며 다시 하나가 되려하지 않는다. 특히 개별국가의 지배엘리트들은 자신의 권력을 잃을 수도 있는 통합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단기간에 중앙아시아의 재통합은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외부와 물물교환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과거 유목민들의 생존방식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또한 다양한 정치, 경제적 요인들로 역내 국가 간 갈등이 존재하는 것도 난관이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는 서로 연결되어 살아온 초원유목문명을 공유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이러한 공동의 문화적 유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거쳐 시대담론으로 계승되고 있는 유라시아주의가 바로 그 증거이다.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의 공존과 연대를 추구하는 유라시아주의는 중앙아시아 재통합의 사상적 토대요 희망이다. 각 나라들이 패권적 욕심을 버리고 평등한 협력을 추구한다면 재통합이라는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1982

이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초원문명공동체와 유목민의 생존방식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는 초원유목문화를 공유하는 하나의 문명공동체로 볼 수 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독자성과 전통을 가진 다양한 민족과 씨족, 부족으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초원문명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용해되어 살아왔다. 정착해서 살수 없는 건조하고 거친 땅으로 인해 물과 초지를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조건이 다양한 민족과 부족의 교류와 혼혈을 만들어 냈다. 아울러 광대한 평지로 조성된 초원지형으로 인해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기 어려웠던 점도 잦은 침략으로 인한 민족 간의 혼합을 촉진시켰다. 때론 제국들의 지배를 받았고, 현재는 5개국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지대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뒤섞이며 살아온 유목민들의 후손들이다.

실크로드를 이동하는 낙타 행렬
출처 : 위키미디어

초원문명의 개방성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유목민들의 생존방식을 알아야 한다. 비옥한 농경지에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정착민들에게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국경과 성벽을 구축하는 방어행위가 생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유목민들에게는 부족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이웃민족과 교역을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유목민들에게는 국경과 성벽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왕래하며 교역할 수 있는 환경이 생존의 전제조건이었다. 다시 말해 유목민들에게는 교역을 어렵게 하는 국경이나 이웃과 담을 쌓는 성벽이 없는 열린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들에게 적대적이거나 배타적인 정착민들에게 끊임없이 다가가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야만 했던 유목민들의 삶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이 발전하여 교역을 통해 이윤을 남기는 실크로드 상인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낯선 이민족들을 연결하면서 상품과 문명을 전파하는 산파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발굴된 그물무늬 유리잔(왼쪽)과 카자흐스탄 카라아가치 지역에서 출토된 유리잔으로 밑받침을 제외한 장식과 재질이 똑같은 모습이다. 이는 한반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이 고대 실크로드 교역망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출처 ; 박천수 경북대 교수 제공

이렇듯 목숨을 걸고 이민족과의 물물교환에 나서야만 했던 유목민들에게 교류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 유목민들의 척박했던 삶의 조건이 역설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교류를 이끌어 내고 국제무역망을 넓히는 에너지였던 것이다. 칭기스칸이 건설한 몽골제국 역시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교역로를 개척하려고 했던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몽골제국이 다양한 종교와 민족을 존중하면서 통합에 힘쓴 이유도 거대한 대륙을 교역하기 좋은 연결된 공간, 공동의 교류장터로 만들고자 함이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초창기 실크로드의 발생지로 오랜 기간 동안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활 공동체였다. 현대에 이르러 여러 나라로 국경이 나누어져 있지만 이는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들의 문화와 정신 속에는 여전히 자유롭게 경계를 이동하며 살아왔던 유산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분열을 가속화 하는 현대의 정치, 경제적 요인들

유목민들의 절박했던 삶의 조건은 현대에 와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막과 건조지역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고, 2차, 3차 산업의 발달로 농경과 목축에 의존하지 않아도 주민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던 건조지대는 석유와 광물자원이 매장된 부유한 땅으로 변모했다. 이제 중앙아시아에서 목축은 과거의 유산이 되어가고 있다. 돈만 있으면 전 세계에서 생산된 생필품을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다.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이민족과 물물교환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현재 중앙아시아를 나누어 놓은 5개국의 국경은 구소련 중앙정부가 이 지역을 분할통치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지방행정구역의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소련제국이 붕괴하고 현재의 중앙아시아 5개국이 독립하면서 경계선은 국경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경기도, 충청남도의 경계가 분리 독립으로 국경이 되어버린 경우라고 할까.

정권을 잡은 신생국들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고 독립국가의 정체성을 고취하는데 열중했다. 특정 민족을 내세우는 민족주의를 경쟁적으로 홍보하면서 이웃국가들과의 오랜 역사적 동질성 보다는 차별성, 이질성을 확대 재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립 이래로 중앙아시아 각국의 정권들이 경쟁하듯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 민족주의와 이슬람 정체성을 강조해왔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소련지배의 잔재를 없애는 목적도 있지만 이웃국가들과는 다른 역사와 민족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여 신생국의 국가성을 강화시키고 국민의 국가적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요인은 결과적으로 중앙아시아의 통합보다는 분열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요인들은 민족, 국경분쟁과 이슬람 과격단체의 활동을 초래하면서 심리적 분열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자원 활용에 대한 경제적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 역시 중앙아시아의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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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위키미디어

 

난관 속에서도 공존을 이야기하는 유라시아주의의 계승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통합은 요원한 것인가?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변수와 요인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점은 여러 국가로 분리되어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공존과 통합을 이야기하는 사상들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주요 사상 중에 하나가 바로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다. 유라시아주의는 국가와 민족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개념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속한 국가들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와 행동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사상적 배경이 되고 있다.

우선,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를 보자. 러시아 입장에서 유라시아주의는 슬라브 민족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슬라브 민족 이외에 타 민족들도 포용하는 유라시아주의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20세기 초 유라시아주의자였던 트루베츠코이(Nikolai Trubetzkoy)와 레브 구밀료프(Lev Gumilev)는 러시아의 역사 속에 나타난 동양적 영향을 중시하면서 타타르, 투르크 및 몽골과 교류하면서 형성된 러시아의 복합적인 민족 기원을 강조했다. 사실 러시아 슬라브 민족 역시 수없는 혼혈로 계승된 민족이다. 이는 다민족 국가인 광대한 러시아 영토와 역사적 배경에서 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특히, 구밀료프는 슬라브-투르크 운명공동체 개념을 주장하였는데,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거센 비판과 저항을 받아 한때 출판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밀료프의 유라시아 개념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아시아적, 동양적 정체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들에게 러시아 문화는 유럽과 아시아적 특징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을 믿는 민족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인식시켰다.

이러한 개념을 계승하여 현재 러시아에서 유라시아주의는 수많은 종교, 역사, 문화, 민족들이 교차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단순히 공간의 통일성을 넘어 초민족적, 초정치적으로 모든 문화의 모자이크적 통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 즉 유라시아주의는 슬라브 민족과 투르크 민족,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이 한 데 어우러진 민족과 종교의 조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상적 토대이다. 이는 이전의 서구주의 또는 순수 슬라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가 유럽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푸틴 정권 하에도 이러한 넓은 개념의 유라시아주의가 중시되고 있는데, 이는 ‘강한 국가 재건’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옛 소련영토를 다시 묶어내려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혹시 러시아가 이러한 유라시아주의를 구소련에 속했던 지역을 다시 지배하려는 논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중앙아시아를 자국의 문명적 영역으로 여기고 있는 터키 역시 유라시아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터키의 유라시아주의는 투르크 민족과 이슬람을 지역에서 투르크 문화권의 재통합을 모색하는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중앙아시아 투르크 공동체가 독립하자 터키는 이들의 맏형 역할을 자임하면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있는 범 투르크 민족의 연대강화를 통해 자국의 영향력 증대를 추구하고 있다. 투르크 문명권과 오스만 제국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터키에게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의 출현은 투르크 형제들을 다시 결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수평적 연대를 추구하는 카자흐스탄의 유라시아주의

중앙아시아에서 개방경제정책으로 단기간에 높은 수준의 발전을 이룩한 카자흐스탄도 유라시아주의를 표방한다. 그동안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온 탓에 카자흐스탄과의 관련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카자흐스탄의 국가형성과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사상적 배경이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1991년 독립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연결자로서의 ‘유라시아 국가(Eurasian state)’를 표방하면서 두 대륙의 ‘가교(bridge)’이자 ‘매개자’로서의 자국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러한 유라시아주의의 핵심 가치는 카자흐스탄 대내외 정책을 통해 역동적이고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중이다. 단순히 지리적 연결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적으로는 자국의 문화, 민족, 종교의 다양성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은 물론, 대외적으로는 서로 다른 국가와 민족들을 소통시키고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을 카자흐스탄의 국가적 사명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유라시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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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지은, 2014, p. 117-147; 위키미디어

이러한 사상적 배경 속에서 카자흐스탄은 대외정책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이자 ‘연결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카자흐스탄은 독립 이후 다양한 국가 및 국제기구와 협력관계를 확대하고 자국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중간성과 문화, 종교, 민족적 다원성이란 자산을 활용해 유라시아주의적 역할을 실현코자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특정 강대국에 편중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국가들과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실리외교를 전개하면서 중앙아시아의 외교적 지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양자 ‧ 다자 관계를 통해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 냄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1994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유라시아연합(Eurasian Union)’, 1999년 카자흐스탄이 주도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뿐 아니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경제협력기구(ECO), 상하이협력기구(SCO), 이슬람협력기구(OIC), 투르크위원회(Turkic Council) 등의 참여는 카자흐스탄의 외교적 지평이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 아시아, 이슬람권을 포괄하는 유라시아대륙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주변국가와의 경제공동체 건설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카자흐스탄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지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의 안정과 통합을 주도하는 주요 행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2018년 유라시아경제위원회 정상회담에 참석한 회원국 정상들. (왼쪽부터) 티그란 사르키샨 유라시아경제연합 위원장,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에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출처 : 유라시아 경제위원회

 

중앙아시아 통합담론으로서의 유라시아주의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과 아시아적 요소가 공존하는 러시아, 중앙아시아, 터키 등에서 유라시아주의가 서로 의도하는 바가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유라시아주의가 다양한 민족과 종교의 조화로운 공존을 강조하는 사상적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구소련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터키는 대륙에 퍼져있는 투르크민족의 재결함을 통해 맹주로 거듭나고자 한다. 카자흐스탄의 유라시아주의는 중앙아시아의 중심 국가를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러시아와 터키에 비해 패권적 성향보다는 수평적 연대의 의미가 크다. 다시 말해 중앙아시아통합의 사상적 기반이자 담론으로서 주변 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이 아닌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민족, 종교, 문화 등의 다양성을 조화롭게 융화시키기 위한 평등한 협력을 선도적으로 제창해왔다.

카자흐스탄의 유라시아주의는 소통과 통합의 매개자로서의 역할에 큰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은 특정민족의 독자성이나 재결합을 강조하기 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평적 교류와 협력이 가능한 열린 유라시아 대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 초원유목문명의 지향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서양의 융합으로서 자국문화의 독자성을 내세우는 러시아나 범 투르크민족의 통합을 모색하는 터키의 유라시아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다.

실제로 카자흐스탄은 독립 이후 세계 어느 국가나 국제기구와도 적극 협력하는 대외정책을 전개함으로써 자신들이 표방하는 통합과 연결의 매가자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주었다. 이러한 카자흐스탄의 대외정책은 유라시아대륙의 연결자로서의 자신들이 위치한 공간적, 지리적 특성에서 기반하고 있다. 이는 과거 유목민들의 물물교환이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역로로 발전했던 역사성과도 접목되어 있다. 다시 말해 초원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다양한 종교, 문화, 민족 간 소통, 연대, 협력을 촉진시키는 연결의 ‘매개자’를 자임하는 카자흐스탄은 유목민적 유라시아공동체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양한 민족과 국가들의 수평적 협력을 위한 매개자는 유라시아대륙의 연결자였던 초원 유목민들의 지향성을 복원하려 하는 것이다.

독립한 국가들이 하나의 경제, 정치 공동체로 통합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러 난관들로 인해 단기간에 중앙아시아의 재통합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살펴본 바와 같이 중앙아시아는 서로 연결되어 살아온 초원유목문명의 역사적, 문화적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삶의 환경과 조건들이 과거 유목시대와는 많이 변화고 있지만 문명적 유산은 여전히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정신과 생활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따라서 정치, 경제적 조건과 환경들이 우호적으로 작용 한다면 중앙아시아의 재통합이라는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현재에도 중앙아시아인들은 시대를 초월해 계승되어온 다양한 문화, 종교, 민족의 공존과 통합을 추구하는 유라시아주의를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

 

저자 소개

이지은(eurasia@hufs.ac.kr)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학과 교수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동방학대학(Tashkent State of Oriental Studie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관심 분야는 중앙아시아 국내정치 및 주요 주변국들과의 관계이며, 주요 연구로는 카자흐스탄 유라시아주의와 대외정책(2014), Uzbekistan under the New Leadership and the Cooperation of Republic of Korea(2017),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에너지자원에 대한 영향력 변화(2018) 등 다수이다.

 


참고문헌

  • 이지은. 2014. “카자흐스탄 유라시아주의와 대외정책”. 『한국이슬람학회논총』 24-3집. 117-147.
  • 장-마리 쇼비에. 2014. “유라시아주의, 러시아판 ‘문명의 충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Laruelle. 2008. Russian Eurasianism: An Ideology of Empire. Washington, D.C.: Woodrow Wilson Center Press.
  • Ancesch, Luca. 2014. “Regime-building, identity-making and foreign policy: neo-Eurasianist rhetoric in post-Soviet Kazakhstan”. Nationalities Papers, Vol. 42, No. 5, 733–
  • Mostafa G. 2013. “The Concept of ‘Eurasia’: Kazakhstan’s Eurasian Policy and its implication”. Journal of Eurasian Studies
  • Sengupta, A. 2009. “Conceptualizing Eurasian Geopolitics: Debates and Discourse on the ‘Heartland’”, Suchandana Chatterjee, Anita Sengupta, and Susmita Bhattacharya eds. Asiatic Russia, Partnerships and Communities in Eurasia. Kolkata: Shipra.
  • 유라시아 경제위원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