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나라 몽골의 변화하는 정치체제 :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의 길을 가다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평화적인 민주화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로의 체제변환에 성공한 몽골의 정치체제는 세 번의 정치적 변혁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민주주의 국가로의 길을 가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중국 청나라의 속박에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혁명이고, 두 번째는 중화민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위한 사회주의혁명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구소련의 위성국가에서 민주주의국가 수립을 위한 민주화혁명이다. 몽골은 현재 이 세 번의 정치적 변혁을 통해 성숙해가는 민주주의 국가의 길을 가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몽골의 정치적 변혁의 과정과 그 과정 안에서 파악해야 할 몽골의 독특한 정치적 이념과 체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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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단국대학교)

13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은 1368년 원나라의 붕괴가 시작되고 1755년 최후의 유목제국인 준가르제국(오이라트 몽골)1)이 중국 청나라에 복속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몽골제국을 차례로 복속한 명나라 한족과 청나라 만주족은 세계를 평정했던 몽골인들의 저력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을 철저히 지우고자 했고 이러한 억압의 세월을 겪어 오던 몽골은 세 번의 정치적 변혁을 통해 오늘날의 민주주의 몽골국의 정치체제를 완성하였다.

 

몽골의 독립 및 혁명기 :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다

몽골의 첫 번째 정치적 변혁은 1911년의 민족해방혁명이다. 19세기 후반 청의 집권력이 약해지기 시작하며 몽골의 각지에서는 청의 압정에 저항하는 투쟁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당시 몽골은 정치 및 종교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제정러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신해혁명을 통해 청이 붕괴되고 있던 상황을 기회로 삼아 민족해방혁명을 전개하여 1911년 12월 4일 독립을 쟁취하였다. 독립을 이룬 몽골의 정치체제는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복드칸(Bogd Khan) 제 8대 ‘젭준담바 호탁트(Jebtsundamba Khutuktu)’2)를 황제로 추대하고 그 아래 행정을 담당하는 총리부와 종교를 담당하는 종교부, 서구의 의회제를 참고하여 상하 양원으로 이루어진 의회를 두는 현대적 왕정체제였다.

독립을 통해 이룩한 이 현대적 왕정체제는 1915년 ‘카흐타 삼국협정’3)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고, 중화민국은 제정러시아의 정치적 위기와 혁명, 일본의 침략 야욕을 구실삼아 몽골의 독립을 철폐하고 자국의 성으로 다시 편입시키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1919년 11월 초 중화민국은 군대를 수도 ‘니스렐 후레’(현 울란바토르)에 진입시켜 황제와 총리를 위협하였고 마침내 11월 22일 중화민국의 대총통 위안스카이는 공식적으로 몽골의 독립을 철폐한다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민족해방혁명을 통해 이룩한 몽골의 독립은 그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몽골의 두 번째 정치적 변혁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1921년의 사회주의혁명이다. 중화민국에 의해 독립이 철폐된 후 몽골의 정치지도자들은 몽골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와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의 지원을 받아 1920년 6월 25일 몽골 최초의 정당인 ‘몽골인민혁명당(MPRP: Mongolian People’s Revolitionary Party)’이 탄생한다. 이 정당이 바로 현 몽골의 집권정당인 몽골인민당(MPP: Mongolian People’s Party)이다.

몽골인민혁명당은 1921년 3월 13일 몽골의 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인민임시정부 수립을 결의하고 본격적인 혁명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고, 몽골사회주의혁명의 영웅 ‘수흐바타르(Sukhbaatar)’장군을4)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인민임시정부는 우선 소비에트 정부에 적군의 전투부대를 몽골에 파병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고, 1921년 6월 16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몽골의 혁명투쟁 지원을 위한 파병을 공식 결정하였다. 이어 1921년 6월 28일 인민임시정부와 몽골인민당 중앙위원회는 공동회의를 개최하여 수도 ‘니스렐 후레’의 해방을 위한 몽골-소비에트 연합군의 최종 작전을 승인하였고, 수흐바타르 장군이 이끄는 몽-소 연합군은 7월 8일 마침내 수도에 입성하였다.

혁명을 성공한 몽골인민혁명당은 황제에서 물러났던 ‘젭준담바 호탁트’를 제한군주로 다시 추대하고 인민입헌군주제라는 독특한 정부체제를 출범시켰다.5) 이로서 몽골은 민족해방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이라는 두 번에 걸친 혁명을 통해 중국의 오랜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1924년 5월 20일 제한군주로 추대 되어었던 ‘젭준담바 호탁트’가 사망하자 몽골 인민혁명당은 다음 달 6월 7일 몽골인민혁명당 중원위원회에서 공화제 수립에 관한 결정을 논의하고 승인하였다. 이후 11월 24일 역사적인 제1차 국가대회의에서 ‘몽골인민공화국’을 선포하고 첫 헌법을 공포하였다. 몽골인민공화국 선포는 구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이자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과 동시에 명실상부한 사회주의체제의 독립국가로서의 길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몽골은 내·외몽골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이후 1990년 민주주의로의 체제변화까지 약 70년 가까이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전락하며, 좀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속박에서 다시 소련의 속박에 들어가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주의 체제의 몽골 : 소련의 첫 번째 위성국가 몽골

1924년 제1차 국가대회의를 통해 몽골 최초의 헌법을 공표하고 몽골이 인민공화국임을 선포한 것을 시작으로 몽골은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의 확고한 길을 가기 시작했다. 당시 인민공화국 정치체제의 가장 상위에는 몽골인민혁명당의 국가대회의가 있었으며, 그 아래 국가소회의가 있었으며 이들을 통해 각 행정기구와 지방정부가 구성되었다.

1928년 몽골인민혁명당 제7차 당 대회와 몽골인민공화국 제5차 국가대회의에서 소련(蘇聯) 코민테른(Comintern) 계열이 대거 지도부에 선출되면서 몽골의 정치체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목표를 뚜렷이 한다. 1929년 사유재산 몰수가 시행되었고 집단농장제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급진적 정책은 가축 수를 감소시켜 결국 국가 전체의 경제가 위태로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결국 반정부 투쟁을 촉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1932년 몽골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는 앞선 사회주의노선의 과오를 인정하고 향후 목표를 발표하는데 이것을 ‘신전환(新轉換) 정책’이라고 한다. 이 정책은 인민의 부의 축적과 재산을 일부 인정하고,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부여하는 등의 조항을 포함하여 독립 초기의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성격을 다시 강화하였다. 신전환 정책의 시행으로 사회경제적인 분야는 한층 발전하였지만,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소련의 간섭과 영향이 점점 더 심해졌다. 승려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으며, 소련과 다른 뜻을 가진 사람들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축출하였다.

이후 소련은 몽골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체제를 자신들이 지원하는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1인 독재정부를 계획하고 당시 부총리였던 초이발산(Choibalsan)6)에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게 한다. 초이발산은 소련을 등에 업고 대숙청을 시행하였고, 이 시기 약 2만여 명이 처형되고 6천여 명이 징역형에 처해졌다. 이렇게 하여 몽골의 정치체제는 명실상부한 1인 독재체제로 넘어갔으며, 몽골은 자국의 지도자가 소련의 꼭두각시가 되는 명실상부한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몽골인민혁명당은 1940년 사회주의 건설을 기치로 내건 신헌법을 제정하고 이 신헌법에 입각한 새로운 정치체제를 수립하였다. 이 당시의 정치체제는 최고 권력기관인 국가대회의, 국가소회의, 국가소회의장단의 조직과 규정 및 의무와 권한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였으며 정부의 지도체제는 공동지도체제로 명시하였고 인민대회의 아래 내각회의를 두어 실질적으로 모든 정책을 집행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정부조직 개편은 초이발산(Choibalsan)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몽골의 체제변화 : 민주화혁명

현 민주주의 몽골이 있기까지의 마직막 정치적 변혁민주화혁명이다. 1980년 중반부터 구소련으로부터 불어온 개혁·개방운동이 몽골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주어 몽골인민혁명당은 1988년 12월 중앙위원회에서 이러한 개혁개방운동의 파급효과를 염두에 두고 먼저 개혁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조치들은 몽골인민혁명당 스스로가 원하여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라 당시의 개혁·개방운동에 대한 국민들의 움직임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형식적 개혁조치에 불과하였고,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치들이었다.

1989년 12월 ‘몽골민주연맹(MDU: Mongolian Democratic Union)’이라는 민주화단체가 최초 결성되면서 뒤따라 수많은 민주화단체가 결성되었고 이들 민주화세력들은 결집하여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러한 민주화세력의 요구에 1990년 3월 몽골인민혁명당은 양대 세력이 함께 참여하는 원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하고 이 회의에서 인민혁명당은 정당법개정 즉 다당제의 도입과 기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인민혁명당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인민대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결의한다. 이 결의는 같은 해 5월 인민대회의에서 ‘몽골인민공화국 정당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킴으로서 실현된다.

위의 인민대회의에서는 ‘몽골인민공화국 헌법의 추가’라는 조항을 결의했는데, 이 법률에 새로운 신헌법(新憲法)이 제정될 때까지의 과도기 국가 정치체제를 수립하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 법률에 근거하여 정치체제를 인민대회의와 국가소회의, 대통령, 정부로 4분하였는데 인민대회의의 대표는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하고, 대통령은 인민대회의의 대표자들로부터 다수표를 획득한 자가 선출되었다.

현재 몽골의 정치체제는 1992년 신헌법으로 정립되었고, 이 당시의 통치형태는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인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部制)였다. 이후 2002년 12월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은 축소하고 의회와 내각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한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현 정치체제는 크게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나뉘고 행정부에는 대통령과 정부(내각)가 있다. 입법부인 국가대회의(국회)는 단원제로 되어있으며, 총 76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임기는 4년으로 직선제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가의 수반으로 직선제로 선출한다. 임기는 국회의원과 동일한 4년이고 연임이 가능하다. 또 총리, 국회의장과 함께 국가안보회의를 구성하고 그 의장을 맡는다. 대통령의 권한은 외교, 국방, 사법권을 가지며, 국회에서 총리 및 각료의 임명 시 제한적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은 국회에 대한 책임을 지며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을 시 국회제적인원의 2/3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할 수 있다.

정부(내각)는 국가의 최고 행정기관으로 총리와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국무위원은 총리의 제청으로 국회에서 임명한다. 국무위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 전에라도 불신임 결의에 의하여 퇴진이 가능하다.

몽골의 정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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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민주주의 국가로의 길을 걷다

위와 같은 민주화혁명을 통해 몽골은 현재 민주주의 국가로의 길을 착실히 걷고 있다. 몽골의 민주주의 과정을 살펴보면 다른 비슷한 과정을 거친 국가들과는 다른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는 무혈 민주화혁명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몽골의 민주화 과정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민주화 과정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제전환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자본주의 경제 도입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은 지금까지도 겪고 있지만, 정치적인 혼란은 비교적 크지 않았다. 이와 같은 독특한 형태의 체제전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몽골의 전통적 이념인 유목주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몽골의 체제전환은 몽골의 개혁과 개방을 원하는 국민이 주축이 된 민주화세력이 시작하였지만, 그 과정을 선두에서 이끌어 온 것은 민주화 세력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 시대의 집권세력인 몽골인민혁명당이었다. 즉 개혁되고 타도되어야 하는 대상이 그 개혁을 선두에서 지휘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몽골의 집권층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유연성, 융통성, 개방성과 빠른 습득력, 순발력으로 발현되는 유목주의적인 특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사회주의 시대 70여 년간 몽골을 집권했던 세력이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흡수하고 유연한 판단력으로 스스로 그 권력을 내려놓았고, 그 덕에 체제전환 시기의 혼란을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선거를 통해 다시 부여받은 것이다.

이렇게 첫 제헌국회 선거에서 몽골인민혁명당은 압승을 거두었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유리한 선거법을 제정할 수 있어 민주화 이후 신헌법에 기초해 치른 첫 선거에서 완승을 거두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주화 이후에도 탄탄한 기반을 구축한 인민혁명당은 현재까지 민주화를 주도한 세력을 대표하는 몽골민주당(MDP: Mongolian Democratic Party)과 함께 몽골을 지탱하는 양대 정당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둘째는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체제변화를 이룬 국가 중 현재까지 독재자가 단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다시 말해 민주적 정권교체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라는 점이다. 비록 정치와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부패지수는 매우 높지만 말이다. 민주화 이후 몽골은 몽골인민당(MPP)과 몽골민주당(MDP)의 양당체제를 중심으로 30여 개 민주정당이 총선과 대선을 민주적으로 치러 내고 있다. 1992년 첫 총선과 1993년 첫 대선을 시작으로 양당은 민주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고 있으며, 의회 권력과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여 선택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이와같이 몽골인들은 각각 1년씩 엇갈리는 총선과 대선 사이에서 균형있는 정치감각을 통해 의회와 대통령을 번갈아 선택하며 강한 민주적 주권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아직 경제적 후진국에 속하는 몽골이지만 경제성장 이후에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서구의 비교정치론적 통념과 어긋나는 것으로, 몽골인들이 정치와 관련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그들만의 내면적 판단의 준거가 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김선호, 2014).

연도 총선 결과 (76) 연도 대선 결과
1992년 몽골인민혁명당 (70석) 1993년 몽골민주당
1996년 몽골민주연합 (50석) 1997년 몽골인민혁명당
2000년 몽골인민혁명당 (72석) 2001년 몽골인민혁명당
2004년 몽골인민혁명당 (37석)
조국민주연합 (35석)
연립정부구성
2005년 몽골인민혁명당
2008년 몽골인민혁명당 (39석)
몽골민주당 (25석)
연립정부구성
2009년 몽골민주당
2012년 몽골인민당 (25석)
몽골민주당 (31석)
정의연합 (11석)
연립정부구성
2013년 몽골민주당
2016년 몽골인민당 (65석) 2017년 몽골민주당
2020년 몽골인민당 (62석) 2021년 ?
몽골의 선거 결과
출처 : 저자 제공

 

몽골의 정치이념: 유목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그 민족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몽골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몽골의 정치이념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는 유목주의(Nomadism)이다. 몽골은 전통적인 유목국가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만리장성 넘어 북방의 거친 땅을 떠돌던 이민족이라 일컫던 민족이다. 중국이나 한국이 농경을 기본으로 하는 정착민족이라면 몽골은 목축을 기본으로 하는 유목민족이고, 우리에게 정착민족으로 계급을 중시하고 규범을 중시하는 유교주의가 있다면 몽골에게는 유목주의가 있다. 이러한 유목주의가 지금의 몽골인에게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유목주의의 특성이 과거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을 정복하기도 했으며, 칭기즈칸의 시대에는 전 세계를 평정하기도 한 원동력이 되었다. 한마디로 유목주의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몽골인들의 유연성, 융통성, 개방성과 빠른 습득력, 순발력 등이 그 특성의 발현이라 생각된다. 위와 같은 특성은 몽골의 정치 및 대외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주변 국제 정세의 조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에 빠르게 적응하며, 현실주의와 국가이익에 우선순위를 두고, 주변 정세에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이 이를 반영한다.

두 번째는 사회주의(Socialism)이다. 몽골은 가장 오랜 세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 국가 중 하나이다. 이 때문에 몽골은 체제전환 후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사회 곳곳에 사회주의 시절의 문화와 정신적 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절을 오랫동안 겪은 세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를 동시에 경험한 세대, 체제전환 이후에 출생한 민주주의 세대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살아가고 있고, 이는 몽골의 제도권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세 번째는 민주주의(Democracy)이다. 몽골은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체제를 전환한 지 이제 30년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부정부패가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서툰 민주주의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습득력이 빠른 몽골이지만 복잡한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안착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원이 풍부하지만, 인구가 적고 기술력이 낮은 몽골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적응하는가 싶더니 이내 부정부패에 기인한 IMF 구제금융을 받는 형편에 빠지게 되었다.

현재의 몽골은 위의 세 가지 정치적 이념이 혼재되어있는 사회이다. 몽골의 현대를 역사적 시기로 구분하면 체제전환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고, 이를 사회주의 시대와 민주주의 시대라 구분한다면 몽골의 사회주의 시대의 특성은 ‘유목주의적 사회주의’로 자본주의 시대의 특성은 ‘유목주의적 자본주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겠다. 이렇게 구분하여 분석해 본다면 현 몽골의 정치와 사회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연도에 따른 시기 구분 정치체제에 따른 시기 구분 이념
1921년 이전 청조 복속 시대 유목주의
1924년~1985년 사회주의 시기 유목주의+사회주의=유목주의적 사회주의
1985년~2000년 체제전환 시기 유목주의+사회주의+자본주의
2000년~2020년 현재 자본주의 시기 유목주의+자본주의=유목주의적 자본주의
시기에 따른 몽골의 정치이념
출처 : 저자 제공

 

저자소개

송병구(mongol@dankook.ac.kr)
단국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 교수이다. 몽골국립대학교(Mongol National University)에서 몽골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단국대학교 부설 몽골연구소장, 단국대·청운대 특수외국어 컨서시엄 사업단장을 맡고 있다. 몽골의 정치체제, 정당정치, 외교와 몽골 정부의 정책결정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민주화 이후 몽골정치의 변화와 전망: 총선과 대선을 중심으로”, “몽골의 대한반도 외교정책 분석 및 대응 전략”, 『몽골지역연구』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출간했다.

 


1) 한자음으로는 준갈이(準噶爾)라고 한다. 준가르제국은 역사상 최후의 유목왕조로 오늘날 중국 신강 북서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왕조이며, 그 원류(原類)는 몽골제국의 일파인 오이라트部이다. 준가르는 청에 멸망하고 그 영토는 청에 편입된다.

2) 1911년 몽골 민족해방혁명의 정신적 지주이자 몽골 종교의 수장이다. 당시 활불(活佛)이라 불리며 티베트불교에서의 달라이라마와 유사한 몽골의 정치적·종교적 지도자인 복드칸(Bogd Khan)로 추대되었다. (1870~1924)

3) 캬흐타삼국협정은 몽골, 제정러시아, 중화민국 3국 간에 맺어진 협정으로 식민지 확보 경쟁이 한창인 1915년 체결되었는데, 이 협정을 통해 몽골은 자주권이 제한된 중화민국의 자치국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4) 1918년 몽골 출판위원회 식자공으로 일하면서 비밀 정치조직에 가입하였고, 1920년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하는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몽골임시정부의 군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인민의용군 창설을 주도하였으며 몽골 사회주의혁명 성공 후 국방부장관 겸 총사령관을 역임하였다. (1893~1923)

5) 몽골의 사회주의혁명 세력이 ‘인민입헌군주제’라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선택한 것은 당시 몽골국민들의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이해 부족과 함께 국가지도자로서 갖는 ‘젭준담바 호탁트’에 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체제로 가는 과도기적 정치체제로 사회주의혁명을 이룩한 국가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와 같은 독특한 형태의 정치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6) 1921년 몽골혁명청년동맹 창설에 관여하면서 동맹 중앙위원회의 첫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 총사령관, 1929년에는 국가소회의 의장, 1931년 농축산부장관에 임명되었다. 1934년 소련에 1년간 체류하면서 소련의 스탈린과 관계를 맺고, 몽골로 돌아와 부총리와 내무부장관 겸직을 시작으로 막강한 절대권력 시대를 연다. 몽골의 스탈린으로 불리기도 한다. (1939~1952)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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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호. 2014. 『내몽골, 외몽골』. 경기도: 한국학술정보.
  • 단국대학교 몽골연구소. 2012. 『몽골과 한국-미래지향적 관계발전 방안-』 . 서울: 단국대학교출판부
  • 단국대학교 몽골연구소. 2018. 『몽골지역연구』. 서울: 자유문고
  • 루렙수렝 더드궁치렙, 멘드 네르귀. “몽골의 정당체계 제도화에 관한 연구.” 몽골학 제57호, 20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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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Монгол улсын шинжлэх ухааны академи түүхийн хүрээлэн. 2003.『Монгол улсын түүх Ⅴ』. Ulaanbaatar: AD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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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내각 : http://zasag.mn/ (검색일: 2020. 08. 05)
  • 몽골대법원 : http://www.supremecourt.mn (검색일: 2020. 08. 08)
  • 몽골대통령 : http://www.president.mn/ (검색일: 2020. 08. 05)
  • 몽골민주당 : http://www.demparty.mn/ (검색일: 2020. 08. 08)
  • 몽골인민당 : http://www.nam.com/ (검색일: 2020. 08. 08)
  • 몽골중앙선거위원회 : http://www.gec.gov.mn/ (검색일: 2020.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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