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고속철도 건설: 이동과 연결의 인프라 정치학

아세안 경제협력이 심화되면서, 아세안 역내·외를 연결하는 인프라 건설사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태국은 아세안 및 한·중·일 경제협력을 주도하면서 지역 내외를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연계하는 과정에서 ‘연결의 중심지’로 도약하고자 한다. 태국의 첫 고속철도 건설은 중국과 아세안의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이자, 태국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을 타개하고자 활용되는 대표적인 인프라 정치의 사례이다. 역내 이동과 연결을 촉진하는 인프라 건설 사업인 고속철도 건설은 건설의 속도, 예산, 기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논쟁에는 중국과 태국의 경제적 권력관계라는 지역정치적 맥락과 태국의 쿠데타 정부의 정권 탈취의 명분이자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국내정치적 맥락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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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정(서울대학교)

아세안 속 태국의 지경학적 위치

2019년 아세안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에 위치하며,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한다. 태국의 GDP는 2017년 기준 6,736달러로 아세안 10개 국가 중에서 싱가포르(57,722달러), 브루나이(28,986달러), 말레이시아(9,899달러)에 이어 4번째를 차지한다(ASEAN Key Figures 2018). 태국은 중진국의 함정을 탈피하기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인접한 저발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지역블록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태국의 이러한 전략에는 동남아의 대륙부 지역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입지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2017년 아세안 국가의 1인당 GDP (US$)
출처: ASEAN Key Figures 2018
저자작성

태국은 메콩 유역(the Greater Mekong Subregion, GMS)과 Ayeyawady-Chao Phraya-Mekong Economic Cooperation Strategy(ACMECS) 협력의 회원국이다. 메콩 유역(GMS)은 티벳 고원에서 출원하는 메콩강을 공유하는 국가들의 경제협력단위이다. GMS에는 중국, 태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CLMV)이 참여하고 있는데, 중국과 태국을 제외한 CLMV 국가는 경제 발전이 지연되어 태국과 중국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통해 사회기반시설 건설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ACMECS는 2000년 중반 태국의 총리였던, 지금은 정치적으로 추방된 탁신 정부 때 태국이 아세안의 경제협력을 주도하고자 설립한 경제협력체이다. 아세안의 인기 투자처인 CLMV 국가와 상호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것으로 그 목표는 아세안의 경제협력의 목표와 유사하여 ‘작은 아세안’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Sucharithanarugse, 2006).

저발전 국가들에 둘러싸인 태국은 아세안의 경제적, 지리적인 허브가 되기 위하여 인접국가들의 개발 사업을 원조하고 중국과 일본과 협력하여 지역협력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것은 대륙부 아세안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높이고, 중진국의 경제 수준을 탈피하고 글로벌 경제로 도약하기 위한 태국의 발전 전략이다.

GMS와 ACMECS 경제협력을 비롯하여 아세안 경제협력 계획은 저발전 국가의 경제 성장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대규모 토목 건설 협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세안 연계성 증진을 위한 역내 협력은 1992년 아시아개발은행이 추진하는 GMS 개발 사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후, ACMECS, BIMP-EAGA(Brunei, Indonesia, Malaysia, Philippines-East ASEAN Growth AREA), IMT-GT(Indonesia-Malaysia-Thailand Growth Triangle) 등 소지역 협력 사업을 통해 진행되어 왔으나, 아세안의 일부 국가만 참여하는 이유로 추진력이 떨어지고 재원 조달이 어려운 문제를 겪었다. 지지부진한 사업은 아세안 전반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년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 플랜 2010(Master Plan on ASEAN Connectivity 2010)’이 선포된 것을 계기로 다시금 활력을 되찾았다(이재호, 2017).

2015년 아세안 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서 2016년 아세안 정상회의는 기존 연계성 사업을 평가하고 재정립하는 자리가 되었다. 아세안의 5대 추진 목표에 연계성을 포함한 이후, 보다 구체화된 추진 계획으로서 ‘아세안 연계성 마스터 플랜 2025’를 채택하였다. 이 종합 계획은 경쟁력, 포용력, 강력한 공동체 감각을 진작할 수 있는 통합되고 연결된 아세안을 이룰 것을 선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1) 대대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아세안 연계성 계획은 대규모 토건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영역으로 각광 받으며, 한국, 중국, 일본에서도 이러한 아세안의 인프라 사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으로 보자면, 연계성 사업으로 인해 아세안이 강대국의 토건 사업 진출의 각축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태국의 고속철도 건설과 중국

아세안 연계성 플랜의 우선순위 사업에 포함되어 있는 방콕-농카이 고속철도 개발은 태국 최초의 고속철도 개발 사업이다. 태국의 고속철도 계획은 오랜 기간 동안 기획되어 왔지만, 아세안 연계성 계획과 더불어 중국 변수가 강해지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아세안의 고속철도 건설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Belt and Road Initiative, BRI) 계획의 영향이 크게 미친다. 일대일로는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권의 육상 실크로드와 아세안 국가들과 해상협력을 기초로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위하여 국내는 물론, 국경 너머 범아시아 차원의 철도와 도로 개발에 나섰다. 중국은 국내 개발로서 베이징을 중심으로 중국의 국토를 4종 4횡으로 연결하는 철도망을 계획하고 2015년에는 7,801억 위안(약 136조원)의 예산을 투자하는 고속철도 건설을 계획하였다(김주연, 2015).

중국은 국토 전역을 연결하는 철도, 도로 건설을 통해 베이징과 경제 격차가 벌어진 서남부의 발전의 동력으로 삼고자 한다. 아세안의 바다와 육지로 연결되는 중국의 광시자치구는 2016~2020년 “국민경제 사회발전 13차 5개년 규획”을 통해 경제발전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아세안 접경 지역의 산업 기반과 연계한 생산 협력 거점 조성 계획을 포함한다(김수한, 2018). 아세안과 중국 서남부의 국경 지역을 하나의 경제 단위로 묶는 이유는 중국의 동부해안 항만보다도 방콕과 싱가포르의 항만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중국이 아세안을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삼고 인프라 건설과 물류 및 생산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것은 일대일로의 국제적 야망과 중국의 국토 및 경제 균형 발전을 꾀하는 국내적 목표의 합작품이다.

싱가포르-쿤밍 고속철도
출처:http://www.asiabriefing.com/news/2014/01/china-build-high-speed-railway-southeast-asia/)

중국의 경제 발전이 아세안과의 연결에 달려 있는 만큼 중국은 대 아세안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아세안의 도로와 철도 건설에 막대한 예산과 기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중국 서남부의 쿤밍부터 싱가포르와 방콕의 항만으로 철도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중국은 중국 국경 모한에서부터 라오스를 관통하여 태국 국경에 이르는 라오스 철도 구간을 독자적으로 투자 건설하고 있다. 총 427km에 이르는 이 노선 중 라오스 구간은 418km이며, 2015년 12월에 착공한 공사는 2021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고속철의 평균 속도는 160km/h이며, 방비엔과 비엔티엔 구간에서 시속 200km/h로 설계되었다. 이 속도로는 모한에서 비엔티엔까지 12시간 걸리던 이동이 3시간으로 단축된다.

태국의 고속철도 계획도 중국의 대 아세안 개발 지원과 무관하지 않다. 태국의 고속철도 계획은 중국의 자본과 계획에 상당히 의존적인 상태로 진행되어 왔다. 2014년 7월 30일자 방콕포스트지는 중국과 태국 정부가 태국 영토를 가로지르는 고속열차를 건설하기로 한 사업에 대하여 태국의 쿠데타 정권인 평화와 질서를 위한 국가위원회(NCPO)에서 7,400억 밧의 예산을 승인했다고 보도하였다. 태국 정부는 태국 북동부의 농카이와 방콕 남부의 맙따풋(Map Ta Phut)을 연결하는 737km 노선과 치앙라이 치앙콩과 방콕 북부의 반파치(Ban Phachi)를 연결하는 655km 노선에 각각 3,900억 밧과 3,400억 밧의 예산을 할당하였고, 2015년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2021년에 완공할 계획을 세웠다.

태국 고속철도 계획
출처: Bangkok Post 2014

중국 정부도 2014년 연말 아시아태평양경제연합(APEC) 정상회담에서 “실크로드”를 재구현하기 위해 태국 정부에 철도 건설을 협조할 것을 요청하였고, 태국 정부도 이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태국 내 고속철도 건설 계획은 속도를 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애초에 두 개의 고속철도 노선을 계획했던 태국 측의 의사와는 달리, 중국 정부는 최종적으로 치앙콩과 농카이 노선 중 농카이-맙따풋 노선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양국은 이에 대한 협약을 맺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서남부 지역으로부터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까지 건설하는 고속철도가 라오스와 태국 국경 농카이로 연장되어 태국 중부와 해안의 공업지역인 라용까지 연결되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선택한 방콕-농카이 고속철도 노선은 총 2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콕에서 나콘 랏차시마(252.5km)는 방콕-농카이 고속철도의 첫 번째 구간으로 약 55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 건설 구간이다. 두 번째 구간은 나콧 랏차시마에서 농카이에 이르는 구간(350km)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구간을 모두 완공하기까지 총 110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만큼, 태국 정부는 건설비용을 투자받기 위해 대외적인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의 고속철도 건설 독점: 기술과 속도의 정치

2014년부터 본격화된 태국의 고속철도 건설 계획은 2017년 12월에서야 건설의 첫 삽을 떴다. 2021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공사는 비용과 기술 적용의 문제, 중국 차관의 상환 이율, 최고 속도와 수익성 여부에 대한 논쟁 등으로 지연되면서 현재는 초기 건설 구간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이다. 고속철도의 게이지(궤) 설정과 열차의 속도 문제, 이에 따른 비용과 차관의 문제와 같이 철도 건설의 기술적 문제에서 촉발된 논쟁과 공사 지연의 이면에는 중국의 철도 건설 독점에 대한 우려와 철도 건설을 계기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경계하는 정치가 녹아 있다.

1890년대에 건설된 태국의 철도(좌) 방콕-농카이 고속철도 착공식의 고속철 모형(우)
좌 출처: 저자제공 우 출처: Nations 2017. 12. 21

태국의 고속철도 궤와 속도 논쟁은 건설 사업을 지연시킨 중요한 요인이었다. 태국을 비롯한 아세안 지역의 철도는 1m의 협궤로 구축되어 있다. 1m 협궤의 평균 속도는 90km인데 반해, 1.4m 표준궤의 철도는 평균 시속이 250km이다. 따라서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서는 전 노선을 1.4m의 표준궤로 변경해야 하는 대대적인 공사가 필요하다. 태국의 고속철도가 1.4m의 표준궤로 변경되고 시속 250km의 운행이 가능해지면, 농카이와 방콕의 열차 이동 시간은 11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된다.

문제는 1.4m 표준궤를 적용할 때에 건설 비용이 커진다는 것이다. 고속철도 계획 초기에 태국은 1.4m 표준궤를 적용하되, 시속 160~180km에 이르는 수준으로 건설할 것을 중국과 합의했으나, 중국이 고속철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250km로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사가 지연되었다. 태국은 농카이 노선이 확정되기 이전, 시속 250km의 고속철도가 태국 북부 산악 지형에 적합하지 않으며,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180km의 속도 제한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농카이 노선이 확정된 이후, 철도를 화물 이동을 위해 사용하고자 한 중국의 입장이 관철되면서 중국과 아세안 대륙을 빠르게 잇는 목적이 달성되었다.

 

중국의 ‘부채 외교’에 대한 경계

태국과 중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지는 고속철도 건설은 중국이 디자인, 건설, 시스템을 제공하고 장비를 조달하는 역할을 맡고, 태국 정부는 토지를 수용하고 건설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하는 역할로 분담되었다. 태국은 중국으로부터 필요한 비용을 25~30년 동안 2% 기준의 이자와 함께 상환하고 7~10년의 유예 기간을 조건으로 대출받고자 했다. 반면 중국은 20년 상환 기한에 5-7년의 유예 기간을 조건으로 내걸었다(Amornrat, 2015). 양국은 중국의 고이율 제안과 짧은 상환 기간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고, 이 때문에 철도 건설 계획은 2017년 연말까지 지연되었다.

중국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받는 태국 내부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우려의 정서가 팽배하다. 표준궤 채택과 최고 속도를 둘러싼 태국과 중국의 갈등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태국의 정치적 제스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태국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고속철도 건설비용을 차관하는 것 역시도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고속철도 건설비용에 대한 오랜 논란 끝에 최근 태국 정부는 고속철도 건설비용에 필요한 차관의 80%는 국내로부터 융통하고 나머지 20%는 중국, ADB, JICA 등 다각화된 채널을 통해 차관할 것으로 발표하였다(Teeranai, 2019).

이는 태국의 고속철도가 자본과 기술에 잠식된 ‘중국을 위한’ ‘중국의’ 고속철도가 될 수도 있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태국 국민은 고속철도 주변의 토지가 중국의 개발 지역이 될 것이라고 여겼으며, 철도 건설로 인해 태국 경제에 중국이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지리라 생각했다. 고속철도 노선이 중국이 아세안과 연결되기 유리한 농카이-방콕 노선으로 선정되는 등 사실상 중국의 결정권이 크게 작용하면서 고속철도 건설 사업의 소유권이나 철도 이용의 혜택이 중국으로 편중되는 것이 아니냐는 내부의 비판이 거셌다. 태국 정부는 대출을 다각화함으로써, 고속철도가 태국 고유의 소유물이며 운영과 철도로 인해 중국이 태국 내 사업권에서 특혜를 얻지 않을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철도가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중국의 차관을 받아 건설한 철도 운영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해외 철도 건설의 선례들 역시 태국이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했다. 실제로 중국의 고속철도 건설 전략은 단순한 철도 사업을 수주하는 것을 넘어선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전 세계 고속철도 사업 수주 점유율을 50% 차지하는 중국은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케냐의 철도 사업을 수주하고 중국의 철도기술표준 방식으로 건설하였다(이지용·김동은, 2015).

이는 아프리카 지역의 철도 노선이 확장될 때 중국이 사업을 수주할 수 있는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단순 건설이 아닌 시스템을 수출함으로써, 중국의 철도 건설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아세안의 여러 국가, 특히 중국이 고속철도를 주도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라오스, 미얀마, 태국, 베트남에서는 표준화된 철도 건설 기준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아세안의 고속철도 건설도 중국에의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아세안 개별 국가의 철도는 국내선 구축을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아세안 국가들과 중국 등으로 확장, 연결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세안에서 중국이 고속철도 건설을 대거 수주함에 따라, 중국의 철도기술표준이 아세안의 철도 건설의 표준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라오스와 베트남의 고속철도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는 중국이 철도기술표준을 적용한다면, 고속철도에 대한 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태국 역시도 아세안 역내와의 연계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의 철도기술표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과 중국의 철도 연결은 베이징-쿤밍-방콕-싱가포르의 아세안 거점 도시를 연결하겠다는 의도뿐 아니라, 사업 수주를 통한 철도 표준의 독점적 시행을 노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아세안의 고속철도 건설은 아세안의 낙후된 철도를 개선하고 역내의 경제활동을 효율화하기 위한 사업이기 이전에, 중국과 아세안 내 국가들의 지리적, 외교적, 경제적 패권을 다투는 정치가 작동하는 장이다.2)

 

불안정한 태국 국내 정치와 인프라 건설 계획의 지연

철도 건설의 기술, 예산, 속도를 둘러싸고 아세안과 중국의 인프라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면, 국내의 복잡한 정치 상황도 경제발전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인프라 정치를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태국의 철도 건설 계획은 실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정치적 격동을 겪으며 계획이 반복적으로 보류되고 지연되어 왔다. 고속철도 건설 계획 지연의 원인은 중국과 태국 간의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의 측면도 있었지만, Aiyara(2019)가 지적한 것처럼, 태국 국내의 복잡한 정치 상황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고속철도 건설 계획은 아비싯 총리 재임 시기(2008-2011)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국에 고속철을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비싯 정권은 중국으로부터 고속철을 수입할 계획을 세우고 중국 정부와 MOU 체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협상을 진행한 민주당과 연합 정부의 하나인 품짜이타이 당이 고속철도 건설에 대한 중국과의 협상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사업이 연기되었다. 정치적 권위가 분산된 상황에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은 내부 정치 세력 간의 알력과 다툼으로 방해를 받게 된 것이다.

2011년 총리로 당선된 탁신 친나왓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은 고속철 건설을 공약으로 선거 운동에 임했다. 고속철 건설 공약은 고속철이 지날 것으로 예상되는 치앙마이, 나콘 랏차시마, 후아힌 등의 유권자들의 표심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정권보다 잉락 정권 기간 고속철도 건설 계획은 진전이 있어 보였다. 2012년 중국을 방문한 잉락은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MOU를 체결하였고, 고속철을 포함한 대규모 인프라 공사를 위한 680억 달러의 대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중 40%의 예산 규모가 고속철도 건설에 할당되었다(Aiyara, 2019).

그러나 대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잉락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헌법재판소는 잉락 정부의 대출 법안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판결을 냈다. 잉락 정부는 인프라 개발을 위한 대출 법안을 발행한 것과 무리하게 쌀 수매 정책을 펴며 예산을 낭비하고 농민들에 대한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고 비난받았다. 잉락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속되었고, 정치적 불안정을 핑계로 지금은 총선에 의해 총리가 된 쁘라윳 짠오차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과도 정부를 세웠다.

 

쿠데타 정부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인프라 건설: 쁘라윳 정권의 인프라 정치

쁘라윳 총리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불법적으로 이양한 이후, 군부 세력이자 친왕 세력인 현 정부가 반대 세력이었던 잉락 총리의 개발 사업들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해 국내외에서 촉각을 곤두세웠다. 쿠데타와 시위로 많은 대형 프로젝트가 사실상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지연된 사업은 고속도로를 비롯한 사회기반산업 건설, 국경경제특구 건설, 국영전화회사의 통신망 설치 사업 등 국내외적으로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사업이었다. 쁘라윳 총리는 잉락의 포퓰리즘적인 인프라 건설 정책과 예산 낭비를 비난하였기 때문에 대규모 사업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잉락의 메가 프로젝트의 ‘실정’에 의해서 등극한 쁘라윳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국가개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쁘라윳 정부에게 인프라 건설 사업은 쿠데타로 집권한 과도 정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활용되었다. 잉락 총리의 탄핵 사유였던 건설 프로젝트는 오히려 정부가 국민들에게 협조를 강요하는 대표적인 사업이 되었다. 인프라 건설 사업은 아세안을 강조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역설되었다. 쁘라윳 총리는 매주 금요일 밤 9시에 진행하는 국민대담 형식의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철도와 도로 건설 사업과 같은 공공 영역의 투자가 태국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아세안경제공동체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규모 건설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과 투자에 국민이 동의하고 협조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태국의 동부경제회랑 건설 계획
자료출처: Thailand Business News 2018. 09. 20
© DIVERSE+ASIA

 

2019년 2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쁘라윳 정권이 내놓은 경제발전 계획도 고속철도를 포함한 대규모 건설 사업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었다. Thailand 4.0으로 일컬어지는 고부가가치 산업과 기술 집약 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경제개발 계획은 방콕과 인근의 산업 단지인 라용, 촌부리, 차청사오를 잇는 동부경제회랑(Eastern Economic Corridor, EEC) 지역의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 계획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방콕-라용의 고속철도 건설, 램차방 항구 신설, 우따파오 국제공항 신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EEC 개발 계획은 총 43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될 계획이다. 고속철도 건설 계획도 EEC 개발의 일환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술, 행정, 재정적 기술의 결합물인 인프라 시설은 국가의 통치기술이 담긴 기술정치(technopolitics)의 산물로 기획되고 건설되고 있다(Larkin, 2013). 인프라 시설은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시설임과 동시에 사회적 안정을 꾀하고 정치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매개로 기능하는 것이다.

Thailand 4.0 홍보
출처: Youtube 동영상

 

누구를 위한 연결/이동 수단인가?

고속철도 건설 계획은 아세안 연계성의 지역 차원의 개발과 중국과 태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타개하는 방안으로서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정치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고속철도 건설 계획에서 철도를 이용하는 주체가 누구이고, 그것이 누구에게 어떠한 혜택이 돌아간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부재하다.

고속철도가 지나는 지역은 철도로 인한 물자, 사람의 이동이 많아져 경제가 활성화되고 산업이 집중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도로와 철도 인프라가 지나는 모든 지역이 균등하게 발전의 혜택을 나눠 갖지는 않는다. 열차는 목적지들 사이의 공간이 사라지도록 하며, 그것이 가로지르는 공간들과 사람들이 관계하지 않도록 하는 속성 역시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쉬벨부쉬, 1999).

고속철도 건설은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 역내 연결성을 높이고 태국의 아세안 역내 국가 및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인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수사로 포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외 정치적 갈등과 혼란을 잠잠하게 만드는 정치적 수사의 매개로 인프라 건설을 활용하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저자소개

채현정(renna405@snu.ac.kr)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다. 서울대학교에서 태국 북부 국경지역개발과 국경교역에 대한 논문으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태국의 국경제도변화, 국경지역개발, 국경이동의 네트워크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아세안지역시장의 출현과 국경교역 장의 재편”,“국경의 다중성 개념을 통해 본 아세안지역경제협력의 국경자유화 정책” 등의 논문이 있다.

 


1) ASEAN 2025: Forging Ahead Together에서는 1)고도로 통합 결합된 경제권, 2) 경쟁력 있고 혁신적이며 역동적인 아세안, 3) 연계성 강화 및 부문별 협력, 4)포용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아세안, 5)글로벌 아세안 의 5대 추진 목표를 채택하였다.

2) 라오스의 고속철도 건설도 동일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중국의 표준궤와 기술표준을 적용하고 중국 장비와 자재를 사용하기로 한 라오스의 고속철은 완공 후에도 중국의 기술 및 시스템 독점의 결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또한, 철도건설 비용을 포함하여 국내총생산의 50%를 중국에 빚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라오스에 건설비용을 대출한 상태이며, 라오스는 중국에 광산 수입으로 변제할 계획이다. 고속철이 완공된 이후에는 중국이 70%의 운영권을 갖고 나머지 30%의 운영권을 라오스가 갖는다. 건설 비용의 대출이자를 라오스 국유지, 광물 등 천연자원으로 상환하기로 한 점에서 라오스에 미치는 중국의 위협은 매우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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