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 남아시아의 성 소수자 히즈라(Hijra)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사회에서 외모상 ‘여장 남자’로 보이는 ‘히즈라’는 인간이 오직 남성과 여성만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견해를 흔드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독자적 문화를 지닌 리미날적 성과 젠더 소유자이다. 인도아대륙의 고대부터 무굴제국과 영국 식민지기를 거치며 양극적 지위를 경험했던 히즈라들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성 소수자의 인권운동에 힘입어 법률적으로 ‘제3의 성’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글로벌시대에 히즈라를 ‘트랜스젠더’ 범주로 포섭하려 들지만, 모든 트랜스젠더가 히즈라가 아니고 대부분의 히즈라가 고유한 자신의 하위문화를 유지한 채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면에서 트랜스젠더로만 호명되기에는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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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히즈라 그룹
출처: Wikipedia

김경학(전남대학교)

히즈라(Hijra), 그들은 누구인가?

인도를 비롯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을 포함하는 인도아대륙의 고대 전통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젠더 고정관념 사이의 중간지점인 ‘젠더 리미날리티’(gender liminality) 성격의 리미날적 성과 젠더 소유자인 ‘히즈라’(hijra)가 등장한다. 고대 힌두 신화와 고담(古談) 등의 문헌에 자주 등장하던 히즈라는 중세의 무슬림 세력, 특히 무굴제국을 거쳐 근대 영국 식민제국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에 극단적 수준의 변화를 경험한다. 무굴제국 궁중에서 상당히 중요 역할을 하던 히즈라는 영제국 시기에 ‘범죄 집단’으로 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제국에서 독립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사회에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간 지대에서 자신의 성/젠더 정체성을 찾는 히즈라에 대한 다양한 차별은 지속되었다. 오늘날 글로벌시대에 성과 젠더 관련 새로운 의학과 사회과학 등의 이론과 실천의 영역이 확대되고, 게다가 초국가적인 미디어의 흐름과 성 소수자에 대한 국제 인권운동의 영향 하에서, 젠더 리미날적 존재인 남아시아의 히즈라의 인생사는 또 다른 국면을 만난다. 2014년 전후로 남아시아 대부분의 법원 또는 정부가 히즈라를 ‘제3의 성’(the third gender)의 성 범주로 인정하면서, 2015년에 인도 독립 이후 최초로 히즈라가 차띠스가르(Chhattisgarh) 주의 한 소도시의 시장에 당선되었다. 2014년 인도 대법원에서 히즈라를 ‘제3의 성’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후 9개월 만의 일이었다.

인간이 오직 두 가지의 성, 즉 남성과 여성만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견해를 흔드는 이분화된 성 체계에 속하지 않는 외모상 ‘여장 남자’로 보이는 ‘히즈라’를 남아시아의 대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델리(Delhi), 뭄바이(Mumbai), 아흐메다바드(Ahmedabad)처럼 대도시의 버스터미널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상가와 길거리, 그리고 여행 중의 열차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접근해 돈을 요구하는 ‘히즈라’를 마주칠 수 있다. 히즈라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히즈라 자신과 사회 일반이 이해하는데, 남아시아의 문화에는 이분화된 성 체계에 순응하지 않은 히즈라 같은 사람을 대하는 다양한 문화적 장치가 있었다. 신화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생물학적 성과 문화적 성이 개인의 일생에 걸쳐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남아시아 사회의 인식은 남성과 여성의 양성 중에 어느 한쪽에 소속되어야 정상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회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히즈라는 힌두와 무슬림이 지배적인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포함한 남아시아 사회에서 유사한 성적 지향, 역할, 정체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조직을 유지한다. 남아시아 밖 다른 사회의 ‘젠더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gender-nonconforming people)처럼 히즈라 개인과 공동체는 남아시아 사회에서 거주, 안전, 경제 활동 및 의료 등에서 차별받고 주변화되어왔다. 히즈라의 ‘품위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바다이’(badhai) 의례 수행자 역할보다는 생계를 위한 구걸과 매춘에 종사하는 히즈라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히즈라는 거리에서 일반인으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경찰 같은 공권력으로부터도 신체적, 성적 폭력과 현금 갈취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1980년대에 인도 현지조사를 통해 히즈라의 인생사를 모아 히즈라 문화와 성애(sexuality) 및 성 정체성 등을 연구한 인류학자 세레나 난다(Serena Nanda)의 저서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히즈라』(Neither Man, Nor Woman: The Hijras of India, 1998)는 여장을 하고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들로 구성된 종교적 색채를 띤 공동체 히즈라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세히 소개한다. 히즈라 문화의 핵심은 인도 모신(Mother Goddess)의 한 형태인 ‘바후차라 마따’(Bahuchara Mata)를 섬기는 것과 관련되는데, 모신 숭배를 위해 히즈라는 자신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수술을 받는다. 이 수술에서 남근과 고환이 외과적으로 제거되지만, 일반적인 성전환수술에서처럼 그곳에 질이 이식되지 않기에 히즈라는 ‘거세된 남성’인 셈이다.

바후차라 마따를 그린 Damian N. Boodram의 작품 (1990)
출처: Wikipedia

그러나 히즈라는 단순히 ‘거세한 남성’이 아니고 여성도 아닌 ‘또 하나의 성’(alternative gender), 또는 ‘제3의 성’으로 알려졌다. 모신 숭배의 하나로 거세 수술을 통해 정작 자신의 생식력이 상실되지만, 히즈라는 스스로를 모신 또는 쉬바(Shiva)와 동일시하여 여성의 창조력인 샥띠(shakti)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인도 사회와 문화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자신의 모호한 생물학적 성의 특성으로 히즈라는 전통적인 일인 신생아와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의례를 수행하고 ‘바다이’를 대가로 받는다. 생식력 없는 존재가 남아 탄생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생산성 충만을 위한 강복 의례를 수행한다는 역설적인 문화적 역할이 히즈라에 의해 수행된다. 히즈라의 성애의 포기는 타인에 대한 생산성을 내릴 수 있는 샨냐시(sannyasi), 즉 기세자(棄世者)의 힘과 연관된다. 모든 세속적인 것을 포기한 고도의 영적 존재인 힌두 금욕주의자 산냐시의 이미지에 자신을 일치시킴으로써, 히즈라는 창조적인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긍정적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남근과 고환이 의례적으로 제거되는 것이 히즈라의 의례적 힘의 근원으로 인식되는 인도와는 달리, 방글라데시에서는 히즈라의 거세는 진정성 없는 ‘가짜’ 히즈라의 증좌가 된다. 그곳에서는 태어나면서 성기를 상실하거나 애매하게 태어난 남성만이 ‘진짜’ 히즈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인도만큼 생산성과 풍요의 힘을 인정받지 못하는 방글라데시 히즈라의 ‘바다이’ 요구는 일종의 구걸이나 갈취로 이해된다.

신생아에게 강복 의식을 행하는 히즈라
출처: Takeshi Ishikawa(http://india-hijras.com/ishikawa/hijras/4.html)

히즈라의 ‘거세’를 둘러싼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의 규정 차이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역할, 성 정체성, 성애의 대상, 생계방식 등의 다양성으로 전통적인 ‘바다이’ 의례수행자로 정의하기에는 적합지 않은 히즈라가 적지 않다. 특히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젠더’로 히즈라를 정의하는 데에 상충하는 다양한 성 정체성을 보이는 히즈라도 적지 않아 혼란스럽다. 문화적으로 전통 의례를 수행하고 그 대가로 생계를 해결한다지만, 이런 일에 종사하는 히즈라가 현실에서는 많지 않다는 점에서도 모순이 생긴다. 특히 많은 히즈라가 자신을 ‘여성’이라고 느끼고 있는 현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라는 히즈라의 정의와도 왠지 맞지 않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출생 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양성구유자로 출생한 히즈라가 드물고, 거세하지 않은 히즈라가 현실에는 훨씬 많다는 점도 문화적으로 규정된 히즈라의 정의와 모순된다.

인류학자 세레나 난다의 인도 히즈라 연구와 방글라데시 히즈라에 대한 호세인(Hossain, 2012; 2014)의 연구는 히즈라 공동체 내부에 상호 모순되는 히즈라가 많음을 보여준다. 일부 히즈라는 자신을 ‘제3의 성’으로 규정하지 않고 여성으로 또는 여성과 남성적 특징을 혼합한 문화적 표지를 통해 자신을 규정하며, 세계화 시대에는 성 소수자 활동가들이 히즈라를 ‘트랜스젠더’(Trangender)나 게이(Gay)의 일반적 범주 안에 포함하려 한다. 일부 히즈라는 스스로를 트랜스젠더나 게이로 인정하고 있으나, 트랜스젠더와 단순 동성애자와는 달리 대부분의 히즈라는 사회 일반과 분리된 공동체에 살면서 독자적 문화를 갖고 있다. 게다가 남성 애인이나 남편 또는 남성 고객과 성관계를 하지만, 히즈라는 관계에서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되던 성역할만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게이로 범주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남아시아 사회에서 마주하는 히즈라는 전통적인 여성 복장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신체와 얼굴에서 털을 제거하며, 늘 긴 머리를 유지하고, 여성적 몸짓과 여성 이름을 사용하며, 일부는 호르몬 처치를 통해 여성화 작업에 몰두하는 등 ‘여성적’ 특성을 보이면서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버스나 전철 등 대중 교통수단에서 여성 좌석을 요구하는 등 여성처럼 보이려 하지만, 자신이 남아시아 사회의 전형적 여성이 아님을 일반인이 깨닫게 되는 상황을 고의로 만든다. 남아시아 여성의 젠더 규범상 꿈도 꾸지 못할 행위들, 예를 들어 입에 담지 못할 속된 표현을 대중 앞에 거침없이 뱉어내고, 특유한 히즈라 방식의 손뼉을 쳐대며, 대중들 앞에서 선정적 가사의 노래에 성적 냄새가 물씬 나는 야한 몸동작으로 춤추면서 자신들이 ‘완전한 여성’이 아님을 드러낸다. 방글라데시 히즈라들은 때에 따라서 여성 복장이 아닌 남성 의복도 착용하는데, 메카를 방문하는 성지순례 ‘하지’(Haji)에 참여하는 거세한 히즈라조차 남성복을 착용한다. 방글라데시 히즈라 연구자 호세인(Hossain, 2012)과 인터뷰한 일부 히즈라들은 자신을 남성 신체로 만들어 준 알라신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하지에 참여할 때 그렇다고 주장한다.

히즈라 특유의 손뼉, 일명 히즈라 박수(Hijra Clap)에 대해 소개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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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히즈라는 거세를 통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종교적 수행자로 인정받거나, 일상에서 ‘여성처럼’ 행동하면서도 젠더 규범상 여성에게 적합지 않은 언어와 행동으로 ‘여성이 아닌’ 리미날적 젠더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통적인 의례 수행으로 생계를 잇는 히즈라보다 일정 구역에서 구걸과 매춘으로 사는 히즈라가 많다. 일반 대중들이 히즈라를 ‘여장한 남자’로 인식하고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매춘하는 현실을 근거로 히즈라를 ‘게이’라는 일반화된 동성애적 시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게다가 히즈라의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양면적 외모와 일탈적 행동은 일반인을 불안하게 만들어 히즈라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이어진다. 이원적 성과 젠더 개념이 정상이라는 고정관념이 확고히 된 이후, 이에 순응하지 않고 둘을 결합하거나 둘 사이를 유동하는 히즈라들은 역사적 시기상 차이는 있었지만 소외되고 낙인찍힌 공동체로 남아시아 사회에 남아 있다.

 

히즈라 입문과 사회·경제 생활

일부 인류학자(Nanda, 1998; Reddy, 2005; Gole, 2016; Hossain, 2014)가 남아시아 사회의 히즈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장기적인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하였다. 이들은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현지조사 과정에 만났던 히즈라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히즈라 공동체에 입문하기 전과 이후의 삶, 입문과 거세, 사회조직과 일상적 삶, 의례 수행과 구걸 및 성매매를 통한 생계유지, 남성과의 성생활 등 히즈라의 인생 단계에 따른 삶의 다양한 영역을 이해하고자 했다. 히즈라 내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히즈라는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나 그 이후의 인생에서 성 정체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히즈라가 되는 과정은 급진적이지 않고 상당히 점진적이었다. 이들 히즈라는 청소년기에 자신과 반대되는 성적 정체성을 보이는 일들, 예컨대 여장하고 여자처럼 소변을 보고 여성 이름을 지어 부르고 몸짓과 말투뿐만 아니라 여자와만 손잡고 노는 등 많은 점에서 여성적 특성을 보였다. 이런 특성을 보인 청소년들은 자신에 대한 부모와 교사 등 타인들의 부정적 반응, 친구들의 괴롭힘, 다른 남성 청소년이나 성인들의 성적 접근 등을 겪는다. 이런 외부인의 반응과 함께 집에서 멀리 도망쳐 갖가지 구속들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방해받지 않고 여성적 행위를 하고 싶은 욕구, 남성과 성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 등이 부과되면서,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인정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같이 느낀 히즈라들과 비공식적 관계를 나누다 결국 히즈라 공동체에 공식 입문하였다.

공동체 가입을 위해 자신의 후견인 격인 ‘구루’(guru)를 정하면서 구루의 제자인 ‘첼라’(chella)가 된다. 사실 히즈라 공동체는 일반 사회와 다르지만, 인도 등 해당 사회의 가족과 공동체 조직 속성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 한 명의 구루 아래 여러 첼라가 있고, 구루들의 최고 지도자인 ‘나익’(naik)은 특정 히즈라 집단의 수장이 된다. 이런 히즈라의 위계 구조에 따른 지위 규범이 있다. 첼라는 3개월~3년여 기간 동안 가사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구루는 제자의 사회보장과 의식주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첼라의 일상을 규제하고 관습과 의례를 가르친다. 동일 구루 내의 히즈라들은 혈연관계처럼 ‘구루 바이’(구루의 형제간)로 부른다. 개별 히즈라의 의례와 공연 및 구걸과 매춘 수입의 일부를 구루의 지분으로 할당해 집안이 운영된다. 공생적이면서 위계적인 구루-첼라 관계는 히즈라 사회조직의 근간이다. 공동체 관습에 불순종한 첼라는 파문당하거나 공동체에서 추방된다. 히즈라들이 쉽게 장소를 옮겨 다닐 수 있고 어디서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은 광범위한 ‘의사 친족’(fictive kinship) 관계망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파문과 추방은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

도시화와 교육 수준의 향상 및 서구적 가치의 확산 등으로 히즈라의 ‘바다이’ 수행을 요청하는 일반 가정이 크게 줄었다. 히즈라들은 ‘바다이’ 의례 요청의 급감으로 자신들이 매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매춘’은 세속적 욕구를 털어낸 탁발승 산냐시의 문화적 이상향에 동일시했던 히즈라 이미지와는 크게 배치되는 생계방식이기에, 히즈라들은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매춘한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매춘 수입의 대부분이 자신의 구루에게 돌아가고 대신 구루는 난폭한 손님이나 경찰의 폭력에서 매춘 히즈라를 보호해줌으로써 ‘매춘 첼라와 구루’로 구성된 공동체가 히즈라 매춘영업장을 구성한다. 구걸은 최후의 수단으로 히즈라 공동체 내에서 비천한 것으로 생각한다. 히즈라들은 도시 내 지정 구역의 가게 주인으로부터 정기적으로 구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교통체증이 상시적인 큰 도로의 사거리 교통신호기 인근에서 부정기적인 구걸도 이루어진다. 사실 구걸은 비참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히즈라가 지닌 종교적 탁발승이란 이미지와 어울리는 일이기도 하다.

인도 뭄바이의 외곽 지역에서 잠재적 고객과 대화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여성
출처: 연합뉴스

한편 모든 히즈라가 공동체에 가입하자마자 자신의 성적 모호함을 완전히 해결했던 것은 아니었다. 히즈라 공동체 가입은 자신에게 새로운 성역할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이게 하지 않고 긴장과 불화로 가득했던 과거의 삶과 단절을 의미한다. 히즈라 공동체에 공식 입문 후에도 자신의 성 정체성의 모호함을 여러 해 경험한 히즈라도 적지 않다. 이런 성 정체성의 모호함은 거세 수술을 받기로 결정을 내리는 순간까지 또는 수술을 받은 후 이후에도 이어진 경우가 있다. 수술 후에 대부분의 히즈라는 자신의 공동체 구성원 내 다른 히즈라나 남성 고객과의 성관계 빈도가 늘어감에 따라 남성이 아닌 여성적 성 정체성이 점차 강화되었다. 인류학자들의 히즈라에 대한 연구물들은 히즈라의 성 정체성과 성역할이 인생의 후기에도 변화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남성과의 성관계와 바다이 수행 및 구걸뿐만 아니라 남성과의 결혼과 헤어짐 등 인생 전반에서의 히즈라의 다양한 역할 간에 일련의 관련성이 있다는 점은 성 정체성의 발달과정이 급진적이 아닌 점진적이며, 최소한 일부 히즈라는 성 정체성 변화를 평생에 걸쳐 경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히즈라, 궁중 내시에서 범죄 집단을 거쳐 3의 성으로
양성구유 형태의 쉬바신, 아르다나리쉬와라(Ardhanārīśvara) (좌: 1800년대/우: 1710-20년대)
출처: Wikipedia

기원전 5세기의 자이나교 종교문학과 수피즘 전통 및 고대 산스크리트 문헌들에는 인도아대륙의 ‘젠더 유동성’(gender fluidity) 관련 문화적 담론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특히 힌두 세계관이 반영된 힌두 신화와 의례 및 예술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남성과 여성이 결합된 존재가 등장하고 그것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주제가 된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일부 신과 인물은 남녀양성구유자이거나 이성 행세하거나 성전환을 한 주인공들이다. 신화에서 쉬바, 비슈누(Vishnu), 크리슈나(Krishna)는 때때로 남녀양성구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일부 밀교적(tantric) 힌두 관습에는 남성의 복장도착행위가 신앙심의 한 형식이거나 신이 남성과 여성의 성 기관이 합쳐진 이상적인 자웅동체가 된다. 이런 모든 것들로 보아 고대 인도아대륙에는 ‘제3의 성’ 역할과 이것과 관련된 성행위에 대해 양면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 같다. 이분화된 남녀 성/젠더 체계가 철저한 서구 문화와 종교이념과는 달리 고대 인도아대륙의 문화에는 우주가 끝없이 다양하고 모든 가능성에 열려있다는 생각을 존중해 온 것이다. 이런 문화적 환경 내에서 ‘또 하나의’(alternative) 성과 젠더에 대한 인정은 인도에서 지난 3천여 년이란 오랜 시간 이어진 전통이었다. 그 학문적 검증은 어렵지만, 인더스 문명의 하랍파 유적지에서도 양성구유가 묘사된 다양한 토기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인도아대륙에 젠더 혼합된 존재에 관한 생각은 무척 오랜 역사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여성 테라코타상에서 발견되는 가슴 표현, 부채 형태의 머리장식과 남성기가 함께 표현된 양성구유 모습(e)의 토기
출처: Sharri R. Clark. 2003. “Representing the Indus Body: Sex, Gender, Sexuality, and the Anthropomorphic Terracotta Figurines from Harappa,” Asian Perspectives 42(2): 304-328.

11~12세기 페르시아로부터 무슬림 통치자들이 유입된 후 무굴제국 시대에 이르러 히즈라의 역할과 정체성은 크게 주목받게 되었다.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쿠란의 경고에도, 15~19세기 인도 무굴제국 통치 기간 ‘고자’ 또는 ‘내시’로 지칭된 히즈라는 무굴제국 궁정에서 세금과 관세 징수관처럼 중요 관직을 받았으며, 거세된 자로서 왕의 후궁들의 경비대원 역할을 하는 등 무굴제국 통치자의 측근이었다. 영국 식민지배 이전의 많은 수의 힌두 토후국(Hindu Princely States)에서도 히즈라는 일정 토지를 하사받아 상속했으며 일정 지역의 농가로부터 식량과 보시를 걷을 수 있는 특권이 왕으로부터 하사되었다. 무굴제국과 힌두 토후국 시기에 어느 정도 품위유지가 가능했던 히즈라의 운명은 영국 식민제국 하에서 그 사회적 지위가 나락으로 떨어져 범죄 집단의 하나가 된다.

영제국이 들어서자 기존의 모든 히즈라의 특권은 폐기되고 농지도 압수되었다. 영제국은 공공예절에 관한 법령을 위반하는 히즈라의 모든 행동을 처벌하고 거세를 범죄시하는 등 히즈라를 ‘범죄 카스트’(criminal caste)로 간주해 1871년 제정된 ‘범죄부족법’(Criminal Tribe Act)을 통해 범법행위를 할 소지가 있는 히즈라와 일부 부족들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다. 영제국은 히즈라처럼 ‘자연 질서에 반하는 육체적 성교’를 범죄행위로 규정한 인도 형사법(Indian penal, Code, 이하 IPC)을 도입하여 히즈라를 일탈자로 만들고 통제했다. 이들은 히즈라의 남성과의 성행위를 범죄시하였으며, 이에 대한 합리적 증거는 팽창된 항문과 매독 징후 등의 법의학에 의존했다. 영국의 식민통치에 의해 부과된 의료화뿐만 아니라 몸에 대한 통제는 히즈라를 남녀 이분화 밖의 이질적인 것들로 병리화하였다. 영제국 하에서 히즈라는 법의학에 기초하여 비생식적 성관계를 한 범법자가 되었으며, 이는 영제국 식민통치 이전 인도의 성적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는 크게 상반되었다. 당시 인도형사법(IPC) 제377조에 따르면 대중 앞에서나 공공장소에서 히즈라처럼 여성 차림을 한 남성은 범죄시 되었다.

히즈라를 범죄 카스트로 간주하고 이들의 행동을 감시·통제하는 등 범죄화한 ‘범죄부족법’은 1871년 북인도 지역에서 처음 적용된 후 1924년 인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출처: Wikipedia

히즈라를 범죄시하는 식민지 법인 제377조는 독립한 인도에도, 종교적 차이로 분리 독립한 파키스탄과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방글라데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영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다양한 법안들이 히즈라가 어느 한쪽의 성을 선택하지 않는 한 히즈라의 투표권, 재산권, 결혼, 여권과 식량지원카드 및 운전면허를 소지할 권리를 박탈했다. 이들 법안은 경찰 등 공권력이 히즈라를 단속하고 범죄시하는 데에 근거로 작용했다. 인도 하층민과 불가촉천민에게 제공되는 ‘할당제’(reservation policy)와 같은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의 헌법적 수혜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2000년대 이래 글로벌 성 소수자 활동가들의 지원에 힘입어 인도 성 소수자 지원단체들은 소위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제재를 금하는 청원을 법정 투쟁 등 여러 경로로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나 2014년 인도 대법원이 히즈라를 포함한 트랜스젠더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하는 헌법적 권리를 인정하였고, 같은 해에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도 히즈라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하고 다른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2015년 마두 바이 낀나르(Madhu Bai Kinnar)가 역사상 최초의 히즈라 출신으로 인도 차띠스가르 주의 라이가르(Raigarh) 시의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인도 대법원에서 트랜스젠더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한 결정이 나온 지 9개월 만이었다. 낀나르는 달리트 출신 히즈라로서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였고, 히즈라의 성과 젠더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된 2014년 이후 최초의 히즈라 출신 정치인이 되었다.

인도 최초의 히즈라 시장 마두 바이 낀나르(Madhu Bai Kinnar)
출처: Google Art & Culture
저자: Aditya Raj

2018년 9월 6일은 인도 대법원이 영제국 이래 히즈라 등의 동성애자를 범죄시하는 인도 형사법 377조를 폐기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내린 날이다. 이로써 인도 히즈라 공동체를 비롯한 트랜스젠더는 범죄 집단의 오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간 동성애를 범죄시하면서 금품을 뜯던 공권력이 더는 히즈라를 최소한 법안을 토대로 괴롭히지 못하게 되었다. 2018년 대법원판결은 성과 성 정체성, 성적 이데올로기 및 LGBT 성 소수자 운동 등에 관한 전 지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도와 남아시아 사회의 히즈라를 포함한 성 소수자 집단 노력의 결실이었다. 히즈라와 LGBT 그룹의 법률개정을 위한 투쟁은 법이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어내 성 소수자를 통제하였는지를 선명히 보여주었다. 사실 히즈라를 포함한 남아시아의 성 소수자들은 영국 식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편견의 잔재에 맞서 싸웠던 셈이다.

그러나 2016년에 처음 입안되어 히즈라와 트랜스젠더의 엄청난 항의에 직면한 후 일부 개정된 뒤 2019년에 최종 통과된 트랜스젠더 권리보호를 위한 ‘트랜스젠더법’(Transgender Persons Act)은 2014년과 2018년 법원의 진보적 판결을 무색하게 하였다. 2019년 트랜스젠더법의 가장 중요한 독소조항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성전환수술이나 의학적 개입 없이 성 정체성을 선언할 수 있는 ‘자신이 지각한 성 정체성’(self-perceived gender identity), 즉 성 정체성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하는 법률적 판단과 새로운 법안이 만들어지면서, 인도의 히즈라는 ‘트랜스젠더’라는 보편적인 범주에 포섭된 것으로 보인다.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문화에서 태어나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반대되는 젠더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행동하는 젠더 변이를 보이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라면, 사실 적지 않은 히즈라가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히즈라를 트랜스젠더로만 인식하고 호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인도의 모든 트랜스젠더가 히즈라가 아님은 분명하기 때문이며, 히즈라들이 LGBT 집단에 포함되나 이들은 인도 사회 내 고유한 자신의 하위문화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세레나 난다 등의 히즈라 연구자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특이한 지점에 있는 의례 수행자 히즈라의 문화적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히즈라의 역할이 인도 문화의 많은 문화적 주제들과 관련 있기에 히즈라의 역할은 인도의 특정한 문화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즈라 공동체는 각종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어 온 집단으로, 최근 이들이 직면한 최대의 위기는 건강영역에서 나타난다. 한계 상황에서 생계 수단인 성매매를 통해 적지 않은 히즈라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되는 등 성병에 노출되어 있다. 히즈라들이 각종 정보와 의료서비스 접근에 극히 제한되어 성병 치료가 지연되거나 HIV 예방에 대한 정보가 없으며,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 성병에 더 노출되는 현실은 히즈라의 사회적 배제와 건강 문제가 연결되는 전형적인 경로를 보여준다. 그간 히즈라에 대한 다차원적인 사회적 배제를 가져온 제도와 일상적 학대는 HIV 감염 위험이 높은 히즈라의 생활방식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히즈라를 사회의 일반적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저자 소개

김경학(khkim@jnu.ac.kr)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이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문화인류고고학과와 대학원 디아스포라학과에서 국제이주와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강의와 연구를 하고 있다. 전남대학교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해외 인도인 디아스포라를 연구해왔고 최근에는 국내 네팔과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및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이주민의 초국적 가족과 돌봄에 관한 현지 연구를 통해 다수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참고문헌

  • Gole, Ina. 2016. “Hijra Communities of Delhi.” Sexualities 19(5-6) : 535-546.
  • Hossain, Adnan. 2012. “Beyond emasculation: Being Muslim and becoming Hijra in South Asia.” Asian Studies Review 38(2) : 274-294.
  • Hossain, Adnan. 2014. “Beyond emasculation: Pleasure, power and masculinity in the making of hijrahood in Bangladesh.” Ph.D. Diss., University of Hull.
  • Nanda Serena 저. 김경학 역. 1998.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히즈라』. 서울: 한겨레신문사.
  • Reddy, Gayatri. 2005. With Respect to Sex: Negotiating Hijra Identity in South Indi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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