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엔(이화여자대학교)
베트남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 외세에 맞선 전쟁이 10번 발발하였다. 이 중 1945~1975년은 프랑스, 미국에 대항한 전쟁이었다. 특히 항미전쟁(베트남 전쟁)의 역사는 20년이 넘는 긴 역사이다.1) 베트남전쟁이 종결된 지 45년이 되었지만, 전쟁의 유산은 여전히 베트남 사회와 베트남인들의 사고방식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현재 유행 중인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을 극복하려는 베트남인들의 노력이 전쟁 당시 외세와 싸운 노력과 같았다는 평가가 나온 만큼, 지금 베트남에서는 전쟁 당시의 분위기와 “전투 정신”이 재현되고 있다.
10~20세기 베트남의 항쟁사(총 10번)
– 중국
– 몽골: 1258년, 1285년, 1287~1288년 – 프랑스: 1946~1954년 – 미국: 1954~1975년 |
베트남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구호: “적군에 대항한 것처럼 방역하자”
베트남 정부는 코로나19에 대해 “적군에 대항한 것처럼 방역하자”라는 기조의 방침을 내걸었다. 즉 베트남 전역이 코로나19라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 중이며 각 인민이 전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도 인민들의 단결성과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정부의 태도는 베트남 민족이 항상 외세와의 대항에서 높은 단결력으로 공헌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크게 3개의 전선으로 나뉜다. 제1전선은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최전선에서 의료진이 바이러스와 직접 전투를 벌인다. 코로나 감염 여부 검사, 확진자 치료 등이 이에 포함된다. 최대한 “희생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우선 목표이며, 베트남 의료진이 이를 위해 격렬히 싸우고 있다.
4월 초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200명으로 집계되고 집단 감염이 발생한 상황에서, 베트남 정부는 “최대한 집에 있자”며 전국에 준 봉쇄에 가까운 “사회적 격리”를 선언하였다. 이 조치로 인해 3주 동안 시내·외 대중교통 및 택시들이 운행을 중단했고, 백화점, 음식점, 상점 등 상업시설들의 운영도 금지되며 이에 따르는 경제적 여파와 피해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경제 회복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제2전선으로 부상했다. 의료진이 제1전선의 전사였다면 제2전선의 전사는 기업가·사업가들이다. 그들의 임무는 경제 붕괴를 막고,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며 불가결한 경제성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와 싸우는 제3전선은 정치적 전선이다. 제3전선의 주적은 코로나19로 파생되는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이용하여 “베트남혁명”을 방해하는 세력이다. 또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가짜 뉴스 및 왜곡된 사실 전달, 격리조치 위반, 불성실한 역학조사와 같은 행동 역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적”에게 힘을 주는 행위로 간주한다. 한편 모든 베트남인은 제3전선의 전사로서, 베트남 정부는 여기에 전 인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적 방법을 전부 동원했다고 발표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 정부도 흡사한 정책을 표방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미국과의 전쟁에서 지금처럼 “군사적 전선, 정치적 전선, 외교적 전선”을 결합했다. 3개 전선의 연합은 베트남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핵심 요인이었다. 한편, “인민전쟁”이라는 명칭이 시사하듯 전쟁에는 군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민들도 참여했다. 북쪽에서는 인민들이 군수물자 및 식량을 생산했고, 직접적인 전투는 남부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을 유격대라고 부르는데, 전쟁에는 이 유격대를 도와주는 주민들도 참여하였다.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전쟁에서의 승리는 인민들이 힘을 합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전쟁 수행에 있어 인민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인민은 물이고, 군대는 물고기다”라는 비유에서 알 수 있듯, 전쟁에서 인민과 군대 및 정부의 관계는 밀접했다. 물론 현재 베트남의 상황은 전쟁 시와 다르지만, 두 시기 베트남 정부의 정책이 유사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코로나19 방역에서 베트남 정부가 견지한 자세와 그로 인해 조성된 정치·사회적 분위기는 베트남인들에게 반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베트남인들이 수십 년에 걸친 전쟁으로 조성되는 분위기에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외세에 저항하는데 ‘헌신적’으로 분투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인민,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방역 참여
정부의 방역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베트남인들은 보건부가 취한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잘 협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베트남인들은 나름대로 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전쟁의 유산은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4월 1일 정부가 “사회적 격리”를 선언하였을 때 많은 베트남인은 1946년 프랑스에 대한 전쟁 선포와 이에 대한 인민의 지지를 호소하는 호찌민 주석의 선언을 떠올린다고 했으며, SNS를 통해 이 조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당시 호찌민이 호소한 “toàn quốc kháng chiến-전국 항쟁”의 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이후 9월 2일 베트남민주공화국 수립과 함께 호찌민은 ‘베트남 민족’의 독립과 ‘베트남 통일’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당시 국제사회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으며, 특히 구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프랑스가 베트남 지배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프랑스는 끝내 식민 권력을 회복하고자 전쟁을 일으켰다. 호찌민은 공화국 수립 초기에 프랑스와 대화하려고 노력했으나 양측의 긴장은 고조되어만 갔고, 결국 1946년 12월 전쟁이 발발하자 호찌민은 21일 베트남인들에게 최후까지 투쟁할 것을 호소하였다. 당시 호찌민의 선언은 30년에 걸친 외세에 대한 저항 전쟁의 시작이었고, 이는 베트남민족의 애국심과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베트남인들은 이와 관련된 역사를 아주 잘 알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베트남 총리가 선언한 전국적 “사회적 격리” 조치는 방역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에는 분명했지만, 인민의 지지와 긍정적 여론이 필요하였다. 이에 베트남인들은 해당 조치를 호찌민의 “전국 항쟁” 호소와 다르지 않은 중요한 사안으로 인지했다. 국가 차원의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베트남은 과거 전쟁의 역사를 제일 먼저 떠올리고,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자랑하곤 한다. “사회적 격리”가 4월 30일에 해제되기를 소망하는 베트남의 사회 분위기에서 이를 알 수 있다. 4월 30일은 베트남 전쟁이 종결된 날이자, 베트남 해방과 통일의 날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베트남 통일 45주년을 맞는 해이다. 즉 4월 30일에 “사회적 격리”가 종료된다면 베트남은 45년 전 베트남이 외세에 승리한 것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승리하고 전국 봉쇄가 끝나는 자랑스러운 또 하나의 승리를 항쟁의 역사에서 쟁취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팬데믹 상황에서 많은 베트남 화가들이 전쟁기 유행했던 프로파간다(선전) 포스터 화풍의 방역 홍보물을 제작한 것이다. 선전 포스터는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인쇄 매체, 벽면에 게시되는 미술 형태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제작된 ‘현대적 포스터’는 ‘다량으로 생산되는 시각적 강렬함’이라는 특성을 내세워, 예술가들은 대중을 향해 더욱 자극적이고 광범위한 선전을 하게 되었다.
포스터는 전쟁기 국민 총화와 단결, 전쟁물자의 동원, 애국심 고취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베트남의 항쟁역사에서도 포스터가 늘 함께했다. 포스터는 전쟁기 베트남 사회와 인민 생활에 큰 의미가 있다.
전쟁기 베트남의 선전 포스터
자료: 1954-1975년 선전 포스터 컬렉션, 베트남여성박물관 (https://baotangphunu.org.vn/tranh-co-dong-1954-1975/)
전쟁기 제작된 포스터들은 오늘날에도 갤러리에 상시 전시한다. 베트남인에게 선전 포스터는 역사의 일부라고 인식되어있기 때문이다. 포스터의 장점은 정치 선전이나 상업 광고 매체로써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베트남 예술가들은 요즘 코로나19의 방역을 주제로 한 선전 포스터를 제작하고 있다.
레 득 히엡 화가에 의해 그려진 코로나19 방역 포스터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베트남 의료진이 전사처럼 씩씩하게 서 있고, 그 위에는 “집에 있는 것이 애국심이다”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하단의 “증상 있는 자, 격리위반자, 가짜 뉴스 및 왜곡 사실을 유포하는 자들을 즉시 신고하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화가는 “베트남 사람들은 선전 포스터에 익숙하고, 베트남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포스터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정부 역시 전국의 화가들에게 코로나19 방역 홍보 포스터 디자인을 제출하도록 촉구했다. 한 화가가 “정부가 현재 우리가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니 화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많은 베트남 예술가들이 코로나19 방역 포스터 제작에 동원되었다. 완성된 포스터들은 전국의 거리에 게시했다. 또한 베트남 교육부는 전국의 어린이와 학생들이 그린 코로나19 방역 홍보 포스터를 전시한다는 취지의 공모전을 개최했다. 이로써 많은 베트남 어린이와 학생들이 방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어린이들의 코로나 방역 의식이 향상되었다. 또 해당 공모전은 힘들게 일하는 의료진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는데, 제작된 포스터들은 방역에 대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의료진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 역시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민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선전 포스터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홍보에는 우표도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베트남 예술가들의 “황금 세대”로 여겨지는 팜 쭝 하 화가는 보건부 및 베트남 우정총국과 협력하여 “연대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도록” 하기 위해 두 가지 우표 디자인을 구현했고, 2020년 3월 31일 코로나19 방역 한정판 우표 컬렉션이 정식 출시되었다. 우표에는 일반 인민 외에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싸우는 세 주체가 등장했다. 바로 의료진, 군인, 경찰이다. 다른 디자인에는 코로나 검사로 분주한 의료진과 그 뒤에 ‘결심과 투쟁’을 상징하는 주먹 쥔 손이 그려져 있다.
코로나19 방역 한정판 우표의 발행은 팬데믹에 대한 베트남의 빠른 대응과 결단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한정판 우표 컬렉션을 발행한 나라는 이란, 중국, 스리랑카 정도이다.
우표를 통한 홍보 방식 역시 베트남 전쟁기 유행했다. 전쟁 전후 제작된 우표는 편지 송달 기능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쟁의 승리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되었을 때에는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총공격과 남베트남 해방 등과 관련된 역사를 담은 우표 컬렉션이 발행되었다. 또 對프랑스 전쟁사 우표 컬렉션에는 1945년 호찌민이 선언한 베트남 독립과 베트남민주공화국 수립,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2)에서 프랑스가 당한 패배 등의 기억이 수록됐다.
전쟁기 발행된 우표들은 베트남 정부가 진행한 국가적 캠페인을 선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여성연합회’3)가 전개한 여성을 동원하는 “3가지 담당”이라는 운동을 담은 우표 컬렉션이 있다. 전쟁 발발 후 베트남 남성 대부분이 입대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기존에 남성이 하던 일들을 부담해야만 했는데, 1965년 베트남여성연합회는 여성들에게 경제생산, 전투, 가정관리의 ‘3가지 담당’ 운동을 전개했다. 베트남 여성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결과적으로 베트남여성연합회 회원 중 약 4백만 명의 여성들에게 큰 성과를 낸 점을 인정받아 ‘유능한 3가지 담당’ 영달이 수여됐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우표는 선전 포스터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인민들의 삶 속에서 베트남의 항쟁역사와 그 결을 같이 한다. 현재 코로나19 방역을 주제로 제작된 포스터와 우표 등의 다양한 매체들은 인민 의식 고양에 이바지했다. 또 베트남이 취한 선전 방식에서 베트남 인민의 “전쟁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정부의 방역 조치를 엄중히 준수하는 이유도 베트남 인민들이 코로나19에 “전쟁 정신”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베트남인은 이처럼 정부의 조치를 확실하게 따르며 높은 단결력을 보인 것은 베트남전쟁 이후 처음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베트남은 코로나19를 조기에 통제했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나라로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현재, 각국 정부들의 방역 전략은 다양하다. 그러나 베트남의 코로나19 방역이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이는 이유는 베트남 전쟁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과거의 전쟁이 베트남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현재까지도 전쟁의 선명한 기억이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베트남 역사서는 전쟁사 중심으로 서술되어있고, 베트남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기록을 통해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다. 또 지금까지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전쟁기 남베트남 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며, 베트남전쟁을 내전이 아닌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항미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베트남전쟁은 미국에 대항하는 전쟁이었고, 전쟁의 주요 원인은 미국이 아시아에 적용한 공산주의 봉쇄정책이라고 본다. 미국이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에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던 베트남을 침략하였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쟁 관련 역사서술은 작은 민족인 베트남이 강대국 미국을 이겼다는 데 그 초점이 있으며, 이에 베트남 인민이 가지는 자부심은 상당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베트남의 항쟁사를 재현하려고 한 베트남 정부의 전략은 베트남 인민의 애국심을 고취함과 동시에 인민의 코로나19 방역 의식을 자극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소개
도미엔(dothaomien@gmail.com)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에서 <베트남전쟁기 한반도와 베트남 관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논문으로는 <1975년 베트남전 종전과 북한 정부의 대응: 베트 남자료를 중심으로>, <베트남 학계의 남·북한 연구 동향 및 쟁점: 베트남 전쟁 시기(1954~1975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현재 베트남전쟁과 여성의 역할, 북한·북베트남 관계의 수립·전개 과정과 호찌민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1) 베트남사에서 베트남 전쟁기를 1954년부터 1975년까지로 정의하였다. 베트남전은 베트남사에서 ‘항미-조국통일전쟁’이라고 불리며, 분단과 통일을 기준으로 한다. 1954년 디엔비엔푸(Điện Biên Phủ) 전투를 끝으로 프랑스가 물러난 뒤 제네바 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남베트남 지엠 정부는 통일 선거를 거부하며 통일운동세력을 공산당으로 몰아세워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갔다. 한편, 1954년부터 미국은 남베트남에 대한 경제 원조 계획을 발표하였고, 1955년부터 남베트남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 보호는 베트남 남북 모두의 군사 동맹 가입을 제한한 제네바 협약을 위배한 것이며,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베트남인들의 의사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네바 협정에 의거한 베트남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비폭력투쟁 진행이 ‘항미-조국통일전쟁’의 시작이었다. 1973년 평화협정 이후에도 베트남은 통일되지 못했고, 1975년 4월 30일 베트남공화국의 항복으로 비로소 전쟁이 종결되었다.
2) 디엔비엔푸 전투(Chiến dịch Điện Biên Phủ, 1954년 3월 13일 – 5월 7일)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또는 對프랑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전투이다. 1953년 11월 프랑스는 하노이를 비롯한 홍 강 삼각주 일대에서 라오스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베트남 서북부 산간지역인 디엔비엔푸에 주둔지를 설치했다. 2개월에 걸친 치열한 격전 끝에 5월 7일 프랑스 정부군이 호찌민의 정부군에 항복함으로써 전투는 막을 내린다.
3) 베트남여성연합회(Vietnam Women’s Union)와 그의 전신(前身) 조직들은 반식민 시기 독립운동과 함께 형성되었으며 베트남여성연합회는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를 독려하였다. 베트남여성연합회 현재까지도 베트남 여성 정책의 주요 동력이 되는 기관이다.
참고문헌
- 박채연. “북한의 정치선전 포스터.” 대한민국 통일부(gounikorea).
https://blog.naver.com/gounikorea/220931336412 (검색일: 2020/04/30)
- 유인선. 2002.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서울: 이산.
- 후루타 모토오 저. 박홍영 역. 2007. 역사 속의 베트남전쟁. 서울: 일조각.
- Chris Humphrey. “‘In a war, we draw’: Vietnam’s artists join fight against Covid-19.” The Guardian (April 9). https://www.theguardian.com/ global-development/2020/apr/09/in-a-war-we-draw-vietnams-artists-join-fight-against-covid-19 (검색일: 2020/05/06)
- Complied by BTA. 2020. “Vietnam – a bright spot in COVID-19 prevention.” Communist Party Of Vietnam Online Newspaper (May 6). http://en.dangcongsan.vn/news-and-events/vietnam-a-bright-spot-in-covid-19-prevention-552204.html (검색일: 2020/05/06)
- Jayne Werner. 1981. “Women, Socialism, and the Economy of Wartime North Vietnam, 1960-1975″. STUDIES IN COMPARATIVE COMMUNISM, VOL. XIV, NOS. 2 & 3. Summer/Autumn, 165-190.
- Nguyễn Đình Lê. 2010. Lịch sử Việt Nam 1954-1975. Hà Nội: Nxb Giáo dục. [응우엔 딘 레. 2010. 1954-1975년 베트남의 역사. 하노이: 교육 출판사.]
- Sandra C. Taylor. 1999. Vietnamese Women at War: Fighting for Ho Chi Minh and the Revolution (Modern War Studies). Lawren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 Viet Thanh Nguyen. 2016. NOTHING EVER DIES: Vietnam and the Memory of Wa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 VOV, 2020, “‘Vietnamese train pushes back COVID-19’ wins prize in child’s painting contest”. VTV news (April 22). https://english.vtv.vn/ news/vietnamese-train-pushes-back-covid-19-wins-prize-in-childs-painting-contest-20200423112224796.htm (검색일: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