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성장동력, 아세안과 분업구조 확대에서 찾아야 – 아시아 각국 산업구조를 보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

한국,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 4개국은 GATT 출범 등 자유무역환경에 편승하여 수출주도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였다. 1970년대 급속한 성장을 이룩함으로써 아시아 4마리의 용으로 불리었다. 20년 후인 1990년대 중국 등 BRICs 국가들도 우리 전략을 답습하여 산업화에 성공하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통산업, 자본집약산업의 발전을 거쳐 과학기술집약산업으로 성장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원천기술의 개발 경험과 산업발전 시기 등의 차이로 인해 일본은 소재, 장비 등 기초분야에 특화되고, 한국은 반도체 등 핵심부품을 공급하며, 중국은 범용부품 생산 및 조립을 통해 완성품을 생산하는 분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3국은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분업구조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핵심 소재와 장비의 수출을 통제하는 등 한국을 견제하고, 중국은 반도체산업 육성으로 한국의 역할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3국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자 새로운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표적인 시장이 아세안 10개국과 인도 등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일본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국가별 문화와 정치적 특성이 다르고 교역 장벽이 많아 산업발전 수준이 낮은 지역이다. 그러나 AFTA(아세안자유무역협정)와 AEC(아세안경제공동체) 등 시장통합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또한, 일본기업의 지속적인 투자, 한국기업의 투자 확대 및 중국기업의 진출 그리고 미·중 통상 분쟁으로 서구기업의 투자까지 증가하고 있다. 덕분에 말레이시아,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제조업 기반이 강화되고 있으며, 베트남과 필리핀의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자동차, 전자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단순한 조립산업 단계를 넘어 역내 생산부품의 사용을 확대하고, R&D 투자가 증가하는 등 산업가치사슬이 정착해 가고 있다. 앞으로 아세안의 산업별 가치사슬이 한국, 중국과 일본 및 서구와 분업관계를 형성하면서 글로벌가치사슬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기업의 아세안 진출은 가공무역 방식이 아니라, 현지 산업구조에 녹아들 수 있는 분업구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리기업 진출이 활발한 전자, 기계 자동차를 중심으로 핵심부품을 공급할 영역을 찾아내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진출 경험이 있는 시장에서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태국 등 인접국으로 진출을 확대하는 전략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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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서울대학교)

아시아 4마리의 용, 일본에 이어 아시아의 산업발전을 주도

UN 아시아 극동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전이 끝난 1955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일본을 정점으로 필리핀과 대만이 아시아경제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한국, 대만, 홍콩과 싱가포르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산업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정부정책과 기업의 노력이라는 내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GATT, IMF를 중심으로 하는 개방적인 세계 무역환경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 프랑스와 독일 등 식민지 종주국들의 경제블록간 대립이 세계 2차 대전으로 이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분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국들은 자유무역환경 조성에 합의하였는데, 이러한 자유무역의 원칙과 규범을 정립한 GATT[1](관세 및 무역에관한 일반협정)가 1945년 출범한 것이다. GATT 덕분에 세계 무역이 크게 성장하였으며, 우리나라도 1967년 GATT에 가입함으로써 미국, 유럽과 일본 등 주요 시장에 상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1970년대 들어 한국, 대만과 홍콩 및 싱가포르 등은 섬유류, 신발과 전자제품 등 노동집약산업의 상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하면서 경제가 급성장하였다. 특히 한국은 경공업 분야 성장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철강, 조선과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다. 1970년 13%에 불과하던 중·화학산업 제품의 수출이 1979년에는 38%까지 증가하는 등 주력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2]으로 인해 수입이 급증하여 국제수지가 악화되는 등 중·화학산업이 무너질 위기를 격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기업들이 중동 건설시장 진출을 통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임으로써 위기를 극복 할 수 있었다. 1974년 시작된 중동특수는 우리나라 총 외화 수입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였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1980년대 다시 한번 커다란 전환점을 지나게 된다. 1984년 64KD램을 개발함으로써 반도체 생산국의 대열에 진입하였다. 그리고 1986년에는 포니 엑셀 모델의 자동차를 북미에 수출함으로써 기술집약산업이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7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를 돌파함으로써 저임금에 의존하지 않고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단계에 진입하였다. 수출주도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면서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에 시달려 왔는데 1988년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미국 등 선진국들과 무역마찰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물질특허제도 도입과 금융, 보험 등 서비스 시장 개방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통상마찰은 어떻게 보면 예견되었던 현상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국가 간 통상협상에서는 상호주의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 통상협상에 임하는 양 당사국이 동일한 수준으로 시장을 상호 개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미국의 관세율 인하를 요구하면 우리도 미국에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율을 인하해야 한다. 그런데 GATT 체제가 출범하면서 개도국 특혜조항이 도입되었다. 경제력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은 자기 나라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도 선진국 시장으로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개발도상국의 경제력 수준이 향상되면, 그때 시장을 개방하도록 유예를 하여 준 것이다.

그리고 통상마찰이 미국,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 간에는 이미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분쟁이 우리나라와 개도국의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미국이 일본산 의류와 TV 등 전자제품 수입을 규제하자 일본기업이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여 미국으로 수출하였기 때문이다. 일본기업이 마산수출자유지역에 공장을 운영하면서 기술이 한국으로 흘러들어 온 것이다. 심지어 IBM 등 미국기업들은 일본의 반도체 시장 독점을 우려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을 견제할 수 있도록 반도체 생산 기술 및 장비 등을 제공하였다.

1990년대는 정보화와 지식기반산업이 성장하고 세계경영이 정착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PC와 휴대폰 등 무선통신기기가 10대 수출상품으로 진입하였으며, 삼성과 LG 등 우리나라 전자업계는 태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를 비롯하여 해외 각국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성장세의 흐름을 타고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1995년 1만 달러를 돌파하였다. 이러한 자신감을 배경으로 우리나라는 1996년 OECD에[3] 가입하여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등 신자유주의 물결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급격한 개방정책의 부작용도 경험하였다. 지나친 수입 자유화로 무역수지가 다시 적자로 전환되고 외채가 쌓여 외화 부족 현상에 직면한 것이다. IMF 등 국제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다행히 우리 국민의 저력으로 550억 달러의 외채를 3년 8개월 만에 상환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안정적인 무역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 5T로 대표되는 생명공학(BT), 환경기술(ET), 나노기술(NT), 우주·항공(ST), 정보통신(IT) 등 과학 기반형 산업의 육성과 문화산업 등 경제의 소프트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1996년 1세대 아이돌 가수의 K-POP에서 시작하여 2000년 가을동화와 2003년 대장금 등 드라마로 이어지는 한류가 동남아를 넘어 미주와 유럽까지 확산하여 우리나라 문화상품 수출 그리고 국가 브랜드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브릭스의 대표주자 중국, 한국의 발전 궤도를 따라 산업화에 성공

1980년대가 아시아 4마리 용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는 브릭스의 시대이다. 2001년 골드만 삭스가 브라질, 러시아, 중국과 인도의 성장세를 주목하기 위해 브릭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브릭스는 경제성장의 자신감을 배경으로 2002년부터 독자적인 협력체를 구축하여 미국과 유럽 중심의 국제질서에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아시아의 지배력을 회복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이미 1979년에 시작되었다. 심천, 주해 등 4개 경제특구를 개방하고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노력한 것이다. 1992년 등소평의 남순강화 이후 개방지역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면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일본과 서구 등 외국기업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1992년 이후 중국에 대한 투자를 급속하게 확대하였다. 의류, 신발과 전자부품 등 전통산업 분야 기업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갔다. 국내 임금 상승으로 어려움을 격던 경공업분야 기업들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2001년 WTO[4]에 가입하고 외국투자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중국 내수시장에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투자유입은 더욱 빠르게 증가했다. 거대한 시장이면서도 생산비용이 낮은 중국의 특수성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중국으로 진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자, 자동차, 기계·장비와 화학 및 조선 등 주력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하였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장비와 원부자재 및 중간재 수출이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이 2000년대는 중국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한 시기로서 1978년 200달러에 불과하던 중국의 1인당 GDP가 2008년에는 3천 달러를 돌파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한 후 재수출하는 가공무역 비중이 감소하고, 자국 부품의 사용 비중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이후 중국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투자유치 정책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가공무역 분야의 투자는 제한하고 첨단 제조 및 신에너지 분야 투자를 장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경제관련 제도의 개선을 시작하였다. 신노동법을 도입하여 노동권을 보호하는 한편, 환경보호 및 반독점 금지제도를 강화하는 등 기업경영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그리고 막대한 보조금 제공을 통해 첨단산업 분야 육성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제도 변화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지고 임금 등 생산요소의 비용이 상승하면서 외국기업의 대중국 투자가 감소하였다. 심지어 중국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시작된 점이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침체한 시기에 중국은 통화를 대량 공급하여 SOC를 확장하는 한편, 자본집약 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여 과잉생산체제로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내수시장 확대 정책을 추진함으로서 중국 민간분야의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성장하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성장정책 덕분에 중국의 1인당 GDP가 2018년 9,770달러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08년 이후 과잉투자로 발생한 철강 등을 덤핑으로 수출하고, 자국 기업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여 차세대 산업을 육성하는 등 국제 통상질서를 교란한다는 각국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급기야 미국과 심각한 통상마찰을 겪는 국면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여 중국진출 기업들이 자국으로의 유턴 또는 동남아의 각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투자가 중국 중심에서 아세안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아시아 분업구조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의 산업발전 과정에서 한··일 분업구조가 형성

산업은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산업구조가 변화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의류와 신발 등 노동력에 의존하는 전통산업이 발전한다. 이어서 철강 및 화학 산업과 같이 일관공정을 적용하는 규모집약형 산업(I), 그리고 자동차와 같이 제품을 조립하는 대기업과 소재, 부품 및 설비를 공급하는 기업 간 협력이 필요한 규모집약형산업(II)이 발전한다. 다음 단계에서 정밀기계와 같이 다양한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제품을 생산하는 전문가 공급자형 산업 그리고 항공산업 등 기초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하는 과학기반형산업이 발전한다.

산업 구분 특징과 산업의 유형
과학 기반형 산업군 과학, 지식(특히 기초과학)기반 제품을 개발, 생산
– 정밀화학, 의약, 항공 산업 등
전문가 공급자형 산업군 특수사양의 제품 설계 및 생산, 비공식 기술 노하우 축적이 중요
– 산업기계, 정밀 기계 등 다양한 산업재
규모집약형산업(II) 일관 공정 산업과 달리 조립 대기업, 부품.·소재·설비 기업간 협력이 중요
– 자동차, ICT 산업
규모집약형산업(I)
(일관공정산업)
대규모 장치산업(규모의 경제를 위한 R&D, 생산체계가 중요)
–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전통산업군 가격 경쟁력이 중요하며, 공정혁신을 위한 장비가 경쟁력을 좌우
– 의류, 섬유, 신발, 가구, 인쇄산업 등
산업발전 단계 분석을 위한 산업 분류
자료: K. Pavitt, 1984.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전통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부터 규모집약형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는 반도체를 비롯하여 첨단기술 산업이 형성되었다. 이어 1990년대 제약·바이오와 항공산업이 성장하는 등 산업발전 5단계를 거쳐 왔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 및 서구의 자본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전통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철강 등 규모집약형산업이 시작되었고, 2000년대 자동차 등 기술집약 산업이 발전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하며 반도체 등 첨단기술 제품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이 2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와 유사한 괘도로 산업이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한·중·일 분업구조에 이러한 성장 괘도의 흔적이 나타난다. 일본은 소재, 특수부품과 정밀장비 등에 특화되어 있으며, 한국은 일본의 소·부·장을 이용하여 반도체 등 핵심부품을 생산하여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자체 생산한 범용부품과 수입 핵심부품 등을 완성품으로 조립하여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소재와 장비를 한국이 수입, 반도체를 생산한다. 이를 중국으로 수출하면, 중국기업들이 각종 전자와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업구조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홍색 공급망이라는 중국산 부품 공급체계를 강화하고,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반도체 등 핵심부품 산업을 육성하려는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더욱이 중국 산업정책의 핵심은 산업구조가 형성될 때까지 막대한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전략이다. 특정 산업의 육성을 위한 보조금 제공은 국제 통상질서를 교란하기 때문에 금지하기로 약속한 국제통상규범에 반하는 정책이다. 따라서 국제통상 질서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일본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핵심 소재, 부품과 장비가 우리나라로 수출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자체 기술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독일 등 기초기술 강국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조치 역시 국제무역 질서에 반하는 근거 없는 조치여서 세계 무역질서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중·일은 산업구조 재편의 연장선에서 아세안 지역 진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산업화의 선두주자였던 일본은 미국과 통상마찰을 겪으면서 한국, 중국과 동남아 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미국과 극심한 통상마찰을 겪었던 1980년대 이후 아세안 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일본계 전자, 자동차 기업들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강력한 생산, 유통 및 판매망을 구축하였다. 최근에는 한국과 중국의 아세안 시장 진출 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중심의 산업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내 산업구조 고도화 등으로 인해 임금이 상승하면서 전통산업분야는 중국을 거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에 진출해 있으며, 가전 등 전자산업 분야에서도 1990년대부터 동남아 주요 시장으로 진출하였다. 특히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를 돌파한 2008년 이후 중국보다 동남아를 생산기지로 선택하고 있다. 삼성의 2008년 베트남 진출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국내 중국기업들도 자국 내 임금 인상의 부담을 덜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데, 전자와 자동차 기업의 진출이 눈에 띈다.

 

아세안, 역내경제통합으로 독자적 산업클러스트와 가치사슬 형성

동남아 국가들은 다양한 인종, 언어와 종교 등으로 독자적인 정치, 경제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1990년대 이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럽의 경제 통합과 중국 및 인도 등의 부상에 따라 협력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경제통합 정책을 추진해 왔다. 아세안이 1967년 출범하고 1976년 1차 정상회의를 개최하였지만 협력성과는 미미하였는데, 1992년 AFTA(아세안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베트남과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가 가입함으로써 회원국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2015년 AEC(아세안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서 포스트 차이나 시장으로 부상하였다.

중국의 경제가 4개의 연안 경제특구를 시작으로 해안지역 거점도시 발전으로 이어지고, 내륙의 중소 도시로 확산되었듯이, 아세안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AEC를 계기로 베트남, 필리핀과 미얀마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

국별 인구(만명) GDP($억) 1인당GDP($) 산업발전 단계
싱가포르 560 3,496 60,359 과학기반 산업
말레이시아 3,200 3,649 11,388 전문가 공급자형산업
태국 6,900 4,837 6,992 상동
인도네시아 26,700 10,749 4,029 상동
베트남 9,650 2,407 2,495 규모집약형 산업
필리핀 10,651 3,324 3,121 상동
미얀마 5,386 707 1,313 전통산업
캄보디아 1,625 243 1,496 상동
라오스 696 183 2,629 상동
브루나이 43 144 33,180
아세안 국가의 경제발전 수준과 산업구조(2018)

싱가포르는 금융, 물류, 제약과 바이오 등 지식기반산업이 발전하였으며, 세계 3대 오일 허브로서 아세안 경제를 리드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일본기업의 투자에 힘입어 전자산업이 발전, 아세안 전자산업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산업도 동남아에서는 유일하게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제조업 강국이다. 또한, 세계 28위 산유국으로 석유화학산업도 발전한 국가이다. 태국은 일본의 투자에 힘입어 자동차산업이 매우 발전하였으며, 집적회로 중심의 전자 부품산업도 발전하는 등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 자동차와 차세대 자동차 개발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의료와 관광 및 건설 인프라 등 튼튼한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최대의 시장이며, 일본계 기업을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과 가전산업이 발전하는 등 안정적인 제조업 기반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도 섬유, 전자, 철강 등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필리핀은 전기, 조선과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실정이다. 그러나 베트남과 필리핀 정부가 자동차 및 고부가 부품산업육성 정책을 추진한 덕분에 제조업 분야가 성장단계에 진입하였다. 미얀마,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에 있는 섬유, 신발 기업들이 이전해 가면서 전통산업이 발전하고 있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AEC의 영향으로 아세안 회원국 간 교역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아세안 역내에서 제품개발, 부품과 장비 등 연관 산업이 발전하는 산업클러스터[5]가 발전하고 원료 조달과 유통 및 판매 등 전후방까지 시스템이 통합되는 산업가치사슬이[6] 형성되고 있다. 중국이 홍색 공급망 전략을 통해 중국산 주요부품을 사용함으로써 자체적인 가치사슬을 구축하듯이 아세안 국가에서도 주요 산업별로 아세안 가치사슬이 강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와 전자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와 전자산업 가치사슬, 일본 의존구조에서 탈피하기 시작

토요다가 1962년 태국, 1970년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면서 일본 자동차 기업들의 동남아 투자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를 거쳐 투자가 계속 증가했으며, 1985년 미국과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본 자동차 업계의 동남아 투자가 획기적으로 증가하였다. 덕분에 일본계 기업들이 태국시장의 95%, 인도네시아 시장의 98.5%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계 자동차 기업들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본국으로부터 주요부품을 수입하여 현지에서 조립하는 형태로 운영하였다. 아세안 국가 간에도 각종 무역장벽이 있어 역내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EC 출범으로 아세안 각국에 흩어져 있는 현지 공장간, 심지어 일본계 다른 브랜드 기업 및 제3국 기업과의 부품 상호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국의 도요타가 인도네시아 생산 부품을 구매하거나 혼다, 닛산 또는 제3국 기업 생산부품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한 것이다. 아세안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가격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1997년 미국계 기업의 동남아 진출이 시작되었고,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동남아 투자를 늘리면서 아세안 권의 자동차산업 가치사슬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전자업계도 1965년 파나소닉의 말레이시아 투자를 시작으로 동남아에 진출하였다. 전자산업 역시 플라자합의 이후 투자가 급증하였는데, 말레이시아는 물론,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로 확대되었다. 필리핀과 베트남 등에서도 범용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AEC 효과는 전자산업 분야에도 나타나고 있다. 아세안 지역 진출 기업들의 독자적인 경영체제가 강화되면서 아세안 가치사슬이 정착해 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파나소닉의 경우 말레이시아 현지법인이 상품 기획 및 마케팅 전략 등 핵심 경영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에어컨과 TV는 말레이시아, 냉장고와 세탁기는 태국에서 제품을 개발, 생산하여 아세안 시장에 판매하는 등 국별 특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가격 경쟁력 제고를 위해 아세안 전역에서 다양한 부품을 소싱, 조립에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원·부자재 생산과 조립 및 유통을 위한 물류망 등 가치사슬이 형성되는 단계에서 가치사슬상의 공백을 찾아 진출하는 경우 전.후방 연관기업과의 협력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아세안 시장의 가치사슬이 재편되는 지금이 진출의 적기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아세안 각국이 친환경산업 분야의 육성,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디지털 경제기반의 구축 등 새로운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싱가포르는 스마트 씨티, 핀테크와 블록체인 등 ICT를 이용하여 국가 전체의 디지털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에서도 전기, 전자분야와 전기자동차의 첨단기술 유치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 재편의 시기가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지 기업의 경쟁력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랜 비즈니스 역사와 비즈니스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일본계 기업, 일대일로 등 정부정책을 바탕으로 진출하는 중국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별 산업구조와 발전단계를 고려하여 진출 우선 분야를 정하여 활동영역을 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경영조건이 유리한 국가부터 진입, 확산하는 등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경험이 축적된 교두보 중심의 확산 전략이 필요

베트남은 아세안 국가 중 우리나라의 1위 투자 대상국이다. 우리기업의 경험이 가장 많이 축적된 아세안 진출의 교두보로 볼 수 있다. 특히 제조업 성장세가 매력적이다. 베트남 정부가 자동차와 전자부품 산업의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중 간 통상 분쟁으로 많은 기업이 중국에서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덕분에 전기, 전자분야 및 통신기기와 항공부품 등 고부가 제조업 분야의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 기계, 조선 및 항공 등 주력산업 분야의 핵심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출 시 극복해야 할 장애 요인도 만만하지 않다. 물류 등 인프라가 열악하며, 환경보호 및 노동자 보호 등 많은 정책적 변화가 예상된다. 그리고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견제 등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미·중 통상 분쟁의 와중에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기업이 베트남을 우회 기지로 활용하여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베트남을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을 환율관찰대상국에 포함시킨 것은 양국 간 통상 분쟁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현대자동차 진출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인도네시아도 주목할만하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섬유, 전자부문의 우리기업의 진출한 경험이 풍부한 시장이기도 하다. 현대가 연산 25만대 규모 생산 공장을 건설하면서 연관기업들의 진출이 증가하면서 풍부한 정보 공유가 가능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2억6천만으로 아세안 최대이며, 전통적으로 아시아와 유럽기업들의 관심이 높은 시장이다. 베트남과 함께 역동성이 강한 특징이 있어 아세안 가치사슬 진입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양대시장에 기반을 구축하면서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의 차세대 전략사업 분야를 공략하면 효율적 진출이 가능할 것이다.

 

아세안 현지기업, 일본계 등 다양한 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아시아의 산업은 일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거쳐 중국의 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3국 간 분업구조가 형성되었다. 원천기술은 일본, 핵심부품은 한국 그리고 범용부품 생산 및 완성품 생산은 중국이 담당하고 있는데, 각국 기업들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혁기를 맞이하면서 아시아 분업구조가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새로운 분업구조에서 높은 부가가치 영역을 담당하고, 넓은 시장으로 공급망을 확산하기 위한 경쟁이다. 한·중·일의 분업구조 재편 경쟁이 일차적으로 아세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구 6.5억의 거대 시장이며 급속한 산업발전을 통해 자체 가치사슬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자동차, 전자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 부품개발, 생산과 물류체계 및 조립과 판매망의 주요 영역을 장악하기 위해 각국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미 일본계 기업이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배경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력을 이용하여 말레이시아 자동차 기업인 프로톤사 지분을 인수하고, 일대일로 전략에 따른 유통망 구축 등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진출한 섬유, 1990년대 진출한 전자분야 그리고 2000년대 베트남 투자 붐을 경험했지만, 활동영역이 부족하다. 따라서 해외 기업과의 다양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 성공요소라고 할 수 있다. 아세안 시장에서 경쟁우위 분야를 찾아, 해외 기업의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활동영역과 지역을 확대하는 전략적 로드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저자소개

김두영(dykim@snu.ac.kr)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객원 연구원, 법무법인 지평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KOTRA에서 32년간 근무하였으며, 미국, 브라질과 독일에 주재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현장에서 경험하였다. 전략사업본부장 등 핵심사업을 주관하면서 방콕, 호치민 등 동남아 시장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미국 ASU(Arizona State University) Thunderbird MBA, 동국대학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otra에 32년간 근무 저서는 『미국시장 이렇게 하면 열린다』, 『올 댓 브라질』, 그리고 UN 연구보고서인 『중소기업의 수출마케팅 역량 제고』 등이 있다.

 


[1] GATT, 모든 회원국에게 동일한 관세율을(GATT 출범후 8차례의 관세인하 협상을 통해 지속적으로 각국의 관세율을 인하) 적용하고 비관세의 도입을 억제함으로써 무역을 자유화시키기 위한 협정으로 1947년 출범

[2]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가 석유 가격을 급격하게 올려 세계경제에 압박을 가한 사건, 1차 석유 파동(1973)은 아랍권이 4차 중동전에서 패배한 이후 OPEC의 아랍권 국가들이 손잡고 석유 수출량을 줄이면서 가격을 인상, 2차 석유 파동은(1978-81) 이란이 종교혁명 이후 석유생산량을 1/3로 축소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치솟았고,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30달러 선이 깨지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무기화를 천명하면서 39달러까지 급격하게 상승한 사건

[3]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948년 미국의 마샬플랜관련 지원을 받은 유럽경제협력기구에서 시작하여 미국, 캐나다가 합쳐서 형성된 기수이다. 경제정책조정, 무역 및 산업정책 검토 그리고 환경문제와 개발도상국 원조문제 등을 논의하는 기구이다.

[4] GATT가 8차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출범하였다. GATT의 원칙과 규정을 수용하면서 규정의 준수 여부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기구화한 것이다.

[5] 특정 산업내의 연관된 기업이 모여 있는 지역을 의미, 클러스트가 발전하면서 단순 조립이 아니라 부품 생산과 조립 등 복합적 생산체계가 형성된다.

[6] 기업활동에서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내부적으로는 제품의 생산과 분배에 직접 관련되는 본원적 활동과 본원적 활동을 지원하는 지원 활동이 있다.

 


참고문헌

  • 안현호. 2013. 『 한.중.일 경제 삼국지』. 서울: 나남.
  • 안현호. 2017. 『 한.중.일 경제 삼국지 2』. 서울: 나남.
  • 채수홍외. 2019 『 한국기업의 VIP국가 투자진출: 지역전문가의 조언』. 서울:진인진
  • 오영호. 2013. 『 신뢰경제의 귀환』. 서울:메디치
  • 정재완신민금. 2017. “AEC 출범에 따른 아세안 자동차시장의 최근변화와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조은호. 2017. “일본기업의 해외투자, 기술이전 글로벌 벨류체인의 연계분석”. KOTRA일본지역본부
  • Pavitt, K. 1984. “Sectoral patterns of technical change: Towards a taxonomy and a theory”, Research Policy 13, pp. 343-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