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개발과 발전에 대한 라오스 사람들의 인식

지난여름 라오스 쎄삐얀-쎄남너이(Xepian-Xenamnoi) 댐이 붕괴했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피해현장 사진들 속에서 ‘개발된 마을’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댐은 라오스의 발전을 위해 한국수출입은행이 유상원조(EDCF)를 제공해 건설 중인 개발협력 사업이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개발, 발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라오스 사람들은 2007년부터 했던 저자의 질문에 대해 오히려 여러 차원의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답을 해왔다. 전교 1등인 고3 학생이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기준에서부터, 라오스 에너지광산부 공무원의 개발원조 사업에 대한 태도, 교육부 청사에 설치된 교육개발 홍보판, 라오스 지역개발정책인 쌈쌍(3 Buildings), 댐 사고 직후 개최된 국제포럼 포스터의 이미지까지. 우리는 라오스에서 어디를 향해 개발을 협력하고 있나?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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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댐 사고 피해지역의 ‘개발된 마을’ 입간판 (저자 촬영)

이영란(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개발을 위한 댐 사고로 쓸려가 버린 개발된 마을

2018년 7월 23일 라오스 남부에서 쎄삐얀-쎄남너이(Xepian-Xenamnoi)[1] 댐이 붕괴했다. 거대한 댐의 붕괴는 고원의 산골마을들과 하류 평원의 수십 개 마을을 쓸어버렸다. 가깝지 않은 캄보디아 마을들에까지 피해를 입혔다. 수백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댐 사고는 수만 명의 이재민이 가족과 삶의 기반을 잃은 채 적어도 수십 년 동안은 이 고통스런 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살아남은 주민들의 미래까지 저당 잡은 대참사이다.[2]

댐은 SK건설이 만들고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해 생산한 전력을 타이에 팔아 수익을 뽑겠다는 대규모 개발 사업이다. 그런데 댐은 한국 유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지원된, 라오스 발전을 위한 한국정부의 개발협력 사업이다. 그래서 더욱 비통했다. 사고 직후 타이 언론들을 통해 전해지는 피해현장의 영상은 물론 며칠 후 한국 언론이 전하는 현지 주민들의 인터뷰조차도 제대로 보고 다시 읽을 수 없었다.

라오스 수도에 있던 한국 민간단체 개발협력 활동가들도 급히 현장으로 내려가 여러 소식과 사진들을 보내왔다. 임시 대피소들로 들어가는 데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대부분 교량의 제한하중이 불과 3톤 밖에 되지 않아 중장비는 물론 기본적인 구호물자 전달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고, 실종자 수색과 사망자 수습을 위한 현장 접근은 현재 육상으로는 불가능해 헬기를 동원해야 하는 상황 등이다. 일반적으로 참상을 알리는 언론과 달리 긴급한 구호를 위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고 살펴봐야 했다.

그 중에는 학교나 사찰 등, 쇄설류(pyroclastic flow)같은 엄청난 흙탕물의 엄습으로 모든 것이 쓸려가 버린 마을들을 직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마을에 위치했던 그 잔해를 찍은 사진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진흙에 묻혀 비스듬히 기울어진 마을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므앙 싸남싸이(Sanamsay District) 반 마이(Mai Village), 반 파타나(Developed Village)”

그 마을은 ‘개발된’ 마을이었다. 라오스의 발전을 위해 건설된 댐이 라오스의 몇 안 되는 발전된 농촌 마을을 쓸어버린 것이다. 라오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보고 겪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라오스 사람들에게 발전과 개발은 어떤 것일까?

 

라오스어 사전에서 찾은 개발과 발전

저자는 2007년 1월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라오스에 파견되어 2년간 활동했다. 현지 활동을 위한 봉사단원의 교육훈련은 지금도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경험하진 않았지만 신병훈련과 비슷한 것 같다. 한 달 가량의 국내 종합 합숙훈련, 그리고 두 달의 현지 언어 집중훈련 이후 근무지 파견. 프랑스 식민지였으나 불어는 거의 쓰지 않는, 더구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희귀한 라오스의 작은 도청소재지 마을에서 라오스어 능력은 임무 수행의 질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좌우하는 것이기도 했다. 구체적인 생활 언어를 습득하는 것도 급한 상황에 서둘러 자습한 아주 추상적인 어휘가 있다. 국제협력 봉사자라는 신분을 소개하는 데 필요한 어려운 단어들을 외워 읊는 것에 더해, 저자는 그때 고차원으로 저자의 국제협력 활동의 이유, 목적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에 꼭 필요한 단어는 당연히 ‘개발’. 먼저 영어-라오스어 사전에서 ‘develop, development’을 찾았다.[3] 그리고 다시 라오스어-한국어 사전을 찾았다.[4]

“삐얀뺑-바꾸다, 랑훕-현상하다, (깐)팟타나-개발(하다)”

“깐빱뿡-개선, 깐팟타나-개발”

라오스에서 제일 큰 시장에서도 찾기 어렵고, 한국에선 출판사까지 연락해서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귀한 사전들이라는 것에 이중 번역을 해야 하는 과정의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처음에 개발이라는 말을 쓰는 데 큰 곤란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과감하게 현지 훈련 과제로 라오스에 와 있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생각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는데 실전 적용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품고 있는 어떤 의문의 시발이 되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저자가 오직 개발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비해 이 단어를 많이 사용했고, 이것 쓰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발전’이다.

“짤런-발전하다, 번영하다, to prosper, civilization”

“prosper-훙흐앙(빛나다, 번영하다) prosperity-쿠왐짤런(발전)”

“civilization-쿠왐짤런(발전), 쿠왐씨윌라이(문명)”

‘깐-’과 ‘쿠왐-’은 명사형을 만드는 접두사다. ‘깐-’은 동작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 앞에 붙이고, ‘쿠왐-’은 형용사와 부사, 심리작용을 나타내는 동사 앞에 붙인다. 그래서 ‘깐-’은 일이나 활동을 의미하고 ‘쿠왐-’은 그 말이 상태나 추상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라오스 사람들은 개발을 통해 도달한 상태나 가치로서 발전을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발전일까? 라오스 사람들의 꿈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라오스의 댐 개발 지도와 댐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라오스의 지폐
지도출처: https://www.internationalrivers.org/resources/mekong-mainstream-dams-map-16481
사진출처: google.com
© DIVERSE+ASIA

 

라오스 지역개발정책, 3

라오스는 자체적인 지역개발정책인 3쌍(3개의 건설)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독립적인 행정단위로서 새로운 마을들이 만들어지는[5] 것은 다반사고 새로운 군(郡), 새로운 도(道)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실제, 저자가 초기에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지원하고 있는 산골학교의 대부분이 2010년 새로 만들어진 싸이싸탄(Xaysathan)군에 소재한다. 불과 2013년에는 특별구역이었던 싸이쏨분(Xaysombun)이 도(道)로 승격되었다. 앞에서 말한 학교는 이 3쌍 정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완전한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꼭 초등학교가 1개 이상 있어야 하고 5개 학년이 모두 채워져야 한다. 군은 중등학교가 1개 이상이어야 하고 도는 중등학교 이상의 학교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역의 교육청은 이러한 학교의 설립이나 신설학교에 교사들을 파견하는 일 외에 3쌍 정책 수행의 핵심 주체로서 기능한다. 교육청 공무원들은 대부분 교사 출신이면서 관할 지역의 포괄적 개발을 위해 빈번하게 파견되어 개발정책을 수행한다. 이들은 파견지역의 공무원과 주민들을 돕고 지도하고 때로 개발사업을 직접 진행하기도 한다.

교육청 공무원들이 수행하는 개발사업은 저자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 지역 정부활동 중 그 성과가 측정되고 평가가 이루어지는 거의 유일한 업무로 보인다. 6, 7월 3쌍 실적보고 시기가 다가올 때 저자는 몇몇 교육청 공무원들에게 거의 청탁 같은 신규 사업 제안을 받기도 했다. 공적인 실적 또는 성과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거의 본 적 없는 라오스에서 가끔 이러한 광경은 놀랍고 신선했다.

 

지역 주민이 모르는 지역의 개발

이러한 개인과 지역 차원에서의 개발과 발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전개는 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저자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이 있다. 바로 중앙 정부의 수준에서다.

저자는 2011년 1월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활동을 위한 정책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직접적인 지원 대상 지역인 싸이냐부리 도청 에너지광산국을 방문했다. 국장은 해마다 에너지광산국이 중앙 정부에 제안서를 내 진행하는 지역 전력개발 사업을 자세히 소개했다. 40%는 중앙정부 지원이고 60%는 각 가정에서 부담한다. 전력망 5km 이내 지역의 저소득층이 대상이니 5년에 걸쳐 상환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싸이냐부리 전력화율은 72%, 78% 접근할 수 있는 전력망이 갖추어져 있지만 집으로 전선을 연결할 돈이 없어서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6%를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명료하게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국장은 5년 안에 전력망을 모두 연결할 계획이며 2013년까지는 마을 다섯 곳에 태양광 발전기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어떤 자신감까지 느껴졌다.

저자는 에너지광산국 방문 직전 라오스 역내 메콩 본류 최초의 댐 싸이냐부리 댐[6] 건설 현장을 다녀왔다. 읍내에서부터 산을 깎아 자재와 중장비 등을 실어 나르기 위한 도로가 닦였고 본 댐 상류에는 이미 교두보가 만들어 지고 있는 상태였다. 국장은 그 배경부터 먼저 말했다.

“라오스는 수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라오스 정부는 ‘새로운 생각(찐따나깐 마이, 1980년대 후반 시장개방경제로 이행가기 위한 종합계획)’으로 ‘아시아의 배터리’를 천명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환경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싸이냐부리 댐 때문에 대여섯 개 마을이 이주를 해야 한다. 이것은 중앙정부의 계획에 의한 사업이고 우리는 지역 정보를 알려주는 일부를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댐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10%를 사용하고, 90%는 타이로 수출한다. 현물 말고 재정수입은 잘 모르겠다.”

국장은 싸이냐부리 댐 건설을 맡은 타이 회사가 제출한 보고서를 직접 보여주고 찍어가도 된다며 인터뷰에 적극적이었다. 댐 건설에 동의하지 않는 국내외 여론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지역적으로는 물론 업무 영역 면에서도 자신이, 지역이 전면 배제된 채 진행되는 거대한 개발 사업에 대해 무관심했고 무지했고 무력해보였다. 그러면서도 댐을 좋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라오스에 권고되는 개발과 발전

저자는 곧이어 라오스 에너지광산부를 방문했다. 미리 약속한 총무과장과 농촌전력화과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라오스 정부는 2015년까지의 국가사회경제개발계획에서도 ‘아시아의 배터리’ 정책으로 대수력 발전소를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재생가능에너지 개발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빈국으로서 일반적인 원조 말고 기후변화 적응 부문에서도 국제 지원을 적극 받아내려는 전략인 것으로 보였다.[7]

이건 원죄 없이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가 되어버린 저개발 국가들에게는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녹색성장을 명분으로 핵 발전을 확대했던 것처럼, 산골 오지까지 전기를 보급하겠다면서 ‘수출용’ 대수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국제금융기구의 대출 원조에 의지해야 하는 논리에서의 모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부정의와 파국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저자가 싸이냐부리 댐 이야기로 대규모 수력 발전소의 문제점을 좀 거론해보려고 하자 총무과장이 두툼한 세계은행의 보고서를 책상위에 던지듯이 내놓았다. 세계은행이 라오스 중부에 댐을 건설하면서 제출한 보고서였다. 라오스의 댐들은 이렇게 국제 기준에 맞춰 환경문제와 사회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단다. 너희 선진국들이 정한 기준에 맞춰 너희 회사들이 잘하고 있는 일인데 웬 시비냐는 진의가 그의 표정에서 바로 읽히는 것 같았다.

전력망이 닿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전력화율이 40%도 못미치는 농촌지역의 전력화를 담당하는 과장조차도 태양광발전이나 초소수력 같은 방식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국제기구가 여기에 많은 돈을 지원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큰 자금들이 집중되고 있는 전령망 확산 사업이 우선인 듯했다. 그나마 실질적으로 산악지역의 전기를 공급하고 있는 ‘내수용’ 소수력 발전소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8]

 

세계은행의 자가당착

저자는 애초 산간학교에 태양광발전기를 지원하는 데에서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사업을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사업비 규모만으로 50% 이상이 기술교육과 훈련에 투입할 정도로 교육직업학교, 교육청, 국립대 등 교육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해왔다. 매년 적어도 두어 번 교육부를 방문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였다. 2016년 봄 저자는 라오스 교육부 청사 중앙 로비에 설치된 세계은행의 입간판을 발견했다.

세계은행이 작성한 〈2014년 라오스 개발 보고서: 폭 넓은 성장을 위한 생산적인 고용의 확대〉를 요약해 인포그래픽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홍보용인 것 같았다. 입간판만으로는 별다른 대책도 없이 농업이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취직해야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무차별적인 개발논리와 전통적인 발전상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황당했다. 아니 무슨 산업부나 노동부에도 못 걸 것을 여기에 내 놓았나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하단에 작게 안내된 대로 사이트에 들어가 실제 내용을 확인해봤다. 앞부분에선 라오스의 경제 성장은 극소수 일자리만 만들어지는 수력과 광업 부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나 대규모 자본 소요에 따라 그나마도 증가치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9] 눈에 띈다.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30% 이상이 한 단어조차 읽을 수 없었고 57%는 그들이 읽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가 결과를 제시해 충격을 주었다.

결국 보고서는 권고사항으로 기본적인 문맹 퇴치를 위해 표준 수립, 교육 자료 및 교사에 대한 투자, 교육 시스템 개선 및 교육 평가에 보다 전략적으로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 개발과 직업 관련 기술을 구축하는 개혁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작 중요한 뒷부분을 잘라먹고 제작된 입간판이 문제긴 하지만 진짜 내용은 교육부 청사 중앙에 전시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에너지광산부에서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세계은행 문서들이 떠올랐다. 라오스 정부는 그들의 권고대로 ‘아시아의 배터리’ 정책을 세우고 2000년대 중반부터 집중적으로 발전을 위한 대규모 댐들을 지어왔다. 앞으로도 메콩 본류에만도 8개가 더, 전체적으로는 50여 개가 건설될 예정이다. 모두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 선진국 정부에 이자를 내야하는 빚이거나, 고작 10%도 안 되는 수익을 얻다가 20여년 후에야 수명을 다한 댐의 돌려받게 되는 외국 민간자본의 투자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기술이전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계약서에 형식적으로라도 들어 있지도 않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런 자가당착(自家撞着)은 무엇인가?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이것은 2007년 한국해외봉사단원의 설문조사에서 외국의 재정원조는 15년 정도 더 필요하지만,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은 더는 필요 없다고 답한 수도 병원 관계자가 이미 귀띔해 준 것이다. 단순히 외국 활동가들 탓에 취업 기회를 잃거나 실력을 비교당해 우리를 꺼리는 차원이 답변이 아니었다.

3쌍 정책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싸이싸탄 군청의 총무국장이 된 앞 영어교사의 남편은 2011년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큰 전기의 전력망을 확대하는 것보다 자립적인 재생가능에너지나 전기요금 낼 돈이 없는 산골 주민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설명하는 데 훨씬 적극적이었다. 700명, 600명이 사는 두 마을 사이 작은 냇물에 조그만 댐을 2020년까지 짓겠다는 계획이다. 발전 용량은 600kW, 비용은 10만 달러. 그때 우리 돈으로 약 1억2천만원. 일단 군청에서는 2020년까지라고 했지만 어디서 도움을 받으면 더 빨리 지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저자를 빤히 쳐다봤다.

싸이냐부리 도청의 에너지광산국장도 이 총무국장과 똑같지 않았나? 스스로 자신의 지역의 발전을 위해 만든 개발계획을 설명하면서 보여주었던 자신감. 외부 개발자들이 ‘지원’할 것은 이들이 스스로를 위해 보다 좋은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다 여야 한다는 귀띔 말이다.

쎄삐얀-쎄남너이 댐 사고 관련해 국제적 포럼을 먼저 연 것은 타이 시민사회였다. 대부분의 라오스 댐에서 생산된 전력의 소비지로서, 라오스의 희생을 강요하는 댐 개발 사업 비판과 SK건설, 서부발전 등 한국과 타이의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작은 물고기(라오스)를 향해 차례로 달려드는 큰 물고기들(타이, 한국, 중국)을 형상화한 포스터의 그림이 메콩 지역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댐 사고로 쓸려 내려가 폐허가 된 ‘개발된 마을’의 입간판을 저자 마음에 다시 세운다.

라오스 댐 개발 사업에 관한 타이 시민사회 행사 포스터
자료 출처: facebook.com/438836209858449/videos/สนทนาประชาชน-บ่ายเขื่อนในลาว-แต่-ไม่ใช่เขื่อนลาว-บริษัทเกาหลี-การไฟฟ้าไทย-และ-เง/439990546409682

 

저자소개

이영란(yeeyoungran@gmail.com)
(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 센터장이다.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 2009년부터는 연구소의 라오스 지원 사업을 맡고 있다. 『싸바이디 라오스』(2009) 저술, 『나쁜 에너지 기행』(2013) 등을 공동 저술했다. 2017년 적정기술학회가 선정하는 제1회 적정기술상을 수상했다.

 


[1]라오스어는 라오스 현지인의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였다. 프랑스식 알파벳을 빌려 표기된 라오스어를 영어식으로 잘못 읽어 한글로 표기한 것이 일반화된 경우, 라오스 현지 발음과 알파벳을 병기하였다.

[2]라오스 정부는 사고 직후 사망자와 실종자는 백여 명으로 전체 이재민 규모는 1만 3천명, 13개 피해 마을 수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저자가 피해지역을 방문해 군교육청 부대표로부터 군청이 집계한 자료를 확인한 결과 피해 마을은 19개(사실상 29개)로 정부가 발표한 13개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처음 발표 숫자를 고수하는 중앙정부의 이상한 공개 태도와 달리 현지에선 사망자와 실종자에 관련한 사항은 아예 극도의 비밀에 부쳐 전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현장조사에서 저자가 인터뷰한 라오스 사람들 대부분은 정부의 이러한 사망자 실종자 통계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으며 최소한 발표 숫자의 두세 배는 웃돌 것으로 봤다. 또한 라오스 지역에서 발견된 캄보디아 군인 시신을 비롯해 댐 붕괴로 인한 캄보디아 지역의 피해는 전혀 집계되지 않고 있다. 다만 9월 19일 라오스 댐 사고 대응 한국시민사회 TF가 주최한 국제포럼에 참석한 캄보디아 피해지역 주민과 활동가는 캄보디아 피해자 규모 역시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3]『영어-라오어 라오어-영어 사전』(끼야우 깡파짠펭 외, 1999), 고작 가로 9, 세로 13cm 크기에 2만 단어를 수록한 사전이다. 1996년에 초판이 만들어졌으나 여전히 라오스에서 영어 공부 좀 하겠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구입해 보고 있다.

[4]『라한사전』은 오로지 라오스어로만 되어 있는 라오스어 수업 교재를 보완하기 위한 보조교재로 당시 절판되었던 『한눈에 보는 라오스어 회화』와 함께 출판사에까지 연락해 어렵게 구한 귀한 책이었다.

[5]이것이 저자가 쎄삐얀-쎄남너이 댐 사고로 피해를 입은 마을 숫자가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라오스 중앙정부가 발표한 13개는 논외로 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싸남싸이 군교육청으로 부터 얻은 19개와도 다르게 사실상 29개 마을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이다. 1마을1학교 정책으로 먼저 정비된 마을들을 3~5곳씩을 묶어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그 새 마을에는 새로 중(등)학교가 1개 만들어지거나 최소한 기존의 초등학교가 여러 개 있게 된다.

[6]SK건설, 서부발전이 50%, 수출입은행의 유상원조 자금이 25%로 전체 지분의 75%가 한국 것인 쎄삐얀-쎄남너이 댐에 비해 싸이냐부리 댐은 사실상 타이 은행자본이 100% 투입된 타이 민간자본 주도의 개발 사업이다.

[7]이번 댐 사고 피해현장 조사 인터뷰에서 라오스 국립대 경제경영학교 교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최근 국제 사회의 지원금,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는 라오스 정부 예산의 무려 60%에 달하고 있다.

[8]아시아개발은행의 2010년 통계에 따르면 라오스의 소수력 발전 가능성은 800MW로 추산됐다. 이 양은 당시 600MW의 대수력 발전량을 웃도는 엄청난 잠재량이다.

[9]실제 싸이냐부리 댐 건설에 필요한 1만 명의 인력은 대부분 타이 사람들이 채웠다. 라오스 최초의 화력발전소 건설에도 타이 자본이 투자된 것처럼 극소수 독일 엔지니어와 대다수 타이 임직원과 노동자 등 외국인 인력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더욱 문제인 것은 이 무렵부터 외국인 광업 투자가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성 하락에 따라 많은 폐업하는 광산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이영란. 2009. 『싸바이디 라오스』. 서울:이매진.
  • 이영란. 2014. “왜 학교부터인가?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 지원활동에서 학교체계가 갖은 의미들”. 레디앙(10월 15일). 에정칼럼.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13. 『나쁜 에너지 기행』. 서울:이매진.
  • 라오미션센타. 2001. 『라한사전』. 경기:도서출판 예랑.
  • World Bank Group. 2014. “Lao PDR Development Report 2014: Expanding Productive Employment for Broad-Based Growth”.
    https://openknowledge.worldbank.org/handle/10986/21555 (검색일:2018. 11. 6).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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