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정권안보 추구와 대내외적 개혁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고 있는 대내외적 개혁 노선은 내부적 그리고 외부적 위협에 따른 정권안보 추구와 연관되어 나타난다고 평가될 수 있다. 우선 어머니의 지위가 중시되는 모계중심 사회에서 동복형제 간의 연대의식 발현은 왕위승계 과정에서 권력 갈등이 나타날 개연성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부패와의 전쟁은 국가방위부를 통제함으로써 정권안보의 도전 요인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내포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사우디 비전 2030 하에서 추진하는 온건 이슬람주의로의 국가 정체성 개혁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확산된 급진 이슬람주의의 요소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축출하겠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의지가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사우드 왕가의 통치 정당성을 비난해 온 이란에 대한 적대감이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고조되면서 이란과의 안보위협을 공유하는 이스라엘과의 화해를 비롯한 대외전략 변화가 목도된다. 이와 같이 정권안보 문제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책 변화가 연계되어 있기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개혁 성공을 위한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대내외적 개혁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층의 공감과 지지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면서 잔존하는 정치, 종교 보수 세력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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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단국대학교 GCC국가연구소)

모계연대 사회구조 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위승계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드 왕가가 통치하는 국가로 1932년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Abdulaziz Ibn Saud) 초대 국왕에 의해 제3사우디 왕국이 건립된 이래 압둘아지즈의 직계 아들들이 왕위를 승계해 왔다. 당시 압둘아지즈 국왕은 형제 계승의 원칙에 의거하여 자신의 아들 중에서 왕위가 안정적으로 승계되도록 유언하였고, 이후 형제 계승의 전통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형제 왕위승계 과정의 역사는 압둘아지즈 국왕의 바람대로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어머니의 사회적 지위와 부족적 연계가 매우 중시되는 강한 모계연대 사회구조 하에서 질루위, 수다이리, 샴마르 등 가문 간에 대립이 일어났고, 왕위승계 과정에서 1975년 파이잘 국왕의 암살과 같은 권력 갈등이 나타나기도 하였다(황병하․김강석 외 2011, 241-245). 이러한 왕가 내 권력 갈등에 대하여 마다위 알 라시드(Madawi Al-Rasheed)는 1953년 압둘아지즈 국왕의 서거 이후 밀실 협약에 의한 왕위승계가 자행되곤 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Al-Rasheed, 2018년 3월 21일).

이와 같이 잠재된 권력 경쟁 구도 속에서 사우드 왕가 내의 동복형제들은 강한 연대의식을 형성하며 권력을 강화하려 하였다. 일례로 소위 수디이리 7형제(Sudairi Seven)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내 가장 주요한 권력 핵심을 구성해 왔는데 파흐드 빈 압둘아지즈 국왕(2005년 타계), 술탄 빈 압둘아지즈 전 왕세제(2011년 타계), 나예프 빈 압둘아지즈 전 왕세제(2012년 타계) 그리고 현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권력자들은 자신의 가문 인사를 주요한 보직에 임용해 왔는데 모친이 샴마르 출신이었던 압둘라 국왕은 재직 시절 샴마르 가문의 인사를 국가방위부에 다수 등용 하였다.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 사회의 모계연대 중시와 왕가 내 동복형제의 연대의식은 왕위승계 과정에서 권력 갈등을 유발시키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존재해 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가계도에 나타난 주요 정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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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DIVERSE+ASIA

 

무함마드 빈 살만의 왕세자 등극과 권력 갈등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출처: 위키피디아

2015년 압둘라 국왕이 서거하면서 등극한 살만 국왕은 이복형제인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를 폐위시키고,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왕세자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을 부왕세자로 지목했다. 이를 통해 압둘아지즈 국왕의 아들인 형제 세대 왕위계승의 역사는 드디어 손자 세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년간 왕세자를 역임했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는 2017년 6월 권력 갈등 논란 속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에게 왕세자 직위를 위임한다(그림 1. 참조). 살만 국왕의 등극 이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지명에 이르는 일련의 왕권 승계 과정은 사우드 왕가 내부의 다양한 권력 투쟁설을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17년 가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부패 청산을 이유로 유력한 왕자를 구금하는 조치를 취하자 왕실 내분에 대한 우려는 크게 강화되었고, 2018년 4월부터 5월까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신병이상설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6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아부다비 왕세자와의 회동과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 참가로 이러한 언론의 추측은 잘못된 해프닝으로 종결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내부의 권력 갈등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자신의 왕세자 등극을 둘러싼 의혹 제기에 대하여 34명의 왕실충성위원회(Allegiance Council, Hayat al-Bayah) 위원 중에서 31명의 지지라는 역대 어느 국왕보다 많은 득표를 받은 만큼 정당한 과정이었다고 강조하였다(Time Interview, 2018년 4월 5일). 2006년 10월 압둘라 국왕은 칙령을 통해 ‘충성위원회 법’을 공포하여 외척을 배제하고 압둘아지즈 국왕의 살아있는 아들들과 손자들, 현 국왕과 왕세자로 구성되는 왕실충성위원회를 통해 왕세제를 지명하도록 조치했는데, 이는 왕위 승계 과정에서 자행될 수 있는 국왕의 독단전행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이원삼 2012, 94). 이러한 왕실충성위원회를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이 왕세자로 등극한 만큼 절차상 정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통적인 왕실 내의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Al-Rasheed, 2018년 3월 21일). 따라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함으로써 왕권 승계 과정에서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강화해 왔다.

 

부패와의 전쟁과 정권안보 유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11월 강력한 부패 개혁 조치를 단행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방위부 장관인 무타입 빈 압둘라(Mutaib bin Abdullah) 왕자, 억만장자로 알려진 알 왈리드 빈 탈랄(Al-Waleed bin Talal) 왕자를 비롯한 왕실 내부의 유력 인사들이 리야드에 위치한 리츠칼튼 호텔에 체포,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인터뷰에서 부패와의 전쟁 선포는 음성적으로 사라지는 연간 2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서 왕자들의 석방 대가로 무려 1,000억 달러가 넘는 추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CBSN Interview, 2018년 3월 19일). 따라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부패와의 전쟁은 유가 하락 등으로 수입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가 재정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그런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부패와의 전쟁은 경제적 목적 이외에도 정권안보의 차원에서 설명된다. 즉 자신의 개혁 조치에 반발하며 왕위 승계 과정에서 도전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불안 요인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 부패 청산을 정적 제거 및 권력 공고화에 활용하고자 했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나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조치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Trofimov, 2017년 11월 6일). 특히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가 이끌어 왔던 국가방위부를 장악한 것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권력 공고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1960년대 창설된 국가수비대는 태생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정규군에 대항하는 견제 역할을 수행하는 군 조직으로 간주된다. 1950-60년대 아랍민족주의 팽창에 고무되어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에서 군부 쿠데타가 지속적으로 발발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부족적 연대를 통해 확고한 후견-피후견 관계를 갖는 국가방위부 창설을 통해 쿠데타 방지를 모색하였다(Al-Rasheed 2017년 11월 5일).

압둘라 전 국왕의 장남인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는 엘리트 군인으로 구성된 국가방위부의 전권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오랫동안 행사해 왔다. 따라서 국방장관을 역임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비록 정규군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국가방위부를 완전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고, 이는 불안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부패와의 전쟁과 이후 국가방위부의 장악은 군부 내 권력분점을 통한 잠재적 불안 요인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정권안보 유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급진 이슬람주의의 위협과 온건 이슬람 국가로의 개혁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비전 2030 하에서 산업다각화를 통해 분배국가로서의 지대추구국가에서 석유의존도를 줄이는 생산국가로의 경제구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래비전 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관광산업 육성정책, 일자리 창출방안, 광산업육성, 세 개 대륙을 잇는 허브 구축전략, 의료부문 활성화전략 등을 제시하였다. 특히 사우디 비전 2030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을 표방하면서 온건 이슬람 국가로의 국가정체성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2018년 6월 24일 여성 운전 허용 조치는 온건 이슬람 국가로의 개혁을 상징하는 주요 조치로 간주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아내 카디자(Khadija)가 사업가였고 예언자 무함마드도 아내를 위해 일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무슬림 여성 권익 신장의 당위성을 피력하고, 단기간에 개혁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Time Interview, 2018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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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대내외적 개혁

그런데 온건 이슬람주의 노선 채택은 국민들의 지지 확보, 관광산업 발전과 같은 긍정적 파급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급진 이슬람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정권안보 유지라는 정치적 의도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 변질되고 왜곡된 급진적 이슬람주의가 침투하게 되었고, 이러한 잘못된 급진주의 요소를 축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Time Interview, 2018년 4월 5일). 와하비즘을 이단시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사우드 왕가가 메카, 메디나 두 성지 수호자(Khadim al-Haramain)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면서 통치 정당성을 부인해 왔다. 이와 관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직면한 급진 이슬람주의 테러 위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Time Interview, 2018년 4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는 극단주의 이념의 가장 큰 희생자이다. 만일 내가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극단주의자 또는 테러리스트라면 나의 이념을 전파하고 동조자를 모집하고자 할 것이다. 어떤 곳에서 이러한 모집이 용이하겠는가? 모로코나 말레이시아로 가야 할까? 이는 결코 아니다. 나는 이념 전파를 위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고자 할 것이다. 무슬림의 끼블라(Qibla 예배 방향을 의미)가 있는 곳으로 정한다. 성지를 보유한 나라로 가야 한다. 만일 내가 그곳에서 급진주의를 전파할 수 있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든지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1979년 이후 일어난 현상으로 모든 극단주의 세력과 테러리스트들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교두보로 삼고 전 세계로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우려대로 사우디아라비아는 급진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오랜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최근에도 알 카에다의 잠재적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아들 함자 빈 라덴(Hamza bin Laden)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규정하고 정권 타도를 위한 봉기를 독려하였다(Maza, 2018년 1월 19일). 이러한 맥락에서 무함마드 왕세자의 온건 이슬람주의 국가 정체성 변화의 이면에는 대내적 위협인 급진 이슬람주의의 정치적 도전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발표와 여성 운전면허 허용
출처: Gettyimage

 

이란혁명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대 이란 위협인식 고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1979년 이란 혁명의 결과 이슬람 급진주의가 사우디아라비아로 급격하게 팽창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사우드 왕가가 직면한 최대의 외부적 위협을 이란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란 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는 와하비즘를 이단으로 비판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타락한 왕정 국가로 규정하면서 사우드 왕가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불법적으로 탈취했다고 비난하였다(유흥태․한인택 2016, 153). 또한 이란 혁명 직후인 1979년-1980년 사우디아라비아 내 시아 무슬림들에 의한 반정부 운동이 크게 격화되었다. 시아의 순교자 하산(Hasan)과 후세인(Hussein)의 죽음을 기리는 아슈라(Ashura) 행사 기간 시아 무슬림들의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도시에서 사우드 왕가에 대한 봉기가 촉발되었다.

이와 같이 이란 혁명의 결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란에 대한 적대감은 강화되었고,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 레바논, 예멘 분쟁 등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대리전적 갈등이 고조되자 양국 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중동을 이분법적 관점에서 구분하면서 이란, 무슬림형제단, 순니 테러집단을 악의 삼각지대로 지칭하고,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김강석 2018). 따라서 이란 혁명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란에 대한 적대감과 위협인식은 증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대외전략 변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란과의 대결 구도 하에서 대외전략 변화를 모색해 왔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의 대 이란 화해 모색으로 갈등 관계를 보이던 미국과의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게 되었다. 또한 2017년 6월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연합, 바레인, 이집트 등 주변 아랍국가와 함께 정적인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카타르와의 단교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2015년 3월부터 예멘 내전에 개입하여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후티 반군과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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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이란에 대한 위협인식 고조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이스라엘과의 화해 모색으로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모두 이란을 최대의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간의 협력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따라서 사우디 비전 2030 하에서 추진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NEOM) 프로젝트에 이스라엘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방안 등 경제적 공조 가능성이 커지고 이란 위협에 대한 공동대처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의 영토주권 및 국가 존립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과거 사우디아라비아 국왕들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전통적 입장과 사뭇 다른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김강석 2018).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성공을 위한 과제

지금까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고 있는 대내외적 개혁 노선을 내부적 그리고 외부적 위협에 따른 정권안보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조명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사우드 왕가 내부의 왕위승계를 둘러싼 잠재적 갈등 요인, 이슬람 급진주의자의 도전, 그리고 정적인 이란의 위협은 무함마드 살만 왕세자의 국내 정치적 개혁과 대외전략 변화를 야기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정권안보와 대내외적 개혁 간의 연계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개혁 정책의 가시적 성과 도출을 위해 역량을 집중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혁 성향의 젊은 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인구구조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정책을 성공하도록 이끄는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1950년 312만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인구는 2017년 외국인 약 1050만 명, 자국민 약 2250만 명으로 합계 약 3,293만 명으로 증가했고, 전체 인구의 약 70%는 30세 미만으로 젊은 층이 다수를 차지한다(Friedman 2017). 따라서 여성 운전면허 허용, 엔터테인먼트 산업 육성, 새로운 일자리 창출 시도와 같은 개혁 추진은 사회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층의 공감을 획득함으로써 국민 다수의 지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수(단위: 천명) 연령별 인구(단위: %)
인구(전체) 남자 여자 0세-14세 15세-24세 25세-59세 60세 이상
32,938 18,798 14,140 25 15 54 6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구조
출처: 그래프 – CIA World Factbook (2017)
표 – UN WPP(World Population Prospects 세계인구전망, 2017)

개혁에 대한 젊은 층의 공감과 지지 확보가 사우디아라비아 변혁을 견인하는 긍정적 요소로 평가된다면 사우디아라비아 내부의 정치·종교 보수 세력의 반발은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정치와 종교 간 오랜 공생 관계를 유지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정부 울라마 인사들과는 달리 일부 보수 울라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을 탐탁하지 않게 여길 수 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내부의 잠재된 권력 갈등 구도 하에서 개혁을 반대하는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향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대내외적 개혁 성패는 일부 보수 세력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무마하고, 젊은 층의 공감과 지지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의해서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저자소개

김강석 박사(ssalomi@naver.com)
현재 단국대학교 GCC국가연구소 전임연구원이다. 미국 UCLA 중동연구소에서 풀브라이트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동 냉전사, 한·중동 외교사, 중동정치, 미국과 중동관계 등으로 관련 다수의 논문을 집필하였다.

 


참고문헌

  • 김강석. 2018. “무함마드 빈 살만과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관계 개선.” 『GCC Report』 132호. 단국대학교 GCC국가연구소.
  • 유흥태․한인택. 2016. “이란-사우디아라비아 관계 결정요인과 전개방향.” 『한국과 국제정치』 32권 1호.
  • 이원삼. 2012.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층의 노령화와 권력승계도 연구.” 『한국이슬람학회논총』 22권 1호.
  • 황병하·김강석 외. 2011. 『주요 중동국가들의 정치권력구조 연구』. KIEP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Al-Rasheed, Madawi. 2018. “Only death’: How Mohammed bin Salman has torn up the rules of kingship”
    http://www.middleeasteye.net/columns/what-could-prevent-mohammed-bin-salman-becoming-king-1428554577(검색일: 2018. 03. 21).
  • ——————. 2017. “The night of the long knives in Saudi Arabia”
    http://www.middleeasteye.net/columns/night-long-knives-saudi-arabia-1884539620(검색일: 2017. 11. 05).
  • CBSN Interview. “Saudi Arabia’s heir to the throne talks to 60 Minutes”
    https://www.cbsnews.com/news/saudi-crown-prince-talks-to-60-minutes/(검색일: 2018. 03. 19)
  • Friedman, Brandon. 2017. “Saudi Arabia’s Crown Prince Mohammed bin Salman: Between Transformation and Confrontation?“
    https://dayan.org/content/saudi-arabia’s-crown-prince-mohammed-bin-salman-between-transformation-and-confrontation#_ednref13(검색일: 2017. 11. 27)
  • Maza, Cristina. 2018. “Hamza bin Laden, Osama’s Son, Denounces Saudi Arabia, Calls for Overthrow of Monarchy in New Al-Qaeda Video”
    https://www.newsweek.com/hamza-bin-laden-osama-saudi-785121(검색일: 2018. 01. 19)
  • Time Interview. “Crown Prince Mohammed bin Salman Talks to TIME About the Middle East, Saudi Arabia’s Plans and President Trump”
    http://time.com/5228006/mohammed-bin-salman-interview-transcript-full/(검색일: 2018. 04. 05).
  • Trofimov, Yaroslav. 2017. “In Saudi Purge, Echoes of Putin and Xi.” The Wall Street Journal (November 06).
  • United Nations. 2017. World Population Prospects: key findings & advance tables.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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