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소비에트 무슬림 국가의 표기체 전환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러시아연방 외 14개국은 모두 토착주도민족의 명칭을 국명으로 정하고 이들의 모어를 국어로 정하면서 소비에트의 잔재를 없애고 탈 러시아화의 상징적인 조치로 표기체의 전환을 추진해왔다. 특히 남캅카스의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의 5개국은 과거 아랍문자를 사용하다가 소련 초기 라틴문자, 1930년대 중반 이후 키릴로 교체되어 50년 동안 쓰였지만, 1991년 독립과 함께 아제르바이잔을 선두로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라틴으로 전환했고 카자흐스탄은 2025년이 전환 목표 연도이다. 그러나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공식적으로 전환 계획이 아직 없다.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세 나라를 골라 전환 성공, 전환의 혼란, 전환 과정을 최신 정보를 이용하여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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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택(경상국립대학교)

독립 상징으로서의 표기체 전환

1991년 12월 24일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러시아를 포함한 포스트 소비에트 지역의 15개국은 토착주도민족(Titular nation) 중심의 국가 건설을 추진해오고 있다. 이 토착주도민족은 자신들이 영주하는 국가의 명칭으로서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가진 민족을 말하는데, 포스트 소비에트 15개 독립국의 명칭이 바로 토착주도민족 명칭이다. 이 토착주도민족 각각은 자신의 모어를 민족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간주하여 국어로 정하고 국어를 교육 언어로 삼고, 공공업무도 국어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무슬림 6개국 중 몇 나라는 탈소비에트, 탈러시아를 추구하면서 민족정체성의 발현을 위해서 주권국의 상징으로서 표기까지도 키릴문자에서 라틴문자로 교체했거나 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즉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표기체를 키릴에서 라틴으로 교체했고 카자흐스탄은 2025년에 교체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지금까지 표기체 교체를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1)

소련의 표기체 교체 역사

1917년 러시아혁명과 함께 레닌의 민족 정책인 토착화(Коренизация)에 따라 러시아제국 당시 탄압받았던 토착주민이 지역의 주류가 되고 이들의 모어도 사회 전반에서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 중에서 무슬림이 다수인 우즈벡, 카자흐, 키르기스, 투르크멘, 타지크, 아제르바이잔은 혁명 전까지 아랍문자를 사용했다.

당시 무슬림 민족의 문맹률이 거의 99% 이상이었고, 그나마 아제르바이잔이 95.5%로 가장 낮았는데, 1926년 인구조사에서 나타난, 9세 이상의 문자 해독력은 아제르바이잔-25.2%, 카자흐-22.5%, 키르기스-15.1%, 투르크멘-12.5%, 우즈벡-10.6%, 타지크–3.7%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혁명 성공 이후 볼셰비키가 가장 먼저 추진한 문맹 퇴치와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의 민족어의 표준어 확립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는데, 민족어의 계통적, 유형적 특징과 언어 발전 수준 서로 달랐고, 표기체 존재 여부와 무슬림 성직자와 지주의 저항이 컸다. 특히 아랍문자를 사용한 16개의 민족 중에서 우즈벡인, 타타르인, 카자흐인, 아제르바이잔인, 타지크인의 수가 많았다. 아랍문자는 쿠란 교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무슬림 성직자를 비롯한 일부 상층계급만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랍문자는 수기로 필사하던 시대에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출판이 발전하고 대규모 문해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즉 대표 철자와 어두, 어중, 어말에서의 표기 형태가 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서 익히기 어렵고 모음 표시 철자가 부족하여 튀르크어 그룹의 모음 발음 표기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1926년 2월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열린 “전 연방 튀르크학”총회에서 튀르크어 사용 민족의 라틴화 문제 논의하고, 라틴문자 시안 마련했고 같은 해 3월 1일 북캅카스 산악 민족인 인구쉬인, 카바르다인, 카라차이인, 아드게이인, 체첸인들이 라틴화 결정을 채택했다. 소련 공산당과 정부도 라틴화를 지지하며 1929년 8월 7일 야날리프(Janalif, 신 문자) 도입법을 채택했다. 이 법은 모든 국가기관과 범 연방의 기업이 튀르크어로 쓸 때 야날리프를 사용해야 하고 아랍문자 출판을 금지하고, 고등교육기관, 학술기관이 교육활동에서의 야날리프를 사용하는 것을 지원하는 등의 책임을 정하고 있었는데, 공산당과 정부는 아랍문자 사용 민족의 노동자, 농민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야날리프(Janalif)

이렇게 1927∼1930년 라틴화 시행은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36개 민족, 35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사용하게 되었고 라틴화는 ‘소비에트 동방에서의 문화혁명의 강력한 도구’, ‘10월 혁명 문자’,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도구’로 불렸고, 라틴표기를 기반으로 40개 언어로 된 100개의 신문과 잡지, 문헌이 발간되었다.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문맹률이 높아 재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아랍문자 표기된 출판물의 수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고쳐야 하는 활자도 많지 않았는데, 필수적인 재원의 집중화, 행정 재원의 상당 규모의 이용, 적극적인 선동 운동, 주민의 낮은 교육 수준 등이 단기간에 무슬림 민족어의 라틴화 성공을 가능케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우즈베키스탄은 1928∼1940년, 투르크메니야는 1928∼1940년, 키르기지야는 1928∼1940년, 타지키스탄은 1929∼1940년, 카자흐스탄은 1929∼1940년, 아제르바이잔은 1929∼1939년에 라틴이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야날리프가 보급된 지 몇 년이 채 안 된 1932년 갑자기 야날리프의 강제적인 키릴문자로의 전환이 추진되었는데 제 민족이 민족 간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이를 더욱더 쉽게 익히기 위해서는 단일 표기체를 가져야 하고, 1928년 라틴으로 전환한 튀르키예의 소위 범튀르크주의를 경계하고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1935년 6월 북방소수민족어의 키릴화가 먼저 시작되었고, 1939년 11월 아제르바이잔어, 1940년 5월 우즈벡어, 타지크어, 1940년 7월 투르크멘어, 1940년 11월 카자흐어, 마지막으로 1941년 9월 키르기스어가 키릴화 되었다.

키릴 채택은 실제로는 소련 내 무슬림 튀르크 민족과 이들과 민족적, 언어적으로 유사한 해외의 터키 즉 튀르키예와의 정치적 유대를 단절하고 러시아인을 비롯한 슬라브인, 소련 내 모든 소수 민족을 긴밀히 결합하는 러시아화의 시작이었다. 전면적인 키릴 전환은 명목상으로는 소비에트화이지만, 실제적으로는 러시아화로서, 연방공화국 정부와 모든 소련 인민의 충성에 대한 상징이었다. 라틴화와 마찬가지로 키릴화도 아래로부터의 주창이나 지지 없이 오직 정치적 엘리트가 기획한 것이었다. 키릴화는 결국 문자의 단일화이자 제 민족 단결의 상징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 무슬림 6개국의 문자 교체 문제

1991년 소련 해체 전후로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토착주도민족의 전통문화와 독립 활성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강조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토착주도민족어의 라틴화 회귀를 시작했다. 라틴화 회귀는 키릴이 갖는 소비에트의 부정적 과거에 대한 거부의 상징이자 독립성과 근대화, 서구화 지향의 발현, 라틴을 통한 세계 공동체로의 신속한 편입의 기대, 자신들의 민족주의화 하는 국가의 정보, 문화공간을 ‘문자·언어의 장막’으로 두르고 러시아어와 러시아어 사용자들의 지위를 약화하려는 엘리트의 의지가 합쳐진 것이다.

1991년 8월 30일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은 동년 12월 25일 ‘아제리어 라틴문자부활법’을 채택, 키릴을 야날리프로 전환하기로 했는데 이는 무슬림 공화국 중 가장 앞선 것이다. 그러나 10여 년 동안 혼란이 이어지고 성과도 부진해 보이자 2001년 6월 18일 라틴 전환 지체로 인한 민족주의자들의 불만을 완화하고 소련 유산의 잔재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을 목표로 알리예프 대통령이 ‘국어사용 문제 해결 명령’이라는 대통령령을 공포하였다. 이 명령은 국어법을 제정하고, 7월 31일까지 국어와 라틴 사용을 위한 장기계획을 모든 정부 기관, 국영기업이, 그리고 학술원, 교육부, 작가 동맹이 모든 문헌을 라틴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보고하며 지방행정기관은 국어와 라틴 사용을 감독, 보고하고 내각은 모든 신문, 잡지, 공보, 서적, 여타 출판 인쇄물의 라틴 전환과 중앙 및 지방행정기관 업무의 라틴 전환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는 라틴 전환으로 인한 혼란이 점진적으로 해소되어 라틴 전환 국가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데, 이는 우즈베키스탄과는 달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국민의 호응, 라틴의 세계적 보급과 그 영향력의 인정, 단일 민족 국가에 가까운 민족분포,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상대적으로 유연한 대 아제르바이잔 정책 등에 기인한 것이었다. 현재 아래의 사진 외에는 키릴을 전혀 볼 수 없다고 한다.

왼쪽 사진은 바쿠 시내 건물 화장실의 안내문으로 가장 위가 아제르바이잔어의 라틴, 영어, 맨 마지막이 러시아어 표기이다. 아제르바이잔어는 완전하게 라틴으로 전환되었고, 키릴은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출처: 저자 제공

1991년 9월 1일 독립한 우즈베키스탄도 아제르바이잔과 같이 독립 이전인 1980년대 말 우즈벡어의 부활과 우즈벡 문자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 우즈벡 민족주의 지식인들은 키릴문자로 표기된 우즈벡 문학, 문헌 대부분이 우즈벡어와 맞지 않고 키릴이 우즈벡어의 모든 음(음성적 특징)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 일부 지식인은 아랍문자로의 회귀를 주장했는데, 우즈벡의 젊은 세대가 오래된 고전 문헌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92년 국어법에서 우즈벡어를 공화국의 유일한 국어로 규정하고, 1993년 9월 ‘라틴기반 우즈벡 문자 도입법’을 채택하면서 정부가 매스컴을 동원하면서 라틴 전환 선전을 강화해나가기 시작했다. 1995년 5월 새로운 우즈벡어 라틴문자를 제정했고 동년 8월 이를 시행하기 위한 대통령령을 공포했고, 2000년에 라틴 전환을 완료하기로 했지만, 2005년으로 연기하고 다시 2010년으로 연장했지만, 지금도 키릴과 라틴을 병용하고 있다. 이는 라틴 전환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이를 잘 확인할 수 있다.

3장의 사진 중 왼쪽은 러시아어, 가운데 사진은 키릴 표기 우즈벡어, 오른쪽은 키릴과 라틴이 병용되어 있다.
출처: 저자 제공

마지막으로 카자흐스탄을 살펴보자.

2012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라틴 전환을 주장했고, 2017년 10월 라틴 전환 대통령령에 서명했는데, 그는 라틴 전환 이유로 카자흐어는 슬라브어가 아니고, 라틴 전환은 카자흐어와 문화, 경제의 현대화와 발전을 위한 것이고 현 세계에서 라틴문자를 사용하는 국가가 일반적이며,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렇지만 라틴의 문제점도 많은데, 이는 주로 친 러시아어 측에서 제기하고 있다. 먼저 라틴은 카자흐어가 지닌 많은 음성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해 보조적인 변음부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는데, 아포스트로피(’)를 가진 철자가 9개(이후 개선했지만, 여전히 6개)나 된다. 또한, 세대 간의 문어 의사소통의 단절이 우려되는데, 중·장년층은 대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극히 어려워하여 라틴 문자를 익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보 접근 측면으로 카자흐스탄은 60년 이상 키릴을 사용하면서 수많은 지식을 키릴로 기록하고 축적해왔는데, 라틴 전환으로 곧 많은 주민이 이 전통 유산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특히 국토 중앙의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카자흐어와 러시아어가 병용되고 있지만, 소련 당시 수도이자 러시아인의 도시였던 알마-아타(Alma-Ata, 독립 이후 알마티 Almaty로 개명)는 현재에도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서 러시아어로만 표기한 도로표지판이 있을 정도이다.

라틴문자로 전환한 카자흐스탄 문자체계 변화
출처: Wikimedia
왼쪽 사진은 아스타나의 나자르바예프 박물관의 키릴 표기(왼쪽 카자흐어, 오른쪽 러시아어), 오른쪽 사진은 알마티의 도로 표지판(카자흐어와 러시아어 동시 표기)
출처: 저자 제공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시작된 국어의 문자 교체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이어졌고, 이제 2025년 카자흐스탄에서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의 영향력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지 않기에 문자 교체 추진이 비교적 쉬웠고, 러시아도 크게 우려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와 국경이 7,500km를 넘고 러시아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카자흐스탄에서의 문자 교체 추진은 러시아로서는 밀접한 우방의 이탈이자 또 하나의 국력의 축소, 즉 정보와 문헌, 문화 부문에서의 러시아와 러시아어의 쇠퇴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저자소개

정경택(ktchung@gnu.ac.kr)
고려대학교에서 학부를 졸업, 석·박사 학위를 받고 1993년 3월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인문대학 러시아학과에서 러시아어 및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유라시아)의 문화, 언어정책을 강의하고 있다.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의 언어 상황과 언어정책, 문화 그리고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어의 지위 변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러시아연방 주체 타타르스탄의 민족-언어 문제 연구”(2023년) 외 약 80여 편의 논문과 “유라시아의 언어와 문화”(2010년), “러일전쟁과 경남”(2020년), “국제화 시대의 언어”(2021년) 등 저서를 수 편 내었고, 대학원 문화융복합학과에서도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며 “세 가지 사건을 통해 본 경남의 역사”(2023년), “드러나지 않은 유라시아”(2021년), “멀티미디어의 이론과 실제”(2020년) 등의 저서를 내었다. 현재 경상국립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장이다.


1) 더 자세한 표기체 전환 과정은 정경택(2011a, 2011b, 2018, 2019)을 볼 것.

 


참고문헌

  • 정경택. 2011a. “아제르바이잔의 표기체계 변화 고찰.” 슬라브어 연구 16권 2호, 435-451.
  • 정경택. 2011b. “중앙아시아 5개국의 정체성 모색: 역사적 기원과 문자 전환을 중심으로.” 슬라브硏究 27권 4호, 217-244.
  • 정경택. 2018. “투르크메니스탄 독립상징으로서의 문자 교체 연구.” 슬라브어 연구 23권 2호, 141-156.
  • 정경택. 2019. “중앙아시아에서의 문자 교체 논란 연구: 키릴인가 라틴인가 아랍문자인가.” 사회언어학 27권 4호, 223-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