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평화는 찾아왔는가?: 2022년 1월 반정부 시위 그 이후

202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는 건국 이래 최대의 시위가 발생하였다. LPG 가격 상한제 폐지 반대에서 시작된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었으나 폭력 시위로 발전하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하여 강경하게 진압했다. 1월 시위 이후 카자흐스탄 정치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회와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며,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특권을 폐지하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이 카자흐스탄에 평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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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4일, 악퇴베 중앙 광장에 모인 시위대 출처: Wikimedia 저자: Esetok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022_Kazakhstan_protests_%E2%80%94_Aqtobe,_January_4_(01).jpg)

조대현(글로벌 노마드)

비극의 1, 건국 이래 최대의 시위

2022년이 시작하면서 카자흐스탄에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가 발생하였다. 시위는 서부의 석유 생산 도시인 자나오젠(Zhanaozen)과 악타우(Aktau)에서 LPG 가격 상한제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시위는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알마티(Almaty)와, 수도 누르술탄(Nursultan, 현재 명칭 아스타나(Astana)) 등 주요 도시로 번져갔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위 참가자들의 요구도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LPG 가격 상승 반대뿐만 아니라, 빈곤과 경제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더 나아가 시위 참가자들은 부패 척결, 족벌주의 타파 카씸-조마르트 토카예프(Kassym-Jomart Tokayev)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현 정부의 퇴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 초대 대통령의 국가안전보장위원회장 사임과 정치 개혁을 요구하면서 시위는 정치적인 성격이 더해졌다. 알마티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폭력 소요를 일으키면서 평화 집회는 폭력 시위로 변모했다. 시위대는 알마티 도심에 위치한 공화국 광장과 집권당인 누르오탄(Nur Otan, 카자흐어로 ‘빛나는 조국을 의미’)당의 당사를 공격하였다. 카자흐스탄 상공회의소인 아타메켄(Atameken)은 은행과 가게들, 식당들도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쉼켄트(Shymkent)와 타라즈(Taraz)에서도 시위대 공격으로 정부 청사가 파괴되었다.

카자흐스탄 시위 상황을 전하는 영상뉴스(2022. 1. 6.)

카자흐스탄 정부는 폭력 소요에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직접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야간 통금, 알마티시 내외부 이동 제안, 개인 및 차량의 검문·검색, 모바일 데이터를 차단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또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시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등 외부 세력이 개입하였다고 주장하면서 폭력 소요 가담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였으며, 집단안보조약기구(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이하 CSTO)에 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CSTO는 카자흐스탄에 2,500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였으며, 카자흐스탄의 주요 전략 시설을 방어한 것으로 알려졌다. CSTO군의 대부분은 러시아군이었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시위에서 225명이 사망하였으며, 약 1만 명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1월 9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였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번 시위가 쿠데타 시도이며, 평화 집회가 테러리스트, 이슬람 극단주의자, 범죄 단체에 이용당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1월 10일을 국가 추모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다.

2022년 1월 카자흐스탄 시위의 주요 시간선
ⓒDiverseAsia

한편 시위 진압이 마무리되자 카자흐스탄 내에서는 국내 안보, 정보 계통의 고위 관료들이 숙청되었다. 1월 5일에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회장에서 해임되었으며, 토카예프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한 9일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측근이자 차기 카자흐스탄의 리더 중 하나로 지목되었던 카림 마씨모프(Karim Massimov) 국가보안위원회(KNB) 위원장을 비롯한 KNB 고위직이 반역 혐의로 체포되었다. 시위 진압이 마무리된 뒤 토카예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을 공개 비난했다.

“이번에 발생한 비극적 사태는 상당 부분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와 일부 국가기관의 비효율적이고 무능한 업무 수행 때문이다.…… 초대 대통령으로 인해 국내에 아주 큰 수익을 내는 기업과 국제기준으로도 부유 계층이 형성되었다. 이제 국민에게 합당한 몫을 돌려주고 제도에 기반하여 국민을 도울 때가 되었다.”

이러한 공개 비난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측근이었으며,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을 때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계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친족을 통해 권력을 승계하는 것이 아닌, 측근을 통해 승계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권력을 승계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새로운 승계, 지연된 투쟁
토카예프의 대통령 선출 당일 前 대통령 나자르바예프(맨 위)와 토카예프(맨 아래)
출처: 연합뉴스

2019년 3월 20일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퇴임은 세계적인 이목을 모았다. 당시에도 카자흐스탄에서는 부모가 철야 근무로 집을 비운 사이 다섯 자매가 화재로 사망하자 육아 중인 부모를 중심으로 대규모 정부 비판 집회가 벌어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빈곤 문제 해결, 정부의 사회안전망 마련을 촉구하였으나 당시 나자르바예프 정부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돌연 하야를 발표하였으며, 카자흐스탄 헌법에 따라 토카예프 당시 상원의장이 대통령 대행직을 수행하였으며, 6월 9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토카예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은 소련 시절부터 카자흐스탄 정치에서 중심을 차지한 인물로,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이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28년간 대통령의 권좌를 유지하였으며, 퇴임 이후에도 그의 권력은 건재했다. 그는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연임 횟수 제한 항목을 삭제하여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으며,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도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둬왔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그의 가족에게 권력을 승계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명확한 후계 구도를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1) 그럼에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임기 중 헌법 수정을 통해 자신의 퇴임 이후에도 자신이 주요 권력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놓았다. 실제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은 퇴임한 뒤 국민회의 의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종신 의장, 헌법위원회 종신 위원직을 수행했으며, 이들 기관의 권한과 영향력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재임 시기보다 확대되었다. 또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이 여당인 누르오탄의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의회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이어졌다. 2019년 3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과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보다 제한적인 권한을 지닌 대통령이 되었다.

이러한 초대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간 권력의 비대칭 구도는 향후 권력 투쟁으로 이어질 불화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다. 나자르바예프 일가와 측근들의 부정축재에 관한 스캔들이 보도된 때나 토카예프 대통령이 수도 아스타나에 통합된 도시 계획이 없어 혼란스럽고 지역 개발이 어렵다고 불평했을 때, 언론들은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과 토카예프 대통령 간에 불화가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과 토카예프 현 대통령 간 갈등과 권력 투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지난 1월 시위를 진압하던 때였다. 당시 토카예프 대통령이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직에서 사임한 사실을 발표하고 CSTO에 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하면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과 토카예프 대통령 간 갈등이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직접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또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폭력 시위 참여자를 테러리스트, 이슬람 극단주의자,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하여 CSTO에는 평화유지군 파견을 요청하면서 퇴임 후에도 카자흐스탄의 국내 안보, 정보 계통을 장악해왔던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을 견제하고 자신의 주도로 폭력 시위를 진압하였다.

폭력 시위가 진압된 이후 토카예프 대통령은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대통령 시절 누렸던 권한을 회복하였으며,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축소시켰다.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은 퇴임 이후 특권으로 누렸던 국가안전보장회의 종신 의장, 카자흐스탄 국민회의 종신 의장, 헌법위원회 종신 위원직에서 해임되었으며, 토카예프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 카자흐스탄 국민회의 의장직을 맡게 됐다. 또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은 여당인 누르오탄당의 대표직을 상실하게 되었다. 누르오탄당의 대표직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맡았다가 대통령이 당적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로 4월 22일 에를란 코사노프(Erlan Qosanov) 하원의장에게로 넘어갔다.

또한 안보, 경제 분야에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측근들은 구속되거나 해임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씨모프 위원장은 구속되었으며,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조카이자 KNB 부위원장인 사마트 아비시(Samat Abish)와 KNB 고위직이었던 카이라트 사티발디(Kairat Satybaldy)도 해임되었다. 또한 주요 국영기업과 경제 단체의 수장을 맡고 있던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측근들도 자리를 떠나거나 정부의 표적이 되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장녀 다리가의 남편인 카이라트 샤리프바예프(Kairat Sharipbayev) 카즈트란스오일(KazTransOil) 회장,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차녀 디나라의 남편인 티무르 쿨리바예프(Timur Kulibaev) 카자흐스탄 상공회의소 소장,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막내딸 알리야의 남편인 디마시 도싸노프(Dimash Dossanov) 카자크가즈(QazaqGaz) 회장은 사퇴하였다.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형제인 볼라트 나자르바예프(Bolat Nazarbayev)의 비트코인 채굴장은 경제 안보를 이유로, 그가 운영하던 도매시장인 알튼 오르다(Altyn Orda)도 범죄의 온상이라는 이유로 폐쇄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자르바예프의 막내딸인 알리야와 연관이 있는 자동차 재활용 업체도 토카예프 대통령의 탈올리가르히, 독과점 방지 기조에 따라 국유화되었다.

나자르바예프가 초대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했던 조치들도 표적이 됐다. 여기에는 카자흐스탄 입법부도 가세했다. 누르오탄당은 당명을 아마나트(Amanat, 카자흐어로 ‘선조의 언약’, ‘미래세대로의 위임’을 의미)로 개명했다. 또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 퇴임 이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이름인 누르술탄으로 개명한 수도명을 다시 아스타나(Astana)로 회귀하는 결의안과 초대 대통령의 특권을 없애는 법안들이 마련되었다. 마지막으로 토카예프 대통령은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국내외 정책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과의 관계를 정리하였으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현대화, 민주화를 통해 카자흐스탄을 일신하겠다고 밝혔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정치 개혁: 대통령 권한의 축소, 의회와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

시위 이후 토카예프 대통령은 정부 구성에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카자흐스탄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1월 11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알리한 스마일로프(Alikhan Smailov) 제1부총리를 총리로 임명하고, 내각 구성을 명령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지시로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었으나, 기존 12명 중 11명은 장관직을 유지하였고, 국방부 장관만 교체되었다. 내각 이후 토카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내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국내 대기업에 자선 재단 설립과 정기 후원을 촉구했다. 한편 고위 공직자들의 급여 동결, 정부의 독점 폐지, 공정 경쟁 보장 등의 약속을 내세우자 일부 카자흐스탄인들은 열광했다.

3월 국정 연설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정치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새로운 카자흐스탄: 회복과 현대화의 길(New Kazakhstan: The Path of Renewal and Modernization)’이라는 연설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자신이 개혁을 추진해왔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지난 1월 대규모 시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연설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 대통령의 권한 조정, △ 권력 기관의 재구성, △ 선거제도 개선, △ 정당 체계 발전 기회 확대, △ 선거 절차의 현대화, △ 인권 보호 기구의 강화, △ 행정 구역 개편, △ 지방 자치 정부의 탈중앙화, △ 위기 대응 절차 강화라는 우선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정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토카예프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의원들을 임명, 해임할 정도로 막대한 권한을 지녔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상원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의원의 수를 줄여 의회 내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을 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외에도 상하원 선거제도의 변화, 폐지되었던 헌법재판소의 재설치, 인권 보호를 위한 행정감사관의 역할 강화 등의 내용이 거론되었다. 연설 이후 토카예프 대통령이 약속한 정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법률가들과 비정부기구(NGO) 대표단이 참여하는 실무단이 구성되어 개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3월 연설 주요 내용

새로 마련된 개헌안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한 강화 및 의원 선거제도의 변화, 헌법재판소 설치와 인권 강화,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 초대 대통령의 특권 폐지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개헌안에서 56개 조항이 변경되었으며, 변경된 주요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다음 표와 같다.

카자흐스탄 신헌법의 주요 내용
출처: Euractiv, “The 56 amendments” (https://www.euractiv.com/wp-content/uploads/sites/2/2022/06/Comparative-table-amendmants-Kazakhstan-referendum.docx) (검색일: 2022.11.13.)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새로 마련된 개헌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묻겠다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의 국민투표는 1995년 현행 헌법이 채택된 이후 21세기 최초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21세기 첫 국민투표인 만큼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이번 개헌 국민투표에 큰 기대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투표 전 카자흐스탄 씽크탱크인 카자흐스탄 전략연구소(KazISS, Kazakhstan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가 5월 9~12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중 66.4%가 국민투표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으며, 76.4%는 국민투표 시행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2022년 6월 5일 예정대로 국민투표가 시행되었으며, 카자흐스탄 중앙선거위원회(Central Referendum Commission)는 전체 투표율이 68.05%, 이 중 77.18%가 개헌안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우리가 새롭고 정의로운 카자흐스탄을 건설하기 위해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며 투표 결과를 환영하는 한편, 앞으로 민주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9월 1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정치 개혁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2024년 대통령 선거, 2025년 의회 선거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조기 대선과 조기 의회 선거를 실시하면 2023년 중순까지 대통령, 의회, 정부 등 주요 권력 기구가 일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카자흐스탄은 11월 20일 조기 대선을, 2023년 상반기 조기 의회 선거를 치르게 됐다. 개헌 이후 진행되는 첫 선거인만큼 토카예프 대통령의 연임 횟수가 초기화되었다. 이어 9월 17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임기를 기존 5년 연임 가능에서 7년 단임으로 제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카자흐스탄 의회는 위 법안에 만장일치로 동의하면서 11월 20일 7년 단임의 대통령을 선출하게 됐다.

대선에 출마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공정 국가, 공정 경제, 공정 사회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면서 보다 구체적인 정치, 경제 개혁을 제시하였다. 이번 선거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의 득표율은 81.3%를 기록하였으며,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차지한 아우일(Auyl)당의 지굴리 다이라바에프(Jiguli Dairabaev)의 득표율은 3.42%에 그쳤다. 한편 ‘후보 전부 반대’의 득표율은 다이라바에프보다 높은 5.8%였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다시 한번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7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11월 26일 토카예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정부 기관을 일신하고, 공정한 카자흐스탄을 건설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정치 개혁 평가와 지역정치적 함의

2019년 취임 이후 토카예프 대통령은 청취 국가(Hearing State)의 개념을 내세우면서 사회와의 소통을 중시하였으며, 자신이 추진하는 정치 개혁이 민주화와 정치의 현대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카자흐스탄 정부와 의회는 과거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이 누렸던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개헌을 추진하였으며, 추가적으로 대통령의 연임을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의원 수를 줄이는 한편, 선거 방식을 혼합하여 대표성 확대를 도모하였다. 뿐만 아니라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방정부에 대한 대통령의 영향력 축소, 지방정부의 자치권 확대를 통해 탈중앙화를 모색했다. 이는 카자흐스탄이 건국된 이래 가장 분권적인 변화이다. 통치의 정당성이 법적 권위,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에서 비롯된다는 막스 베버(Max Beber)의 유형(Weber, 1968)에 따라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을 평가해본다면,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은 과거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카리스마적 권위에 기반한 통치에서 법적 권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갈퉁(Galtung)의 평화 개념을 통해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을 바라본다면, 토카예프 대통령의 권력 투쟁과 개혁은 엘리트 간의 소극적 평화를 이룬 뒤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갈퉁은 투쟁이 끝나고 폭력이 부재한 상황을 소극적인 평화(Negative Peace)로, 협력과 평등으로 나아가는 것을 적극적인 평화(Positive Peace)로 규정하였다. 적극적인 평화는 경제적 안정, 평등이 지속 가능한 구조를 창출을 추구하는 것으로, 제도적인 개혁과 이를 추진하기 위한 노력도 갈퉁이 제시하는 적극적인 평화에 포함된다(Galtung, 2013).

하지만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은 학자들이 규정한 민주화, 민주주의의 높은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첫째, 여전히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가진 권한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 비해 과중하다. 개헌과 개혁 입법으로 제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과거에 비해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상원 의원을 임명할 수 있다. 따라서 개헌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분권 체계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완전히 견제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둘째, 정당 정치 측면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민주화가 요원한 상황이다. 카자흐스탄 내에서는 여당인 아마나트당의 의석이 하원과 각 지방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한편 야권과 시민사회는 경쟁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창출할 능력이 없으며, 야권의 동원과 시민사회의 사회운동을 통한 정권의 퇴출 혹은 교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이유로 카자흐스탄 내에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평가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두 번의 정권 교체’가 나타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Huntington, 1991). 경쟁적인 야당의 부재, 두 번의 정권 교체가 발생하지 않는 한 카자흐스탄은 권위주의, 비경쟁적인 절차적 민주주의, 하이브리드 체제 등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권위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토카예프 대통령의 시위 진압과 개혁은 민주화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의 관리에 가깝다. 권위주의 갈등 관리는 갈등의 해결 이후 담론, 경제, 정치 구조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정권의 공고화 과정이다. 권위주의 갈등 관리는 정부가 국내 갈등을 무력으로 제압한 뒤 담론을 형성하여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고, 갈등이 있던 지역 내 자원을 통제하며, 정치 구조를 개편하여 결과적으로 권력을 강화한다(Lewis, Heathershaw & Megoran, 2018). 토카예프 대통령의 시위 진압과 주요 공기업, 경제 관련 기관에서의 나자르바예프 측근의 사퇴, 권력 구조 개편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권위주의의 갈등 관리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를 진압하면서 시위 참가자들을 테러리스트,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몰아세웠으며, 주요 정적들을 정부 전복 쿠데타를 모의하였다는 이유로 구속하였다. 또한 시위를 진압한 이후 나자르바예프 일가는 국영 에너지 인프라 기업에서 자리를 떠났으며, 나자르바예프 일가가 진행하던 일부 사업은 국유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토카예프 대통령이 추진한 대통령과 의회, 중앙과 지방 간 권력을 분산하는 정치 개혁은 권위주의 갈등 관리의 관점에 설명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이 자신의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통치술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헌과 국민투표, 조기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으로서의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며, 국민을 회유하는 상징적인 행위에 가깝다. 실제로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시위 이전부터 토카예프 대통령의 공약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었으며, 시위 이후에 발표된 공약들도 사실상 달성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정치 개혁은 사회경제적 구조를 개편하여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보다 쉽고, 국민들의 입장에서 빠르게 정치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시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실제로 토카예프 대통령이 추진한 개헌은 사회의 전반적인 요구를 담아내는 것보다 권력 구조를 개편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이번 조기 대선 투표율을 살펴보면 카자흐스탄 국민들이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지난 2005년과 2019년 대선을 제외하고 모두 80%를 넘어섰으나, 이번 국민투표와 조기 대선 투표율은 70%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반정부 시위의 규모와 폭력의 수위가 높았던 알마티의 투표율은 가장 낮은 28.72%를 기록했다.

2022년 11월 20일 대통령 선거 지역별 투표율
출처: 카자흐스탄 중앙선거위원회 (https://www.election.gov.kz/eng/news/releases/index.php?ID=8014) (검색일: 2022.12.01.)

종합해보면 토카예프 대통령의 개혁은 개인의 권위에서 벗어나 제도적인 권위의 전환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것을 민주화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권위주의적인 권력 강화로 평가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적인 부담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설득하고, 권력이 공고한 나자르바예프 일가와 투쟁하며, 다른 엘리트들을 회유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나자르바예프 일가를 억제하고, 국민, 정치 엘리트들과는 타협할 수 있는 변화를 모색하여야 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정치 개혁은 국민들과 그가 포용한 정치 엘리트와의 새로운 균형점 모색을 위한 시도인 셈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개헌과 국민투표, 조기 대선을 활용하여 국민과 다른 정치 엘리트의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카자흐스탄 내에서는 1월 시위를 촉발하였던 사회경제적 불평등, 사회안전망의 부재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지난 1월 시위가 발생하기 전부터 사회경제적 불평등, 사회안전망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코로나19 범유행과 이어진 물가 상승으로 카자흐스탄 국민들이 겪는 사회경제적 부담은 가중되었으며, 1월 시위에서 처음 등장한 구호는 생계를 위한 LPG 상한제 폐지 반대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와 사회경제적 상호의존이 큰 카자흐스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부터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으며,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어진 물가 상승 문제도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오랜 기간 형성된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외부 압력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권력 투쟁과 엘리트 간 새로운 권력 균형을 이루어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따라서 토카예프 대통령이 진정 국민들을 위한 개혁을 추진한다면, 정치 개혁을 넘어서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 구조를 개편하며, 안정적인 사회로 카자흐스탄을 이끌어가야 한다.

재임에 성공한 토카예프 대통령은 정권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 이후 토카예프 대통령이 첫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선택하면서 다시 한번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관계가 주목받았다. 지난 1월 러시아는 CSTO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면서 토카예프 대통령을 비호했다. 과거 CSTO는 회원국이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을 때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2) 지난 1월 카자흐스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CSTO의 평화유지군 파견은 카자흐스탄 국내에서 안보 분야를 장악하지 못한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러시아의 지지로 카자흐스탄 내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토카예프 대통령이지만, 그 이후 러시아를 추종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지난 6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며, 주권과 영토적 온전성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 점을 고려해보면 토카예프 대통령은 자국의 주권과 영토적 온전성을 저해하지 않는 한,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자 할 것이다. 러시아 순방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이 정치적인 중요성과 상징성을 지니며, 러시아는 항상 카자흐스탄의 전략적 동반자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토카예프 대통령이 친러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카자흐스탄이 처한 지정학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토카예프 대통령도 실리적인 측면에서 다면 외교(Multi-vector Foreign Policy)를 통해 국제사회와 중앙아시아에서 자신과 카자흐스탄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 할 것이다. 특히 토카예프 대통령이 주장한 민주화, 인권 강화 등 정치 개혁은 미국을 비롯한 가치 외교에 중점을 둔 서방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내는 계기이자 협력의 발판이 될 것이다. 또한 국경을 접한 중국과 중앙아시아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튀르키예와 중동 국가들과도 사회, 경제, 문화 협력을 통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또한 토카예프 대통령이 국제연합(UN) 제네바 사무소장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역정치의 측면에서도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 이후 정치 개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 내에서도 2022년에 접어들어 통치의 정당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개헌을 통해 3선을 노리는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3선 개헌과 국민투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 헌법에 우즈베키스탄 내 자치 공화국인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독립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삭제하면서 카라칼팍스탄 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여 유혈 투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카라칼팍스탄을 방문해 직접 사과한 뒤 독립 가능 조항을 추가하겠다고 약속했다. 에모말리 라흐몬(Emomali Rahmon) 대통령도 중앙정부와 소수민족 간 갈등으로 인해 정당성의 도전을 받고 있다.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에서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소수민족 파미르인 젊은이를 탄압한 것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가 소수민족의 항쟁으로 발전하면서 타지키스탄 정부는 특별군사작전을 통해 반정부 활동가들을 진압했다. 이외에도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는 사디르 자파로프(Sadyr Japarov)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아버지로부터 막 권좌를 물려받은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Serdar Berdimuhamedov)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에게도 권력을 공고화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이처럼 카자흐스탄과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를 향한 길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고비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여 카자흐스탄과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저자 소개

조대현(eurasiannomad@gmail.com)은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외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중앙아시아센터 소속 연구원으로, 중앙유라시아 지역의 국내외 정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해외 정치, 경제, 사회, 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글로벌 노마드의 대표로서, 신흥 지역 정보 제공 사업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1) 그의 장녀인 다리가 나자르바예바(Dariga Nazarbayeva)가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이를 여러 차례 부인한 바 있다. 이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손자이자 다리가 나자르바예바의 아들인 누랄리 알리예프(Nurali Aliyev),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차녀인 디나라 쿨리바에바(Dinara Kulibaeva)의 남편인 티무르 쿨리바에프 등이 권력 승계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이들에게 권력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녀 다리가의 차남인 아이술탄 알리예프(Aisultan Aliyev)는 지난 2020년 8월 런던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하기도 했다.

2) CSTO는 2010년 키르기스스탄에서 시민혁명이 발생하였을 때나 2020년 이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전쟁과 교전을 벌였을 때 CSTO는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CSTO는 회원국인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2021년 이후 국경 지역에서 빈번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우려를 표명하였을 뿐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키르기스스탄 내 CSTO 합동 군사훈련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 11일 키르기스스탄은 훈련을 취소하였다. 또한 11월 23일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Yerevan)에서 개최된 CSTO 정상회담에서 니콜 파시니안(Nikol Pashinyan) 아르메니아 총리는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CSTO의 지원이 부족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참고문헌

  • 조대현. 2022.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슬로우뉴스, 1월 18일.
    https://slownews.kr/83657 (검색일: 2022.11.14.)
  • Galtung, Johan. 2013. “Positive and Negative Peace,” in Galtung, Johan & Fischer Dietrich, Johan Galtung: Pioneer of Peace Research, Springer.
  • Huntington, Samuel. 1991. The Third Wave: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 Weber, Max. 1968. Economy and Society: An Outline of Interpretive Sociology, New York: Bedminster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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